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뱀사골 가을

poll™ 2009. 10. 19. 20:29

 

 

 

 

-천마산에서의 부산 야경-

 

 등산이라는 활동의 기저에 깔린 이상주의를

등산을 하지않는 사람들의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인대를 다쳐 스프린터를 푼지 채 일주일도 되지않아

천마산 야간 산행에 나서는 나 자신의 황당한 행동에 대해서도

나는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지 못합니다.

다만 내일의 더 큰 산행을 위한 예비 삼아

그저 슬슬 산에 오른다는 말 밖에.

 

 

 

 

여름의 뱀사골은 참 지루하다. 

지루하다 못해 중산리에서 천황봉 오르는 길과 함께 다시는 걷고 싶지 않은 길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부득이 그 길을 다시 걷게 되었다.

지난 2년동안의 산행 경력에 어울리지 않은 코스였지만

주인을 잘못 만나 혹사당하는 내 두다리를 생각할 때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는지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빛으로부터 무지개빛 스펙트럼이 만들어지듯

푸르름이 해체되며

숲은 온갖 빛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슬픈빛이 아니라

분주한 꽃단장에 가까운 빛이었다.

 

 

 

 

 

 

만산에 아름다움이 넘친다.

선이, 형태가,그리고 색체가

순수함과 소박함과 자유로움으로 가득하다. 

 

누구도 오늘 하루 내 자유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숲에서 세상으로 부터 완벽히 격리될것이다.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이란 말인가.

 

 

 

 

 

 

 

 

호젓한 가을 숲을 걷습니다

숲 저 너머 지리산의 능선 위가 그립지 아니한것은 아니지만

서풍이 주렴을 흔들어  꽃부채를 쓸쓸하게하듯

가을빛은 자꾸 내마음에

일지 않아도 좋을 상념을 불어넣습니다.

 

 

 

 

 

 

 

 

한편에서는 생각을 만들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생각을 죽이는 일.

이것은 산을 오르며 내가 습득한 묘한 취향 중에 하나입니다.

좌선 중에 일어나는 번뇌망상처럼

나는 끊임없이 나를 만들고 나를 죽입니다.

 

 

 

 

아픈 다리를 끌며

나는 첫 산행처럼 산길을 걷습니다.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가을 바람은 어찌 화선을 슬프게하는가"

 

청대 시인 납란 용약의 '원가행'은 남녀의 덧없는 사랑을 노래한 시이지만

삶을 대하는 자세가 이 싯구처럼 다 첫 시작과 같다면

세상에 무엇이던 다 이루지 못할 바가 있겠습니까. 

 

 

 

 

"이것봐 나는 지금 자네가 무얼하고 싶은지 알아.'

 

'그게 뭔데요?"

 

"자네는 지금 완전히 발가벗고 저 숲속에 뛰어들고 싶어하지"

 

"제가 왜요?"

 

"잃어버린것을 다시 찾고싶어서지"

'상실된것의 재생이라고나 할까..'

 

..... 

 

 

 

 

 나는 가을에 남아있는 초록을 좋아합니다.

봄속의 싱싱한 초록이 아니라

젊음을 붙잡으려 더 이상 발버둥치지 않는

숙명의 주기에 스스로 자족하고 초연한 그런 성숙한 빛입니다.

 

 

 

 

 

 

 

 

 봄누에는 죽어야 실뽑기를 마치고

촛불은 재가되어 눈물을 그치듯

단풍은 산을 삼켜서야 조락해 갈것입니다.

농익은 가을빛들이 마침내 제 슬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우주의 준엄함을 깨닫습니다.

 

 

 

숲의 세상과는 별도로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흰 구름은 속절없다. 

 

 

 

 

 나는 그동안 산을 오르며 오로지 다른 그 무엇,

도전적인 대상들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산의 정상이라는것이

결코 절정을 의미하는것도 아니고 절망을 의미하는것도 아님을 깨닫았습니다.

 

산길을 걸어 그곳에 다다른다는것은 자연스런 시간의 흐름입니다.

 

그 자연스러움에 의지해 나는 걷고 또 걸을 뿐

이제 더 이상 산정이 욕망의 대상은 되지않습니다.

 그것은 다만 하나의 존재요,개성일 따름이니까요.

 

 

 

 등산의 성패는 산을 올랐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것이 아니라

등산을 통해 경험하고 느낀 바에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은

이미 진부한 설명이지만

오늘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크다란 위안으로 여겨집니다.

 

 

 

 

산을 통해 내가 얻은 가장 소중한것은

단순한 신체적 능력의 향상보다

 

산이 가지는 이데아에 접근하고자하는 육체와 이성의 노력을 통해

산이 주는 한결같은 느낌을 터득했다는것입니다.

 

마치 우주에 닿아있는듯한 하나의 통일된 정신들과

일직선에 놓여진다는

묘한 우주적 직관 같은것입니다. 

 

 

 

 

 

 

 

탁용소

 

 

 

 

 

 

 

 

 

 

과분한 가을 햇살이 숲을 뒤덮어

붉은 광채로 눈부시게 계곡에 굵은 테를 만듭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잔광을 모두 거두어

낮게 흐르는 저 계곡물에조차

길고 고운 빛들의 그림자를 수놓습니다.

 

색들에 눌려 숲에는 짙은 침묵이 가득합니다.

하늘을 어지럽히며

구름이 간혹 그림자를 만듭니다.

 

그 사이에 산을 겨우 내려 온 물빛들이

쪼르르 바람을 타고 흘러갑니다.

 

 

 

 

 

 

 

 

 

 

 

 

 

 

 

 

 

산에 오르면서 나는 심각해 지지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산행을 통해 얻는 마음의 자정작용이란것이 

자칫 심각한것이라 오해 받을 수 있으나

심각하다고하여 더 진실에 가까와지는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을 붙들어매는 그 간절함에서 해방될 때

어쩌면 그것이 신의 진정성에 더 가까와 지는것일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하면 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것이 되고

어떻게하면 더 행복해 질 수 있는것인지를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다만 산에 오른다는것은

상대한 여자의 수만큼이나 사랑의 의미가 퇴색한다는것과는 다른것임이 분명하다.

 

산은 늘 첫사랑처럼 새롭고 설렌다.

모든것이 처음 시작하는 기분이다.

내버려둬도 만사는 흘러갈 나름이요

최선을 다해도 입을 상처는 입기 마련인데

나는 그저 편하게 걸어가는 이 길이 좋을 따름이다.

 

 

 

 

 

 

 

 

 

 

 

 

한무더기의 사람들이

맥놀이처럼 소요를 만들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곧 적막이 다시 찾아와

더블 베이스와도 같은 쓰르라미의 낮은 소리만 남습니다.

 

철늦은 벌레들의 울음이

바란 바없는 작은 슬픔을 몰고다닙니다.

 

그리고 주위는 다시 정적처럼 고요함으로 가득합니다.

무슨 소리라도 찾아야할것처럼 깊디깊은 적요가 찾아옵니다.

 

그 적요를 깨기라도 하듯

문득 높은 곳에서 따사로운 햇살이 내 손등에 가벼이 내려앉았습니다.

 

빛이 기도처럼

마음을 선하게 만듭니다.

 

 

 

 

 

슬픔이란 슬픔을 마음껏 경험한 끝에

마침내 그 슬픔  속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리고 그 슬픔 또한 다음에 만날 슬픔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것도. 

 

그래서 슬픔은 늘 새롭고

슬픔의 뒤안은 정갈하기만 한데

나의 슬픔은 아직 경지를 느끼지 못하고 비루하기만 합니다.

 

 

 

 

 

 얼굴을 달리하며

여러 종류의 슬픔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쇼 윈도에 진열된 옷가지에 지나지 않았다.

 

열린창으로 한무더기의 바람이 휙 들어온것처럼

마치 가슴 언저리를 뒤틀듯한 그 무엇이 찾아 온것 같았으나

아픔이나 불쾌감과는 거리가 먼 감정이었다.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하니 이것도 일종의

외로움이 만드는 하나의 유희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병소

 

 

 

병의 주둥이 속으로 시원한게 물이 들어간다. 

 

 

 

사라진다는것.

적요에 든다는것은 실제로는 아주 순식간의 일이다.

 

마치 나비나 잠자리의 죽음처럼

불현듯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모르게

먼 허공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한정된 시간에 아주 조금만을 원하고

사해마져 깊이 감추어버린 우아한 생명들의 죽음.

 

지리산은 이미 그 죽음들을 예고하는것일까

사자를 위한 제단에

죽음처럼 시린 고운 빛이 내린다는것은. 

 

 

 

 

 

 

 

 

 

 

 

 

 

 

 

 

 

 

 

 

 

 

 마음 가득 부처님의 가르침을 품고있는 문사들이

비애와 연민을 몸소 느낀 연후에야 자비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것처럼

상실이 그 기쁨을 채워주리라.

 

 

 

 

산을 옮겨놓을 신념으로 잃어버려라.

나무가 낙엽을 던져버리는 믿음으로

던져 버려라.

그리고 물위를 겉도는 저 가진것의 그림자처럼 편안하게

세상을 살아가라. 

위무하라.

 

 

 

 

 

 

 잘 짜여진 거미집같은 철길 위를 지납니다.

마치 이 길을 지나는 이는

결코 이 곳에서 만들어낸 추억들을 잊지는 못할것이라는 단호함이

길 끝에 감겨있습니다.

그리고 그 단호함 속에 오랜 세월이 느껴졌습니다.

 

 

 

 

 

 

 

한시를 넘겼는데도 여전히 시장기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먼저 올라간 일행들이 산을 내려가며

안부를 묻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식욕을 느낄만한 곳이 없습니다.

생각해보니 숲이라는 곳이 구태여 시장을 위한 치장은 아니지만

숲길을 걷다보면 시장이 따라들기 마련이련만

나는 배고픈 줄을 모르고 가을에 취해 숲을 돌아 다닙니다.

 

 

 

 

 

 

 

제승대

 

 

 

 

 

 

 

이야기의 숲에서

나는 냇물에 말을 걸어 본다.

 

상념의 숲에서

나는 나무에 말을 걸어 본다.

 

침묵의 숲에서

나는 바위에 말을 걸어 본다

 

어떠한 묘사도 서로에 대한 답을 해주지 않는다.

 

하나의 이야기가

다른 이의 이야기가 되지않는것처럼 의미가 겉돈다.

 

손에 잡힐듯한 묘한 암시들이

이해할수 없는 주문처럼 남아

 

서로가 서로의 '것'들에 의지하며 살아 간다.

 

숲을 이룬다.

 

 

 

 

 

 

 

 

 

 

 

 

 

 

 

 

 

 

 산에 대한 어떤 기억들은 생생한 현실감을 수반할 때가 많다.

마치 바위에 붙은 따개비처럼

의식의 벽에 강력하게 붙어

그때의 감촉의 무게조차 생생히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참으로 질기고도 아득한 맛이다.

곰삭은 맛이기에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눈앞의 풍경들이 종국에 그런 풍경이기를 갈망한다.

 

 

 

 

 

 

 

 

 

 

 

 

 

 

 

 

 

 

 

 

 

 만추의 숲길을 걷다보면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커텐처럼 내 젊은날이 따라 다닙니다.

 

이념과 투쟁의 나날 속에서도

말없이 떨어지던 구덕골의 단풍들과

몸으로 울던 과실들.

 

그러나 과거를 아무리 면밀히 바꾸어 쓴다해도

과거는 이미 과거일 뿐.

지금의 나는 여전히 나일것 같습니다.

 

시간에는 이렇게 강력한 힘이 있나 봅니다.

만추의 숲에서 그런 시간의 되돌릴 수 없는 힘을 느낍니다.

 

 

 

 

 

나의 과거는 이미 힘을 잃고

미래마저 수정의 덧칠을 거듭한 끝에

이미 나아갈 바를 모르고 방황하는데

만추의 숲은 이런 나에게

하나의 위로요 위안으로 다가 옵니다.

 

이제 달리 길이 없습니다.

죄의 슬픔은

참회의 마음을 천갈래로 찢는다는

마태수난곡의 가사처럼

바람에  만갈래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이

고운 향유가 되어

내 마음에도 부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나무가 잎을 버리고

나목으로 남겨진다는 것이

세상을 살며 나를 꾸며낸 장식을 하나 하나 벗는 것과도 흡사하단 생각이 듭니다.

 

내가 숲에 들어 생각을 죽이는 일이거나

스님들이 참선 삼매에 들어 無의 심연을 확인하는것이나

결국엔 다가갈

그 거칠고 물기없는 無의 세상.

 

 

 겨울 숲을 만나면 무슨 생각을 또 나는 하게 될까.

 

 

 

 

 

 

 

 

 

 

 

 

 

 내려 오는 길에 오늘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나는 하늘에 대고 물었다.

 

대답을 얻지 못한 물음이 허공에

나무 잎사귀처럼 무수히 달려있다.

 

목이 아플만큼 침묵이 길었다.

하늘이 진공처럼 모든 물음들을 흡수해 버리는지도 몰랐다.

눈이 시리도록 하늘은 깊디 깊다.

 

 

 

간장소

 

 

 

 

 

 

 

 

 

 

 

 

 

 

 

 

 

 

물에 비친 그림자는 분명 나였지만

혹은 나의 잔해같이도 느껴졌다.

 

세월이 나에게서 너무도 많은것들을 빼앗아 가버렸다

나는 여전히 씩씩하게 잘 살고있다.

 

그러나 이런 씩씩함 마저

그저 빈 허물,

따스함이 사라진 빈집인지도 모른다.

 

물가에 앉아

이런 흘러가는것들을 다 생각해본다.

 

허망하다.

 

 

 

 

 

 

 

 

 

 

 

 

 

 

-후 기-

 

생각이 허무해지자

처마 밑의 빈 새둥지처럼

글을 쓴다는것이 다 부질없이 느껴집니다.

 

가을 길에서 마음의 병을 얻어 온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는 또 치유의 길을 생각합니다.

 

내일은  어떤 산을 오르게 될지

아픈 다리가 자꾸 마음에 걸리지만

마음은 벌써

가을 숲을 향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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