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늘 남해섬을 찾게됩니다.
금산이 그랬고,설흘산이 그랬고
또 호구산이 그렇습니다.
꿈꾸는 봄바다 위로
따뜻한 母胎의 술렁거림이,
봄의 꼼지락거림이 발바닥 가득 전해집니다.
남해의 봄은 유달리 따듯합니다.
대지가 온통 눈부신 생명입니다.
용문사
신라 애장왕 시절 지어진 천년 고찰이다.
규격이 제멋대로인 석축에서 묘한 자연미를 느낀다.
민중 사찰들이 다 이렇다.
격이 없다.
지장전의 효험을 생각하다
문득 일찍가신 아버지와 아우를 떠올린다.
그들이 행성만큼 멀리 있는것 같다.
아니 어쩌면 봄기운처럼 가까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숲길 사이로 일행들의 그림자 사라지고
나는 불현듯 혼자 놓인다.
지금 부터가 나의 산행이다.
투명하고 순수한 길을 혼자 나그네가되어 걷는다.
낯선 환경 속에서
비로소 나 자신에게 눈뜨게된다.
다른것과 구별되는것
스스로를 찾아 해석하고 위로하는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마음의 휴식이요 포행의 묘미다.
봄의 황녀 얼레지
얼레지꽃 자태가 하도 고와
나는 아예 땅에 엎드려 그녀와 마주 본다.
사진기를 눈 앞에 괴고 누우니
대지가 편안하기 그지없다.
인적도 없거니와 있다손쳐도 아랑곳 하지않을 참이었다.
이 즐거운 순간을 어디다 견줄것인가.
따사로은 봄햇살 아래
그녀가 살포시 치마를 걷어올려 나를 맞는다.
마주보는 분홍빛 그녀가 요염하기 이를때 없다.
그녀는 부끄러워 땅 아래를 쳐다본다.
春情!
오! 진정한 春情이라.
산들바람이란 이런거구나
걱정없는 바람.
작정없이 이숲 저숲 쏘다니는 바람.
그 바람 위에 맑은 매화향 한 줌 실어
막 걷어올린 뽀얀 막걸리처럼 한잔 나눠마시는 봄바람.
부풀대로 부푼 처녀 가슴같은 바람.
백련암 지나며
백련을 찾았건만
백련은 고사하고 백목련 한그루 보이지 않는다.
조용한 비탈을 따라
차나무 무성히 자라고
차밭 뒤로 조바심 난 앵강만 바닷빛이
조용히 넘나든다.
바다를 바라보니
문득 백련 한송이 소담하다.
청명 곡우를 기다리는 차밭.
차 볶는 날 슬쩍들러
모자라는 뒷손이나 거드는척하다가
햇차 한봉지 얻어가고 싶다.
백련암 지나면 줄곳 비탈길이다
줄잡아 400m 정도되는 오르막인것 같다.
능선에 다 올라도 왕관처럼 둘러 쓴 암봉에 오를려면
바위길을 조금 더 올라야한다.
어디다 할것 없이 거칠게 산을 넘는 바닷 바람에 몸이 차다.
얼른 윈드 스토퍼를 다시 꺼내 입는다.
창선방면 조망
가천 설흘산-응봉산-낙뇌산 조망
산너머 여수쪽 바다
정성을 다한 시산제
봄이 오는 앵강만
앵강만의 "앵강"이란 지명이 예사롭지 않다.
일설에는 일제의 잔재라고도 하지만 그 깊은 역사까지는 모르겠고
꾀꼬리 鶯자에 강 江,
상당히 낭만적인 이름이다.
따뜻한 호구산의 꾀꼬리 울음소리가
호수처럼 잔잔한 앵강만으로 흘러드는 봄 풍경
청각을 시각화한 일종의 詩語이다.
봄볓에 물결이 보석처럼 빛날 때
서포의 유배지였던 노도와 그 노도 너머의 작은 섬을 에워 싼 바다가
더 할수 없는 그리움의 여백이되어
가슴에 자리 잡는다.
남해읍 지나 처가곳인 설천면 일대가 보인다
남해가 고향인 아내 덕에
나는 남해의 질좋은 육종마늘(육쪽 마늘이 맞는 표현인지 잘 모르겠다)이랑
유자, 키위등을 철철이 얻어 먹는다.
대가없이 얻어먹는 이 농산물들이
다 부지런하고 억측스러운 남해 여인들 손끝에서
재배된 것들이다.
지금은 처 삼촌네들이 지키는 고향이지만
장인 어른을 길러내고
장모님을 키워낸 저 땅을 향해
잠시 마음으로 예를 올린다.
호구산은 예전에는 납산 혹은 원산으로 불렀다.
원숭이가 꼭대기에서 쉬고 있는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산 전체를 볼 때는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형상이라하여
요즈음은 호구산으로 불린다.
그런데
산아래 용문사는 용이 드나든다는 뜻이니
용과 호랑이가 만나
화재가 잦았다한다.
그래서 부득이
용문사에 봉서루를 앉혀
봉항으로 하여금 중재를 서게하니
화재가 줄었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전설.
남해 금산 쪽
서포 김만중이 피죽을 끓어먹으며
위리안치 되었던 노도
임진왜란 때 노를 많이 만든 섬이라하여 노도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섬 모양이 삿갓처럼 생겼다하여
삿갓섬이라 불리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노도에는 그가 사씨 남정기를 집필했던 초옥이 남아있다.
유배의 고독만큼 슬피보이는 섬이다.
돗틀바위
하산 길에 아기자기한 잔 재미를 주는 돗틀바위.
돗틀의 의미는 모르겠다.
뭔가 도드라지게 솟아오른 모습에서 나온 말일까.
도틀바위 지나 연이은 암능과 호수처럼 고요한 내해의 아름다움이 어울려
한폭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남해 바다를 참배하듯 솟아오른 암봉
어떤 종교보다 맑고 고요하다.
숙연한 침묵의 상징으로서의 바다.
법화경의 세계다.
눈에 보이고 발에 밟히는것만이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지극히 작은 한 모서리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의 세상은 마음이다.
마음에는 가릴 눈도없고 속일 상대도 없다.
그래서 나는 산길을 걷되 결국은 마음의 행로를 찾아 나아가는것이다.
눈 앞이 아니라
마음의 뒤란을 향해....
내가 취한 눈으로 바다를 보았다하여
바다가 취할리 없으련만
오늘은 바다도 나도 취한다.
흔들리며 걷는 길
봄바다여 나를 그냥 두어라.
내 마음 한조각 황홀히 헹굴
이 작은 자유 하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내 가난을 감추랴
불어라 봄바람
내가 취한다.
하산의 여유
편한 하산길을 두고 굳이 공동묘지 사이 오솔길을 택한 이에게 감사드린다.
죽음조차 봄길처럼 따사로운
낯설지 않은 평화가 대지에 가득했다.
아무려면 어떠랴.
삶과 죽음에는 본래 경계가 없다라는
노스님의 남기신 말씀.
살고 죽는다는것이 봄날 아래 不二로다.
봄의 전령 생강꽃
생강꽃은 매화나 산수유 만큼 덜 알려진 꽃나무이지만
두 나무에 못지 않게 봄을 알리는
전령 역을 톡톡히 해낸다.
가지를 짓이기면
독특한 냄새가 난다.
산수유와는 달리 꽃대없이 꽃이 바로 가지에 붙어 핀다.
할미꽃
27년 전 이맘 때 일이다
그무렵 나는 영천 삼사관 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있었다.
아버님 신후 사십구제도 제대로 못치러고 입대한터라
혼자 슬픔에 젖어계실 어머님이 늘 걱정이었다.
그날은 각개 전투 훈련이 있던 날.
더세기로 유명한 영천의 댓바람도 봄기운에 한풀 꺽여 햇나물처럼 부드럽고
우리는 훈령에 맞춰 이리 뛰고 저리 기며 분주히 몸을 날렸다.
그러던 중
칠부능선 쯤인가 참호에 몸을 숨기는 순간
눈 앞에 할미꽃 한 송이가 소담스레 피어있는것이 아닌가.
꽃을 보자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울컥 치밀어 오르며
눈가에 눈물이 저절로 맺히는것이 아닌가.
꽃을 보고 울만한 나이도 아니었지만
이 거취 불명의 슬픔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한동안 꽃은 주인잃은 유기견처럼 내 마음을 떠다녔다.
그날의 할미꽃은 봄이요
자유요, 희망이었다.
어머니요
그리움의 표상이기도 했다.
그 힘던 겨울 훈련 다 마치고
군을 떠날 날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알리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그래서 나에게 할미꽃은 각별하다.
할미꽃은
내 추억의 정점이며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청춘의 이정표였다.
봄이 오는 다도해
윗 사량도
- 후기 -
활시위에 몸을 맡겨 봄으로 나아간다
함부로 쏜 화살처럼
나는 봄 어딘가에 박혀
봄나비 그어준 금이나 바라보며
그렇게 살란다.
또 그렇게 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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