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아침 공기를 맡으며 스무명의 대원들이 산을 오르고 있다.
그런데
자연으로 스며드는 대원들의 뒷모습을 보니
어디 한 곳 야성을 찾아 볼 구석이 없다.
인공조림의 숲 사이를
사람들이 꾸며놓은 의도된 길을 따라
지나가는것이
과연 자연스러운가.
오직 마음만이 자연을 향해 활짝 열려 있다.
이분의 존상이 유난히 자주 눈에 띈다.
지난밤 비가 왔는지 길은 미끄럽고 세상은 우윳빛 유리처럼 뿌옇다.
이런 날의 풍경 사진은 나같은 초보에게는
짜증의 대상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늘은 어짜피 사진을 포기하고 걷기에만 충실하기로 마음먹는다.
산길 돌아가는 모퉁이에 들병이처럼 숨은 소박한 풍경.
놓지기에 아깝고 담아두기에는 뭣한.
여름 한낮의 초록은 쉽게 지친다.
오히려 비둘기빛 화강암이 더 깔끔한 기분을 준다.
-삼색의 표현-
사람들은 매 순간을 제 각각의 모습으로 표현한다.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 중에도 마찬가지이다.
정지된 순간 각자의 표현.
반쯤 꼬리가 잘려나간 단체 사진.
어자피 밥때 되면 다 만나리.
목이탄다.
여름 한낮의 갈증이 물을 부른다.
좌로부터 망미봉-상계봉-파리봉
화명동쪽 능선.
동문
여름에 잘 어울리는
우아한 꽃창포
산상에서 만나는 풍경이 의외로 난삽한 글처럼 산만하다.
군데 군데 흩어진 돌 무더기가
서로의 풍경속에 녹아들지 못하고
설익은 밥알처럼 따로돈다.
그렇다고 그것을 자연탓이라 볼 수도 없지 않겠나.
아직 내가 생소한 풍경에 뜸이 들지못한 탓이리라.
풍경을 당겨 가까이 다가가보니
훨씬 통일된 맛이 살아난다.
풍경은 그대로이되
내가 어떤 풍경의 축에 놓이냐에 따라
풍경은 얼마던지
새로와 질 수 있다.
생경한 자연에 인공의 꼬리를 붙인다는것이
서로의 아름다움을 더하는일에
어떤 일조를 하게되는건지...
미녀 삼총사.
망루
금정산, 역사가 숨쉬는 산.
금정산에서 자주 보는 슬로건이다.
그런데 내 눈에는
숨쉬는 역사라는 말이 왠지 생뚱맞다.
낡은 역사 위에 급조된 역사가 난데 없이 날아든 느낌이랄까.
오래된 역사는 힘이 없고 새로운 역사는
교조적이다.
하등 규칙없이 꼬불아지는 이 성벽의 흐름에는
비 규칙성이 주는 아름다움이 필경 어딘가에 숨어 있으련만
나는 번번히 그 아름다움을 찾는데 실패한다.
하루 날잡아 이 성곽과 사트를 벌여야겠다.
한없이 바라본다면 뭔가가 잡힐것도 같은데
구성이 도무지 애매하다.
왜 일까?
의문이 빙빙돈다.
선은 있으되 스케일이 빈곤해서?
선이 잠겨드는 공간이 너무 개방적이어서?
고당봉이 너무 멀다.
한낮의 무더위가 산을 저만치 더 밀어낸 기분이다.
역 방향으로의 진행이
산에대한 감각을 떨어트린것인지.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건만
도무지 정상은 마음을 내주지 않는다.
북문
멀리 아득하게 우리가 걸어 온 길을 되돌아 본다.
다방리에서 거꾸로 진행할 땐 몰랐는데
걸어 온 길이 참으로 아득하다.
금정산의 풍요한 모습이
뜨거운 여름 운무 속에 나른히 가라앉는다.
이분.
또 이분.
광활하고 넉넉한 금정산의 자락들이 너울처럼 느리게 다가온다.
굵직 굵직 썰어놓은 깍두기같은 토르 지형의 암괴가
풍요함을 묘하게 더해준다.
위태로운 안정감이라.
구성이 절묘하다.
전체적으로 슬림해진 기분이다.
장군봉과 범어사로 가는 갈림길에서 산행 목표지가 다시 바뀌었다.
계명봉은 고사하고 장군봉마저도 목표에서 제외되어 버렸다.
의외로 힘이 남은 나는 계명봉 공격조로 참가 할려했으나
문원장님과 이철 선배님의 위세에 주눅이 들어 슬그머니 꼬리를 내려버렸다.
길이 좋지 않다는 적당한 핑계거리가 나를 위로했다.
다들 이정도면 백두산 서파 종주에는 문제가 없다고한다.
말로 대신하는 인증서가 수여되었다.
백두산 트레킹 초반에 만나게될 1300계단이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
계명봉을 오르지 않고 허리를 보듬듯 산 아래를 한 바퀴 휘돌아보기로 했다.
산길을 들어서자 어디에 이런 숲이 다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깊고 알찬 숲이 나타났다.
낮은 고도 편차.적당히 발이 편한 흙길,더문 인적.
정겨운 개울 소리.은은한 하오의 햇살.
색시처럼 수줍은 옹달샘.
신비한 나라 아니 아무도 예상치 못한 오묘한 숲의 세계를
정말 뜻밖에 만났다.
그렇게 산에 오르며 숲의 사진을 찍어왔건만
숲을 표현하기란 여전히 어렵다.
숲이 가지는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무의식적이다.
숲을 걷는다는것은
의식의 흐름처럼
내면의 받아쓰기와 유사한 행위이다.
아무런 논리적 인과 관계도 없이
그냥 걷는 이의 의식에 따라
생각이 가감없이 흘러가는것이다.
그것으로 끝이다.
물이 뒤를 돌아보며 흐르지 않듯
의식의 흐름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숲을 찍어 놓고도
내 생각의 흔적을 도무지 찾을수 없다.
나는 없고 길만 덩그러니 남은 기분이다.
숲길을 걸을 때에는 분명 무엇인가 달라 보였지만
사진을 찍어놓고보면
결국 다 똑같은 숲속의 길인것이다.
내가 왜 이 순간의 풍경을 포착하였는지 설명할 수 없다.
근거는 이미 흘러갔다.
이유는 너무 사소하다.
의도되지 않은 풍경같아 별 재미도 없다.
길이 그리움을 잃고 바람처럼 흔들린다.
그 흔들거림을 이기며 나는 길을 걸어 온 것이다.
9시간 20분의 긴 산행을 마친다.
목욕 후 약간 취기가 오른 대원들의 샤방샤방한 모습들.
-르포르타쥬-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어느정도 '현재'를 기록한다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지금 나는 어떤 기록을 염두에 두고있는가.
이 분들의 요청에 의해 찍혀진 이 사진은 자신들조차 믿기 어려운
13병이란 맥주병 수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어찌나 순식간에 이루어낸 '업적'이다보니
기록에 남겨둘 필요성을 다들 느끼셨나보다.
그러나 여전히 반신 반의하는 눈치다.
노래방에서 사진을 처음 촬영해본다.
촬영 후 사진을 통해 느낀바로는
생각보다 구성원들이 다른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제각각 논다는 것이다.
어지간히 제 노래에대한 확신이 없다면
노래방에서는 선량한 방청객이 되는편이 더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이분처럼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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