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별유산 환종주

poll™ 2009. 9. 22. 14:24

 

가을을 찾아 새털구름 품은 하늘 저편 만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어느틈엔가

땅 아주 낮은 곳에서 조차 가을은 소리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을은 소박한 모습으로  찾아와

어김없이 눈도장 하나를 찍어놓고 간다.

산 구절초 흰꽃

정말 가을이다.

 

 

 

 

 

 

 산구절초

 

들국화라 부르지마라.

들국화란 꽃이름은 없다.

나는 산 구절초. 

 

 

 

 

조용히 편지 봉투를 뜯어 보듯

길가에 일찍나온 가을을 음미하며 한시간 남짓 산을 오르다보면

어느새 마장재 고개마루가 나온다.

마장재에서 부터 본격적인 암릉 구간이 시작되고

북서쪽으로 눈에 익은 가야산이 보인다.

가야산 앞 능선 좌측에 유두처럼 솟은 산이 매화산 남산 제일봉이다.

 

 

 

 

 

 

들판에는 벼가  익어간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기도한 남국의 햇살이

들판과 과수원에 넉넉히 쏟아져 내린다.

햇살이 깊고 두텁다.

춥지도 덥지도 않는 가을 어귀,

안동 길안의 홍로 사과 한입 베어먹은듯

마음이 너그럽다.

 

 

 

별유산은 경남 거창군 가조면 수월리에 위치한 높이 1046m의 산으로

우두산 아홉 봉우리 중의 하나를 칭한다.

명칭이 좀  헷갈려 정리를 해보면

 

-펌-

 

의상봉은 우두산, 별유산이라고도 부른다.

의상봉의 상봉은 우두산이다.

의상봉이 상봉인 우두산보다 많은 등산인의 발길을 끄는 이유는 주변 경관이 빼어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우두산은 지도상에 별유산으로 되었으나 최근의 개념도에 우두산이라 나와 있고

 거창군청 홈페이지 의상봉 지도에 의상봉의 상봉을  우두산이라고 표시하고 있다.

 

 

 

 

 검색만으로는 여전히 헷갈려 직접 답사를 해보니

우두산을 별유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것 같고

우두산의 최고봉은 상봉이라고 하는데  이 상봉을 별유산이라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 상봉이라는 데를 가보면 그 흔한 표지석 하나 없고

의상봉으로 가는 안내 푯말만 하나 달랑 서있다.

워낙 의상봉이 유명하다보니

의상봉 꼭대기에는  牛頭山 義湘峰 이라 씌인 표지석이 서 있다.

아무렴 어때

산이 좋으면 그만이지.

   

 

우두산 의상봉.

 

 

 

 본격적인 암릉구간.

흰 화강암에 빛이 날려 사진에 생기가 없다.

이런 사진에 활력을 불어넣을 묘한 기술적 장치가 분명히 있으련만

빛은 빛으로 신명나게 떠돌아 다닌다.

조리게를 조아 넘쳐나는 빛을 줄인다.

내가 자연에 빚을 진 빛의 양은 아주 소박한 정도의 빛이다.

그 소박함이야 말로 사물에 생동감을 주는 원천이다.

 

 

 

 

 

 

 

 어느 시인은

빛이 우리에게 등을 돌릴 때

빛이 비치지않는 생의 한 측면을

죽음이라고 하였다.

지금 소낙비를 맞듯

햇살 쏟아지는 바위 위를 걷고 있는 나는

생의 충만감으로 벅차야한다.

과연 그렇다.

빛이 있고서 희망을 얻고

즐거움을 또 얻는다.

 

 

 

 

 

 

 

 

 

 

 

 

 

 연한 핑크빛이 도는 바위와 푸른 하늘의 배치가 여간 조화롭지 않다.

성모의 보석같은

아름답고 부드러운 바위의 묘한 자태.

그 위로 가을이 붓칠을 한듯

반짝거린다.

 

 

 

 이렇게 폼 잡을 때가 좋을 때다.

사진 속의 나는 언제나 과거이고 혹은 미래다.

나는 미래를 지향하며 과거 속에 잡혀버린다.

 

왠일로 오늘은 내가 다 보고싶어지는걸까.

별난 폼은 아니지만 나도 돌들 사이에서

그냥 바위처럼 굳어 조형이 되고 싶은 모양이다.

 

 

 

 

 

 

 레테의 강을 건너 유리디체를 찾아 온 오르페우스처럼

앞만 보고 걷다보면

정말 뒤돌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과연 내가 어떤 풍경 속에 담겨져 있는지.

내가 지나온 길이 어떤 길이었는지.

혹여 놓쳐버린 풍경이 있는지.

 

험한 길을 요리 조리 피해 오르다보니

이마에는 벌써 땀이 맺히고

한 줄기 산들 바람이 그리워

허리 한번 펴고 걸어 온 산을 또 돌아 본다.

글룩의 오페라를 애써 떠올린다.

-유리디체없이 어떻게 사나-

 

 

 

불현듯 낯선 풍경을 만난다.

엄연히 같은 길을 걸어 왔건만

풍경은 우리 뒤를 살금 살금 따라온 그림자 처럼 늘 내 뒤에 붙어있다.

분명한 것과 분명하지 않은것.

마치 눈 먼자들의 도시를 걸어 온 이 느낌.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 잡혀

돌아 볼 필요도 없는 위치에서

자꾸 시간의 끈을 붙잡으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힘들어 한다.

먼 추억처럼 산들에 갇힌 들이 보인다.

 

 

 

 내 눈에 익은 세상에 나와

즐거운 상상을 한다.

 

생각은 생각대로 지쳐

상상은 빈약한데

나는 내 퇴락한 마음 한켠을 일으켜

기둥처럼 하늘에 세운다.

 

세계는 참으로 넓고 고요하다.

 나는 참되게 익어 가는 과일처럼

생각을 다독여.

세상을 다독여...

나의 집인듯 편안한 세상을 만든다.

 

 

 

산 위에서 글을 쓴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세상을 한뼘 늘여보고 싶어.

 

큰 나무와 잎사귀 그리고 그 아래를 걸어가는

나 자신을 구분하지 않기 위해서.

일기예보를 보지 않고 살고 싶어서.

 

 

 

 

 

 

 

 

 

 

 

 

 

의상봉

 

 힘들여 산에 오르는것에는

어떤 사회적 의미도 사실 없다.

오직 고통만이  지혜의 유일한 원천이다.

그래서 산에서 만나는 풍경은

풍경의 풍경이 아니라 마음의 풍경인 것이다.

 

 

 

 

 

 풍경에 빠진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나와 풍경이 맺는 멜랑코리한 수락이다.

나와 풍경이 자아내는 응결된 커뮤니케이션이다.

사진은 이런 관계의 집적적인 표현이다.

 

 

 의상봉에서 지남산 쪽을 바라 본 풍경

 

 

 

 의상봉에서 상봉(별유산) 쪽을 바라 본 풍경.

 

 

 

 

 

 

 

 

 

 

 

 

 

 

 

 

 투구꽃

 

아무리 바쁘고 고된 걸음이라도 너를 놓치고 걷지는 않는다.

 

 

 

 

 누가 내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겠는가.

나는 내 이야기를 위해 글을 쓰지는 않는다.

나는 글을 통해 그릇에 기름처럼 묻어있는

내 마음의 그림자들을 닦아낸다.

그래서인지 나는 글을 쓰는 동안 훨씬 내 자신과의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지혜가 그 집을 짓고 일곱 기둥들을 다듬듯.

 

 

 

 

 

 

 

 

 

 

 

 

 

 

 이렇게 자신 만만한 하늘을 바라보니

내 마음에도 절로 용기가 생깁니다.

 

언제나 브람스의 클라리넷 소나타를 떠올리게하는 초가을의 하늘.

하늘에서 목가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클라리넷의 소리가

포근한 눈처럼 폴폴 날립니다.

몸과 마음이 모태에 든듯 편합니다.

 

 

 
2악장 (Allegro appassionato)

 

 

 

 

 

 

 

 

뒤 돌아 바라 본 장군봉의 위용. 

 

 

The way we were. 

 

우리가 걸어 온 길

해지기 전에 내려 갈수나 있을 려나.

 

갑자기 '눈 몸살'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봅니다.

경치가 너무 좋아 눈에 경치를 마구 쑤셔 넣으니 눈 몸살이 날 밖에요.

'산의 땡김질'이라고 다소 저속한 표현도 써 봅니다.

아기자기, 올망졸망

흥겨운 산길입니다.

산을 내려가는 나를 산은 자꾸 당깁니다.

 

 

 

 

 

 가을이 소복이 내려 앉은 들이

햇살에 지쳐 옅은 gas 층을 만들었습니다.

눈에 쏙 들어 오는 green-yellow를 잡지 못해

마음이 많이 아쉽습니다.

햇살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가조벌에 넘칩니다.

 

 

 

 

 신의 걸작 바리봉.

 

바리봉에는 의상봉처럼 그 흔한 계단 하나 없다.

자연 그대로의 바위를 계단삼아 기다싶이 올라야한다.

내려오는 길은 로프.

긴장을 놓을 겨를이 없다.

고통에도 신명이 붙어

즐거운 탄성을 지른다.

 

 

 

 별유산은 다른 산의 환종주에서는 맛 볼수 없는

산의 속살들에 조차 눈길을 주어야한다.

잘 생긴 암벽이 심심찮게 나타나 시원한 청량감을 준다.

벌써 6시간 반을 걸었건만 별 피곤한 기색이 없다.

'놀며 걸으며'

내가 추구하는 산행이다.

 

 

 

 

 

 

 바위 끝을 오르다 말고 바위 끝에 걸린 하늘을 바라봅니다.

무거운것과 가벼운것

말하려는것과 침묵하려는것

파열된 미로의 산과 견고함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과

멜랑코리의 불루.

언어가 빙빙도는 불꽃처럼 어지럽다.

 

 

 

 

 

 

 

 

 

 

 

 

 

 

 

 바리봉을 뒤로.

 

 

- 후기-

 

보기 좋은 사과가 맛도 있다.

경험론적 사실이다.

별유산은 이름 그대로 빼어난 산이었다.

고생에 비해 별 건질것이 없었던 영남 알프스 운문지맥 종주와는 달리

산행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맛있는 포도를 먹고나서

퉤하고 뱉어내는 씨앗처럼

날머리 주차장 앞에서

어이없이 미끌어졌다.

무릎 측부 인대가 나가버린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고다.

 

산행 중의 사고가 아니라 한편 다행이었지만

한동안 산행을 할수 없게되어

마음 한편이 무너진듯 아프다.

시월 말까지 차있는 산행 스케쥴은 어떻게 해야하나!!!

 

1분을 남겨 두고 한골을 먹어버린 골 키퍼의 마음.

9회 말에 역전 홈런을 맞은 기분.

선한자에게도 불행은 있는 법이니까

슬퍼도 후회없이 살자.

 

 


 

첨부파일 히사이시조-마녀배달부키키(오르골ver.).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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