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작산(481m)은 해남과 강진의 경계에 놓인 산으로
해남 북일면 오소재에서
영수리 금학동 뒤편의 능선을 주작의 우익이라 하고
신전 초등학교 뒤 봉우리를 주작의 머리라 하며,
신전 수양리에서 도암 석문리에 이르는 능선은
주작의 우익에 해당된다.
동으로 덕룡산의 수려한 능선과 이어지며
서로는 오소재를 지나
두륜산으로 이어져
이 나라 땅끝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봄이 오는 강진만
청보리 올라오는 해남 벌이
봄 바다를 맞아 대첩을 준비 중입니다.
바람이 드나들던 길목은 금새 지워지고
적멸은 하늘보다 깊습니다.
이 뜨겁고도 분명한 변화 앞에
소름처럼 봄기운이 돋아납니다.
청보리 오! 청보리밭.
구름 걷히는 두륜산
심산이 지란을 품듯...
설악의 용아장성을 축소한듯한 암릉 구간
비등점의 바위 산
산이되 그냥 산이 아닌
고통이되 그냥 고통이 아닌
누구나 한번들면 함부로 헤어날 수 없는
기어이 한벌의 의무를 덧 씌우는
에누리 없는 산행길
해남 쪽의 산들
고향을 떠난 천사처럼
먼 이방에 누이를 둔 그리움처럼
구름이 떠 다닙니다.
산도 들도 다 인생의 편력같습니다.
산 허리에 걸린 마음이
산 너머 또 희미한 산 그림자가
그리움을 구름처럼 부풀립니다.
알싸한 고통쯤이야 부가세 정도로 여겨야
산을 타는 본래맛을 알게되고
장단지에 알이 베고
어깨에 좀처럼 풀리지 않는 결림이 느껴져야
로프를 좀 탄듯한 기분이 느껴질터.
제 몸에 불을 붙여
그 지독한 화근내를 맡고나서야
비로소 산을 알고 배우는
이 유니크한 재미를 어찌 설명할것인가.
주작산 타는 재미가 이렇다.
청미래(토복령)
경상도에서는 명감나무라고 부르고
황해도에서는 매발톱가시, 강원도에서는 참열매덩굴,
전라도지방에서는 명감나무, 종가시덩굴,
요즘 꽃가게에서는 흔히 멍개나무, 또는 망개나무로 부른다.
-펌-
어진 목동의 손이었으면...
뒤미쳐 올라오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며
문득 내 장갑이 너무 더럽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힘있게 마주 잡은 손
한없이 미더운 손이었기를 기대하며...
두륜산의 위용
나는 언제 저들 틈에 끼어
김치하고 웃으며 사진 한장 찍혀 볼까.
앙증스레 손을 V자로 만들어 사진을 찍는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다
지아비는 찍고
아내는 찍히고
멀리서 하는 눈도둑만으로도 웃음이 절로나오는 즐거운 산행이다
금강산 만물상을 옮겨놓은 형상이다.
저분은 어디서나 눈에 잘 띄인다.
두륜산에서 해남 달마산에 이르는 산세가 아름답다.
멀리 산너머로 진도 쪽 바다가 보인다.
자랑스런 동문
참 멋지십니다!!!
산 고개를 그리 힘들여 넘어왔건만
마치 견본 하나 슬쩍 보여주듯
그 험하고 고집스런 암릉들은 어느새 뒤로 꼬리를 감추었습니다.
두륜산의 묵묵한 자태만은 그대로일 뿐
주작의 날개깃은 여전히 억세기만 합니다.
好哭의 경관
요동벌에 발을 내디딘 연암 박지원은
"좋은 울음터다,한바탕 울만하구나"하고 일성을 내질렀다.
이름하여 好哭場.
정말 울기 좋은 경관이다.
남해 금산 위에서도,천관산 위에서도
함백산 봉우리 지나 우렁차게 뻗어나가는 태백 준령을 바라 보면서도
울고싶은 기분이 들었다.
울다 울다
내 몸속 영혼을 제외한 모든것들,
아니 영혼의 마지막 불꽃 마져도
다 토해내고 싶은 곳.
그저 빈 것이,
매미의 허물이 되고 싶은곳
그런 곳이다.
금수강산이란 말이 언젯적부터 사용된 말인지는 모르나
1920년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우리말 사전에 이미 이단어가 나온다고 한다.
1938년 문세영의 조선어 사전에도 이 단어가 역시 나온다고한다.
삼천리 방방곡곡
교통편이 여의치도 않았을 옛날에
어찌 이 나라를 삼천리 금수강산으로 표현 할 수 있었는지
조상의 지혜가 신기하기만하다.
이 나이가 되도록 먼 나라 이야기처럼 흘려듣다
이제 나마 이 나라 금수강산의 진미를 제대로 체득하게 되었으니
중년에 맛보는 축복으로 감사 해야겠다.
수줍게 다가온 봄을 보았다.
진절머리 나는 돌들.
돌길을 걷습니다
깊은 길은 아니어도
나무가 우거진 길은 아니어도
뼈저림 절실히 느껴가며
성실히 걷습니다.
일찌기 본 바 없는 길을
새로운 체험으로 기꺼워 하며
건반 위를 걷는 고양이처럼
조심스레 걷고 또 걷습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돌길입니다.
쇼팽의 노트 위에
예프게니 키신의 해석을 더한
프렐류드 16번.
그 격정의 피아니즘이 느껴집니다.
바위들이,돌들이
우르르 우르르 우르르릉
숨실틈 없이 소리를 내며 튀어 오릅니다.
오체가 한 화성입니다.
사람들이 피아니시모로 멀어집니다.
저 소록도쪽 바다.
누에처럼 가슴에서 무엇인가 일어나다가도
저 따사로운 바다를 잠시 보고 있노라면
불현듯
그 고개듦이 사라집니다.
무엇이 아쉽거나 애탈것도 없는 나이인데도
마음 속은 이리 봄 기운처럼
고요하지않습니다.
마음도,눈도
삼라만상처럼
無常합니다.
미로처럼 가로막힌 암릉의 오솔길을 따라.
펄펄 끓어 오르는 산을
작은 종지그릇에 담아다가
마음 한 귀퉁이에
수석 삼아 두려했건만
타라는 산에는 재 한줌 없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암릉 길에
내 마음만 새까맣게 탑니다.
하얀 바둑알을 촘촘히 박아 놓은듯한 석영괴
바위 하나가 단단한 보석같다.
봄을 보고 가세요.
일찍 오셨건만
그래도 봄은 보고 가세요.
다음에 오실 때는 진달래 지천일 때 오세요.
여기는 땅끝
봄이 오는 길목입니다.
봄길로 가는 표지를 따라
봄을 찾아 걸어보세요.
동백나무 숲에서
동백꽃
꿈을 꾸듯 피어선 지고
툭 떨어진 꽃송이
아무 일없다는듯 누워
가는 사람 가던지
오는 사람 오시던지
아무 일 없다는듯 누워
내가 토해 낸 탄식처럼 섬이 떠 다닙니다.
꽃빛 아른거리는 봅녘
열어젖힌 마음의 창너머로
봄 기운이 풋나물처럼 싱싱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에
너울처럼 일렁이는 봄 바람을 이겨나가
나는 또 기운찬 삶을 꿈꾸게 됩니다.
천개의 바람 위를 햇살이 타고 넘습니다.
고요한 오후를 준비합니다.
주작산 너머로 덕룡산이 보인다.
과연 저산을 오를 날이 돌아 올까.
소망에서 시작해 절망에 이르는 만감이
주르륵 소리를 내며 교차한다.
머리은 벌써
덕룡, 주작을 건너 두륜산 마이산으로 향하고 있다.
어지간한 산행 길이다.
웃음이 터져나왔다.
양파 껍질처럼 바위가 벗겨져 내리는것 같다.
마침내 암릉 구간은 끝이나고
주작산으로 이르는 편안한 흙길이다.
마저 올라야한다는 간절한 생각은 온데간데 없고
가봐야 뻔한 길을 뭣하러 가겠는가 하는
속된 생각이 먼저 자리잡는다.
산꼭데기에 올라봐야 산은 없다
산은 늘 발 아래 있는 법.
임도로 하산한다.
덕룡산
- 후기-
바위에 뒹굴고 흙에 치여
옷이 온통 진흙투성이다.
갓 빨아말린 빨래같은 휴식이 그립다.
술 마신 뒷날 목구멍의 통증처럼
근육이 까슬하게 아파 온다.
보기 좋은 산.
그 보기 좋음이 몸에 쓴 모양이다.
2010.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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