始山
꽃이 열리고
세상이 열리고
마침내 산이 열리는 날.
고향 앞바다가 훤히 내려 보이고
아버님 뫼신 곳이 죄송스레 바라보이는
달음산에 오른다.
매화꽃이 한창입니다.
옥정사 절 마당에 매화향이 가득합니다.
맑은 물 한 바가지 얻어 마시고
매화나무 아래 듭니다
어디선가 다가와
어딘가로 사라져버리는
이 화두와도 같은 생멸의 순간이
작은 절간의 고요를 흔듭니다.
보이지도 않는 미동이
천지를 깨우는 개벽입니다.
우렁찬 생명의 팡파르입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꽃의 일갈에 귀 기울일 일이다.
꽃도 사람도 모두가 한 때일 뿐.
간만을 좇아 바다는 넘나들고
꽃은 계절을 맞춰 피고 또 진다.
한 순간이
삶의 빛이요,무게같다.
현해탄을 건너온
싱싱한 대변 바닷 바람에
매화꽃이 정성을 다해
花信을 담아 올린다.
봄햇살처럼 속이 꼭꼭 들어찬..
봄 맛이 물메기 알처럼 제대로 들어 찬 꽃들을 바라보며
삶의 가장 소중한 순간이란
저마다의 살아있음을
느끼는 때.
그것도 이른 봄
절절이 피워내는 꽃 공양을 받는 일일것이라 생각됩니다.
옥매화를 닮은 최여사님^^*
만년 후미조인 나는 앞서가는 사람 꽁무니를 좇아가는것만으로도 벅찹니다.
오늘은 아내조차 나보다 잘 걷습니다.
"밤 주웠어요!!!"
산골짜기 아기 다람쥐처럼 잘 걷는 우리 하늘이
오늘은 山 공부에 여념이 없습니다.
추울 땐 더 추운 곳으로
더울 땐 더 더운 곳을 좇아 다니는것이 산행의 즐거움이다.
이 산 저 산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듯 일년이 훌쩍 흘렀다.
산에서의 시간은
세속의 시간보다 빠르다.
높은 산 위에서 보면
불행한 삶도
행복한 삶도
삶의 큰 강을 마주 흐르는 두개의 쪽배일 뿐
저 산봉우리에 눌러 앉은 돌탑처럼
의연히 홀로 주인되는 일,
그것이 살아있는 삶의 요체요 근본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생사의 거센 흐름을 건너는가.
무엇으로 바다를 건너며
무엇으로 고통을 극복하는가
그리고 무엇으로 완전히 맑고 깨끗해 질수 있는가
눈에 보이는것이나
보이지 않는것이나
멀리 또는 가까이 살고있는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 날것이나
살아 있는 모든것은 다 행복하다.
숫다니파타의 일구가 봄바람이 되어 마음을 일군다.
살아있는 자로서의 행복....
온갖 고뇌의 면목을 다 털어버리고
오늘은 오직 살아있는 자의 의무에 충실하리라.
산꼭대기에서 쳐다보니
저 멀리 시산제 준비가 한창이다.
모처럼 산 위에서 마음을 정갈히 하는 날.
음식을 나누듯
기쁨을 나누는 날.
행복을 이웃에게 나누는 날.
예전에는 저 아랫 동네는 다 그린벨트에 묶여
오히려 답답할 정도로 차분한 풍경이었는데
지금은 큰 상처가 나듯 길이 트이고
산은 깍이고 골은 메워져
한눈에 봐도 푸른 동산들이
냄비 속 물이 졸아들듯 줄어들고 있다.
이미 떠나온 고향.
내 마음 속 풍경조차 삭막하기만 하다.
월음산
몇번을 지나다녀도 나는 아직 저 산 위에 올라보지 못했다.
이 번에도 그냥 지나친다.
산 아래 소나무 숲길을 걷던 행복한 기억이 되살아 나서일까
산을 내려가던 발걸음이 가볍다.
언제 한번 호젓이 이 길을 다시 걷고싶다.
흉측하게 파헤쳐진 골프장의 모습에
마음이 갓 생긴 상처처럼 아리하다.
고기를 먹은 후 고기를 먹으러 가다.
호사치고는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
먹는 다는것은,
먹는 즐거움이란
음식을 둘러싼 주위 사람들의 즐거움이다.
즐겁게 산행을 끝마치고
오랜만에 담소를 즐기며 보내는 시간
이것도 행복 중에 큰 행복이다.
소아과 품절남 선생님
나무를 심기보다는
숲은 잘 가꾸어져야한다.
좋은 숲은 산행의 제일 큰 축복이다.
깊고 순한 숲을 내려 올 때의 즐거움이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나무가지에 봄기운이 물씬하다.
아주 오래된것의 뒤로
새로 만들어진것이 지나간다.
목을 관통하는듯한 오만한 풍경이다.
새로 뚫린 길이 옛길을 밀어내고
옛길은 썰물처럼 저 바다 끝으로 밀려났다.
추억이 담긴 길들은 그래서 다 땅끝에 있다.
네이비빛 바다처럼 아스라한 유년기의 추억.
이제 더 이상 舊路는 고향길이 아니다.
빨리 가는 길이 고향길이되어버렸다.
광대 나물
담너머 매화향에 취해
- 후 기-
산골짝 깊은 암자에서
봄꽃 공양을 받으시던 노스님을 떠올립니다.
담을 넘어 오는 매화향을 맞으며
오후의 적적하고 잠잠함도
일종의 축복처럼 여기게됩니다.
이 느리디 느린 흐름 속에서
먼지 같은 번뇌 망상이
일순 구름걷힌 하늘처럼 말끔히 씻겨 나갑니다.
소리없는 깨우침.
맑은 자각이 찾아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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