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월산,신불산,영취산.
지난 일년 산에 다니면서도 아직 영축지맥의 제산들은 올라본 적이 없어서
언제나 산 저편에서는 동경의 대상이었던 산들.
강우 확률이 60%라는 예측을 두고
산에 오를 만큼 내 나이 젊은것도 아닌데...
배내봉-간월산-신불산-영축산-죽바우등-시살등-오룡산
생각만해도 기가 질리는 이번 종주산행에
나는 무슨 배짱으로 선뜻 나섰을까.
"기회란 자주오는것이 아니다.'
평소의 내 생활 신조대로
주어진 기회를 덥썩 물어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무대뽀 정신을 발휘하여
가장 어울릴것 같지 않은 삼인이
토요일 오후 느닷없이 산에 오르기로 했다.
배내 고개에서
새로 산 똑딱이 시범 촬영.
배내봉
산행은 사나이들의 로망.
情이다!!!
음력 오일의 초승을 넘긴 달이 떠올랐다.
표정없는 구름이 달을 둘러싸고
사뭇 서사적인 기분을 주며 떠 있다.
우리는 그 달을 바라보며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커피를 마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말기를.
비닐로 엉성한 비박지를 만들며
그냥 이대로인채 밤을 맞게되기를 기도한다.
술이 술을 부른다.
산중에서의 낯선 체험.
찬 기온이 바람을 몰고 왔다.
사방이 이내 눅눅해졌다.
간밤에 별을 헤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주가 코끝에 다가와 그나마 얕은 잠을 흔들어 깨웠다.
귀에서는 쉴틈없이 클래식 음악이 감미롭게 흘렀다.
우주선을 타고 머나먼 우주로 나선 기분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은 오히려 더 맑아졌다.
투명한 비닐 사이로 더 없이 넓은 우주가 보였다.
우주에 내가 포근히 감싸 안긴 기분이었다.
달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넓고 짙은 구름은 불현듯 사라지고
구름이 비켜난 하늘에 별이 퐁퐁소리를 내며
자맥질을 했다.
금새 하늘은 별로 가득했다.
나는 야영나온 스카웃 소년처럼 마음이 덜떴다.
내 일찌기 이렇게 많은 별들을 가슴 가득 품어 본 적이 있었던가.
남쪽 하늘에 큰 별 하나가
지치지도 않고 밤새 반짝거렸다.
새벽에 오랜만에 듣는 뻐꾸기 소리가 날 깨웠다.
네시 반이었다.
온 몸이 굳어 통증이 느껴졌다.
새들 소리가 시끄러워졌다.
밖을 나갔다.
동쪽 하늘이 예사롭지 않다.
운해가 묘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감격에 가슴이 미어져 눈물 섞인 탄성을 쏟아냈다.
아! 나의 완소 카메라.오두막.
나는 비가 염려되어 가지고 오지 못한 카메라가 아쉬웠다.
이 장면을 똑딱이로 담아야한다는것 자체가 불운이다.
나는 불운을 감수해야했지만
이 불운의 대가로 받은 나중의 내 행운은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요 사진 속의 장면을 일찌기 보신 분들의 앞날에 축복이 있으라!!!
사진으로 보시는 분들도 쪼매 복이 있으라.
무엇으로 이 감동을 표현하겠나.
어휴~~
아무도 없는 신불 평원으로의 산행.
적요 속으로의 행진.
아직도 빠지지 않은 운무.
세상이 착한 아기들처럼 고요 속에 잠들어 있다.
간월산 뒤로 가지산의 위용이 드러난다.
운해에 정신이 뺏겨.
이렇게 맑은 아침을 본적이 없다.
마치 세상에서 첫 숨을 내 쉰 아기처럼 호흡이 새롭다.
폐장 깊숙히 물을 채우듯 욕심껏 공기를 채운다.
맑은 세상 속으로 세 사람이 바람을 가르며 나아간다.
내가 점점 엷어져 바람이 되는 기분이다.
아침을 맞아 풀잎이 일어선다.
간밤에 내 머리맡을 맴돌던 바람이 구름을 죄 몰고 가버렸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바람이 몰고 간것이 어디 구름 뿐이랴
내 마음 속 상념.번뇌 다 달아났다.
마음속이 청정무구하다.
깨끗하다.
오늘 가야할 산들이 갚아야할 빚처럼
끝없이 펼쳐진다.
아! 참으로 긴 산들의 흐름이다.
대체 저 긴 길을 왜 다 걸어야 하는건지.
모험
오기
무모함.
내 스스로에게 내리는 명령이 이리도 준엄한 것일 줄이야.
영축산 가는 길
저 가운데 서면 외계와 조우할 수 있지 않을까.
고요한 산은 우주적이다.
영축산을 향해 한 고독한 사나이가
아침의 풍경 속을 걷고 있다.
등짐이 무거워 보인다.
숨겨진 인간의 야성이 오히려 가볍다.
죽바우등 좌측으로 오룡산의 제봉우리들이 보인다.
저 큰 산을 다 지나야한단 말인가.
숨이 탁 막혀왔다.
내 걱정을 비웃듯
두 사람들이 실실거리며 웃고 있다.
불길함이 근심이되어
고지서처럼 날아든다.
칼날같은 쓰리랑 릿지.
오히려 스케르쪼처럼 경쾌하다.
경쾌함을 더해주는 풍광이다.
가히 음악적이다.
우리가 걸어 온 산.
산이 두려워지고
힘이 든 만큼 피로가 몰려왔다.
피로가 우울증을 몰고 왔는지
산행이 우울한 관념 속에서 힘을 잃고 있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것인지.
왜 걷고 있는지의 경계가 희미해져 왔다.
오기로 걷고 있었다.
내 오기를 코에 꿰고 소를 몰듯 걸어가고 있는
내 앞의 존재란 것이 불현듯 수상하다.
삶이냐, 존재냐?
선인가 악인가?
적인가 동지인가?
두려움 속에 산을 걷습니다.
구름이 우울을 몰고 다닙니다.
어딘가 누워 쉬고 싶습니다.
잠이 옵니다.
힘이 없습니다.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끊어질것 같습니다.
그래도 나는 걷고 있습니다.
마치 내 지난 인생의 죄를 갚아가듯.
갚아야할 그 죄들이 슬퍼집니다.
슬퍼할 일도 아니므로 더 기가 막힙니다.
그래도 그 슬픔을 뒤로하고 나는 걷고 또 걷습니다.
발 한걸음에 후회가
발 한걸음에 승리의 힘이
발 한걸음에 슬픔이, 발 한걸음에 우울함이
온갖 상념들이 발 아래 어지럽습니다.
그 어지러움 위에 비로소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겨납니다.
죽바우등
오! 죽바우등.
죽을 힘으로 무릅썼던 그 순간.
그 이후 그 이전에도 겪은 바 없는 괴로움의 신화.
오! 죽바우등.
모진 마음으로 오룡산을 넘습니다.
산고를 치러낸 어미의 마음입니다.
내 모든것을 소진했을 때의 슬픔.
가슴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때의 낯선 슬픔.
이 낯선 기분이야말로 담담함인 모양입니다.
아무런 마음도, 거짓마져도 지을 수 없을 만큼의 텅빔.
그 빈 공간 속으로 나른함이
오후의 햇살처럼 쏟아집니다.
오룡산에서 통도사 자장암 쪽으로 하산.
내가 오늘 무슨 일을 한 걸까요.
지난 밤부터 산행을 마감한 이 시점까지
워낙 변화 무상한 경험들을 한꺼번에 치러내느라
정신이 하나 없습니다.
섣불리 지금의 감정을 무어라 단정하는것도 옳을것 같지않습니다.
낯선 경험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 미묘한 감정의 변화와 흐름.
참 색다른건 분명합니다만
이번 산행이 앞으로의 내 인생에 어떤 의미로 다가 올지는
글쎄 좀 더 살아봐야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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