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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印의 섬 매물도

poll™ 2016. 5. 3. 10:54

 

해인의 바다에서

 

 

 

 

대매물도 트레킹

2016.05.01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도 위안이 되지 못하는 날,

호되게 봄비가 내립니다.

니카라구와의 습한 비바람이 만들어 낸 라틴산의 향긋한 커피를 내리며

문득 두보의 春夜喜雨를 떠올립니다.

 

 

 

좋은 비 시절을 알아

 봄날에 맞추어 이렇게 내립니다.

 

이 밤 바람따라 어느새 깊은 방 찾아들어

소리없이 온 세상을 적시니

 

들길은 이미 비구름에 어둑하고

밤배엔 등불만 외롭습니다.

 

새벽이 되면 밝아 올 붉은 빛

성도엔 이미 봄꽃이 한창입니다.

 

 

 

 

그냥 나 좋을대로 번안해 본 두보의 시입니다.

원문과 다른 해석이라고 따져도 소용없습니다.

 

두시언해가 조선조의 빛나는 문학 성과이기는 하지만

우리 시대에는 우리 입맛에 맞는 두보가 필요합니다.

 

시대가 해설을 요구하는 역사처럼

내 마음 속에 두보 한편 재해석 하였다한들 나쁠건 없겠죠.

 

 

 

 

 

 

 

 

좋은 비는 시절을 알고 있으니...

好雨知時節

이 구절을 따서 만든 영화가 있었습니다

호우시절이라고

정우성과 고원원이라는 중국 배우가 나오는 영화입니다.

봄날은 간다,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만든 허진호 감독의 영화답게

참 담담한 연애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를 본 후 두보 초당에 한번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지난 여름 성도까지 가서도 결국 두보 초당은 보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물론 성도를 붉게 물들인 두견화도 보지 못했습니다.

 

 

 

 

 

 

 

 

 

시간을 맞추어 내리는 비.

비를 맞지 않아도

방 깊숙히 찾아와 내 마음마저 적셔주는 비.

세상 어느것도 나를 위로하지 못할 때 조차

 구석진 세상을 용케 찾아와

봄날 붉은 꽃그림자  전해 주는 그 비...

 

봄입니다

아니 이미 봄날은 가고 있을는지도 모릅니다

아주 오래되어 빗자국이 가득한 그런 영화 한편 보고싶습니다.

 

 

 

 

 

 

 

불현듯 내린 봄비 탓인지는 몰라도

지난 일요일 매물도에서 찍어 온 사진을 정리하다

봄날의 사진은 우리 삶과 참 유사한 면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뽀얗게 차오른 아지랑이와 같은 봄안개,

그 몽환의 세상을 카메라에 담는다는것은 사실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좋은 그림을 얻을 리 만무합니다.

섬의 모습은 역시 매서운 바람이 부는 한겨울이 최곱니다.

어디 섬 뿐일까요.

우리가 겨울 산에 열광하는 이유도

거칠것 하나 없는 겨울 산이 보여주는 명징한 산 그대로의  모습 때문일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봄 풍경 뒤져가며

사진에 담고 또 담습니다.

하지만 어느 사진 한장 흡족할 리 없습니다

 

나는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결과를 이미 예견하였기에

 한동안  산행 중에 사진을 찍지 않았습니다.

 

걸음은 빨라졌지만

가슴엔 아무것도 남는게 없었습니다.

꼭 무엇을 남기기 위해 산에 오른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달라져 버린 나를 느끼며

언젠가 다시 내가 꿈꾸며 추구했던 그 이전의 방식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진을 찍는것은 세상을 더 그윽하게 들여다 보는 것.

세상을 성실히 바라보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박무를 헤치고

대상을 방해하는 구조물들을 하나 하나 제거해가다 보면

마침내 세상과 일대 일로 대좌하게 됩니다.

 

세상 모든 본래의 성품들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까닭으로

내가 마주한 대상 또한 진공처럼 고요하지만

이처럼 확 트인 본질에대한 확고한 느낌이야말로

결국 내 마음의 참모습일거란 생각이 듭니다.

 

 

 

 

 

 

 

 

 

아름다운 봄날

일행들을 다 보내고

혼자 꼬리처럼 간당 간당 봄길을 걷습니다.

 

사진은 사진대로 들뜨고

마음은 마음대로 흔들거립니다.

 

아무것도 담지 못한들 어떻습니까.

인생도 마찬가집니다.

그저 열심히 살아왔을 뿐 무엇을 이루었거나 이루고자 한것도  없습니다

 

막연한 희망,모호한 꿈

그 기대조차 세월이 흐를수록 점차 희미해져 갔습니다.

희미해진것은 꿈만이 아닙니다

의욕도 마찬가집니다.

희망을 놓아버린것도 아닌.

그렇다고 그 꿈에 경도되어 바둥거리지도 않는 삶이 바로 지금의 내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의 나를 찾아 아무리

반야심경을 앞뒤로 읽어봐도

마음에 남는 한 마디는 색즉시공도 아니요 공즉시색도 아닌 以無所得 한 구절 뿐입니다.

 

사진을 아무리 찍어도 결국 아무것도 건질게 없었던것은

건질만 한것이 본래부터 아예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진만이 그렇다는것이 아니고 우리 삶 전반이 다 그렇다는 말입니다.

以無所得이 삶의 본질이요 핵심입니다.

 

 

 

 

 

 

 

 

세상살이

별거 없습니다.

얻으려 애쓰면 애쓸수록

인생만 곤고해질 뿐

결국 이 또한 무소득입니다.

 

 

 

 

 

 

 

 

 

 

 

 

 

 

봄날의 사진이나

 삶이 결국 무소득이라면

인생은 결국 허무인가요?

 

커피향처럼

아지랑이처럼

아지랑이를 좇아가는 목마른 사슴처럼...

 

 

 

 

 

 

 

궁극적 행복을 찾아가는 길은 어려울게 없다고 합니다.

祖師께서는 이 말을 至道無難이라는 말로 요약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은 매 순간 선택의 귀로에 서 있습니다

애증 빈부 손익 생사...

이 선택의 순간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다면

그것이 곧 행복한 마음입니다.

불가에서는 이 이치를 중도로 설명합니다

 

 

 

 

 

 

 

 

放下着

 

방하착, 길을 걸으면서 나는 아직 이 말만큼 길에 잘 어울리는 단어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렇게 내려놓고 걸으려 합니다.

 

축음기의 바늘이 좁은 골을 통과하며 수없이 많은 소리들을 만들어내는것처럼

나는 걸어가는 동안 길 위에 놓여진 축음기의 바늘입니다.

 

꽃을 만나면 꽃의 소리를 만들고

바위를 만나면 바위의 소리를 만듭니다.

 

바람이 외로이 빠져나가는 소리

푸념 섞인 바다 소리..

 무한한 소리의 화엄입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이  무궁한 능력.

이 외에 무슨 복이 더 필요할까요?

 

 

 

 

 

 

 

 

 

 

 

 

 

 

마음을 내려 놓는 일은 한편

無心과도 같습니다.

 

미움을 버리고

고통을 버리고

애욕과 온갖 욕망들,

마침내 사랑마저 지워낼 때

그 비워진 자리에 스며드는

맑은 샘물과 같은  홀가분함.

 우리가 걸어 온 산길의 뒤안이야말로

무심 그대로입니다.

 

좋은것이던, 싫은 것이던 버리는 족족 사라집니다

버려서 사라지는것이 아니라

버리지 않아도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마음은 버린다고하여 버려지는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깨끗이 하고 싶어도 깨끗이 되는것이 아니요

더럽힌다고 더럽혀지는것도 아닙니다.

비워지지도 않고 채워지지도 않는 마음은

영원히 본 모습 그대로입니다.

마음 그대로가 우리의 실상입니다.

그러므로 떨어져나가는것은 마음이 아니라

인연에 따라 마음의 경계 위에서 부단히 만들어지는 허망한 생각들입니다.

 

 

 

 

 

 

 

생각이 허망하다하여 나쁘다는것은 아닙니다

마음의 밭에서 일구어내는 생각의 열매는

인간에게 주어진 소중한 능력입니다.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이라는 분별이야말로

우리가 버려야할 習氣입니다.

 

 

 

 

 

 

 

 

걷는게 이러하다면

삶의 다른 방면들도 다 꼭같을것입니다.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나누고,

함께 밥을 먹으며,

영화를 보는 일.

삶의 본질이 다 마찬가지라

生이 아무리 천갈래 만갈래 차별되어 복잡해 보여도

그 본래의 면목은 오직 고요할 뿐입니다.

 

바닷물이 아무리 출렁거려도

물은 곧 물일 따름입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길을 걷습니다

오월의 봄은 어느새 우뚝하고

바다 위에 꾹 찍힌 인장처럼 섬은 선명합니다.

 

세상이 두루 융통해

어느것 하나 두개의 면모가 없듯

섬 또한 본래의 모습처럼 그대로입니다

사실 우리는 다 그대로입니다

그대로가 본 모습입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차별되고 왜곡된 현상이 아니라

고요한 삶의 본질에 관심을 두는것입니다.

 

삶의 궁극적 자리는 분명해야합니다.

세속의 가치처럼 흔들려서는 진리가 아닙니다

단순해야 진리가 되고

변하지 않아야 진리입니다.

 

 

 

 

 

 

 

 

 

 

 

 

 

 

 

 

 

 

海印이라는 말이 오늘따라 참 근사하게 들립니다.

해인을 깨닫으면 이미 불성의 문 앞에 다다른것이 되겠지만

내 눈 앞에 일어나는

모든 허망하고 사사로운 일이나

경이와 환희,

사랑과 애증 어느 하나 까지도

어쩌면 저 바다 위 섬처럼

마음과 현상의 경계에서 부단없이 생겼다 사라지는

물결 위의 도장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바다에 찍힌 도장처럼 허망한 존재의 나.

나는 오늘 야반 삼경에 걸린 빗장 문을 열듯

바다를 바라봅니다

 

진흙에서 자라 세상을 밝힌 연꽃처럼

물 위의 삶을 생각합니다.

 

입자인 동시에 파동인 전자처럼

현상과 진리의 신묘한 얽힘.

그 얽힘이 봄바람처럼 풀려나

세상이 문득 수억 송이의 꽃으로 發花합니다.

 

 

 

 

 

 

Fly With Me - Beth Anne Ran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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