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도 없는 요리지만
실력있는 요리사들이 급조한 아침이 꿀맛같다.
연휴를 이용해
전국의 건각들이 노고단에 다 모인것 같이
산중이 요란하다.
부글 부글 젊음이 끓는듯하다.
한바탕 축제같다
노고단에서 만나는 일출
"한발 늦었네."
운해속의 지리산
개스에 막혀 빛은 힘없이 카메라에 도달한다.
그런데 이것이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가.
박무에 가린 산이면 박무에 가린 지리산을 보는것이요
맑은 산을 바라보는 이는 다만 맑은 지리산을 만나는것일뿐
무엇을, 누구를 탓하리요.
반야봉에서 본 지리산 서북릉
볼록 솟은 좌측 작은 고리봉에서 만복대까지의 전경
지난 봄 정령치까지 걸었던 기억이 새롭다.
형제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중간에 오목하게 들어간 곳이 벽소령이고
그 뒤가 덕평봉인지 모르겠다.
영신봉은 구름에 가린듯.
형제봉 지나며 만나는 바위.
천왕봉과 중봉이 제대로 보인다.
구름에 가렸던 영신봉도 보이고
벽소령 산장은 더 가까와졌다.
첫날 산행은 벽소령까지라 시간이 많이 남는다.
숲길을 꼼꼼히
주위를 샅샅이 살펴가며 걷는다.
흔하디 흔한 붉은 병꽃과 노린재 나무의 꽃들만 지천이다.
길은 길고 나는 심심하다.
발아래가 아파 부질없이 파스나 뿌려본다.
풍경처럼 사람들이 나를 지나 금방 사라진다.
벽소령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와
금새 하늘을 뒤덮는다.
2시간 후 국지성 소나기가 내려
산장은 아수라장.
다행히 로또보다 어렵다는 산장 예약이 되있어
달콤한 잠을 이룰수 있었다.
코골이를 대비하여 미리 귀마게를 준비해 가지고 갔다.
그래도 안심이 안되어 귀에는 MP3를 꽂고
밤새 음악을 듣는다.
자다 깨다 듣는 음악이
햇과일처럼 달콤하다.
한편 새벽에 깨어 주위를 보니
밖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은 거의 전쟁터 수준이었다.
심지어는 화장실 변기앞에 코박고 자는이도 있었다.
지난밤은 내게 행운이었어.
새벽 4시에 벽소령을 출발.
헤드 랜턴 불빛이
반딧불같이 예뻐 사진찍을려다
하도 칠흙같이 주위가 어두어 그만 둬버린다.
다섯시가 되자 어스럼하게 빛이 깨어나기 시작하고
휘파람새 비비새등 온갖 새들이
일제히 지저기기 시작했다.
산중의 오케스트라다.
일찌기 이렇게 많은 새들의 지저김을 들은바 없어
신기하기 까지하다.
새벽 운무속의 지리산.
촉촉한 아침 안개가 피부에 와 닿을때의 기분은
신선한 아침 과일을 먹었을 때의 기분,
막 때를 밀고 나왔을 때의 상쾌함을 준다.
처녀의 햇살을 맞으며 나가는 산님들
순간 순간이 만들어내는
빛의 향연이 이채롭다.
이른 새벽 출발이어서 그런지
일행이 다들 피곤한 모양이다.
가다가 한숨 쉬어서간다.
어짜피 시간은 남아돌고.
걸음이 느린나는 일행을 남겨두고 가던길을 그냥간다.
어짜피 몇발 못가 잡히게 돼어있다.
함박나무꽃
연하봉 가다 만난 풍경
마치 바위가 어미상 같아서.
동이 나물
제석평원 늪지에서 만난 개체
촛대봉
왜 촛대봉인지 이해 안됨.
그냥 넙데데하다.
연하봉 가는 길에 만난 안개
지리산에는 이런 안개 무리들이
수시로 돌아다니며
시계를 막는다.
야쿠자라고 하면 신성 모독에 해당될까.
연하봉 가는 길의 암능
일행이 채근거리는 바람에 속도를 내 본다.
산행끝의 막걸리가 급한 모양이다.
세석의 횡사목.
힘껏 자라고 있는
구상나무들이 그 속을 다채우는 날
이 평원의 기품은 어떻게 변할까.
천왕봉을 앞에 두고
더 느긋해진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추워 죽겠다고
무전기로 연방 아우성인데
나는 느긋하다.
나의 임무는 오로지
온전히 내몸을 중산리 주차장에 모셔놓는 일.
평소 능력 대로 걸을 뿐.
제 시간에 맞춰 걸을 뿐.
젊은 혈기에 넘쳐
괜히 넘치는 힘에 빨리걸어 고생들을 사서 한다.
이제야 무박 종주를 즐기는 이들을 이해하겠다.
나에게는 속도는 있으되 속도감이 없다.
빨리 걷는 이들은 산이 아니라 속도가 주는 쾌감을 즐기는것이다.
낙화.
생각만큼 사진을 통해 떨어진 꽃이 주는 이미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내공 부족이 부족하다.
지리산을 걸어가며
나는 갖혀버렸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꼼짝달싹할 수 없는 운명 속에
나에게 주어진것이라고는
오르는 길에서는 올라가고
내려서는 길에서는 내려가는것.
그리고 또 하나
사유의 즐거움.
정해진 규칙 속에 오로지 정해진 길을 가는것은
흡사 불가의 "안거"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직 걸을 뿐
말과 행동으로 업을 만들지 않고
그렇다고 벗어날 수도 없는 상황
수행과 아주 흡사하다.
무언가를 해내고 난 뒤의 기쁨.
나를 기다리는 동안 이분들은 지리산의 '무엇'을 더 보고 느꼈을까.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And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산에 우뚝 서 있을 수 있고
당신이 나를 일으켜 주시기에, 나는 폭풍의 바다도 건널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떠받쳐 줄 때 나는 강인해 집니다.
당신은 나를 일으켜, 나보다 더 큰 내가 되게 합니다.
나는 약속대로 천왕봉 정상에서 'You raise me up' 을 불렀다.
가슴 밑에서 꿈틀거리며
겸연쩍은 감동이 솟구쳐 올라왔다.
내 다리가 성한 시절에는 꿈도 못꾸었던 일을
다리가 불편해 지고야 이루어냈다.
나에게 더 큰 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마음으로 오르는 산 >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영축지맥(간월산-신불산 -영축산-오룡산) (0) | 2009.06.29 |
|---|---|
| 영덕 팔각산(090620) (0) | 2009.06.22 |
| 2009. 팀지리 (0) | 2009.06.08 |
| 2009 Team Jiri (0) | 2009.06.08 |
| 지리산 산행기:아버지를 위한 아다지오. (0) | 2009.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