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나의 최초의 한라산 적설등반기

poll™ 2008. 12. 1. 19:57

 

 

 

22년 만에 찾아온 하이야트 호텔. 신혼여행을 여기로 왔었는데.

혼자 자야 할 침대가 너무 넓어 보입니다.

잠이 제대로 올려나...

억지 잠을 청합니다.

 

 

창밖에는 동지나해를 빠져나가는 바람이 매섭습니다.

저 바람은 구름을 쫒아 맑은 조망을 선사할 것입니다.

혹시 산꼭대기에서 눈보라를 만날까봐 조바심이 납니다.

준비해온 등반 장비를 만지고 또 만져 봅니다.

 

 

 

 

등반을 같이하는 분들은 다 부산지역 소아과 의사들입니다.

한명의 후배와 네분의 선배.

모두 등산 경력이 오래된 분들이라 설산을 오르는데 이것 저것 주어들을게 많습니다.

길은 얼어 대형버스는 통제되고 이따금씩

사륜구동의 소향차들만 조심스레 지나다닙니다.

그러나 어쩐지 위태해 보이네요.

 

 

아니나 다를까 얼마 가지않아 빙판길에 미끌어진 차들의  몰골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길 밖으로 삐져나온 차.

한바퀴를 돌아 마주 내려 오는 차와 부딪힌 차.

눈 앞에서 세바퀴를 돌고 빠져나가는 차도 목격했습니다.

모두 부딪힌다,부딪힌다를 연호했지만

그 차는  김연아가 스케이팅 실력을 보여주듯 유유히 무사 탈출을 하였습니다.

안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법이 없다라는 사실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

 

주차장  입구에서 영실 매표소에 이르는 2.4Km의 긴 구간을 걸어온 끝에

마침내 일행은 영실 들머리에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은 이미 표고 1200m 의 고지이니 공짜로 영남 알프스 7좌 하나를 넘은 셈이네요. 

 

 

 

눈의 세계.

雪國. 유키쿠니

유년시절 정신의 생몸살을 앓게했던 그 지독한 소설.

일찌기 카와바타 야스나리가 그 섬세한 감성으로 쓰내려갔던 설국의 세계에

내가 정말 첫발을 내디디게 되었습니다.

설국의 세계는 몽환적이면서도 여성적입니다.

그래서 이번 한라산 산행도 작가가 설국에서 그려낸 그런 미학적인 세계로의

여행이 되었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몽환적이란 말은 실제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카와바타 야스나리는 그의 특유의 섬세한 묘사로

마치 세상에 없는것들이 실제하는양

실제와 허구를 뒤섞어

아름다움의 옷을 입은 정교한 에로티시즘을

순백의 설국에 붉게 물들게했습니다.

 

 

병풍바위

오백 나한.

쇠스랑으로 아스팔트를 긁어 논것 같습니다.

 

 

 

설국에 나오는 말처럼

나는 얇고 매끄러운 피부를 사랑합니다.

인간으로서 남자로서 사랑합니다.

설원은 얇고 매끄러운 피부와 같이 느껴집니다.

살을 갖다대 만지고 싶고 부비고 싶습니다.

 

눈의 속성에는

만지면 부숴지고 누르면 무너질것 같은 연약한 여성성이

잠재되어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담백한 사랑.

"나는 그녀를 먹었고, 동시에 그녀에게 먹힌 셈이지.

그게 전부야.

그저 좋은 사람이 된 기분이지...."

-바이브레이트에서-

 

나는 정말 산에게 온전히 먹힌 기분이었고

어쩌면 정신적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그렇게 되기를 바랬는지도 모릅니다.

서로의 피부에 닿고 싶은 충동,

매끄러운 피부와 살덩이를 매만짐으로써 오는 안도감과 위로.

인간과 인간의 사랑에 살을 섞는 일이 필요하듯

나는 설원에 내 살과 몸뚱아리를 하염없이 허락하였습니다.

 

 

 

 

 

 

 

 

 

 

 

영실에서 어리목에 이르는 이번 산행의 정점에는 윗새오름이 있습니다.

윗세오름에서 한라산 정상을 오르는 등로는 폐쇄되어있기에

한라산의 북벽은 언젠가, 그 언제인가를 위한 염원의 대상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굳이 한겨울의 백록담을 보기 위해서라면

성판악에서 오르는 코스가 열려있긴 하였지만

족히 8시간이나 걸리는 긴 구간을 감안 할 때

초행길인 나에게는 아무래도 무리인듯 싶어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산은 내가 처음 올라가보는 산입니다.

처녀지는 언제나 설레임으로 다가옵니다.

흰눈이 새하얗게 뒤덮인 나의 처녀지 한라산.

세상은 단색조의 엄숙함을 강요하지만

내 마음은 한없이 달뜨기만 합니다.

 

 

 

 

푸른 라군속 산호처럼

파란 하늘에 눈을 맞은 가지들이 빛납니다.

모든것이 신비스럽기만합니다.

신비스러운 풍경 속에

늘 같이 산을 올라다녔던 山友들의 모습이 환영처럼 포개집니다.

눈밭을 뒹굴고 싶습니다.

주저하는 나의 모습 속에 세월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세월이 어리고 순수한 마음을 채어간 모양입니다.

나는 기분 좋은 발아래 감촉을 느끼며

눈길 속으로 나아갑니다.

 

 

 

 

 

 

 

 

 

 

 

 

 

 

 

 

 

 

나는 물건과 물건이 뒤섞이는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우리집에 가구를 두는것도 꼭 일상에 필요한것이 아니면

금합니다.

물상은 여백과 소통하고 대화함으로써

아름다움을 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여백의 미라 할것입니다.

 

 

 

 

 

 

 

 

 

병풍바위 지나 능선으로 오르자 이미 발아래에는

따스한 햇살이 가득한 남제주의 풍광이 펼쳐졌습니다.

오름과 오름들이 고대왕의 무덤처럼 평온해 보입니다.

제주 바다는 엷은 바람을 담은채 유유하고

현무의 땅들은 계절을 잊은듯 따사로와 보입니다.

온 세상에 평화와 거짓없는 진실이

마치 하나의 표상처럼 전개되는 풍경입니다.

 

 

 

 

 

 마침내 윗새오름의 위용이 드러났습니다.

처음엔 저기가 한라산 꼭대기인 줄만 알았습니다.

치차와도 같은 엣지를 두른 모습이 고대의 성처럼 장엄해 보입니다.

그뒤에 있을 한라산 북벽을 생각하며

촐라체를 하릴없이 떠올립니다.

 

 

 

 

 

순백이 아름다운것은 조형이 되는 대상에게

한없이 팽창하는 공간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돌과 그 뒤의 여백이 어울려

완전한 예술로 탄생합니다.

그러므로 설산의 아름다움은 하나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총화라 하여야 할것입니다.

 

 

 

 

 

 

 

 

멀리 한라산의 북벽을 아스라히 두고

사진 한장 찍어봅니다.

산이 아득하니 마음은 더 산을 오르고 싶어합니다.

내 등 뒤의 두 말할 필요없는 코발트빛이 가득합니다.

코발트로 멋을낸 청화백자를 세상에서 제일 처음 많든 이는

 분명 눈덮인 하늘 아래에서 자라온 자 일것입니다.

 

 

 

 

 

 

 

 

 

 

 

 

 

 

 

 

 

 

 

 

 

 

 

 

 

 

 

 

 

 

 

 

 

 

 

 

 

 

 

 

 

 

 

 

 

 

 

 

 

 

 

 

 

 

 

 

 

 

 

 

 

 

 

 

 

 

 

 

 

 

 

 

 

 

 

 

 

 

 

 

 

 

 

 

 

 

 

 

 

 

 

 

 

 

 

 

 

 

 

 

 

 

 

 

 

 

 

 

 

 

 

 

 

 

 

 

 

 

 

 

 

 
Everything I Do It For You - Kenny G & LeAnn Rimes


 

 

'마음으로 오르는 산 >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라산의 모노크롬  (0) 2008.12.05
선작지왓의 운무  (0) 2008.12.05
우포  (0) 2008.11.24
가을에게 길을 묻다. 불광산 언저리  (0) 2008.11.17
장안사 척판암  (0) 2008.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