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한라산 돈네코-아내와의 하루

poll™ 2010. 2. 2. 10:13

 

 

 

 

산을 오르는것은 산의 허락이요

산행을 마무리하는것은 산의 축복이다.

 

모처럼 아내와 찾은 제주도.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는게 아니라

겨울을 땅 밑으로 몰아내듯

그렇게 주루룩 흘러내린다.

 

 

 

서귀포의 새벽은 안개로 가득하다.

깊은 안개다.

水滴이 모여  차가운 빗방울을 만들어 낸다.

 

비가 내릴것 같기도 하고 그칠것 같기도 한 날씨다.

물기를 머금은 차가운 피부가

정신을 맑게한다.

 

인적이 없는 묘지를 따라 여명의 산을 오른다.

이제부터 날씨는 내 소관이 아니다.

나는 다만 내 앞에 놓인 길을 걸을 뿐.

길이 어두움을 갈라놓는다.

 

 

 

 

 

 

 세상을 다 지우고 난 시야에

어둑한 하늘을 배경으로 나무가 서있다.

 

인적이 없는 산길에서

문득 누군가를 만난 기쁨을 준다.

 

시간은  등 뒤에서 와류를 일으키며 사라진다.

삶을 꾸며가며 보내는 시간.

마냥 흘려보내지 않는 세월.

나는 털실로 옷을 짜둣

온기있는 내 하루를 만들어 내고 싶다.

 

 

 

 

 

 돈네코 1.72Km, 썩은 물통

 

 썩은 물통 위로 맑은 아침 비가 떨어진다

맑은 빗물도 이 작은 못에서는 곧 썩은 물이 되버리는 걸까.

고요한 아침의 습지 위로

아직 잠을 깨지 못한 빗방울이 내려 앉는다.

 

세상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는다.

 

 브장송에서 마지막 고별 연주를 마친

디누 리파티처럼

힘잃은 쇼팽이 라르게토로 흘러나온다.

 

 

 

 

아침이 깊은 산길을 용하게 찾아왔다.

비를  몰고갈듯한 아침이다.

완만한 상승이 기분좋게 이어진다.

산어귀 "밀림"이란 표지에 마음이 꽂혀

몸과 마음이 숲에 포태된것처럼 편안하다.

큰 산이 주는 넉넉함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이른 아침 숲을 거니는것은

사뭇 종교적이다.

 

아내와 나는 마치 감람산을 오르듯

조용히 산을 오른다.

아내는 원래 말 수가 적다.

 

산정을 눈 앞에 두고 그 아래를 돌아가는것이

마치 갈보리 산은 오르지 못하고

감람산까지만을 좇아가는

신심이 일천한 자의 믿음과는 분명 다른것이리라.

 

 

 

 

 

 

 

 

 

적송을 제대로 만나 한참 자리를 떠지 못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적송 군락이다.

한라산의 품격은 이런 멋진 수종들이 결정한다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비에 젖어 연어의 살처럼 부드럽게 빛나는

적송림 아래에서

느리디 느린 걸음으로 뒤쫓아 오는 아내를 기다린다. 

 

  

 

 

 

 

 

둔비 바위 

 

저자에 살던 者는

한라산을 오르며 비로소 囹圄의 몸에서 풀려나는 것일까.

둔비바위에 걸터앉아 두부 한모 베어먹는 기분으로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고

마침내 세상이란 감옥에서 풀려난다.

나는 자유다.

산 저쪽에 더 큰 자유가 기다리고 있다.

 

(둔비란 두부를 뜻하는 제주 방언) 

 

 

 

날씨가 좋다면 평궤 대피소 지나면

한라산 백록담 남벽과 사이좋게 누운 방애오름 삼형제를 볼수 있을 터이지만

우선 눈앞의 구름에 살짝가린 오름 하나에도 반갑다.

방애란 제주 방언으로 "방아"란 뜻으로

알방애,방애,웃방애 세오름이 남북으로 이어져 있다. 

 

 

 

 

 봄이 오면 털진달래와 철쭉이 가득할 산록 위로

물감을 칠한듯한 오름 하나가 웅장하게 솟아 올랐다.

 

줄곧 숲을 걷다 마침내 풍경다운 풍경을 대한다.

낯설고 이채로운 풍경이다.

 

비는 조금도 지친 기색 없이 주적거리고

내린 비에 의해

세상은 에비앙 생수를  살짝 뿌린 여자의 얼굴처럼 해맑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싱싱하다.

산죽이 맛깔스레 무쳐논 나물같다는 생각이 들즈음

점심 때가 되었음을 알아차렸다.

 

 

 

 한라산 관목대의 관목은

모습에서 부터 벌써 관록이 넘쳐 난다.

얼마나 험한 날씨를 이겨 낸 나무들인가.

쭉쭉 뻗어나온 가지 끝에 생명력이 넘쳐난다.

죽고 시든것 하나 없이

모두 살아 온 천지에 힘이 가득하다.

 

 

 

 

 

 

 

 

 

 산벌른내의 원류

 

산을 가르며 실개천이 힘있게 흘러간다.

졸졸거리는 소리가 돌 사이에서 묘하게 공명을 이루어

소리가 맑고 높다.

물은 흐르다 얼고

언 물은 다시 녹기를 반복하며

엷은 살얼음 아래를 흐른다.

봄의 소리를 듣는것 같다.

 

 

 

 

 무를 깨끗이 다듬어 논듯한 사스레 나무의 흰가지.

뺨을 식히는 가랑비와 함께

춥지도 덥지도 않는 날씨에

청량감을 더해준다.

 

 

 

 

 

 

 

 

 

 

 

부드러운 윤곽의 오름을 뒤로

무쇠 철벽같은 백록담의 남쪽벽이 보인다.

한라산의 로체

건강한 남자의 골격같은 남벽을 비록 다 볼 수는 없다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생명의 다양성처럼

산도 다양성의 관점에서 접근해야한다.

 

나는 오늘 '비오는 날' 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비오는 날'을 선택 받아 산에 올랐다.

겨울이었으니 망정이지

한여름에 폭우를 만났다면 어찌했을것인가.

 

산행은 학년이 올라 졸업하듯 끝이 나는것이 아니다.

산행은 평생 교육쪽에 더 가깝다.

늘 미완인 동시에  완성이다.

 

 

 

 

 

 

 

 

 

 백록담 남벽과 오름 삼형제가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곳에 남벽 분기점이있다.

감시초소가 하나 있고 전망대가 설치되어있어 식사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움텅밭

 

해발 1500-1600m에 위치한 넓은 평원이다.

세 오름과 백록담이 벽을 이루어 형성된 분지로

관목들이 밀생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풍경이 더 목가적이고 아늑하다.

 

 

 

 

 

 

 

 

 

 

마침내 남벽 분기점에서

 

마음은 이미 히말라야의 로체에 다가선 기분이다.

뜨거운 물을 부어 수프를 만들어 아내와 간단한 식사를 했다.

식사라해야 도시락을 준비 못해 빵으로 대신했지만

불만없이 먹어주는 아내가 고맙다.

 

점심을 먹는 아내의 발갛게 상기된 얼굴이 소녀같다.

아내는 늘 수주운 얼굴이다.

선하디 선한 손으로 컵의 온기를 느껴가며

아내는 스프를 마신다.

참 평온한 시간이다.

 

정말 찰라 같은 시간에 24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 가버렸다.

 

 

 

 

 

 

 

 

얄미운 구름이 마치 포란하듯

남벽을 감싸고 있다.

나는 짓궂은 남학생이 되어 치마 밑을 덜추어 보듯 산을 올려다 본다.

물기를 머금은 산의 속살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내밀한 상상의 즐거움.

이것만으로도 남벽의 아름다움은 충분하다.

 

 

 

 

 

 

 

 

움텅밭을 꽉메운 제주 조릿대

 

한라산을 보호하기 위해 말과 소의 방목을 금지한 후로

조릿대가 왕성하게 번식하여 마침내 생태계마저 위협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조만간 백록담 내벽으로까지 침범해 들어갈 기세란다.

생명의 다양성 측면에서 조릿대의 왕성한 번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묘방이 없는 모양이다.

 

 

 

윗세오름을 향한 발걸음 

 

 

 

고도를 높일수록 구름은 더 짙어진다.

구름이 산을 오르내리며 근심을 만들어 낸다.

더 이상 비는 내리지 않았다.

비탈을 오르는 아내의 보폭이 점차 짦아진다.

사진을 찍으며 어정거린다.

처음 산행을 시작했을 때의 내 자신을 보는것 같다. 

 

 

 

 

 

 

 

 

 

 

 

 남벽 분기점을 돌아 백록담의 서쪽을 향해 나아가자

눈밭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눈도 깊다.

목가적인 남쪽 분위기와는 달리

설원을 지나가는 기분이다.

소리마저 백설에 묻혀버려 세상의 맨처음 고요를 대하는듯 하다.

세상의 모든 고요는 흰색을 띄는지

백색에 묻힌 고요의 무게가 깊고도 무겁다. 

 

 

 

비탈 위의 나무만큼 위태한 삶.

그 위태로움은 어디서 온 것일까.

 

하나의 악장에서 다음 악장으로 쉼없이 이어지는 아타카(attacca)처럼

늘 위태함을 시험받는 삶.

문득 그 극복되지 못한 공포가 섬뜩하리만큼 차갑게 눈밭에 서있다.

 

 

 

 레퀴엠이 흐르는듯한 음산한 분위기.

그 음산함이 백설에 대비되어

죽음을 비유하기 좋은 풍경이다.

 

산을 걷다

한번씩 아내에게 눈길을 준다.

눈에 발목이 잡혀

아내는 느린 걸음으로 저만치 뒤쫓아 온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만큼 나의 산행은 여유롭다.

여유란 가질수도 버릴 수도 있는 위치를 말한다.

걸을 수도, 멈출 수도 있는 지금의 내 위치를

아내보다 더 여유롭다 할 수 있을까.

 

아내에 대한 여유가 점차 조바심으로 이어지자

나는 냉큼 아내의 배낭을 빼앗아

내 어깨에 걸고 서둘러 길을 걷는다.

 

 

 

 

 

 

 

 

 

돈네코 코스는 남벽 분기점에서 사실상 끝나는것이고,

길은 윗세오름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것이니

우리는 윗세오름을 거쳐 어리목까지 진행할것이다.

 

아내를 생각하면 다소 무리한 산행길이다.

그러나 저하고 나하고 단둘이 겪는 고생이니

고생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부부란 이렇게 무언가를 함께 이룰 때

부부의 격이 더 빛나는게 아닐까.

 

 

 

 대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불러 일으키는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에는 

머리 속이 생각에게 조차 자리를 내어 줄 공간이 없다는 기분이 종종 들곤한다.

머리가 생각으로 꽉 채워진것이 아니라

그냥 텅 비워진 채 그저 멍한 기분.

두려움조차 사라진 그런 기분을 종종 느낀다.

 

 

 

 

눈에 쓰러지거나

혹은 눈을 뚫고 살아나는 광경들.

그 풍경 속에서 인간의 삶을 쉬 옅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산행 중에 만나는 풍경들은 늘 네레이티브하다.

홀로 걷는 길조차 홀로 걷는것이 아닌 이유이다.

 

 

 

 

내가 처음 산행을 따라나섰을 때의 일이다.

함께 간 일행들을 다 앞서 보내고

길도 모르는 산중에 외톨이로 남아

죽을 고생을 하며 산길을 걸었던 날

나는 아내에게 사실 '그 날'을, 혹은 '그 고통'을 위로받고 싶었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는 못했지만

그 때의 고통은 낯선 슬픔이었다.

 

지금 아내는 어떤 마음으로 고통을 감내하며 걷고 있을까.

나는 위로를 전할  만큼 아내 가까이에 다가가고 있는것일까.

 

 

 

 

 

 

 

 

 

산에 다니고 부터  어쩌면 나도 산에 잘 어울리는 산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된다.

육체적 핸디캡은 천천히 이겨내면 될 일이오

오월 솔바람 값이야 얼마나 하겠는가.

 

떠나가기 싫은 발걸음을

자꾸 떠나보내야하는 아쉬움을,

아직 익지 않은 꿈들을 떠올리며

나는 어느새 山中人이 되어 걷고 또 걷는다.

 

 

 

 

 

 

 

 

 

 

 하산의 가벼움.

 

세계가 내 발 아래에서 한 차례 재순환하는 과정,

나는 그 순환을 마무리하는 가장 기분 좋은 시간 위에 서 있다.

미래를 지배하던 새벽의 시간들도 가고

육체와 정신을 괴롭히던 긴장감에서도 벗어나

나는 둥지를 찾아가는 새처럼 가벼워 진다.

 

총총걸음으로 지나가는 아내를 붙잡아 한컷.

 

 

 

 

 

 

 

 

 

 

 

 세상은 눈 속에 갇혀 있었고

나는 시간에 갇힌 셈이다.

윗세 오름도,선작지왓의 기적같은 구름들도

백록담의 서벽도 보지 못했다.

긴 눈의 카펫을 밟고 나는 시간에게 주어진 길을

마치 나의  길인양 걷고 있었다.

 

 

 

 

 

 

 

 

 

 

 

노루샘지나  어리목으로 내려가는 길은 묘하다.

문득 숲으로 내려 앉는 기분이다.

긴 숲은 하루를 마음놓고 음미하기에 적격이다.

축복넘치는 아름다움 속으로 서서히 몰입해 들어가는 경지.

오늘 하루, 내가 만들어 낸 하루의 탄생과 성숙.

시간의 다정한 설득.

마음과 영혼의 평화로 가득한 시간이다.

 

 

 

 

우리들이 지나 온 능선과 오름들이 저녁의 한 부분으로 서서히

사라질 무렵 마침내 산행도 끝이 났다.

 

비가 그치자 숲 너머 오름의 윤곽들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늘 꿈쩍 않고 구름 속에 들어앉았던 풍경들이

기억의 외벽을 뚫고 새록새록 자라 올랐다. 

행복한 산행이었다.

始終如一.

시작과 끝이 좋으니 다 좋았다.

 

 

 

 

 

 

 

 

 

 

 

 

 

 

 

 

-후 기- 

 

 하늘의 비익조,땅의 연리지.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가을 바람이 어찌 꽃부채를 슬프게 하겠는가.

 

청대 시인 납란 용약의 시구처럼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단 네번의 만남 끝에 우리는 결혼하였다.

첫 만남의 가슴 설렘도,애절함도 나는 모른다

그렇게 살아왔다.

 

자극적이지 않기에 질리지도 않는 사랑.

늘 한결같은 안정감이야 말로

아내가 나에게 준 최고의 축복이다.

사랑에 관한한 아둔패기인 내가

아내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은 무엇일까?

 

산에서 아내를 기다려 주는 만큼의 사랑을 견지하며

그렇게 아껴가며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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