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포
산중에 만나고 멀어지는 길들이
인생의 행로에서 만나고 스치며 주고 받는
씨줄과 날줄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 하루가 베틀 위에서 베를 짜듯
우리는 삶을 채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에서
마침내 삶이란 직물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산 위에 서면 바다가 꽃과 같고
바다에 서면 산이 꽃처럼 아름답습니다.
세상이 꽃과 꽃이 되어 화답하는 봄입니다.
몽실 몽실 피어 오르는 연두빛 신록이
어린아이의 주먹손처럼 예쁘다.
봄 기운은 일종의 반란이다.
혁명이다.
봄에 태어난 나는 이런 봄의 성징을 지니고 태어났다.
발전적 형태로의 진행
이것이야말로 봄의 진미가 아니겠나.
여차 해수욕장
어릴적 아이들과 여차에서 여름을 보낸적이 있다.
그 젊은 시절의 여름을 나는 어떻게 보냈을까.
지금은 맛있는 요리하나 만들어 주지 못하고
틈만나면 나돌아 다니는 나를
아이들은 배우려할까
비난하려 할까.
한 사람이 다른 한사람의 빛이 되어야만 한다면
나는 누구를 비추는 빛이 될까.
내가 누구를 비추어야만 서로가 살 수 있는
세상이 된다면,
그런 이타적 세상이 된다면
나는 높은 산위의 산지기가 되고 싶다.
사람이 없는 날
혼자 스스로를 비추는.
연달래
진달래에 연이어 핀다고 하여 연달래라 부른다.
토종 철쭉이다.
노자산에서 가라산에 이르는 산그리매
아내에게
벌어지지도 않을 일에대해
단 한번이라도 불안해 한적이 있다면
당신은 이 자리가 불편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나는 공간의 공간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상이 마치 꿰 마춘듯 다 제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생각지도 못한 온갖 일들이 벌어집니다.
내 앞을 힘겹게 걸어가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불안해 할 필요가 없는 공간에서
현실화 되지 않는 위험을
자꾸 상상하게 됩니다.
그러나
당신으로서는 장족의 발전일 것입니다.
나의 과거도 당신을 닮았으니까요.
축하합니다.
멋진 당신.
망산
내봉산 지나며 만나는 망산.
암봉으로 이루어진 정상의 위용이 당당하다.
망산 뒤로 노자산이 보인다.
삼월 들어 감질나게 봄비만 서너번 들었지
모내기철을 앞두고 봄가뭄이 기승을 부려
여기 저기 산불 소식만 시끄러운데
남해 더운 바다는 안개나 뿜으며
한가하게 늘어져 있다.
세상 바라보기가 떫은 감처럼 텁텁하다.
물도 오래된 샘물 맛이 깊고
산도 묵은 산이 좋다는데
봄 햇살에 장 익듯 곰삭은 풍경이
높지도 모자라지도 않아
봄 놀이에 이만한 데가 없다 싶기도 하다.
희미한 매물도와 가왕도
섬들이 바다의 오선 위에 춤춘다.
해무에 가린 신비한 모데라토가
가슴 줄을 퉁 퉁 튕기며 소리를 낸다.
그 물결음에 신명난 달디단 풋 바람이
한 웅큼씩 고개를 넘어 온다.
고개를 올라도 흥이요
내려서도 흥이다.
세상이 다 음악 속에 있다.
좌로부터 대병대도,소병대도, 뒤로 희미하게 매물도가 보인다.
바다에 더문 더문 박힌 섬들이 마치 교토 료안지의 석정을 연상케합니다.
아무도 없는 료안지에서
아내와 함께한 삼십분.
그 긴장된 감흥은 아니지만
이 개방 공간에서 만나는
모노(物)적 감동은
이우환을 휙 뛰어 넘는 엄청난 스케일로 다가옵니다.
세계와 세계의 만남
만남을 뛰어 넘는 物(모노)와 物의 소통.
내가 작가라면
이 풍경을 '섬으로 부터'라 명하고 싶습니다.
걸어 온 산 돌아보기
말수 적은 아내와 스무 세해를 살면서도
그래도 어느 대목에선가에는
꽤 온기있는 대화도 오갔으련만
힘겹게 산을 타는 아내의 뒷모습을 묵묵히 좇아가며
말머리를 잃은 사람들처럼 마냥 걷는다.
아내의 볼이 발갛게 상기 되어있다.
말은 필요없다.
가던 발걸음 멈추어 사진 한장 찍는것이
아내 숨통 틔워 주는것임을 내 어찌 모르랴.
그래도 그만 그만 걸어주는 아내가 고맙기 그지 없다.
바람꽃, 각시 붓꽃, 양지꽃,제비꽃, 연달래등등
평생 처음 대할 낯선 꽃이름을
아내에게 주섬 주섬 들려주며
가쁜 숨결을 쉬게한다.
외로움이라고 어디 거저인가
산벚꽃 지면 잊혀질 줄 알았건만
그것도 아니네.
산벚꽃 휘날리는 길 위로
날 떠난 님도 외로우련만
아! 내 손톱 밑의 초생달처럼
지워지지 않는 님이여.
잊는다는것이 어디 다 거저인가.
꽃잎처럼 휘날리는 사랑의 마침표여.
덧없음이여.
장사도, 너머로 희미하게 좌측으로 소덕도 대덕도
멀리 비진도가 보인다.
해무는 모닥불 터지게 하늘을 태우고
타는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슬픔처럼 아련한 기억들이 멀리 되돌아 오면
섬도 바다도 울먹이기 시작합니다.
겨우 마음 잡아 일구어 낸 삶인데
참아 온 아픔들을
그 아픔의 기억들을
바다 위에 꾸역 꾸역 곡을하듯 토해 냅니다.
아! 슬픔의 바다.
봄빛 슬픔의 바다.
매물도와 가왕도
사진이란 결국 대상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것이다.
자신에 내재한 그리움을.
바다와 섬이 그리움 이상으로 상념이 깊다.
나는 이 그리움의 기억을 따라가며
사라지고
없어진것들을 구성한다.
장사도 뒤로 비진도, 용초도, 죽도
내 기억 저 심연에
산과 바다가 있으되 사라진것은 무엇일까?
기억 속의 풍경들이 하나 둘 철거되고
무너져 가는 동안
그 상흔과 폐허의 슬픈 상처는
분명 내 기억 어딘가에 잠재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잠재된 풍경,
박재로 남은 풍경들을 산행을 통해
다시 깨워 일으킨다.
이때를 기다려 돌아오는 기억이야말로
진정 내가 잊고 있었던 것의 가치인것이다.
해무에 잠긴 섬들이
잊었던 기억처럼 아련하다.
명사 해수욕장의 해무
바지락 캐는 아낙
빛은 미시적 삶의 흔적을 향해서도 나아갑니다.
이렇게 빛은 우리 앞으로 다가오고
그렇게 일구어진 후미진 삶의 구석이
꿰메진 상처처럼 이따금 우리를 아프게합니다.
이 구석진 공간을 빛은 이렇게 살뜰하게 찾아와
차분한 그리움을 일굽니다.
이 그리움이 희망입니다.
나는 내 개인적인 감정들이
내가 찍어 낸
사진들을 통해 오롯이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나의 이 개인적인 기록들이
평범한 이들의 사소한 기억과 연관되어
눈 앞의 현상들을 더 큰 그리움으로 받아들여 지기를 희망합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하는 원천입니다.
여기에 밀레의 그림들 처럼 인간이 더해질 때
인간은 더욱 풍부한 상상의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자연으로부터 얻은 일차적 인상이
인간이라는 특정한 이미지에 부가되어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조형의지를
작가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보여 주게 되는것입니다.
여차 몽돌 해수욕장
- 후 기 -
카메라는 내가 서 있는 이곳과
렌즈 너머 그리움의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이다.
조리개는 이 두 세상을 열어주고 닫아주는 역할을 하지만
종종 그것은 닫혀 있다.
닫힘의 현실.
이것은 지독한 강압이고 강제이다.
반면 열림의 세계는 비로소 소통이요 자유인것이다.
나는 그 소통을 통한 자유가 좋다.
내가 걸어 온 길도 마찬가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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