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일림산-사자산 붉은 마음으로 돌아보다 156번째

poll™ 2012. 5. 8. 15:27

 

보성 일림산 사자산

 

날씨 맑음.

박무에 시야가 흐림.

 

오는길에 황홀하게 지는 해와

크고 생동감있는 만월을 보았음.

 

 

 

 

 

 

봄은 긴 기다림 끝에 놓여있지만

그 기다림의 끝은 늘 허망하다

꽃이 진 자리처럼. 

 

 

 

 

 

일림산 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다.

 

만개에대한 조바심이 저만치 밀려 온다.

꽃을 보며 꽃을 의심한다.

 

강한 오월의 일조에 세상은 주눅이 들어

초록은 온통 맥이 없고

분홍은 쇠잔하다.

도무지 너무 데쳐진 나물처럼 마음에 들지 않은 배색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위압적  花群을 찾아온 탓일까

타박감자처럼 잘 쩌진 길이

오늘따라 생기가 없다.

 

 

 

 

지도에 의하면

일림산을 돌아 일림산으로 오르게된다.

두개의 일림산이 자리를 다투고있다.

뭔가 잘못된 만남이다.

우리가 오르고자하는 일림산을 삼비산이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이런 지명의 혼란 뒤에는 반드시 지역 이기심이 자리하고 있다.

 

 

 

 

장흥군 안양면과 보성군 회천면 사이에는 664.2m의 산이있고

안양면에서는 이산에 사셨다는 세분의 황비를 추념해 "삼비산"이라 이름하였고

보성군 화천면 사람들은 그냥 다소 허전한 이름으로 "뫼봉"이라 하였으니

삼비산이란 이름 따위는 듣도 보도 못하였노라고 한다.

 

 

 

 

 

일림산 정상부의 철쭉 군락은 자연산이 아니다.

이름하여 꽃잔치를 위해 인공 조림한것이다.

 

덕분에 봄이되면 광활한 철쭉밭을 구경하기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것은 사실이지만

산을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썩 받아들이고 싶은 풍경만은 아니다.

 

축제를 작정을 하고 덤벼든 보성군에서야

당연히 저들의 공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삼비산에서 1500m나 떨어진 일림산을 지금 위치로 옮겨 이름을 바꿔치기 하고 싶었을것이나

장흥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영 못마땅한 처사일것이다.

 

그래서 타관 뜨네기들은 이유 곡절이야 관심 밖이니 그냥 일림이라고,

정상석이 서 있으면 일림이되는거고

삼비산이라 씌어있으면 삼비산이되는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삼비산은 삼비산이요

일림산은 일림산이니

알고서는 고쳐부르는것이 바람직할것 같다.

 

 

 

 

 

 지금 한창인 꽃이 철쭉만이 아니다

철쭉나무 발아래 소박하게 피어있는

각시붓꽃의 당당한 위용 또한

봄꽃의 존재감을 알리기 충분하다.

 

 

 

 

장흥군 안양면 신촌과 사촌 마을

 

무심한 철쭉꽃을 뒤로 득량만 봄바다가 낮게 졸고있다. 

 

 

 

 

 

 

 

 

 

광활한 산능을 개간해 무우 배추가 아닌 철쭉꽃을 심을 생각을 한

인간들의 창의력이 놀랍기만하다.

 

더러는 청보리를 심어 누구는 해바라기를 심어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가을이면 구절초에 상사화는 또 어떤가

사람이고 자연이고 간에 무리의 힘은 참으로 놀랍다.

 

무리진 꽃 사이를 외로운 마음으로 걸으며

나는 놀랍도록 고립된 나를 발견한다.

 

사람들을 다 떠나보내고

아무리 혼자되었다하여도

오월 하늘 아래의 붉은 빛은 낯설기만 하다.

 

발 붙일곳 없이 떠도는 도회인처럼

빛이 빛으로 머물지 못하고

천지 사방에 뿌옇게 떠다닌다. 

 

 

 

 

 

 

 원경을 보아도 근경을 보아도

빛은 여전히 아지랑이일뿐

물거품일 뿐.

 

죽음의 왕은 보지 못하나니

산것도 죽은것도 아닌 이 현훈을...

 

 

 

 

 

 

 

 멀리 제암산이 보인다.

일림산 너머 사자산이 있고

그 사자산 너머 곰재 이르는길에

또한 꽃길이 멀고 아득하다는데

더운 봄기운에 벌써 지쳐

힘없이 길에 발이 묶인 채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멀어져가는 동료들의 야속한 뒤모습을 바라보며

비록 늦은 걸음이지만

좋은 풍경 하나 놓치지않으려는

내 어리고 애살스런 마음이 가련하다.

 

 

 

 

 

 산 한고개 넘고 아이스 케키 하나 얻어먹고

또 한고비 넘고

아이스 케키 하나 얻어먹는다.

 

산길에 만나는 빙과의 즐거움은 일러 무엇하랴만은

빙과를 물고 즐기는 시간의 즐거움이 크다.

 

세상은 온통 봄꽃 천지

누가 시간을 거역하랴.

 

하지만 이것도 잠시

한주일 뒤가되면

죽음 만큼 허망한 허무를 맞이하리니

 

세상의 모든 힘이여

힘은 오로지 한 순간이요

힘이 모였다 사라짐의 원리는 영원한것이니

만날 때 헤어짐을 걱정할 일이다.

 

 

 

 

 

 

 

 

 

 

 

 

 

 

 

 

 

날이 좋다

앓아 누울정도로.

 

먼 산의 아지랑이

세상과는 상관없는 소나무.

 

고양이를쓰다듬듯

세상을 핥는 봄의 손길

 

그  봄길 위로 폭주 열차처럼

시간은 바쁘게 흘러간다.

 

 

 

 

 

 

 

 

 

 

 

 삼비산 혹은 일림산의 원만한 정상부

 

 

세상 중심의 제석천처럼

강대하고 원만한 봉우리에

꿀을 찾아 장미에 모여든 진딧물처럼

사람들이 빼곡이 모여든다.

 

산정은 공허할 뿐

보이는 세상 너머의 세상을 바라 볼리 없는데

저들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보았을까

 

보인다는것은 오직 볼수 있는것의 한계일 뿐

보이지 않는것을,

볼 수 없는 존재를

공으로 그대로 깨닫는 순수함을

나는 저 봉우리에 올라서면

자각할수 있을까.

 

 

 

 

 

 

 

 군계일학처럼 서있는 저 소나무야말로

내 존재감을 일깨우는 피사체이다.

 

무엇을 바라보며

마치 메아리처럼 자신을 투사시키는 일이야말로

산행을 통해 얻는 재미다.

 

저 나무를 통해 나는 어떤 모습의 나를 투사했을까

 

외로운 나

쉽게 지쳐버린 자아

화합을 모르는 아집

고독을 낙으로 삼는 외눈박이

 

 

 

 

 왜 사물에 되비친 나 자신의 모습은

이렇게 부정적인 모습일까.

 

그런데 이 부정적이라는 단정 또한 모호하다

홀로된다는것은

함께한다는것 보다 더 부정적인가.

 

그런것은 아니지않은가

나는 생각을 이어갈 수 없다.

말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을 이어갈 말과 언어에 대한 불신이 서자

사물을 통해 비친 내 모습에 대한 통찰까지도

근거를 잃어버리고 만것이다.

 

 

 

 

생각도 없고

생각이 만들어 낸 존재도 아닌

나는 무엇인가

 

나는 사진기로 줌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세상 한구석으로 촛점을 모아간다.

 

어디에서도 명료한  상을 만날 수 없다.

존재도 존재를 좇아가는 몸부림도 허사다.

그냥 길이나 걷자.

 

 

 

 

 

 

 

 

 이빨이 빠지고

소화 불량이 오고

오랜 만에 걸어서인지 두 다리의 컨디션이 영 말이 아니다.

 

사자봉 오르는 계단 또한 왜 그리 힘든지

근간에 산행다운 산행을 제대로 하지못한

벌칙같은것을 받나보다.

 

몸은 정직한것이라는 교훈을 새삼 되새기며

안일한 삶이 곧 좋은 삶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맏기고 싶지 않은 카메라를 형님께 맞기며

당분간은 산행에 집중하리라는 다짐을 해본다.

 

 

 

 

사자산 미봉의 위용 

 

 

 

 사자산 정산에서

 

 

 

 

 

 

 

 

 사자산 너머 제암산 이르는 길에 또 한번 철쭉의 군락이 펼쳐진다.

군락은 자연의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니

군락이라기 보다는 밀식지라 하여야할것이다.

 

우련하고 수려한 능선,

그 뒤로 수미산처럼 펼쳐진 제암산의 위용

꽃이 없어도 충분히 아름답지 않으냐.

 

사족이 된 꽃풍경을 뒤로

어득한 능선을 하염없이 넋을 놓고 보다

시간에 쫒겨

 갈길을 재촉한다.

 

 

 

사자산 두봉

 

 

 

 

 

 

 

곰재 너머로 아름다운 철쭉밭이 또 펼쳐 진다고 하는데

그곳은 산너머에 있는 행복처럼 남겨두고

간재를 통해 하산하고 만다.

 

이시간 어딘들 봄 아닌곳이 있으랴!

능선마다 베어난 핏물처럼 분홍빛 꽃색은 선연하고

봄꽃만큼 허망한 마음의 그늘 어두운데

세상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그늘이 있기마련으로

밝고 어두운것이 다 세상 이치다.

 

 

 

 

 

- 후 기 -

 

꽃이 필 때는 환희가

꽃이 질 때는 명상이 필요하다.

 

환희도

명상도 없는 오월 꽃길을 지리하게 걸으며

명상도 아니고

환희도 아닌 세계를 맴돌았다.

 

아픔같기도 하고

사라져 가는것에대한

일종의 연민 같기도 했다.

 

삶의 연민이라...

사회적 자아를 버리고

본성으로 눈을 돌릴 때

세상은 나에게 더 많은 비밀을 가르쳐 줄것인가.

 

 

 

 

 

 

 파바로티 & 원트워드 소년합창단


Panis Angelicus / Cesar Fran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