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신묘한 사월의 지리산

poll™ 2009. 4. 28. 10:41

 

 

 나의 첫 지리산 등정기

 

산에  올라 본 이는 지리산 쪽 한번 다 쳐다 보았으리라.

산악인의 나침반

 

모름지기 산을 사랑하는 자라면

언젠가 오르지 않고는 못 베길 국토의 성지.

 

지리산.

그 기쁨과 심묘한 풍광에 눌려

김밥을 쥔 젓가락이 달달 떨리던 산.

나는 그 산에 다녀왔다.

 

슈베르트적인 감수성과

말러의 웅대함을

마치 유니즌처럼 들려주던 산.

 

봄빛이 나직하게 내려 오던 

그 깊은 모성의 골짜기.

 

머리 위로 잔설은 분분히 날리고....

아! 세상은 살만한 것이구나!!!

 

 

 

 

 

 사월에 뜻밖의 눈을 만납니다.

얇은 옷 사이로 벌써 찬 바람이 스밉니다.

 

눈이라니!

사월의 눈산행이라니!!

희미한 말러적 상상력이 밀려옵니다.

 

굵은 선을 가진 산자락들이

현의 다발을 이루어

낮으면서도 묵직한 소리를 이룹니다.

가슴을 울리는 현들의 하모니가

벌써 벅찹니다.

 

 

 

 

 

내게 특별히 사랑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게 없는것이 사랑이기에

그 사랑을 찾아 나섭니다.

 

슬픔을 다독여 길들이고

꽃잎처럼 벙거는 그리움에 날개를 달아

나를 자꾸 먼 길로 재촉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 또한 가벼워져

한없이 바삐 가는 나를 만납니다.

길 옆에서

만나는 온갖 기쁨들의 근원이

사랑인가 봅니다.

 

길을 걷는 내 발걸음이 다 빠릅니다.

 

 

 

멀리 낙동강 물굽이는

이제 막 선잠에 깨어난듯

蛇行의 느린 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산 괴불꽃

 

 

 

 

 

 

봄날 만나는 고드름이 신기합니다.

톡 베어 한입 먹고 싶다가도

이것도 구경거리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 사진 하나 찍고 지나갑니다. 

똑똑 떨어지는 얼음 녹은 물처럼 

없던 갈증이 생깁니다. 

 

 

 

 

 

 

 

눈이 온 세상은 퍽 분명합니다.

조르개를 줄여 저 먼 세상까지를 바라봅니다.

눈이 씻어 낸 세상는  멀고도 깊습니다.

 

산 아래 푸릇 푸릇 봄볕이

가끔 새어나오는 햇살에

나른하게 흔들립니다.

내 눈을 일구어낸 무명이

마음을 살찌웁니다.

 여기가 대간의 첫머리입니다. 

 

1500m 고지 너머는 겨울입니다.

춥지 않는 어색한 겨울.

 

겨울의 비상구를 지나

출구를 잘못 찾은 봄이 

맵지 않는 고추처럼 입안에 아삭거립니다.

 

 

 

 

 

 

 

 

 

 아래에 보이는 붉은색 잔가지가 무슨 나무 덩걸인지는 모르겠으나

새하얀 눈에 어울려 너무도 색깔이 선명하다.

평소라면 눈에 잘 띄지도 않을 색이련만

물기 먹은 적갈색이 황홀하리 만큼 아름답다. 

 

 

  

 

 

그 힘들다는 중산리-천왕봉 구간을 봄소풍 하듯

걷고 있는것도 다 자연이 주는 힘 때문이다.

 

한 장면 한 장면 놓치지 않으려는

나의 산행에 대한 욕심이

다리에 강건한 힘을 주고 있다.

 

즐거움이 곧 힘이다.

피로를  잊게하는 활력소이다. 

 

 

 

 

눈 속의 제비꽃 

 

 

 

 

 

 

 

 

 사월에 상고대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산행 중의 축복이다.

 

신록에 대비된 차가운 풍경들이 얼마나 신선한가.

얼음에 갖힌 새싹들의 애처로운 모습으로 부터

눈이 부실듯 아름다운 생명의 신비를

다시금 확인한다. 

 

 

 

 

 

 

 

 

 

 

 

 

 

 

 

 

 

 

천왕샘에서 

 

 천왕샘 위에 솟은 나무들에서 떨어지는 눈 녹은 물이

어느새 고드름이 되어 주렁주렁 달려있다.

 

자연 현상을 어디서 바라 보느냐에 따라

감흥은 달라진다.

예쁜 크리스탈 샹들리에 아래를 걸어가는것처럼 산행이 다 호사스럽다. 

 

 

 

 

 

 추위에 기가 죽은 얼레지

 

 

 

 

 

때묻지 않은 풍경.

자연이 내다 보여 주는 그대로의 풍경.

 

1900m의 산정 가까이서 보는 풍경이다.

아침의 바닷가

아침의 골목길처럼

눈이 가지 않은 풍경, 발이 닿지 않은

처녀의 풍경들이

우리를 맞는다. 

 

풍파를 겪은 산정 가까이의 거친 분위기가

눈에 가려져 

한층 부드러워졌다. 

 

 

 

 

 

 

 

 

 

 

 

 

 

 대체 지난밤에는

어떤 비바람이 불고

어떤 구름들이 천왕봉 머리 위를 지나갔을까.

 

지난 밤 잠들지 못한 그 모진 눈보라에 지쳐

산은 지금 잠시 휴정 중일까.

 

바람도 잠잠한 산.

모든것을 다 내어 주고

묵언의 긴 수행에 빠진 산.

 

지금은 법계조차 숨고르기를 하는듯하다. 

 

 

 

 

 

 

 

 

 

 

 

 

 

손 시린 애기 고사리

 

 

 

 

 

그 사람은 떠나가고

나는 남았다.

 

얼어 붙은 바람 속에

나무처럼 남은 나는

떠나간 그를 부질없이 기다린다.

 

바람 속에 그대가 눈꽃처럼 부유할 때까지

이 미친 기다림을 사랑이라 불러 볼까. 

연민이라 부를까. 

 

아득히  

 달아나는 기억의 빛깔들을 

슬픔이라 부를까.

 

 

세상은 너무 커

외로움은 산맥이고

대륙이고

수수께끼지 

 깊은 무의식의 티끌들이지.

 

사랑은

 모래 실은 배.

 혹은 

스스로를 내팽게친

금지의 약속

 

사랑은 어기는것

거미처럼 기억이 집을 짖기 전에 

지우는것

부수는것. 

 

 

사랑은 떠나가고 

나는 남았다. 

 

  물처럼 스미어 두눈에 가득한 

웃을것도

울것도 없는 거짓말을

 

그대는 구약이라 부를까

소설이라 부를까. 

 

부르튼 입술가에 내려 앉은

쓰라린 포진이라 부를까.

 

 

 

 

 

 

 

 

 

 

 


 

 

 

 

 

 

 

 

 

 

 

 

바이올렛

 

 

 

 

 

가는 햇살에 살짝핀 얼레지

 

 

 

 

 

 

 

 

 

 

 

 

 

 제석산 가는길의 고사목

고사목이 아니라 인간들의 무지가 빚어낸 자연 훼손의 현장이다.

지금은 보호하느라 펜스를 치고 지키고 있지만

쓸쓸하게 남은 나무 기둥들이

설치물처럼 안개 속에 멋진 실루엣을 연출하고 있다.

 

 

 

 

 

 구름 오시는 날

제석산 지나가는 것은

얼마나 쓸쓸한가.

 

그 깊은 쓸쓸함이

발설하지 못한 비밀로

두 귀에 다가온다

안개는 늘 은밀하다

 

속임없는 비밀이

오늘은

나른하다.

나직하다.

 

 

 

  

 

 장터목 가는 중에

 

 

 

 

눈속의 개별꽃

 

 

 

 

 

 

 

 봄날

공기의 창문을 열고

맑은 기분을 맡아요.

 

따사롭게 데워진

새순이

입술처럼 포개고 싶을 때

내일을 향한 커턴을 활짝 젖히고

당신은 내 귀가에까지 다가와 속삭입니다.

 

아! 이달콤한 밀어의 전언

입가에 살랑이는 입술들의 언어를 느껴 보세요.

 

자음과 모음을 부딪혀

봄하고 말해 보세요.

사랑하고 말해보세요.

 

 

 

 

현호색

 

 

 

 

 

- 후 기 - 

 

 너무 쉽게 잊혀지지는 않을까.

 

기억 속 망각의 카르텔이,

흐르는 물과 같이 흔적없는 기억이

다 두렵다.

 

빠른 속도와 속도 사이에서

허둥거리는 세월

 

내 기억도 내 나이처럼

허둥거리며 흘러다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