오색 넘어 흘림골로 버스가 들어가는 순간
가을이 채 무르익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설악산은 높은 산이다.
산위의 단풍이 다르고
산 아래의 단풍이 다르다.
밤의 퇴계와 낮의 퇴계가 다르듯.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내 삶에 산이 남아있기에.
늙어빠진 영혼에 답을 주는
영감의 사전이 곁에 있기에.
설악산 모든 등로중 下中下라는 흘림골 주전골 구간.
그래서인지 전국의 어중이 떠중이 산객들은 다 몰려들어 산길이 온통 북새통이다.
멀찌감치 사람들을 보내놓고
나는 그저 그들을 뒤따라 걷는다.
산길에 무슨 격이있겠냐만은
산길을 걷는 자의 격은 자못 확실하다.
아무렴 어떤가
모처럼 아내와의 산행인데.
아내는 시냇물에 떠내려가는 나뭇잎배처럼,
혹은 봄날의 종달새처럼 잘 걷고있다.
사춘기 아이들의 거웃처럼
단풍이 수줍다.
메마른 날씨에 오갈증이 든 단풍잎은
미리 추수한 오려처럼 숲을 겉돈다.
설익은 오방색에 사람 먼지가 앉아
텁텁한 막걸리의 뒤맛처럼 詩情이 아쉽지만
시정을 늘 가을에서 찾아야할 이유는 없다.
문득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떠올랐다.
"강한자가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 자신이 미워졌다."
나는 살아있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내가 나 자신을 미워할만큼 나는 강한가.
ff(포르테 시모)를 뛰어엄어
주먹으로 내려치고 싶은
공포의 fff(포르테 시시모) 삼연타가 나오는
쇼팽의 프렐류드 24번.
형편없이 나약해진 익명의 숲이 주는 일종의 변증이다.
성긴 머리처럼 군데 군데 쥐파먹듯 들어버린 단풍이지만
이런 형태의 단풍도 견딜만은 하다.
농익은 단풍은
늦가을에 너무 많이 먹은 홍시의 단맛처럼 사람을 질리게한다.
질린다는것은 더 이상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상태다.
그래서 질릴 정도의 붉은빛 속에는
오히려 슬픔이 서리게 마련이다.
이정도의 단풍에는 뭔가 희망의 빛이랄까
아주 질려버릴 절망이 아니라
젊음을 향한 연민같은 작은 쓸쓸함이 남아있다.
칠형제 바위봉
여심 폭포
女心인지 女深인지
설악산 서북능이 병풍처럼 펼처지고
칠형제봉
산에 올라와 산을 상상하게 된다.
휘어진 나무에 올라
아슬 아슬 다음 가지로 건너 갈 때처럼
손을 뻗어 산을 어루만진다.
산이 멀어진다.
산은 하늘을 고정하는 법을 알고 있지만
나무 위의 나는
나를 고정하는 법을 모른다.
아마 나는 이미 오래 전에
나무로부터 내려왔어야 했나보다.
뼈처럼 곧게 자란 바위들을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내 안의 흔들림을 알았다.
지구의 자전처럼.
서북능과 거의 等位에 선 기분이다.
서북능을 내 두 눈과 등위에서 마주치자
이루 말할수 없는 시원한 해방감을 느끼게된다.
세상의 저편,
천하의 아름다운 비경을
무대 뒤에 숨긴 서북능이지만
서북능 자체의 스케일 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한다.
마치 뭔가 쏫아져 내릴것같은 원시의 갈증이
폐장 깊이에서 간절함을 엮는다.
대청 중청 끝청이 형제처럼 보인다
상아빛 화강암이
바위틈에서 자라는 거북손처럼
앙증스레 작은 손을 흔드는듯하다.
그런 심묘한 흔들림으로 인해
산이 파도 치듯 일렁거린다.
아직 녹음을 채 떨구어내지 못한 설악이지만
말리 은근히 담아내는 가을 분위기는
꽤 고혹적이다.
이른 노골적이지 않은 은근함이야 말로
설악이 지닌 매력이 아닐까.
등선대에서 바라본 인파
언어의 침식을 잘 견디어 낸 詩語처럼
견고한 풍경 하나가
남설악을 압도하며 솟아있다.
등선대에 올라 세상을 보면
360도를 회전하며 찍는
메트릭스의 아크샷(arc shot)처럼
내 몸이 나도 모르게 돌고 있음을 느낀다
풍경을 주체 할 수 없는 전망이다.
그런 한켠에서는 인간을 풍자하는
또 하나의 광경이 연출된다.
위 아래.
사방 팔방
안복이 성찬을 맞이한 격이다.
망대암산에서 접봉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구간
지난 봄 걸었던 길이다.
그날 점봉산에서 만난 아침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새벽 어두움을 틈타 온몸으로 산을 올랐던 나는
비록 잠자듯 가는 자연사를 염원하지 않지만
어찌 죽게되던 점봉산 정상이야말로
내 죽은 뒤 산골처로 소망할만한 곳이라 여겼다.
그만큼 점봉산 정상은 영적 감성이 우러나는 곳이었다.
비법정 탐방로이기에 그날은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캄캄한 산길을 걸었다.
앞에 보이는 저 능선이 바로 그 길이다.
오늘 등선대에 올라 우리가 그 길을 되짚어 보니
정말 아찔할 정도로 암능이 험하다.
저 거친 암릉 위를 산양처럼 기어 오르는 내가 보였다.
안개 낀 신새벽 막막함이 닥치면
밥보다 詩가 필요하듯
그날 내게는 그렇게 길이 간절했던 모양이다.
용아장성을 방불케하는 멋진 암릉
가을 숲의 인파
가을 숲을 蛇行의 물길처럼 사람들이 지나간다.
마음에 저녁 어스름이 지듯 근심이 맴돈다
나뭇잎을 떨군 신갈나무의 우듬지들은 은빞으로 반짝인다.
용서한적 없는 죄가 사해졌다.
나는 낙엽보다 더 아래의 땅을 향해
떨어질것만 같다.
멀리 한계령 휴계소가 보이고
서북능 우측 끄트머리에 안산이 놓여있다.
등선대에서 바라본 칠형제 바위봉
등선대에서
등선대에 오르지 않고 많은 일행들이
고개를 바로 넘어간 모양이다.
앙코가 빠지 찐빵이 되어버린 격이다.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산행 전에 잠시 짬을 내어 사전 정보를 알았더라면
이런 허무한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든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 보니 별이별 사람들이 다 몰리는것은
어찌할수 없지만
이런 경우 최소한의 상식 혹은 예절이 통했다면
훨씬 참을만한 산행이 되었을것이다.
포항에서 온 산행팀들이 있었다.
하산길 내내 고래 고함을 지르고
호루라기를 불러데고
심지어는 뽕짝을 크게 틀어놓고 무리지어 산행을 하고있었다.
평소같았으면 그 자리를 피해버리면 그만이지만
사람에 막혀 자리도 피할 수 없는 노릇이라 꼬박 그 고통을 안고 산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산들이 참을성있게 만들어 놓은 가을이지만
인간들은 아직 가을을 즐길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인파에 밀려 에스컬레이트에 탄 사람처럼 떠 밀려 가면서도
뒤로 물러나는 풍경이 아쉬워 자꾸 셔터를 누르게된다.
산행을 포기한듯한 맹목중에도
단풍과 산봉오리가 기막히게 어울리는 풍경을 보게되면
애써 풍경의 편이 되어 풍경을 아름답게 버무려 본다.
풍경을 보는것이 아니라 풍경을 짓겠다는 심정으로.
흘림골 정체야 익히 들어온 악명이지만
예상외로 심했다.
끼어들려는 자와 막는자의 대치가 층간 소음처럼 거슬렸다.
마치 전쟁의 아픔을 기념하기 위해 남겨 둔 잔해처럼
설악산 관리공단은 왜 이곳만 정비를 미룬 채 매년 가을이면
이렇게 몸살을 앓게하는지 모르겠다.
좌우지간 쓸데 없이 많은시간을 길에서 허비하고 말았다.
그 소모가 생각을 가다듬거나 사진을 찍는데 쓰여지지도 못했다.
짜증이 이스트를 넣은 빵처럼 부풀어
전체 산행 분위기를 망쳐버리고 말았다.
산행을 통해 강력한 심미적 즐거움을 느끼려는 이가 많아졌다.
그래서 더 아름답고 더 험한산을 오르게된다.
우리나라처럼 도처에 손쉽게 오를 수 있는 아름다운 산들이
많은 곳도 세상에는 더물것이다.
미처 기대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나며
대뇌에 충만한 쾌감을 우리처럼 경험하지 못하고
휴일 하루를 보내고 있을 가족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아버지들은 아이를 세상 꼭대기에 데리고 가고 싶어지는걸까.
시험 공부에 열중일 아들 생각이 모처럼 났다.
紅이 아름답다기 보다
홍을 아우르는 세상의 모든 색들이 아름다운것이다.
프리 마돈나와 같은 적단풍이
가을 하늘 일편을 물들인다.
나는 내 중년의 얼굴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진을 선뜻 찍으려 들지 않는다.
납덩이 처럼굳은 표정은
한번도 제대로 웃어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아름답고 환한 얼굴 모습은 부단한 연습의 결과일까?
하지만 나는 그 연습을 게을리하였는지
사진 속의 내 모습은 세상을 너무 알거나 혹은 너무 무시해
세상가 단절된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나를 찍는 대신
내가 표현 하고자 하는 얼굴을 대신하여
아주 작은 꽃들을 즐겨찍는다.
하지만 오늘 산에는 가을 꽃이 없다.
그 흔한 쑥부쟁이 꽃 한송이 보이질 않는다.
그 꽃들을 대신해
붉게 타오르는 단풍잎을 찍고 간다.
내 얼굴이라 믿으며.
예를 들면 술을 석잔 마신 뒤의..
나는 계곡 사진을 좋아하지 않는다.
수직으로 찍은 절벽들은 한 화면에 채우기 힘들고
설사 채워졌더라도
사진을 보는 긴장감이 떨어진다.
계곡 풍경이 쉽게 허락하는 획일적인 원근 구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가을이 아니면 계곡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그래도 가을의 계곡에는
색과 빛이 주는 오묘한 어울림이 있으니까.
등선폭포
답답한 가슴에 말뚝을 박듯
듬직한 고목하나가 등장한다.
난초 그림의 파격처럼
수직의 굵은 파격이 그려진다.
밍숭거리던 사진 속에
걸죽한 남도의 욕지거리가 끼어든다.
햇살 풍성한 당단풍 숲길을 지나는 동안
마른 가을의 향취가 꾸역 꾸역 묻어났다.
거꾸로 선채 벽에서 말라가던
그녀의 마지막 장미향도 있었다.
발끝이 지날 때마다 빛들은 곡식을 털듯 우수수 떨어졌다.
일상으로 쓰는 문자같은 그리움이었다.
흩어진 글들이 나비처럼 나무애 붙어
서툰 곁사랑을 만든다.
다 털어버려 남는것이 없는 주머니처럼
마음이 허전했다.
단단한 옹이처럼
가슴에 남은 이 마지막 결구를
사람들은 아마 추억이라 부르는 모양이었다.
중년에 들어 선 나에게 가장 다행스러운 일은
일상적인 문제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섰다는 것일게다.
일상이 주는 무기력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 위험을 스스로 찾게되는 이 짜릿한 행복.
나는 자신에 부과한 위험에서 벗어날 때 느끼는 흥분감과 성취감이야말로
중년의 무기력을 이겨내는 보약이라 생각한다.
등산이 그렇다.
나의 가슴에는 꽃다발을 꽂아 둘 화병 따위는 없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모노드라마와 같은 역동성이 존재할 뿐이다.
살며 겪는것들이 녹아들어야 제대로된 삶이라 할 수 있지.
걸음도 아마 마찬가질거야.
걸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새벽 이슬처럼 늘어지고,
슬픔이 육자배기처럼 담담히 녹아들어야 제대로된 걸음이라 할 수 있지.
영영 돌아오지 않는 다는 그 무엇인가가 그립다.
지금은 남지 않은것.
돌아올 수 없는것.
그것을 찾아 행여 가을 숲을 헤메이지 마라.
돌아온다면 이미 추억이 아니다.
행복은 왜 늘 극적인가.
그렇지 않다면 왜 행복은 불현듯 나타나나.
행복은 몰려 다니는 송사리다.
그러니 행복을 낚으려 기다리지 말라.
상항이 좋아지면 어김없이 나타나리니.
그날이 언제일지 모른다면
당신은 지금 일이나 하면된다
우수수 쏟아질듯 걸린 저 그리움을
아무도 추수하지 않는다.
아무리 가을문 활짝 열어젖혀도
가을은 가을일 뿐
또 해묵은 그리움으로 남을 모양이다.
시간이라 할 수도 없는 까마득한 세상을 지나
우리 비로소 만났는데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걷고 있구나.
가을 숲 사이로
마른 별처럼
하늘은 송송하고
한 때를 이겨 낸 투명한 슬픔.
키큰 나무처럼
상처마다 단풍 담아내어
아내여 함께 걸어가자.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어차피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일.
상투적으로 말해 삶이란 그런 것.
인생이란 다 그런 것.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혼자가 주는 텅 빔,
텅 빈 것의 그 가득한 여운
그것을 사랑하리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중에서/ 김재진
한번 마음에 들었다고 그 판단을 계속 고집하거나
타인의 판단을 기계적으로 답습하는 일은 조심해야한다.
세상은 변해가는것.
흐름에 맞추어 삶에 지긋이 스며드는것이야말로
삶의 지혜가 아닐까.
산길이 끝나갈수록
그런 생각이 간절하다.
나는 오늘에 스며들었을까
마음에 들었건 그렇지 않았건 그냥 온전한 하루로...
- 후 기-
나는 클래식 음악이 주는 화성의 깊이를 사랑한다.
모노로 녹음된 푸르트뱅글러의 음악이 스테레오만큼 여전히 강한 인상을
남기는것은 첼로와 콘트라 베이스의 저음부에서 솟아나는 풍성한 화성의 깊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단풍이 숲의 화성을 만들어 내는 계절이다.
올해만 다섯번의 설악산 산행이기에
물릴 때도 되었건만
모처럼 아내랑 떠나는 산행이기에 선뜻 따라 나섰다.
숲은 아직 잘못 짜여진 오케스트라처럼
설익었고
사람은 장미꽃에 붙은 진딧물처럼 끔찍했다
맞지않은 옷을 입은것처럼 답답한 하루였다.
그 옷을 벗어던질 수 없었기에 더 답답했다.
제1악장 - 알레그로 모데라토 D장조 2/2박자
하이든 종달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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