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비슬산 진달래

poll™ 2009. 4. 21. 11:05

 

 

구슬 봉이 

 

내가 보는 세상은 늘 어리둥절하다.

쉰 해가 넘는 세월을 대체 나는 무엇을 보고 살아 온 것일까.

 

물에 뜨는 물처럼

그저 그렇게 못나 터진것.

 

세상이 내 머리 위로

등 뒤로 숨어 지난것은 아닐까.

 

세월의 음모였을까.

 

 

 

 

 

비슬산정 병풍덤 

 

 

비슬산은 해발 1084m로 대구시 달성군과 경북 청도군의 경계에 걸쳐 있는 산이다.

산마루는 풍화 침식을 거친 여러 암석들이 무리를 이루고

이웃한 조화봉(1061m)에서 소재사로 내려 오는

암괴류의 흐름(테일러스:talus)을 돌서렁이라고도 하는데

금정산의 너들지대와 아주 유사하다. 

 

정상의 남서면은 바위벽으로 이뤄져 병풍덤이라하며

주 능선 남쪽의 조화봉 가까이에는 토르라는

잡석더미를 이룬것같은 톱바위가 있다. 

이 토르군은 대견사지까지 이어진다.

 

 

 

 

 

비슬산 가는 길

 

비슬산 가는 길이

유가사에 이르듯

 

 한 나무에게

가는 길이 

또 한 나무에 이르는 길일까요. 

 

나무와 

나무들의 길을 찾아 

길을 따라 가다보면

길도 마음처럼

그대에게 이를 수 있을까요.

 

한 나무의 푸르름처럼

처음 그대로의 흔들림이

 

당신의 그림자에 닿아

푸르게

흔들릴까요.

 

나무와 나무를 따라 걷다보면. 

 

 

 

 

 

 

 

 

 

 

 

 

 

 산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산이 내내 허물없이 보여준

그 모든 것들에 무심했을것이다.

 

산을 사랑하여

내 비로소 산의 풍경 속에 놓임으로

나는 내 가슴 너머 먼곳을

붉게 물들게했다.

 

 

 

 

 

 이제 당신 너머의 세상이 보입니다.

봄숲이 잠시의 겨울 숲이었듯이

당신의 끝을 통해

처음을 향해 달려온

그 모든 샛길의 푸르름이

다 아름답습니다.

 

 

 

 

 

장딸기 

 

 

 

 

 비슬산 북동쪽으로

최정산과 주암산이 보인다는데

내 짧은 소견으로는

산너머 산이 그 산같고

또 그 너머 산들이  죄 그 산같다. 

 

 

 

 

 

 

 

 

 

 

 

 

 

 

 비슬산의 비슬은 범어로 한자'苞'를 의미하는데

'苞'는 '그령 포'로 그령은 한해 살이 벼과의 식물이라한다.

비슬산 고위면이 넓은 초원으로 뒤덮혀 있는것을 

뜻하는지 모르겠다.

대견봉의 대견은 예날 중국 임금의 세숫 대야에

이 산 봉우리가 비쳐 여기에 절을 세워

'대견사'라 하였고 봉우리 이름은 절 이름에서 유래되었나보다. 

 

 

 

 

 

 

 

 비슬산 남쪽 능선은 광대한 고위 평지로 이루어져있어

시원한 시계를 보여준다.

노랑 제비꽃, 양지꽃,각시 붓꽃등의 들꽃이 보이지만

실제 눈에 들어 오는것은

곳곳에 무리지어 점심을 먹는 사람 뿐이다. 

 

 

 

 

 

 

 

 

봄 날은 점심 나절로 기울어지기 전부터

벌써 물이 설레게 마련이지만

긴 가뭄에 水彩는 간곳 없고

신록의 파란은 역동 마져 떨어져

산길이란 산 길은 죄 타듯이 이글거린다.

 

아무리 실눈을 뜨고라도 

물녘을 어디 한 곳 바라 볼 수 없다.

봄 가뭄에 참꽃이 다 덥다. 

 

 

 

 

 

 

 

애기 똥풀 

 

 

 

 

 

 

 

 

 

 

 

 

 

 

 

 

 

'이놈의 빌어먹을 세상' 하고

산으로 간 사람들 중에

어쩌면 나도 끼여있을 지도 모르겠다.

 

바람결에 묻어 오는 꽃내음을 맡았던걸까

뜬금없이 쑥절편이 다 먹고 싶다.

 

좀 쉬어가지

꽃을 보느라

일제히 걸음을 멈춘다.

꽃에 숨어 사는 한 나절

몸도 꽃 속으로

마음도 꽃 속으로 조만간 사라진다.

 

어느 한편에서 어느 한편이 된다는것이

늘 오늘처럼 설레는것이었으면... 

 

 

 

 

 

 

 

 

 

 

 

 

 

이 만한 배짱 좀 차리고

살아봤으면. 

 

 

 

 

 

 

 

 언덕 너머로 한 무더기 빛이 쏟아져 내립니다.

당신의 기쁨에찬 얼굴 위에도.

조용한 꽃빛이

이토록 스스로를 감동 시켰던 적이 있었을까요.

혀를 들면 세상의 甘味가

다 녹아 들듯한데

발아래 푹푹 이는 먼지외는

생명 벙거는 기쁨

아닌것이 없습니다.

당신의 모든것이 기쁨입니다.

 

 

 

 

 

 

 

 

 꽃 물결 마다 그렇게 눈부실 수가 없어

햇볕에 타는 꽃일 지언정

마음 가운데 담았으련만

 

날이 저뭇하도록  

꽃 길이 끝이 없다.

 

사람 줄에 치여

마음밭만 어수선한데

그냥 저냥 지나는길이

그야 말로 물이물위에 뜬것만 같다. 

 

 

 

 

 

 

 

 

 

조팝나무 꽃 

 

 

 

 

 

 

 

 

 

 

조화봉 전망대와 칼바위가 보인다.

교각 위로 보이는 토르(Tor) 지대는 대견사지 쪽을 따라 쭉 이어져 있다. 

 

 

 

 

 

 

 

 

 

 비슬산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이어진 동사면은 경계가 완만한 30만평의 진달래 군락이

넓게 펼쳐져 있다. 

 

 

 

 

 

 

 

 

 

 꽃을 보니

뜨겁지도 차갑지도 아니한 세상을

만난것 같습니다.

 

골디락스의 세상처럼

안정되고 견실한 감정이.

 

진분홍 참꽃에 둘러싸인

지금 내 마음이

골디락스입니다. 

 

 

 

 

 

 

 

 

 

 산에 오르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산을 통해 해방된 자아를 만들어 내는것

그래 나도 비로소 해방되었다는

자신을 만들어 내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산행을 하는것도 

음악이나 미술가 처럼 

창의적 기술이 필요한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술가가 어떤 방법으로던 소통을 지향하듯

산을 걷는 자는 

산행을 통해

드러난 자신의 관점들을

보다 낭만적으로 생활로 순화 시키는것이다. 

 

 

 

 

 

 

 

 

 

 

 

 

 

 

 

 

 

 

 

 

 

 

 

 

 

 

 

 

 

 

 

 

 

 

 

 

 

 

 

 

 

 

 

 

 

 

 

 

 

 

 

 

 

 

 대견사지와 주변 토르.

벼랑 위에 선 대견 사지터 삼층탑의 위용이 대단하다.

비례를 따져 볼 때 원래는 5층탑 정도 되어보인다.

절은 임진 왜란 때 불타없어지고

탑은 그 뒤 수습해 현 위치에 쌓은 것이라고 한다. 

 

 

 

 

 

 

 

 

 

 

 

 

 

 

 

 

 

 

 

 

 

 절벽을 기단석으로 한 탑의 스케일도 스케일이지만

파격적 가람의 위치도 마음에 든다.

혼자 법당의 위치를 가늠해 본다.

현풍쪽의 비슬 산맥을 이루는 제 산들을

대견사지 앞 마당으로 생각한것은 아닐까.

탑아래에서 세상을 보니 세상이 다 시원하다.

'산이 다 법당'이라고 늘 말해온

내 종교적 신념이증명되는듯하다. 

 

 

 

 

 

 

 

 

 

 

  

 

 

3층만 남았어도 안정감과 수직미는 여전하다.

 

외로움이 없고서야 인간이 겠는가.

사물에 인간의 심성을 부여하면서까지

누군가와 혹은 무엇인가와 교감을 하고싶은것이

인간의 본능이 아닌가. 

 

인간의 본능

치유와 소통을 향한 본능. 

 

 

 

 

 

 

 

 

 

 

 

 

 

 

 

 

 

눈부처

 

상대방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을 눈부처 라고한다 

이것은 어디가지나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것을 전제로 하는것이기에

사랑하는 사이에 있어서는

상당히 낭만적인 단어이다.

지금 나의 눈부처가 되어주고 있는것은 탑.

 

나의 두 눈이 탑을 향할 때

한낮의 화강암이

전해주는

그 천년의  따사로움을 고이 얻고 싶어서.

 

 

 

 

 

 

 

 

 용도를 알 수 없는 바위 굴

지금 바위굴 속은 끽연실. 

 

 

 

 

 

 

 

 

바위 그늘에 쪼구려 앉아

찾아 온 허기를 채운다,

 

사랑은 늘 허기지다.

7시간 반을 걸은 산행 뒤처럼. 

 

 

 

 

 

 

 

 

 

대견사지 통로 계단 밑

개별꽃

 

 

 

 

 한 동안 허공에서 눈을 거두지를 못하였다.

때가 어느 때인가 싶어서가 아니라

가물에 날리는 마른 먼지로

안경을 쓴 눈마져 깔끄럽다.

날이 오래 가물다 보면 논밭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밭도 가물어 타는것이 허망하다.

그러나 나의 눈은 허망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다. 

 

 

 

 

 

 

 

 

강요된 풍경

 

만들어진 풍경이 풍경을 강요합니다

안과 밖에서

조작되고 강요된 

우리의 삶과 풍경 속에

우리는 과연 어디에 서 있는것일까. 

 

 

 

 

 

대견사지 주변의 토르. 

 

反風景 

 

한장의 사진을 통해

나는 사진을 일시적으로 소유했다는 만족감을 얻는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소유와 만족의 주체는

완전히 나인가.

 

풍경사진을 찍다보면

이제 나도 모르게

사진이 잘나오는 위치를

고르게 된다.

그러나 대게 그 위치는

인위적으로 정해진 장소

제주도의 유채밭처럼

기획되고 만들어진

포토존일 경우가 많다. 

 

 

포토존 위에서의 풍경을

과연 내가 얻어낸 것이라

만족할 만한것인지

나는 비로소 의문의 단서를 찾았다.

생각하니 참 우스운 짓이다.

사진을 찍기위해

길게 기다리는 짓.

 

누구를 위한 풍경

누가 지배한 풍경이었을까. 

 

 

 

 

 

 

 

 

 

 

 

 

 

 

 인위적으로 만든 자연 휴양림

 

정치적 조작의 힘이

얼마나 단조롭고 지루한 산행길을 만들게 되었는지

우리는 이 길 위에서

심각히 각성하게된다.

 

 

 

 

 

 

 

 

 

 

하산길의 테일러스

 

빙하 후기에 만들어진 테일러스는

금정산의 암괴류와 많이 유사하다. 

 

 

 -후 기-

 

기존의 틀에 맞추어

문법에 따라 풍경을 재현한다는것이

나에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있다.

 

나는 여전히 초보이므로

굴욕을 참고

그리고 넘어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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