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청송 주왕산 후기

poll™ 2009. 11. 16. 14:30

  

 

 내가 산에 오르는 것은

저 묵묵 부답의 바위를 닮고

하늘 향해 꼿꼿이 서 있는 나무를 닮고자 함이다.

 

저 바위와

나무에 살아있는

성령을 닮기 위함이다.

 

그 무엇에도 변하지 않는

금강경을 듣기 위함이다.

 

듣고 배워

그들중에 하나

외로운 나무가 되기 위함이다.

 

변함없이 세상을

대하기 위함이다.

 

 

 

 

주왕산에 가서  폭포 구경이야 다들 하고 오겠지만 

주왕산을 직접 올랐다 오는 이는 오히려 더물다.

이번 산행의 목표는 

주왕산 정상에 오르는것이니 만큼

비록 무릎이 불편하긴해도

꼭 정상에 올랐다 오리라.

 

 

 

청송가는 길도 멀긴 멀거니와

시작부터 버스 타이어가 펑크가 나 시간을 지체하더니

운전수가 길을 몰라 헤메는 바람에

차안에서 점심식사를 해야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다행히 산대장이  등산 불가의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몇몇을 모아

산정에 오르겠다 하니

나는 아무 군말없이 산대장님을 따르기로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내자를 모시고 온  몇몇 회원들을 제외하고

순방향으로 산에 오르기로한 다섯분과

역주행에 따라나선 나를 포함한 4명 도합 9명이 주왕산 등정에 참여 했다.

 

 

 

 주왕산이라 부르게 된 사연은 신라시대 왕족인 김주원(金周元)이 왕위를 버리고 이곳에 들어와 수도(修道)했다는

   이야기와 중국 당나라때 진나라의 후손 주도가 스스로를 주왕(周王)이라 칭하고 진나라를 회복하려다 실패하여 이 곳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내다 신라장수 마장군 형제들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주왕산의 상징 旗巖

대전사를 병풍처럼 받쳐 웅장한 아름다움을 주고있다.

 

은해사의 말사인 대전사는

672년 신라문무왕 시절 의상대사가 세웠다는 설과

919년 보조국사 지눌이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을 위해 지었다는 설이 있지만

남아있는 문화재 성격으로 봐서는

신라시대 지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국립공원 등로가 제 값을 하고있다.

길을 걸으며 이정도면 참 자연 친화적 구조물이라 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뜻 동의 할 수 없지만 주왕산은 설악산,월출산 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 암산 이라고 한다.

눈앞에 병풍같은 奇巖들을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것은 주왕산이

721m정도의 나지막한 산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기암이 주왕산의 트레이드 마크인 만큼

내 사진 속에도 온통 旗巖이 자리하고 있다.

기암의 유래가 궁금했으나 찾을 길 없고

아마 깃대처럼 솟아있다고하여 붙인 이름인것 같다.

 

 

 

 

 

 

 

 

주왕산은 이렇게 웅장한 바위들이 병풍처럼 서 있다하여

석병산이라고도 한다.

석병산의 굵은 바위들이

근골의 청년을 연상시킨다. 

 

 

국립공원의 소박한 정상석

 

아직도 정상석에 카메라가 가는 걸로 봐서는

아직도 내 마음은 자연에 겸허히 묻어간다기 보다는

세상을 향해 도는 치졸한 해바라기에 불과한 모양이다.

 

 

올라야할 길을 내려가고 있다.

오를 땐 몰랐는데

역주행 등로가 오히려 더 수월할것 같다.

곳곳에 헬기로 투하했음직한

부재들이 즐비하다.

 

 

청송은 푸른 솔은 우여 곡절도 많았나보다.

왠만한 소나무는 모조리 이렇게 칼질을 당하였다.

운문사 절 앞 소나무 숲도 이런 수모를 당했었다.

 

나라가 망하면

이 나라의 백성만이 아니라

한 그루 나무,

한 포기 풀,

이 나라 산하가 온통 같은 운명  속에 놓인다는

자명한 사실을 나무는 일께워 준다.

 

 

 

 

느리게 걸어야 할 길을

바삐 걷는다.

산은 겨울 맞이로 분주하다.

물 위에 놓인 저 무수한 死骸의 진혼처럼

바람이 잠시 시간을 거슬러

잔잔한 물무늬를 만들고 있다.

 

시간이 문득 살아있는 유기체란 느낌이 든다.

산것을 뚫고 지나가는

내 등 뒤에도 문득 시간이 들어

 마음이 다 숙연하다.

 

 

후리메기 길 

 

 

호젓한 가을 길

세상 그 누구와라도 걷고 싶은 길

 

혼자라도

누구없는 혼자라도

혼자임이 느껴지지 않는 길

 

더  버릴것이 없어

마음마져 벗어 던져서라도

호젓이 걷고 싶은 길

 

누구라도 가슴에

한줄 빗금처럼 남겨 두고 싶은 길

상처가 아닌

희망의 길

 

 

후리메기란 이름이 이채로와 찾아봤더니

 

"후리메기 지명의 유래는 주왕의 군사가 훈련을 하였던 장소라하여

 훈련목으로 불리다 후리메기로 바뀐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방에서 사람들이 편하게 부르던 이름이 고유지명으로 바뀐 것이거나

 목이란 표기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식 표기명인 갈림길이란 뜻의 기(岐)자로 바뀐 것으로 추정됩니다."

 

 

 

흰 나무

 

흰 나무가 추워 보인다.

내 나이에

따스함이 스며들기를 기다리며

그 따스함이야말로

두려움이 없는 삶이라는걸 깨닫는다.

모진 병을 앓고 난 후

더 이상 두려워할것이 없다는 기분으로

하얗게 떨고 있는 자작나무를 바라본다.

 

 

 

 

 제일 폭포

 

 

 

 왜 그리된건지는 모르지만

사진이 전부 떨고 있다.

카메라의 무게를 못이긴 탓일까

서둘러 하산하며

마음이 쫓긴 탓일까

화상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주왕산을 숙제처럼 남겨두고

다음을 기약한다.

 

 

 

 제일 폭포의 관문을 지나면

주왕산 하일라이트는 끝이다.

 

 

제일 폭포 입구 

 

 

 

학소대

 

 

 

 시루봉

파란 하늘에 나타난 비행체가 멋지다.

 

 

급수대

 

 

 

 

 

 급수대 원경

 

 

 

 

 

 

세상은 매혹적인 한 줄기의 길을 위해 존재하는것은 아닐까.

내가 걷고 있는 이 길. 

 

 

 

 

 노란 황국도 보랏빛 쑥부쟁이도 보이지 않는다.

꽃들의 잔치가 끝이났나보다.

잎이 지면 푸름을 알리리라던

청송의 푸른 솔이

허옇게 뒤집어지는 입동의 바람을 의연히 맞고 서있다.

세월은 이렇게 바뀌었건만

나는 여전히 길을 걷는다.

 

 길을 걸으며 알지도 못하는 그 무엇인가를 또 찾고 있다.

무엇을 찾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과거에도,현재도,미래에도

무언가를 찾을것이다.

 

나는 왜 찾지도 못할것을 찾아헤맬까.

내 삶이란 결국 답을 얻지못할 그 무언가를 향해

이정표가 세워져 있단 말일까.

나의 기행는 결국 답이 없다.

 

 시작도 하지 않은 삶에 대해

결정과 선택을 할 필요야 없지 않을까.

세상에 이름할 수 없는 궁구함이야 말로 내 삶 자체이다!!!

 

  

 

 

 

 

 

 

 - 후 기-

 

흔들릴 때 마다

흔들릴 때 마다

함께 걸어 줄 그대가 곁에 있으니

그 길이 비록 지옥불인들

마다하랴.

늘 우리 첫 만남같기만한

세상  무엇보다도 가까운 당신여.

 

 

 

 

 

 

 

 
1악장 (Vivace ma non trop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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