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45 지산 마을
06:15분 용호동 집으로 택일군이 찾아왔다.
마라 김밥에서 마라 김밥 한줄과 초밥 두줄을 점심으로 샀다.
고르케와 삶은 계란이 오늘 먹을 음식의 전부다.
산행을 어디서 시작할까 고민하다
아내의 산행 능력을 생각해 일단 배내고개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배내고개는 영남 알프스의 중심이다.
비교적 쉽게 능선에 오를 수 있는 출발지점이다.
배내고개 08:27 시락국밥 한그릇 하고 출발
따뜻한 시락국에 고추가루를 잔떡 뿌려 밥을 한그릇 말아먹었다.
속이 든든하다.
뱃심이 좋아야 산에 잘 오를 수 있다.
석난사 쪽을 바라보며 생선 비늘처럼 서 있는 전봇대의 배열이 아름다워
사진에 담아본다.
햇살에 반짝이는 억새의 관모를 보았다.
스스로의 모습이 없는 슬픔이 마음을 움직이듯
모습이 없는 햇살이 억새에 닿아 연민을 만들어냈다.
비록 비를 예고하였지만
지금 이 시간만은 어느때보다
포근하다.
배내봉 오르는 도중 재킷을 벗어 배낭 속에 집어넣었다.
늦가을 얼음골 사과에 봉밀의 단맛을 잉태 시킬만한 햇살이었다.
라이너마리아 릴케가 기도한 이틀간의 남국의 햇살이 이런것이었을까
나는 집이 있어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아도 되고
혼자서 긴 편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
계단 저만치서 아내가 힘겨운 걸음으로 산을 오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재약산 사자봉(우:천황산)와 수미봉(좌:재약산)
자웅이란 이런 형상을 두고 이름한 것이리라.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장대한 두봉우리가 어깨를 겨루며 서있다.
웅장하고 단아한 모습이다.
재약산 너머의 운문지맥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문수산(좌)과 남암산(우)
연무에 가려 가물거리는 문수산과 남암산
09:09 배내봉
배내봉에 이르자 앞으로 나아가야할 능선과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상이 미증유의 모습으로 손아귀에 쏙 들어온다.
아름다운 능선이다.
주체할 수 없는 햇살이 쏟아졌다.
法樂이란 이런 것일까
法의 즐거움은 두려움이 없는것이다
法의 즐거움은 풀잎 사이에 부는 바람처럼 그침이 없는 것이다.
法의 즐거움은 때를 아는것.
때를 알고 기다릴 줄 아는것이다.
자, 기다림의 피안으로 배를 띄우자!
문수산(좌)과 남암산(우)
거울처럼 마주선 쌍둥이산.
예쁜 이미지가 주는 쾌감이랄까
대칭감이 주는 상쾌함이
동쪽 하늘을 따뜻하게 장식한다.
하늘에 떠있는 법화경의 다보불탑처럼
사뭇 장엄하다.
고헌산
재약산 능선 뒤로 운문산이 수줍게 모습을 보이고
뒤로 억산의 그림자가 보인다.
운문산-억산-구만산으로 이어지는 산그림자
배내골로 가는 임도를 바라보며
내 아랫배에 난 수술 자국을 연상했다.
한 때의 큰 아픔을 체념으로 봉합한듯한 길.
그 아픔을 오롯이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야 하기에
더욱 뼈아픈 상처.
그런 억울한 기분이 드는 상흔같다.
11:00
간월산에 올라 간월재를 바라본다.
하지 말아도 좋을 품위없는 사과같은 거대한 조형이다.
간월산은 고난을 웅대하고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는 몇 안되는 명당이다.
하지만 보이는것은 균열된 삶은 계란이나
스테로이드 과량 복용환자의 튼 살을 연상케하는 살점 뿐이다.
산이라는 영원의 존재 양식에 비해
인간의 불행이란 얼마나 사소하고 하잘것 없는가를 보여주는듯하다
내가 져야할 책임도 아닌것을
스스로 부끄럽게 짊어져야하는
이상한 연대감이 느껴지는 풍경이다.
조심스럽게 상처를 향해 한발 한발...
일상 생활 속에서
삶에대한 자각은 무위며 찰나적이다.
이 언덕에 놓인 사람들의 뒷모습에서
커피향처럼 진한 삶의 자각을 느낀다.
산너머로 힘겹게 넘어가는 길들이
마치 허공으로 날아간 새들의 자취 같다.
가도 가도 본래의 그곳이며
아무리 돌아왔다하여도 출발점인 그 곳.
시간이란 본래 있지도 않은 헛것이었던 양
세상은 뽀얀 신기루일 따름이다.
간월공룡
물에 뜬 달처럼
거울 속 얼굴처럼
봄날 아지랑이처럼
힘없는 메아리처럼
뜬 구름처럼
속이 빈 파초처럼
타버린 곡식처럼
아침에 꾼 백일몽처럼...
흐르는 시간
그리고 나,
그리고 너.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고
무엇을 찾으러 산에 오를까?
나무 화석
우리의 삶으로부터 자연이 멀어지기 시작함에 따라
산은 시인의 심상에 의지하게되었다.
더 인공적이되고
더 작위적인 삶에 인간이 의존될수록
소박한 자연이 주는 갈망은 더 강해진다.
더 넓은 억새밭을 배경으로 솟아있는 재약산.
그 소박하고 억센 모습이
이러한 갈망을 채워주는 샘물처럼 느껴진다.
마치 눈밭을 뒹구는 강아지처럼
억새밭에 놓인 내 마음이 순진해짐을 느낀다.
간월산에서 간월재로 내려오는 광활한 억새밭을 바라보며
패러 프래이징하듯 온갖 기교를 부려 깍아만든듯한 능선에 자꾸 눈을 주게된다.
내 취향 뒤에 잠재한 나도 모르는 기능들을 다 들추어 낼 필요는 없지만
볼수록 오묘한 가운데 질박한 모습이 마음에 끌린다.
대상에 뜻모를 애정이 갈 때
그 뒤에 숨어있는 자신의 부족함에 의문을 가질 수 있어야
진정 자연을 바라보는 것일 터인데
나는 지금 눈 앞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이기에도 벅찬 지경이다.
영축산에서 죽바우등 너머 오룡산에 이르는 시원한 능선
겸손한 모습의 산이다.
세상사에 전혀 관심이 없는듯한 모습이다.
투박하고 질박한 막사발의 느낌이라고 할까
마치 결함을 그대로 드러낸 채
세상의 온갖 등위에 무관심한듯하다.
비록 자신을 스스로 낮추어 특별한 존재로 보지 말것을 강요하는듯해도
사실 영축산은 그러한 모습 때문에 특별한것이다.
오히려 궁색한것은 현재에 만족할 줄 모르는 他者다.
지위에 불안하거나 오만한 자들에게
혹은 그것으로부터 해탈한 자들에게
모두 균형된 선함을 불러일으키기 좋은 풍경이 아닌가
어디에 걸쳐놓아도 아름답다
오늘 아침부터 우리가 걸어 온 길이 확연하다.
아름다운 세상에 요동치는
이 싱싱한 심리의 율동을 표현할 수 없는
이 안타까운 변재여!
2681
산행의 궁극적 목표는 산의 정상에 있는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날머리에 있는것도 아니다.
산행의 목표와 의미는 산행 그 자체에 놓여있다.
길 위에 있으면서도
무심한듯한 마음의 멸정이 산행을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할 목표이다.
마음의 문을 아무리 닫아걸고
아무리 고요를 조장한다하여도
그것은 단지 밖을 향한 또다른 집착일 뿐
마음의 자유는 물위의 달 그림자처럼
고요하고
민들레 씨앗처럼 가벼운것이어야한다.
그 진중한 해방감을 찾기 위한 산행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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