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푸른 아다지오의 청산도 155번째

poll™ 2012. 4. 30. 19:32

 

 

 

 

 

"틀림없이 행복해 진다"라는 은방울꽃의 꽃말을 불현듯 떠올리자

땅끝을 향해가는 내 마음 또한 은방울처럼 가벼워졌다.

 

아내에게 하이든의 첼로협주곡을 들려주며

청산도 여행도 아마 잘 익은 와인처럼 달콤할것이라고 귀뜸해 주었다.

 

 

내 상상의 섬이 하이든의 첼로와 어울리며

차창을 스치는 따뜻한 남녘의 봄풍경이 아지랑이처럼

몽롱하게 집산을 반복하며

몽환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봄의 여왕이 살고 있을것 같은 신비의 섬 청산도.

 

어디 한곳 바쁜 구석이라고는 없다는 느리디 느린 섬 청산도를  향해

이른 아침 눅눅한 공기를 뚫고

희망이라는 이름의 버스는 쾌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내의 살결톤과 잘 어울리는 의상이다.

 

아니 오늘의 날씨가 그렇다

덜뜨지 않고 차분하다.

 

아내를 예쁘게 담으려는 내 마음 구석에

숫컷의 어렁거리는 소란이 나를 심란하게 한다.

 

마음이 아직 젊다는 증거다.

 

 

 

 

 

거울에 비친 낯선 나를 보고 있자니

볼수록 그 그림자에 친근감이 생긴다.

 

박무에 시달리는 다도해 섬처럼

아직은 나에게 서먹한 자아를 다독여

조금씩 촛점을 모아간다.

 

내가 나를 본다고 나를 다 아는것은 아니지만

나를 더 가까이에서 느끼는 기분이 묘하다.

 

내가 나에게 친해져가는 모처럼의 여유다.

 

 

 

 

 

 

 

 

 

 

 

 

 

 

 

 

 

 

 

 

 

 

봄은 얼마나 선동적인지

세상은 온통 푸른 구호로 가득하다.

 

겨우내 움추렸던

그 진한 갈망이 수유리 진달래처럼

도처에 봄빛이  흥건하다.

 

선동의 삐라들이 길위에 난무하고

패배가 기정인 삶 위에도

생명의 경이가 넘친다.

 

싸워야 한다.

아픈 두다리와 허리를 펴고

싸워야한다.

 

신은 존재의 시간을 빛으로 가르친다.

 

아!

나는 세상 만물의 구호에 맞춰 일어선다.

 

세상이 온통 봄의 구호다.

 

 

 

 

 

바닷가에서의 식사

 

점묘파 화가들의 작품을 연상 시키는 나른한 점심 식사.

 

이 보다 더 호사스런 레스토랑이 어디에 있을까?

 

바다와 뭍이 살을 닿은 곳에서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겸손한 방파제를 앞으로 한채

이집 저집 손맛을 음미하며 보내는 오후 한 때

 

바람은 잠잠하고,

기세좋은 유채꽃 노랑색도

저만치 떨어져 이윽하고,

몸을 삭게 하는 시간의 날선 속도도

데쳐진 남새처럼 슬슬거리고,

시간은 안개처럼  머물러

늪처럼 가라앉는구나

 

얼싸좋다

느림이여!

지화자 좋다

한가함이여!!

 

 

 

 

 

 

 

 

 

 

 

 

 

 

세상을 천천히 살아 보란다.

 

세계 유일의 슬로 시티

바빠서는 안되고 아예 바쁠것도 없는 세상.

얼마나 본질적이냐.

 

사람들은 본질로부터 이미 너무 멀리 떠나 왔기에

다시 본질로 향하게 하는 이 거푸집과도 같은 작은 섬.

 

오늘 하루만은

진정 내 마음의 속도에 맞추어 지내고 싶다.

 

 

 

 

 

 

내 마음의 속도

라르고 보다는 조금 빠르고 안단테 보다는 조금 느린

그래 아다지오다.

 

오늘은 온통 푸른 빛의 아다지오다

아다지오의 하루다.

 

 

 

 

세상을 천천히 살아간다는것은

세상을 깊이있게 살아가는것.

세상을 비로소 내 편에서 이해하겠다는 결심의 단초다.

 

세상을 이해한다는것은 또한 내 삶을 이해한다는 것

난마처럼 얽혀

무엇이 시비인지 모른채

살아가는 인간에게

자기반성,자기 성찰의 기회를 주는것이다.

 

찬찬히 바라보는 세상은 아름답다.

본질은 단순한 것이기에 세상의 모든 단순한것은 근본적으로 미학인것이다.

 

그 단순함에대한 자각이 자신을 바라볼 때

비로소 맑은 마음이되어 자신을 되비출 수있다.

 

아이의 마음이 되어라.

마음을 명경처럼 맑게 닦아라는 부처의 당부도

이 단순함에 대한 자각인것이다.

 

 

 

 

 

 

세상 어디를 쳐다보아도

바쁠것 없는 풍경이다.

 

지천인 봄은 봄인 채

게으름을 담은 포구는 바람을 거둔채

오늘은 앉은 자리에서 파장할 모양이다.

 

세상이 한없이 느리고 고요한 가운데

철모르는 나그네는 이 구석 저구석을 쑤시며 돌아다닌다.

 

그들도 사람 이전에 자연의 한 몫인지라

걷다 지치면

이렇게  바람처럼 앉아

느림의 그 숭고한 가치를

그 힘을 새삼 느끼게 될것이다.

 

 

 

 

 

저 봄꽃들처럼

꾹 참고 버티어 보자

저 노란 봄물결이 바다를 지나 뭍에 닿기를 갈망한것처럼

검은 구멍을 나와 비로소 봄을 만난 뱀처럼

참고 견디자.

 

꾹 참고 버티어 보자

허무의 욕정이

세상의 무게가

어깨 너머로부터 가벼워질 그날을.

 

 

 

 

 

느림은 견고하다

시간은 어짜피

느림의 편에서도 흐르기 때문이다.

 

그 우직한 힘이

콘트라베이스의 저음처럼 느껴질 무렵

봄은 부동의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세상은 늘 이런 견고한 바탕 위에 서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견고함의 미덕을 멀리한 채

불안한 최상층부만을 갈망한다.

 

안정된 엔트로피

이 낙관적 힘이 있기에

청산도의 느린 미학이 느림 그대로 받아들여지는것이다.

 

 

 

 

 

 

 

 

 

 

세상은 콘트라베이스의 연주자처럼

이미 묻혀버린것을 배려하지는 않는다.

 

콘트라베이스의 음이

비록 개인적인 개성을 지녔다하더라도

교향악의 연주속에서 그 음을 찾아내기란 쉽지않다.

세상을 멀리서 보면 사람은 거의 누구나가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비극이다.

아무리 악을 쓰고 고함을 질러봐도

아무른 관심도 없는 존재.

 

청산도는

이런 누구도 주목하지 못하는 느린 평범함 속에서

관심없이 방기된 자신을 비로소 발견하게 하는

그런 섬이다.

 

느리게 걷는것이 아니라

느리게 다가가게 하는것

존재를 부각시켜

자신을 마주치게 하는곳이 청산도다.

 

 

 

 

 

 

 

 

 

 

 

 

아무도 주목하지 하지 않은 콘트라베이스연주가에게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비로소 애정의 눈길을 보내듯

청산도는 이 화려하고 본성적인 빛으로

존재의 아우라를 부각시킨다.

 

청록의 바탕 위에 내가 더 뚜렷해지고

내 존재의 무게가 명료해 옴을 느낀다.

 

자기가 자기를 알아갈 때의 즐거움과 경이를

몸소 체험하는것이다.

 

 

 

 

 

 

 

 

 

 

수직적인 세상에서

수평적 평등을 감상하는것은

일종의 위안이다.

 

세상이 나를 꼭 알아야 할 필요도 없고

내가 위대한 자들을 꼭 닮아야 할 필요도 없다.

 

내 나이 쉰이 훨씬 넘다보니

누구를 추종하고

누구를 찬양하는 일이

모두 어리석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를 끝없이 선택할것을 강요하고

지지할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소란스레 지나간 선거철의 수호처럼

나이가 들수록 그런 행위들이 얼마나 덧없고

철없는 일인가를 알수있다.

 

자존의 세계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는 무리이고

무리가 이루는 풍경이다.

 

세상은 나를 무리를 통해 이해하지만

나는 그 무리의 이해가 방해된다.

 

나는 나이다.

내가 비록 풍경의 일부일지라도

나는 나이다.

 

내 생은 그것을 증명하는 과정이다.

 

아무도 알아주지않는

나 혼자만의 고독한 투쟁이다.

 

거미ㅣ줄에 앉은 거미같은 기분이다.

 

 

 

 

 

 

 

 

 

 

 

 

 

 

 

 

 

 

 

 

 

 

 

 

 

양귀비꽃이 피어있는 프로방스의 들을 지나듯

유채꽃의 노란 물결이 따사롭기 그지 없는 길을 지난다

행복이란 이런 기분일것이다

아무리 부인한다 하여도

삶에서 인간의 유대를 따로 떼어내어 설명할순 없다

행복은 결국 사랑의 원천이기때문이다

 

 

 

 

 

행복은 결코 유성처럼 문득 땅에 떨어지는것이 아니다.

논밭과 같이 끝없는 경작과 자기절제로부터 얻어지는 것이다.

 

행복을 갈망하고

노력하는 가운데에서 얻어지는

맑은 결과물같은것이 행복이다.

 

 

 

 

 

 

 

 

 

 

 

티없이 맑은 젊은이들의 웃음을 보며

저들의 웃음 소리야 말로 행복이요

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젊음의 호사를 누리지 못했으니

지나간 청춘이 더 아수운게 아닐까.

 

이제 비록 여유를 얻었으나

젊음이 없으니...

 

하지만 나는 오늘 아내와 청산도에 와있다.

함께 봄을 즐긴다.

함께 청춘을 되돌아 본다.

 

 

 

 

 

 

 

 

산괴불 갸웃한 길을 지나면서

 

 

 

 

유채와 씩씩한 발걸음

 

 

 

 

 

보리밭을 지나는 사이클

 

 

 

 

 

 

 

푸른 양철 지붕의 풍경

길을 지나다 문득 졸고있는 풍경 하나를 마주친다.

 

푸른 털의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낮은 지붕의 풍경이 더없이 평화스러웠다.

 

푸른 고양이털의 이미지가

황토와 마늘밭을 넘어 물결치듯 다가왔다

 

참으로 따뜻한 이미지다.

이런 봄기운이 도처에 넘쳐

걷는 내내

내 빈약한 청춘을 보상받고도 남았다.

 

 

 

 

 

 

 

 

 

 

 

 

 

오치균의 꿈을 꾸는듯한 파스텔화처럼

유채꽃 뒤의 지붕들이 묘한 인상을 준다.

 

풍경은 인상이다.

스쳐 지나가는 매 순간의 풍경 앞에 내가 비로소 발걸음을 멈추는 순간

내 마음속의 인상이 풍경 위에 꿈을 꾸듯 덧입혀진다.

 

더없이 감미로운 봄풍경이 아닌가.

곁에서 조영히 걷고있는 아내의 존재만큼 따사롭다.

 

 

 

 

 

 

 

 

 

 

밥상을 받고앉아서도 배가 고픈 도시인처럼

나는 왜 봄속에서도 외로운가.

 

외로움은 내 마음의 근원.

내 사진의 힘이다.

 

외로움은 맑음이요 고요다.

이 부정할수 없는 절대의 시간 앞에

나는 움직일수 없는 것에대한

피할수 없는것에 대한 슬픔을 느낀다.

 

봄이 한창일 때

말없이 흘러가는 봄을 또 슬퍼하게 되는구나

이 또한 움직일수 없는 진실이기에...

 

 

 

 

 

 

 

 

 

 

 

 

 

- 후 기-

 

 

초대를 받았던 혹은 그러지 못했던 신은 그기에 있었을것이다.

 

누군가는 세월 속에서 기침을 하고

누군가는 그리움에 여전히 가슴을 앓았을 것이다.

 

겨울 나무 삭정이를

푸른 봄잎이 감싸듯

섬은 노랑과 초록의 향연으로 가득하다.

 

내가 누구를 아프게 한적도 없는데

나를 볼러 세울 사랑도 없는데

봄은 왜 자꾸 나를 외롭게도

아프게도 하는걸까.

 

치유 불능의 막막함을

봄볕에 쏟아내고

소리를 목으로 우겨넣어

계면조의 길고 애닮은 소리 하나 문득 뱉어내고 싶다.

 

 

 

 

 


하이든 첼로협주곡 2번



1악장 Allegro Modera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