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봄의 길목에서... 남해 설흘산

poll™ 2011. 3. 7. 16:23

 

 

 

봄의 초입에 몰래 들어

벗과 함께 산을 오른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익명.

 

나무는 욕정처럼 몸을 뒤틀어

산란을 준비하는 산천어처럼

봄빛을 향해 나아간다.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처럼 마음이 요동친다.

봄이 움튼다. 

 

 

 

 

 

벗들을 청하여 산행을 합니다.

조바심은 멀리 벗어 던져버리고

소박한 즐거움을 배낭 한가득 담아 산을 오릅니다.

 

단지 산을 하나 오를 뿐인데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마음 한가득 싹틉니다.

산길이, 하얀 당단풍 나무들이

다 감사합니다.

 

마음이 살짝 건드리기만해도

통통 튀어 오르는 바람이 잘든 풍선같습니다.

 

 

 

 

 

 

 마을을 둘러싼 봄 기운이

흠없이 온전하다.

 

초록은 하늘이 내린 최고의 은총인듯

바다를 향해  넘쳐 흐른다.

 

세상의 온갖것들이 다 넘쳐난다.

 

무엇인가 터져버릴것만 같은 긴장감이

목구멍까지 차고 오른다.

 

휘파람 새 한마리 힘차게 날아 오른다.

 

 

 

 

 

나무는 나무의 자격으로

땅은 땅의 자격으로 봄을 맞는다.

나도 나의 봄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

 

봄을 찾기는 하였지만 나는 아직

봄을 맞이 할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이지 나는 자꾸 봄 앞에 머뭇거리게 된다.

봄은 늘 이렇게 머뭇거리는 사이에 찾아와

주체할 수 없는 범람을 일으켰다.

 

내 기억 속의 봄은 늘 사태요 혼란이다.

무리져 떨어지는 꽃이요.

태풍이 사라진 뒤의 허무다.

 

 

 

 

 

 "屹"

 

우뚝 솟은 산을 "흘"이라한다

흘연한 산 설흘산.

 

설흘산, 그 이름의 뜻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저 은빛 앵강만 바다로 나가야 할 터이지만

아기자기한 암능에 가득 내린 남해 바다의 햇살이

갖 쪄서 말린 죽방 멸치의 은비늘처럼 하얗게 빛나리라는  상상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관목더미 사이에

황금빛으로 말라가는 억새의 모습에서도 봄날의 희열을 느낀다.

 

 

 

 

 

 

 

 

 

 

 시산제

 

 

 

 

 

 

 

 

 

의기 투합 

 

 청춘이란 참으로 가벼운 것이다.

학창 시절 함께한 6년간의 청춘이 헬륨 가스처럼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암흑의 시대에 내린 자유의 빛처럼

우정도 그렇게 빛났으면 한다.

 

산 위에 올라 하늘을 배경삼아

미아가 되어버린 청춘을 추념하며 어깨동무를 해 본다.

 

해묵은 책임감이 곳곳에  근육처럼 뭉쳐져있다.

이제는 우리를 위해 한번 살아보자.

고통을 통해 진정한 나를 발견하자.

해묵은 삶의 때를 벗겨내자!

 

 

 

 

세상과 내가 뽀얀 박무 속에 격리되자

풍경이 의외로  내 마음의 크기로 작아졌다.

 

나는 마음의 풍경을 가슴에 새로이 담았다.

잘 쪄진 시루떡처럼 풍경이 담백하다.

 

내 시선은 어디로 향하는것일까

 

그리움인  원경일까

희망의 근경일까

 

 

 

 

 

 

질서를 흐트리고 얻은 자유로움

 

 

 

 

 

진주 고등학교 9년 선후배가

응봉산 정상석에 나란히 서 있다.

 

그들은 아직 그 사실을 모른다.

교가를 부르며 좋아하시던 김고문님의 먼 옛날.

 

고교시절은 왠 꿈이 그렇게 많았던 걸까.

희색이 가시지 않던 고문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응봉산 정상에서 보니 설흘산이 이미 저만치 물러나 있다.

산행의 묘미 중 하나가

짦은 시간에 얻는 이런 큰 변화이다.

 

두고 온 거리가 멀다는것은

남아 있는 거리에게는 희망이다.

우리는 곧 암릉 위에서 만날것이다.

 

응봉산을 멀리 바라 보며.

 

 

 

 

 

꿈결같은 바다 위로

하오의 햇살이 내려 앉습니다.

바다는 여전히 마지막 정거장처럼 졸린 표정입니다.

 

모든 빛들의 무덤인 바다에는

우무질의 무표정이 가득합니다.

 

그런 바다와 같이 담담한 마음으로 길을 걷습니다.

먼저 나설 마음도

일찍 산을 내려 갈 마음도 없습니다.

 

병아리를 모으는 어미닭처럼

그렇게 산길을 걷고 싶습니다.

 

 

 

 

 

 

 

 

 

 

 

 

 

 

 

 

 

 

 

 

 

 

 

 

 

 

 

 

 

 

 

 

 

 

 

 

게으런 누렁이의 낮잠같은 따사로움이 지천이다.

 

성당의 종소리처럼 갇혀

봄이 오기만을 고대하며

꽃 향기처럼 부활을 고대하는 붉은 항토밭.

 

뿌리가 일제히 소스라치듯 놀라

바드득 흙들을 밀어내고 솟아오를

그 혁명의 봄 날이 바로 눈 앞에 있다. 

 

 

 

 

 

 

 

 

 

 

 

산을 내려오자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때를 맞추어 불었다

산에서 내려와 아이를 데려간다는

영도 할머니 바람이 떠올랐다.

 

구멍이 숭숭 뚫린 죽부인처럼

어디라 할것도 없이 산 도처에서 바람이 숭숭 새어 나온다.

 

어찌보면 이것도 일종의 여유일지도 모르겠다.

여유란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일수 있는 자유의 폭을 의미한다.

 

그간의 산행 경력을 말해주는 필로그래피가

휘리릭 소리를 내며 돌기 시작한다.

 

나를 위한 축배!!!

 

어쩐지 오늘은 오로지 나를 위해 한잔을  마시고 싶다.

 

 

 

 

 

한잔 술을  위한 아고라

 

산행 중에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 아닌가

 

 

 

 

 

 

 

정직한 고통과 정직한 고독

산행 중에 꼴지가 차지하는 유일한 덕목이다.

나는 늘 꼴찌였다

그러나 그 꼴찌에 정직성을 부여한 이는

오로지 나 혼자였을 뿐이다

그것이야 말로 나의 유일한 위안이었으므로.

 

 

 

 

 

마늘이 충실히 자란다.

 

남해 마늘을 살찌우는 그 기운을 나는 안다.

 

코끝에 감도는 이 알싸한 생명 하나 하나를

물을 머금어 빵을 구워내는 밀가루처럼

대지는 한껏 머금고 있다.

 

그 생명의 자양분으로 마늘이 살찐다.

남해 마늘은 대지의 힘이다.

 

 

 

 

 

 

 

 

- 후 기-

 

세상의 여백을 나무가 대신한다는것은

아가의 배경을 엄마로 처리하는것 만큼 포근하다.

 

그런 포근함이 점철된 설흘산 산행.

 

세상은 봄을 떠올리는 생명의 은유로 가득했다.

그 밀생하는 생명의 장치들이 결국 나를 살린 셈이다.

 

내가 처음 설흘산을 오른 날

나는 산에 내 사지를 의탁한 채 오기로 산을 올랐다.

 

그러나 오늘은 산이 주는 어떤 저항도 없다.

잘 익은 타박 고구마를 김치에 걸쳐 먹는 그  순한맛 그대로이다.

그동안 걸어 온 길들이 내 다리를 강하게 만들었나 보다.

 

오늘 하루 부드러운 노래 한곡, 스스로에게 헌정한들 어떻랴

 

아델라이데

베토벤의 사랑스런 곡을 나에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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