深山이 芝蘭(지란)을 품어 산의 그윽함을 더해주듯
名山은 이름에 걸맞는 풍경을 갖추어야한다.
하지만 그 풍경은 준비된 자의 것.
산에 의지해 끈질기게 시간을 기다린 자의 몫이다.
산에 의지한다는것은 변하지 않은 산의 속성
그 절대성에 기대는것이다.
산행은 세속의 삶에 틀어지고 빗나가버린
생의 엇박자를 정교하게 되맞추는 작업이다.
그 교정의 절대적 잣대,불변의 대상이 산인 셈이다.
교정의 결과는 아름답고,그 과정은 아픈 법이다
그래서 산은 때로는 거룩하고 때로는 야속해진다.
오늘 산은 그 거룩함을 느끼기에 좋다.
이런 날을 기다리고 기다렸으니까.
hit the trail !
산길 특히 국립 공원 구간에서 자주 만나는 안내문 중의 하나가
"no trail 즉 비탐방로" 이다.
trail의 사전적 의미는 질질 끌다, 출발하다,자취나 흔적이다.
선답자들이 꾹꾹 러셀을 해놓은 trail을 따라 아무 생각없이 산길을 걷는다.
영각재까지 계속 이어질 모양이다.
아니 그 너머도 마찬가지다.
겨울 남덕유산은 치러야할 대가가 만만치 않다.
영각재
영각재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것은 사실 바람직하지 않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형편대로 따라야한다.
사실 나는 이번 산행에 나서면서부터
영각재를 재빨리 통과하기 위해 들머리부터 좀 속력을 내어 걸었다.
그러다 막상 고갯마루에 도착해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행열에 갇혀버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교훈을 얻었다.
영각재에서는 절대 지체하지 마라.
영각재를 넘는다고해서 마땅히 점심을 먹을 만한 곳도 없다.
이번 산행은 바람이 불지 않는 포근한 봄날씨여서 그렇지
남덕유의 눈보라와 칼바람을 절대 무시해서는 안된다.
남덕유를 넘을 때는 적당한 행동식과 따뜻한 물이 더 필요할것 같다.
1303봉 너머의 세계
마주보이는 1303봉 너머로 월봉산이 보이고 좌측으로 큰목재로 내려가는 능선이 보인다.
그 뒤로 금원산 기백산이 장쾌한 능선을이루며 이어진다.
바람 한점 없는 날,
저 많은 눈이 쏟아낼 수증기는 한반도를 지긋이 누르는 고기압에 눌려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오도가도 못하는 水滴(수적)이 되어
골골이 모여 수런거린다.
그 뽀얀 수런거림조차 오늘은 희망이 되고 꿈이된다.
풍경은 더없이 맑고
산금은 잘 정비된 근육을 감는 성난 핏줄처럼 건강하다.
아! 산이여.
온 우주여.
사랑이 멈춘 자리처럼 그대가 좋다.
백두대간 길
한폭의 수묵화다
멀리 오르고서야 비로소 떠나왔음을 느낍니다.
어디로 부터 떠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비로소 자유롭다는 깊은 안도감이 느껴집니다.
산, 바람,따뜻한 아라비카 커피 그리고 유장한 풍경만으로도
세상은 충만합니다.
세상을 가두고 정한다는것이
얼마나 진부한것인지
이 일망무제를 경험하고서야 비로소 자신할 용기가 생깁니다.
중봉,천왕봉에서 반야봉노고단에 이르는 완벽한 지리산 주능선
마음 속 새장을 열어 마침내 갇혀버린 새를 날려보낸다.
막스 에른스트 이후 내 맘 속에 키워왔던 새다.
새가 날아간다.
내가 자유이듯
새도 자유다.
날아간 새가 玄山의 그림자에 걸리고 만다.
산의 끝이요, 시작인 지리산.
萬山의 시발점으로 내가 날아간 셈이다.
북덕유로 이어지는 장엄한 능선길
하나의 산금을 걷는데도 인간의 상상력은 달라진다.
달라질 수 밖에 없다.
하나의 산은 단지 하나의 경험에 불과하다.
나는 저 길을 걸은 적이 있다.
죽을것같은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 고통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저 능선을 바라보는
마음이며 눈길이 한없이 부드러워졌다.
나는 다시 저 길을 걷게 될것이다.
산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고통이 산길을 지배하게 해서는 안된다.
고통이 꼬리처럼 산길에 매달렸다면 그것은 단지 고통의 후기일 따름이니까.
내 심장이 납득할만한 고통과 피로,
딱 그정도의 수고로움으로 길을 걷고 싶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좌측 조그맣게 보이는곳이 남덕유산 정상
할미봉(중앙)에서 깃대봉으로 이어지다
날개를 펴듯 좌우로 갈라지며 백운산(좌)과 장안산(우)이 된다.
산행을 하다보면 부득이 극한의 상황이라는것을 만나게된다.
나는 두번 남덕유산을 지났지만 두번다 불행하게도
극한 상황 하에서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선예한 칼날로 도려내듯 아팠던
그 극한의 선명함이야말로 어쩌면
쾌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기억 속의 내 존재야말로 가장 강인하고 가장 투철했으며 가장 애절했고
가장 나 다왔으니까.
지금 나는 그날을 반추하며 느린 소처럼 길을 걷는다.
멀리 멀리 떠나며 다시 회귀하는 길이지만
스스로 토닥이며 자위하는 일이 내게 얼마나 큰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가.
줄을 기다리다 심심해서
새로 산 카메라 성능도 시험할겸 자꾸 사진을 찍어본다.
세상의 한쪽에서 보면 다른 편 세상은 끝처럼 보인다.
솜털처럼 보송한 저 남덕유산의 정상이 세상의 끝이다.
세상이 아무리 넓다해도 내가 서 있는 세상은 단지 하나의 조각.
저 끝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한다.
그것이 세상 이치니까.
낙타등처럼 구비치는 남덕유의 정상 가는 길
구도자의 길
성지 순례
한 겨울의 남덕유산은 산을 사랑하는 자의 메카다.
줄을 기다리는 나그네님
불과 20-30m 뒤쳐지는 바람에 이들을 따라잡으려고
서봉에서 연수원까지 거의 뛰다싶이 하산하였다.
진안 방면의 산세
무주 진안 장수는 무진장이라하여
눈이 무진장 많이 내리는 곳이다.
노령의 산세들이 뭉쳐 넓은 고원을 이루기도 하고
성난 산들이 저마다 고개 들어 명산의 기치를 알리는 곳이다.
그 거친 山海의 격랑속 조각배처럼 마이산이 표표히 떠다닌다.
유독 마이산이 돋보이는것은 이런 날씨가 아니면 관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치 낙동강 하구 탐조대에서 노랑부리 저어새 한마리를 발견한듯 반가왔다.
할미봉
안개가 산을 덮지 못한다.
골짜기 골짜기가 연무에 덮힌 채 소박한 겨울을 이야기 한다.
산은 견과류의 껍질처럼 단단하다.
정선이 眞景으로 묘사한 묵필의 힘이 느껴진다.
굵은 선으로 인간의 내면을 묘사한 루오의 그림을 보는듯도 하고
곤궁과 유약의 역사를 박차고 뛰어 나온 이중섭의 황소를 보는듯도 하다.
세상은 얼마나 큰 그림인가!
얼마나 거룩한 인상인가 !!!!
오랜 기다림 끝에 더디어 남덕유로 가는 철계단을 넘는 산님들
귀를 쫑긋 세운 마이산의 정다운 모습
우쪽으로 원동산 연석산 운장산 구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하지만 어느 산이 어느산인지는 모르겠다.
적상산과 향로봉
가을이면 붉은 치마를 두른것 같다고 하여 적상산이라 부른다.
기지국 안테나가 뚜렷이 보인다.
적상산에는 조선실록을 보관한 사고가 있었다.
지금도 새로 지어진 사고 건물이 있다.
적상산이 손에 잡힐듯 가까이 있는데도
왜 정작 적상산에 올랐을 때는 덕유산을 보지 못했을까.
참 밍밍하고 싱거운억만 남아있다.
산을 내려오며 비료 푸대에 앉아 눈썰매를 타지 못했다면
오로지 단조로움만이 내 기억에 남았을 법 한데
이제 적상산은 새로운 기분으로 내게 다가온다.
적상산성의 고저넉한 모습
눈 덮힌 안국사
초라한 모습의 적상산 史庫
이 모든 기억이 새롭다.
아마 적상산이 단조롭게 느껴지는것은
눈내리는 날 감옥에 갇힌듯 아무른 조망없이 산을 올랐기 때문이리라.
이제 비로소 적상산을 보게된 기분이다.
산을 이해할 여유가 생겼다.
세상의 모든 열망은 이 이해와 여유의 합의로부터 움튼다.
적상산이 붉은 치마를 입는 가을날 다시 향로봉을 오르게 될 날이 올까.
그 날은 덕유산도 여기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계단과 좁은 능선에 등산객들이 뒤어겨 인산인해를 이룬다.
좁은 봉우리에 기어코 서서 성난 파도를 바라보듯
산을 바라보는 산님들.
영각재 너머 1303봉
그 뒤가 남령고개고 이어지는 능선끝에 있는 월봉산에서 좌로 큰목재 꺽어지며
금원산, 기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위에서 바라보면 낙타등처럼 보이는 남덕유의 능선
여자의 아랫것처럼 감추어진 월봉산 둔덕 너머로 지리산 서북능이 아득하고 그 뒤로 지리산 주 능선이 우련하다.
산들의 파노라마
희곡 속 권총은 꼭 발사되어야 하고
내 마음 속 풍금은 언젠가 다시 연주 될것이다.
그 날이 언제 일지 몰라도
산은 늘 내 마음 속의 조롱이다.
오늘 나는 그 새장 속에 새를 담고 간다.
한 때 사무치게 오르고 싶은 곳
이유야 알 수 없지만 꼭 오르고 싶은 곳이 있었다면
그곳은 단연 남덕유산이었다.
남녁의 산에 오르면 늘 찾게되는 지리산과 덕유산의 마루금.
내가 알고 지내고 살아 온 그만 그만한 세상이 아니라
내가 갈 수 있는 한계에 놓인듯한 산.
그 설렘과 긴장의 끝에 늘 덕유산이 있었다.
그냥 벽에 걸어두고 한번씩 바라만 봐도 좋은 그림처럼
산길을 지나며 그저 한번 바라보는것으로도 큰 위안이 되는
국토의 진산 덕유산.
오늘은 그 덕유산에 올라
그동안 덕유산을 바라보며 말없이 가슴에 묻었던 그 수많은 산길들을 생각한다.
생각이 도돌이표처럼 정겹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문득 생각난 말처럼.
서봉
북으로 멀어지는 멋진 산들
무룡산에서 삿갓재로 내려와
다시 삿갓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몇년전 덕유 종주를 하며
무룡산 오르는 데크에서 떡실신을하여
꼼짝없이 누워있었던 뼈아픈 기억이 있다.
뜨거운 동료애가 아니었다면 무룡산 그 죽음의 봉우리를 넘지 못햇을것이다.
한편으로 무룡산 너머에서 기다리는 사악한 짐승의 본능을 아울러 맛보았다.
그래서 무룡산에서 삿갓재에 이르는 구간은
내 평생 절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되는 구간으로 남게되었다,
길 이전에 삶의 네레이션이 되어버린 길.
그 악몽의 구간이 바로 저기있다.
천체 망원경을 산 적이있다.
아직도 우리집 창고에 서서 묵묵히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을 그 망원경.
나는 처음으로 천체 망원경으로 보는 세상이 뒤집힌 세상이라는것을 알았다.
내가 제일 처음 관찰한것은 달이었다.
크레이터가 선명히 보이는 그 이상 세계의 실물을 처음 보았을 때
어리석은 이야기지만 정말 모든 신화가 함께 허물어지는듯한 허탈감을 느꼈다.
산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진위.
지금 바라보는 저 몽환적 세상이 세상의 진실은 아니다.
하지만 몽환적일소록 아름답게 보이므로
우리는 세상이 더 몽환적이기를 바란다.
저 몽환의 허영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든다.
지금 내가 처한 현실 속 삶의 욕망 또한
작위요 몽환인지 모른다.
헛것,그림자일지도 모른다는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훔쳐보듯
줌을 당겨 몽환의 실상에 다가간다.
커다란 의문이 다가온다.
의심에 대한 거대한 믿음이 불현듯 생긴다.
남덕유산의 위용
더 가까이,
좀더 가까이 가 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지못할거란 생각에 산을 오르게 된다.
그러나 정작 산에 오르면
가까운것이 아니라 먼것을 보게된다.
산 뿐만아니라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많은 측면을 필요로 한다.
눈 앞에 보이는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은 다른 측면을 이해해야만 한다.
그 수많은 입장들의 이해가 세상을 살아가는 관용을 만들어낸다.
산 아래에서 바라보던 산에 대한 한가지 측면은 단지 산에대한 편견과 오해일 수도 있다.
산에올라 다양한 위치에서 세상을 바라보는것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견해를 가질 때
비로소 세상을 살아가는 온전한 똘레랑스가 형성되는것이 아닐까.
적상산
기지국 안테나가 조그맣게 보이는 산이
적상산인것 같다,
그 우측으로 백운산 민주지산으로 이어진다.
남덕유에서 동업령에 이르는 날렵한 능선 모습
그 뒤로 수도지맥의 마루금이 겸손하게 지나간다.
삿갓봉-무룡산-동업령-중봉 너머 향적봉까지 아마득히
능선이 이어진다.
흰눈 덮힌 동업령에서 우로 커버를 돌며 백두대간이 빼재까지 이어진다.
덕유산 주 능선 너머 아득히 수도지맥이 보이고
수도산 가야산 황매산이 무덤처럼 걸려있다.
서봉(장수 덕유산) 정상
이제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정상석에 서서 자리가 비켜나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짓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
정상이 산행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상은 산행 중의 휴식에 불과하다.
산을 오르는것이 아니라
길을 걷는것이 내 최종 목표다.
나에게는 나를 증명해야할 아무런 대상도 없다.
나 스스로가 증명의 대상이요 관찰자니까.
생각에 감사한다.
생각이 없었다면 지난날의 감동도 전해지지 못했을것이다.
모자에 고드름이 생기도록 춥던 겨울,나는 이곳을 칼바람을 맞으며 지나갔다.
수염에 얼음이 얼어있던 닥터 지바고가 생각났던 차가운 날씨였다.
바람 한점없고 산정에조차 상고대를 볼수 없는 포근한 오늘.
나는 정성스레 맛있는 치즈조각을 삼키듯 추억을 회상한다.
세상이 그대로인것 또한 감사할 일이다.
바위며,나무며,길이 그대로인 채 나를 맞는다.
삶을 회고하기에 이만큼 좋은 장치가 있을까.
그토록 세월이 흘렀건만
단지 그날 내가 여기를 지나갔단 사실 하나로도
세상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한순간의 차이로도 세상은 돌변한다.
영각재에서 일행을 놓쳐버린 불과 20-30분의 차이로
나는 오늘 산행을 완전히 혼자해야했다.
홀로하는 산행에 있어서 가장 염려스러운 일이 시간이다.
내가 얼마나 늦은건지 도무지 알수 없기 때문이다.
내 뒤에는 사람들이 남아있을까.
혹시 산행을 포기하고 다 내려 가버린것은 아닐까.
앞서간 일행들은 어디즘 가고 있을까.
나는 얼마나 종종걸음으로 내려가야할까.
근심이 나를 밀어내렸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길이 익숙했다.
영화속 클라이막스처럼 풍경이 마음을 고조시켰다.
루돌프 제르킨의 연주가 떠올랐다
팔순이 넘은 연주자의 굵고 늙은 손도 아울러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세상 풍경이 그의 손과 얼굴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돌프 제르킨의 연주는 무엇보다 겸손하고 정직하다.
결곡하면서도 중후한 그의 연주를 듣고있으면 삶에대한
그의 신념이랄까 충직성이 절로 느껴진다.
브람스나 베토벤에대한 그의 해석이 탁월하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특히 베토벤의 만년의 소나타 32번을 좋아한다.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32번은 그의 최후의 소나타이다.
베토벤은 현악 사중주와 그의 생에 끝에서 작곡한 이 피아노 소나타를 통해
낭만주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한 시대의 틀을 깬다는것은 위대한 음악가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adagio molto,simplice e cantabile
느린 속도로 단순하게 노래하듯 연주하라는 주문이 붙어있는
2악장.
이 곡은 특별히 여느 소나타와는 달리 단 2악장만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보다 간절한 이별곡이 있을까.
생의 작별을 염두에 둔듯한 감동이 느껴진다.
팔순이 넘은 제르킨의 연주 또한 그렇다.
음을 따라 무언가 흥얼거리며 연주에 몰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의 손가락은 섬세한 예술가의 손이 아니라
투박한 노동자의 손에 가까와
고흐가 즐겨 그리던 낡은 구두를 연상시킨다.
너무 오래 신었지만 버릴 수 없는 사연을 간직한 낡은 구두.
어떤것을 사랑한다는것은 단지 머리나 마음이 시키는것이 아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가 시키는것이다.
그래서 더 절실하다.
그 빛나는 낡음, 제르킨이 시간의 유장함을 내게 전해주었다.
산 또한 그렇게 유장했다
시간이 산금 하나 하나에 정교한 단청처럼 채색되어갔다.
사랑을 얻을 때와 마찬가지로
산을 품기 위해서는 가슴을 우선 비워야한다.
그것이 사랑이니까.
사랑의 본질이니까.
시간의 교훈이 가슴을 비게 만들었다.
비워진 마음이 몸마져 가볍게 만든 탓인지
나는 베토벤의 아다지오를 뒤로하고 "대 푸가"의 자유로운 걸음으로 산을 내려왔다.
서봉의 다른 모습
영화 러브레터를 보면
산에서 실종된 애인이 그리워
산을 향해 "오 겡끼 데스까?" 하고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워낙 애절한 장면이기에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기억하는 장면이다.
저 산을 향해 나는 묻고 싶은 말이 있다.
잘 지네느냐고.
나를 지나간 모든 사람
내 삶의 모든 순간
그리고 나에게.
"오 겡기데스까!"
한 손으로 금원 기백의 산줄기를 잡고
한 손으로는 제르킨의 투박한 손을 잡고 산을 내려왔다.
내 가슴에 안긴 수많은 산을 느꼈다.
대지와 나 사이에 전해지는 영적 교감.
이것이야말로
혼자 걷는 산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우직한 맛이요 진정한 해방감이 아닐까.
쉽사리 녹지않은 북해도의 유빙처럼
내 가슴에 오래 간직하고싶은 이 절실함.
모처럼의 사랑스런 기분이다
일주일에 한번 산에 오르지만
산에 오르지 않는다고 아예 산을 타지 않는것은 아니다.
산길을 쉬어가듯 엿새를 기다린다.
쉬어가지 않는 길이 있겠는가.
한번 산길을 나선것 뿐인데 나는 몇년째 끝나지 않는 산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산길을 떠나는것은 내가 세속의 삶으로 귀환한다는 것이다.
세속의 가치와 산에서의 가치는 다르다.
아직까지는.
이 두 가치를 하나의 끈으로 잇는것이야 말로
산행을 통해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이다.
- 후 기-
나를 조금 버리고 많은 것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 때.
돌아갈 길이 없을 때.
길을 걷는것 외에는 내 삶이 아무것도 답해주지 않을 때.
단호히 지름길을 거부할 때.
가슴에 누군가를 묻고 싶을 때.
혹은 가슴에 묻은 누군가를 깨우고 싶을 때.
너에 대한 믿음이 반쯤 차올랐을 때.
내가 틀렸다고 세상이 말할 때.
나는 길을 걷고 싶은 생각이 든다.
Eduard Poldini (1869~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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