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 어귀 기념 조형물
아내랑 장산을 올랐다.
아내랑 단 둘만의 산행 참 오랜만이다.
나는 걷고 아내는 따라온다.
내 다리에 병이들어 보행이 불편해졌을 때
불편한 걸음걸이를 극복하기 위해 처음 올랐던 장산.
지금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죽음 그 자체다.
그만큼 큰 고통이었다.
그때의 나에게는.
옆에서 싱싱 신나게 산을 오르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느낀 자괴감.
산은 왜이리 큰 고통인가.
왜 진작 산을 오를 생각을 못한거지.
나는 한걸음 한걸음 성실하게 산을 올랐다.
산은 나에게 호흡을 회복시켜 주었고
걸음에대한 자신감을 되돌려 주었다.
아픔이란 견딜수 있을만큼의 고통이란것을,
신이나에게 고통과 함께 나아갈 길을 알려 주시리란 확신을
나는 장산을 오르며 다 깨닫았다.
아내의 거친 숨소리가 내 등 뒤에서 느껴졌다.
지난날 함께 장산에 올랐던 친구들에게
제발 좀 천천히 걷자고 아우성 쳤던 기억이 새삼 스럽다.
옥녀봉까지는 사실 줄곳 오르기만 하는 힘든 구간이다.
뒤돌아 보니 아내의 얼굴이 상기됀 채
힘들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달마시안의 모자도 다 더워 보였다.
그래도 아내는 별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잘 따라 올랐다.
옥녀봉 가까와 지자 아내는 다리에 쥐가 나는것 같다며
마침내 힘들다는 표현을 했다.
어찌 힘들지 않겠나.
이 깔딱고개를 오르며 나도 얼마나 죽을 힘을 썼던가
옥녀봉에서 사진을 찍고
가져왔던 커피와 카스테라를 먹으며
아내가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아내의 상기되었던 얼굴이 좀 진정기미를 보이자
우리는 다시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바쁠것도 서두를것도 없는 산행이다
이런 유유자적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인가.
멀리 우리 동네가 보인다
오륙도, 아치섬, 영도가 한눈에 들어 온다.
한눈에 들어 오기는 하지만
여기서 저쪽 동네를 사진으로 담아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몽유 도원도와 같은 꿈속 세상을 보는것 같다.
해운대 미포 앞 바다
여기서 남해와 동해가 나뉜다.
얼핏보아도 눈앞은 대한해협의 거칠것 없는 망망한 바다이다.
폼을 잘 잡지 못하고 언제나 데림추처럼 엉거주춤한 아내에게
이런 저런 폼을 잡아보라고 주문했다.
주문이 신통찮은지 모델도 별반 그림을 만들지 못한다.
웃음이 나온다.
그게 내 아내이다.
표현이 서툰 아내.
고요한 정물과도 같은 존재.
그런 막사발과 같은 존재이기에 나에게는 더 소중하다.
장산엔 길이 많다.
오르는 길, 돌아오는길 경우의 수를 다 따진다면
수도 없이 길이 많다.
나는 몇번이나 장산에 올랐지만
꼭 같은 코스로 산행을 해 본적이 없다.
늘 다른 코스다.
길을 눈여겨 보지 않았던 탓도 있겠지만
동내 뒷산은 원래 길이 많단다.
길을 묻노라면
모든 길이 다 대천 공원으로 통한다니
물어 볼것도 없다.
실제 그렇다.
바리깡으로 머리를 민것처럼
화마를 입은 흔적이 흉하다.
지난 신정 때 아버님 산소에서 장산쪽에 연기가 오르는걸 보았는데
그 때의 화재였나보다.
화마를 입은 면적이 이만하기 다행이다.
숲길을 걷다 문득 탁 트인 공간을 만나니 분위기가 묘하다.
뭔가 서정적인 분위기.
산을 향한 위로랄까
아니면 아쉬움일까.
불에 그을린 나무가,
나무들이 만드는 스산한 고독감이
단조롭던 산행길에 툭 하고 마음의 불씨하나 지펴 놓는다.
잘린 나무와 타다만 나무.
죽음과 존재가 까슬하게 뒤엉킨다.
나는 색을 죽여 나무의 남은것, 그 흔적의 존재감을 애써 담아 본다.
쉽지가 않다.
오고 가는 등산객
번잡한 주변
한참이나 씨름하는 동안 아내는 벌써 저만치 가버렸다.
색을 죽이고 나니 광안리 쪽 풍경과 화기를 입은 나무가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는것 같다.
때로는 색이 사라진 세상이 더 색을 웅변하는 경우를 본다.
나무의 끝에는 분명 긴 그리움이 스려 있는데
그 눈앞의 그리움을 담아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리움은 멀어야 제 맛일까.
나는 나무 끝을 일부러 멀리 잡아본다.
내가 바라던 그리움이란 것이 이런 것이었을까
소나무 끝에 파란 슬픔이 한줌 걸려있다.
하늘은 구름 한점없이 맑다.
비어있다는것은 맑은 슬픔이다.
정화를 의미한다.
다 버리고 오로지 남은 풍경 하나.
왠지 마음 깊이 꽂힌 비수처럼
서늘하다.
이런 사진 한장 찍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내가 우습다.
봄은 혼돈 속에서도 온다.
아니 언 땅을 두더지처럼 덜 쑤시며 오는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잉태된 혼돈 속에서
봄은 은밀히 다가온다.
그러다 세상이 문득 봄기운으로 넘쳐 나게되는것이다.
산에 오르는 자는 자연의 이 은밀한 다가섬을 잘 아는 사람이다.
내가 늙는것에대해 나는 관대한 편이다.
어쩌겠는가.
쉰살이 넘는 내 얼굴에 깊은 팔자 주름이 하나 생기더니
내 얼굴에 젊음의 마지막 빛 마져 완전히 앗아가버렸다.
그러나 아내의 얼굴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을 느낀다.
아내 얼굴에 드리운 세월의 그림자가
다 내 잘못같다.
아내는 화장을 하는것도 아니다.
언제나 생얼굴 그대로이니 더 숨길것도 없다.
아쉬운것은
그토록 화장을 하지 않아도 깨끗하고 생기 넘쳤던 그 얼굴에
이제 거부할수없는 삶의 고달픔이 서려있으니
저나 나나 동고동락 같이 늙어 갈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버린것이다.
세월에 감사해야할 일인가
서로 닮아간다는것을.
이질성의 무늬가 닳아 동화된다는것을,
세련된 느낌을 주는 센텀 시티의 아파트.
산업화와 더불어 수영천의 오염은 가속화 되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수영천변에는 수영 공항이 있었고
그 공항터는 지금의 센텀 시티로 화려하게 변모 했다.
여름에 동해 남부선 기차를 타고 가면
하얀 백사장 위에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보였고
수영교 다리 근처에는 횟집이 즐비했다.
그런 수영천이 서서히 썩어 냄새 나는 하천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 황폐화가 마감된것은 올림픽 덕분이었다.
수영 앞바다에서 요트경기가 벌어지게되어
나라에서는 대대적인 수영천 정화 운동을 벌였고
마침내 오늘의 결실을 보게 된것이다.
수영천 정화의 핵심에는 한마리 고래의 죽음이 있다.
2-3년전 수영천에 죽은 돌고래가 발견 되었다는것은
나에게 일종의 에코로직한 충격이었다.
비록 죽은 고래이지만 고래가 수영천까지 와서 죽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치 옛날 사진 속에 한 용맹한 엽사가 죽은 호랑이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장면처럼
고래와 수영천의 역사를 엮어주는 귀한 추억이 될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영천이 맑아졌다.
나는 수영천에서 노는 숭어를 본적이 있다.
그때의 모습은 신선했을 지언정
돌고래와 같은 전설은 아니었다.
수영천이 따사로운 겨울 햇살을 받으며 정지한듯 흐르고 있다.
강심의 빠른 물결을
그 뜻을
알것 같다.
그녀는 사진속에서 종종 잠들어있다.
송정 앞바다
길을 가다 말고 걸음을 멈춘다.
묘하게 인상적인 풍경이다.
무엇엔가 빨려드는듯한 오묘한 분위기
몇번이나 셔터를 누른 끝에
그런대로 내 느낌을 담은듯한 사진하나를 건져낸다.
파란 하늘에 노란 산불조심 깃발이 어울릴것만 같아
이리저리 각도를 달리해가며 사진을 찍어본다.
깃발의 색감이 빛에 바랜것처럼 윤기가 없다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하늘색도 영 마음에 안든다.
억새밭에 남녀가 쌍쌍이 앉아 늦은 점심을 들고있다.
배가 고픈것 같기도하고 고프지 않은것 같기도 하지만
점심을 사오지 않았으니 어쩔수 없다.
다음번엔 꼭 점심을 사와 아내랑 쏙닥거리며
즐거운 식사를 하고 싶다.
억새밭이 사랑으로 후끈거린다.
점심대신 어느 인적 없는 구석을찾아 아내와 입이라도 한번 맞추어보고 싶은 주책맞은 충동이 인다.
부부란 이런것인지
산행이 세월을 거꾸로 흐르게도 하나보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봄기운이 지천이다.
벚나무를 꺽어봐야 가지 속에 벚꽃이 들어앉아 있을 리가 없건만
봄은 요술을 하듯 부르지 않아도 어디선가 찾아온다.
보라 어느새 내 눈앞에 다가온 봄을.
서편으로 비껴누운 햇살을 불러
봄 소식을 여쭙니다.
메마른 가지
겉은 알수 없어도
속은 알밴 꽃게처럼 봄이 꽉차 있음을 느낍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교감입니다.
오늘따라 돌이 다 다뜻해 보인다.
푸른 너들에도 봄기운이 스린다.
장산 골짜기 골짜기마다 온통 이른 봄이 가득하다.
이런 기운을 받으며 인간이 살아간다는것 자체가 행복이다.
행복의 보이지 않는 힘이 아내와 나를 더 건강하게 할것이다.
아내는 며느리의 책무에 마음이 바쁘고
철없는 나는 걱정없이 산중에 한가롭다.
저녁을 차려먹고 모처럼 가족 모두 영화를 보러 갈 예정이다.
먼 훗날 행복한 장면을 떠올린다면
틀림없이 오늘을 떠올릴것 같다.
- 후 기-
냇물은 졸졸거리고
버들가지에 은빛이 가득한 봄날.
나는 모처럼 아내와 단둘이 산행을 했다.
산골짜기마다 춘정이 가득하다.
불현듯 젊은 날의 내 몸뚱아리가 그리워졌다.
서로 뜨겁게 끌어안고 뒹굴던 열정 밤이 빈 머리를 돈다.
정말 꿈만같다.
한순간의 세월이다.
지금도 나는 꿈을 꾸고 있는것일까.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꿈결에 흐르는 노래같다.
다음 주 우리는 한라산 산록에 있을것이다.
그땐 오늘보다 더 달콤한 꿈을 꾸리라.
2010.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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