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타키나발루 산행
2019.08.14~08.18
2019.08.14~08.18
투망을 벗어난 물고기
죽은 물을 만나
크게 죽어
다시 살아 났으니
하늘도 땅도 없네
150만년전 수백년동안 지표 아래에서 식혀져서 굳어 있던 대량의 화강암이 보다 약한 암반 표면을 뚫고 위로 상승하기 시작하여 폭우와 얼음과 빙하에 의한 침식으로 만들어진 산이 키나발루 산이다. 오늘날에도 "빙하의 침식" 무늬와 침식물 그리고 능선 형태와 정상의 봉우리는 이러한 빙하작용 결과를 증명해 주고 있다. 공원 관리소 건물은 34,000년전 침식 고지로 부터 쓸려 내려온 바위와 점토 그리고 진흙의 퇴적 지대에 있습니다. 기후가 따뜻해지고 빙하가 녹아 키나발루 산은 지금의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 4,101m의 현재 높이에서 키나발루산은 아직도 매년 5mm가량 솟아오르고 있다. 비탈지의 산사태나 산 정상 아래의 암석 파편들이 아직도 계속되는 지각 운동의 증거이다.
이 산은 매년 9월초에 국제철인경기가 열린다. “클라임바통”이라 불리우는 이 경기는 위험이 따르는 산악마라톤대회가 유명하다. “죽은 자들의 혼이 사는 곳”으로 숭배되고 있는 키나발루산 전역은 무려 1,000여종이 넘는 야생란들이 서식하고 있다.
TIMPOHON GATE에서 입산 신고
드디어 신행이 시작된다
산행 시작에 앞서 함께 모여 기도를 하는 현지인들의 모습이
참 경건해 보였다
등반 중 100% 비가 온다는 정보를 토대로
우의며 스패츠까지 착용했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힘든 오르막 길을 비까지 맞았다면 어찌되었을까 싶다
판초 우의 속에서 사우나를 하는 기분으로 산을 올랐을것인데
거의 1km 마다 하나씩 휴게소가 있다
물은 있지만 식수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하다
빗물을 모아 둔 것이란다
간이 화장실이 있어 편리하다
다양한 고사리와 이끼가 건강한 생테를 증명하는것 같다
생각보다 야생화는 많지 않았다
많지 않다는것이지 더물다는 뜻은 아니다
기대가 컸다는 뜻이다
포터
kge당 5불을 주면 산장까지 짐을 지어다 준다
내려 올 때까지의 비용이다
나는 비옷과 간식,식수만을 배낭에 넣어가고
다음날 입을 옷가지랑 세면도구는 포터편으로 보냈다
그래야 아내가 가볍게 산을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해발 2500m 근처의 라양라양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러가지가 든 도시락이었다
빵이며,과일이며 닭같은것은 먹지도 않았다
볶은 김치,멸치,검정콩을 도시락에 몽땅 부어 비벼 먹었다
힘이 들면 입맛도 떨어지는 법이지만
입맛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건 도저히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내가 힘들어한다
고도가 높아지자 얼굴에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여기까지 선두로 올라왔다는것 자체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아내랑 시알리스 10mg을 먹고 올라 와서인지 둘다 고산증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뒤에 오는 권용후 원장과 박종남 원장은 덱사 주사까지 맞고 올라왔다고 한다
두 분은 결국 정상을 밞지 못했다
구름이 문득 걷히고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하얀 암반이 마치 눈에 덮힌듯 빛났다
탄성이 절로 났지만 사진빨은 별로였다
수염이 난듯한 이 나무들의 정체가 궁금하다
한발 내딛기도 힘들어 하는 아내를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착찹하다
한편으로 이 험한 길을 따라 나선 아내의 오기에도 의심이 갔다
뭘 모르고 따라왔을 것이다
모르고 따라 나섰다면
내 잘못이지만
알고 따라 왔다면
大死一番 絶後再蘇의 각오다
대사일번 절후재소
하지만 이번 산행은 한번 죽는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매 발걸음이 죽음이요
다음 발걸음이 소생이기 때문이다
수만번 죽어 수만번 태어나 마침내 크게 죽고 크게 사는 길
그길이 키나발루 산행이다
적어도 아내에게는
3000m를 넘어서는 아내의 죽은 눈
이 순간 나는 용기를 주어야했을까
위로를 했어야 할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쉬어라,,쉬고 가자"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다
Rabanrata 산장
세계 각국 젊은이들이 모여 내일 산행을 이야기한다
새벽 두시에 기상하여 이른 조식을 먹었다
하지만 비가 퍼붓는다
밤새 고산증으로 고생했던 동료들은 아예 등정을 포기한다
아침이 목구명에 넘어가질 않아
죽만 두그릇 먹었는데 그것이 패착이었다
나중에 산에 올라가서 배가 고파 혼이 났다
몸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일반인이 갑자기 오르막을 오른다는것은
경험상 쉬운일이 아니다
그것도 산악 관리소에 이르는 한시간 반의 오르막을.
다들 힘드는지 초반은 진행이 몹시 드뎠다
아마 그때문에 몸이 서서히 풀렸는지 모른다
그래서 관리소까지 힘든즐은 모르고 올라갔지만
어젯밤 비로 땅이 몹시 젖어 있어 여간 걸음이 조심스럽지 않았다
사양사양대피소
컷오프 시간인 5시에 겨우 맞추어 관리 사무실을 통과했다
희비한 촛불로 조명을 하고 있는 사무실이라 처음에는 종교시설인 줄 알았다
인적 사항을 하나 하나 체크하고 목에 찬 인식표도 확인한 후에 통과시켜 주었다
얼마 올라가지 않아 동쪽 하늘에 선혈이 베어나듯 자몽빛의 여명이 밝아왔다
불행하게도 봉우리에 가려 해는 볼 수 없을것 같았다
일출이 문제가 아니라
힘들어하는 아내가 문제였다
아내의 부은듯한 얼굴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10 발자국을 넘기지 못하고 쉬고 또 쉬며 걸어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 형편도 크게 나아보이지 않았다
아내가 쉬고 있다
뒤에서 산악 가이드가 때를 쓰는 아이를 달래듯
아내를 바라 보고 있다
아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 나처럼 아무 생각이 없을 것이다
구름 위의 산
산이라고는 하지만 거대한 화강암이 하도 커고 완만해
마치 하나의 대지,세상과 유별한 또 다른 격리의 공간 속에 서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화강암 위에 샴페인 빛의 햇살이 내려 앉았다
가장 엷은 빛이었고
속살과 맞닿은듯한 빛이었다
잠자리 날개처럼 가벼운 빛의 섬유 위로 무거운 발도장을 꾹꾹 찍어며 우리는 나아갔다
하나만 남은 당나귀 봉
2015년6월5일 발생한 지진으로 한쪽 귀를 잃은 당나귀 봉
전날 유럽인들이 산 위에서 옷을 벗고 사진을 찍는등
불경한 짓을 해 신이 노했다고하여 그 유럽인들을 모두 처벌했다고한다
여명
눈동자와 같은 빛이다
사랑하는 이의 간절함이 담긴 빛이다
선혈이 스며드는 빛이다
울다 울다 지쳐 멍해진 눈동자 아래 북받치는 그런 빛이다
아내보다 덜하겠지만
힘듬의 경중을 따지는 일이 무슨 소용이랴
얼마나 아내와 스탠스를 유지하는냐가 관건이다
너무 멀어지면 아내의 희망도 멀어질것이다
아내가 닿을 수 있다고 믿을만한 간격
그 간격을 유지해야한다
참 고마운 분이다
저 분이 아니었으면 나도 아내도 결국 산행을 포기했어야할 것이다
세걸음을 못걸어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끊임없이 엄지를 치켜 세우며
독려하고 있다
south peak의 꼭대기에 외로운 비가 하나 보인다
아무도 그곳을 오르는 사람은 없다
그곳에 오르기 위해 산을 오르지 않은 사람이라면
다 정상을 향할것이다
사우스픽에 이르는 저 매끈한 곡선
아름답기 그지 없다
마치 용마루로 이어지는 기와 곡선같은 느낌이든다
빼어나다는 언어를 굳이 쓰지 않아도
스스로 빼어난 모습
언어 이전의 아름다움
어떤 표현도 卽非인 아름다움의 원형을 보는듯하다
저 구름 속을 헤치고
느릿 느릿
금붕어보다 느린 걸음으로 아내가 산을 오른다
자벌레도
거북도
붉은 이마의 단정학도
각자 자신의 속도로 하루를 보낼것이다
걸음은 산을 해석하는 방법에 불과하다
어미가 자식의 상처를 햝듯
느린 걸음의 풍경이 저만치 걸려있다
이 낡은 안내판이 참 마음에 든다
왠지 모르지만 우체국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우스픽과 어우러져 색다른 노스텔지어가 느껴졌다
쓸쓸한 가운데 느껴지는 따뜻함
여행자를 위한 선술집의 느낌이랄까
산을 거의 다 올랐다는 안도감
고통에 시달리는 몸의 고달픔
그냥 이 자리에 앉았다 돌아가도 좋을것만 같은 적당한 성취감 같은것이 느껴지는 장소였다
저 아득한 구름의 벼랑 끝으로부터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는것이 신기하다
키나발루의 광장이라고할 수도 있을것같은 이 거대한ㄴ 바위산
마치 세상과 단절된 선계,도리천의 느낌이 들었다
모두 희박한 산소를 극복하며 힘겹게 걷고있다
하지만 곧 정상이라는 크다란 희망이 저마다의 가슴에 담겨져 있을것이다
맑은 하늘
검은 바위
흰구름
두두물물이 상징이요 깨우침이다
아내에게 편지를 씁니다
당신 어때?
네,나는 괜찮아요.
괜찮다는 목을 타고 기어나오는 그 가녀린 실비명이 가슴을 아프게합니다
가슴을 운명의 첫 소절처럼 쿵쿵거리는 가슴
물고기처럼 헐떡이는 숨
그럼에도 나아갈거라는 그 묘한 집념의 힘이 가슴을 아프게합니다
더디어 꼭대기가 보입니다
먼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일행을 만납니다
일행들에게 배낭을 맞기고
우리는 홀가분한 몸으로 산을 오릅니다
하지만 곧 숨이 차고 맙니다
아내에게 묻습니다
너무 힘들면 여기서 기다리라고
산을 오르다 쥐돌아보니
아내가 뒤따라 오고 있었습니다
st. Johns peak
웅장한 모습의 봉우리
얼마나 유려한 곡선인가
그 곡선을 넘어서는 인간의 힘없는 모습이 오히려 처연하다
마음을 허공처럼 비우고
오직 향도성을 따라 항해하는 배처럼
거는 걷고있는것이 아니라
떠밀려 온다
그의 행복을 기도 드리는 / 신동엽
그의 행복을 기도 드리는 유일한 사람이 되자
그의 파랑새처럼 여린 목숨이 애쓰지 않고 살아가도록
길을 도와 주는 머슴이 되자
그는 살아가고 싶어서 심장이 팔뜨닥거리고 눈이 눈물처럼
빛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나의 그림자도 아니며 없어질 실재도 아닌 것이다
그는 저기 태양을 우러러 따라가는 해바라기와 같이
독립된 하나의 어여쁘고 싶은 목숨인 것이다
어여쁘고 싶은 그의 목숨에 끄나풀이 되어선 못쓴다
당길 힘이 없으면 끊어 버리자
그리하여 싶으도록 걸어가는 그의 검은 눈동자의 행복을
기도 드리는 유일한 사람이 되자
그는 다만 나와 인연이 있었던
어여쁘고 깨끗이 살아가고 싶어하는 정한 몸알일 따름
그리하여 만에 혹 머언 훗날 나의 영역이 커져
그의 사는 세상까지 미치면 그땐
순리로 합칠 날 있을지도 모을 일일께며
格物致知 (격물지침)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자기의 지식을 다듬어 간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이에 두 가지의 설이 있다. 송나라 주자의 설과 명나라의 왕양명의 설이 있다.
주자의 설은 만물은 한그루의 나무와 풀 한포기에 이르기까지 그 이치를 가지고 있어
깊이 연구하면 속과 겉의 세밀함과 거침을 명확히 알 수가 있다는 결과론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왕양명의 설은 좀 다르다. 격물의 물이란 사(事)다.
사란 마음의 움직임, 즉 뜻이 있는 곳을 말함이라 하였다.
마음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심(心)을 표현한 것이다.
마음을 다스리면 모든 것을 스스로 알게 되고 다스릴 수가 있다는 설이다
걸어가면 생각이 바뀐다
宋나라 때 張九成이 徑山寺에서 格物에 대해서 논하였는데,
大慧스님이 말씀하시길
“公은 다만 格物만 알고 物格이 있는 것은 알지 못하는구려”
하니, 공이 어리둥절하거늘 대혜스님이 크게 웃으니, 공이 이르되,
“스님께서 능히 깨우쳐주십시오.”
스님께서 이르시길,
“보지 못했는가? 小說에 기록된, 당나라 때 어떤 사람이 있어 安祿山과 더불어 모반하더니,
그 사람이 먼저 성문을 굳게 닫아놓고 지키면서 초상화를 걸어두었는데,
明皇이 거동하다가 그 광경을 보고는 분노하여 수행대신으로 하여금
칼로써 그림의 두상을 베어버리게 하니,
때에 그 사람이 陜西에 있었으나 그의 목이 홀연히 땅에 떨어졌다”
하시니,
공이 그 이야기를 듣고 문득 깊은 뜻을 깨닫고는
난간 끝에서 움직이지 않고 이르되,
“장구성은 격물이라 하고 대혜스님은 물격이라.
하나로 뀀을 알고자 할진대 둘 다 오백이라.”
고 하니, 대혜스님이 비로소 허가하였다.
대혜는 진리를 체득하는 관건을 의지와 결단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목숨을 거는 결단 즉 백척간두에서 한 발짝 내걷는 것과 같은 확고부동한 의지만이 그 길을 걸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흔히 간화의 3요소 중 하나라고 하는 믿음(決定信)도 의지가 없으면 있을 수 없다.
의지를 갖추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물론 의지가 충만하다면 조사의 기연문답을 통해 그 자리에서 길의 끝에 도달할 수 있다. 이 경우 사실상 길은 없는 것이다.
길 없는 길이고 문 없는 문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겠다.
이 경우를 위해 대혜는 (쓸데없이 그러나 긴요하게) 친절을 베풀었다. 그것이 간화다.
대혜의 말대로 돈오(頓悟)하였다면 어떻게 될까?
나의 겉모습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세상의 겉모습도 그대로일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인식은 당연히 바뀔 것이다.
“뛰어오고 뛰어감에 사람과 법을 모두 잊어 심식(心識)의 길을 끊고 단번에 대지를 밟아 뒤집고 허공을 쳐부수면,
본디 산이 곧 자기요 자기가 곧 산이다.
본래 그 자리에서는 유학의 덕목도 불성의 작용이기에,
조사는 유학의 지향을 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대혜가 왕응진에게 “범부가 성인이고 성인이 범부며,
내가 그대고 그대가 나이며” “유학이 곧 불교이고, 불교가 곧 유학이다(儒卽釋, 釋卽儒)”
라고 한 말은 순진한 통합론이거나 단순한 일원론이 아니라, 위와 같은 의미이다.
먼 옛날 중국의 왕자가바다를 지나다 폭풍으로 보르네오 섬으로 표류해왔다
그는 이곳 공주와 결혼해 살다가
다시 돌아온다고 기약하며 중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왕자는 돌아오지 않고
공주는 산에 올라가 왕자를 기다리다 마침네 죽고 말았다
이를 불쌍히 여긴 신은 키나발루산 정상에 공주의 모습을 새겨주었다
키나는 차이나의 현지음이며 발루는 미망인을 의미한다고 한다
키나발루산 이름의 유래다
실제 사람의 얼굴인듯한 모습이 보인다
Oyaubi Iwu peak
무어의 조각품을 연상시키는 봉우리다
마치 가족같다
아내가 안간힘을 다해 산을 오른다
아내는 멋지게,보란듯이 등정을 성공했다
고생은 차치하더라도 여기까지 올라 온 그녀의 근성이 무섭기조차하다
온화한 아내의 얼굴 뒤에 어떻게 이런 의지와 용기가 숨어있었을까
사람일이란 참 모를 일이다
격물을 넘머
텅빈 하늘같은 공의 세계가 아내의 마음 속에 가득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퉁퉁부은 얼굴
핏기없는 얼굴색
마치 죽어가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웃어봐' 하고 주문한다
죽어가는 짐승의 마지막 모습처럼 아내가 웃는다
참 슬픈 주문이었다
웃어달라고한 내 자신이 미웠다
우리 두 부부의 영원한 기념비적 사건
허공 같은 마음을 가진 삶을 살아가자 다집한다
크게 한번죽어 되살아났으니
이제 땅도 하늘도 하나다
분별없는 삶
집착없는 삶
허공 같은 마음을 가진 삶을 살아가자 다집한다
정상 너머의 협곡
내려 오면서 보니 마치 스핑크스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산 정상부에서 바라 본 바위군
하산길이라 다소 여유있는 모습
힘없는 아내의 모습
직립이 위협 받는 순간이다
우리는 호흡을 잊고 살아가듯
직립을 잊고 살아간다
직립은 현생 인류의 업적이요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푸른색은 쪽에서 取한것이지만 쪽보다 푸르고
얼음은 물이 얼어서 생긴것이지만 물보다 차다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 / 이기철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
꽃이 피고 소낙비가 내리고 낙엽이 흩어지고 함박눈이 내렸네
발자국이 발자국에 닿으면
어제 낯선 사람도 오늘은 낯익은 사람이 되네
오래 써 친숙한 말로 인사를 건네면
금세 초록이 되는 마음들
그가 보는 하늘도 내가 보는 하늘도 다 함께 푸르렀네
바람이 옷자락을 흔들면 모두들 내일을 기약하고
밤에는 별이 뜨리라 말하지 않아도 믿었네
집들이 안녕의 문을 닫는 저녁엔
꽃의 말로 인사를 건네고
분홍신 신고 걸어가 닿을 내일이 있다고
마음으로 속삭였네
불 켜진 집들의 마음을 나는 다 아네
오늘 그들의 소망과 내일 그들의 기원을 안고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가네
不
不이란 우리가 보는 세상이 청정한 본래 그대로의 본지풍광이 아니라
相에 흐려진 染汚의 세상이란것이다
마치 코를 잡고 빙빙 돈 후 멈추어 서면 세상이 빙빙 도는것처럼 보이듯
세상의 본 모습이 아니기에
不이라한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은 어떤가
진리 그대로의 모습인가
부모 미생전
그 본래의 면목인가
아내의 발걸음이 살아났다
왜 산소는 오르는자에게만 희박한가
고소증의 가장 좋은 치료는 산을 내려가는 것이라는데 그래서인지
한결 아내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하지만 하산길도 결코 만만치는 않았다
나도 아내도 미끌어져 상처를 입었다
여기는 키나발루 산이다
한치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다
圓同太虛
텅빈 허공과 대지와 같은 원만함
키나발루의 정상은 산정이라기보다는 광장에 가까와 보였다
풍화작용으로 결이 벗겨지는 화강암과
아스팔트 질감의 바위 표면
그 사이 사이에 생명을 부여하는 고산의 풀들이 자라났다
고산의 식물들은 낮은 만큼 강인했고
거친듯 소담스러웠다
겹치고 잇다으며
스며들어 세상을 장구했다
押의 글판에 새긴 生이었으며
생멸을 넘은 雙遮雙照 였다
오로지 한 생각
오르고 내림도 없는
다가 가고 다가 옴도없는
능소가 사라진 지극한 道의 자리요
오체투지를 하듯 내 모든 관념의 사슬을 끊고
크게 한번 죽어 비로소 살아나는
대사일번 절후재소의 순간이었다
저 산을 넘으면 산장이건만 아직도 로프길이 남아있다
앞서 가던 산악 가이드가 아내가 염려되는지 자꾸 돌아 본다
손이라도 좀 잡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하산 길에 아내도 크게 미끌어져 팔뚝에 심한 피멍이 들었다
로프를 잡다 미끌어져 바위 위를 구를 때 아내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그때 그 체념한듯한 눈길이 너무 슬퍼 보여
아내의 고통만큼 가슴을 파는듯한 아픔을 견디기 힘들었다
긴 계단을 내려간다
우리가 새벽에 이렇게 긴 계단을 올랐단 말인가
대게는 내려가는 길이 훨씬 짧고 걸음도 경쾌한 법이지만
이번 만큼은 두다리에 힘이 풀린 탓인지
지리한 내리막이 힘들기만 하다
길을 내려가 나도 계단에서 미끌어져
허벅지 근육이 찢어지는듯한 통증을 느꼈다
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설쩍 걸쳐진 구름 하나가 선경을 장엄하듯 걸려있다
청운은 깨닫음에 이르는 길인가
푸른 산 그늘을 덮은 옅은 모슬린의 구름에는 푸른빛이 감돈다
마치 저 구름을 완전히 걷어내면 悟의 세계에 한점 티끌없이
도달할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산을 오를 때 감질나게 보여줬던 바로 그 슬랩이다
대리석처럼 보이는 허연 돌들이 흰 속살을 드러내고 누워있다
대리석은 석회암이 변성된것인데 이 곳 지질에 어두우니
대리석처럼 보인다 그 이상의 표현은 못하겠지만
어디서 뚝 떨어져 나온 화강암 조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香下因緣
얼마나 향기로운 말이냐
신 매실을 생각함에 입안에 침이 돌고
연인을 생각함에 그리움이 싹트듯
香下因緣
한줄 香煙에 고이 묶인 그대와 나
劫歷의 相束
우리 다음 인연에도
이렇게 다시 만나자
다시만나
忉利의 結盟을 하고
망망히 멀어지는 산 그림자를 뒤로
눈물없이 헤어지자
그러다
시절 인연 무르익으면
어느 절집 문간에서
노란 송화 가루 우슬 우슬 비맞으며
황매실에 침이 고이듯
우리 문득 다시 만나자
함께 하산하는 중국사람들이다
아니 정확히 중국 사람들인지 홍콩 사람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국어를 썼다
이들의 차림새 참 수더분하다
산행에 가장 잘 갖추어 입은 나라 사람은 역시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들이다
대체로 그랬다
현지인들은 저 신발로 여기까지 왔나 싶게 편해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완벽을 기해 나쁠것도 없는것이지만
이산이 그리 요란 떨며 오를 산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길고 지루한 계단을 내려와 마침내 산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쉴 틈도 없이 우리는 다시 하산을 준비해야했다
일행 중 한사람이 마침내 우리가 군대 훈련을 받으로 온거냐고 화를 냈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산이 높은걸 어쩌겠나
산은 우리를 초대하지 않았다
우리가 산을 올랐을 뿐이다
이게 전부다
내려 오는 길에 마침내 비를 만났다
옷이 완전히 젖었지만
여기는 보르네오섬이다
- 후 기-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산을 올라온 소감을 물었다
불문가지의 질문을 한다는것이 좀 어색했다
아내의 답은 의외로 담담했다
"힘은 들었지만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믿음의 풍선이 점점 부풀어 하늘로 날아갔다
생의 한 순간에 멋지게 찍힌 하나의 점처럼 느껴졌다
'all that photo > 旅行物語'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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