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여유있는(여유님이 아니라 ㅋㅋ) 산행이라
기분이 한층 고무되었습니다.
새로산 카메라를 신주단자 모시듯 메고
가볍게 산행에 나섭니다.
초등학교 시절 원족을 나온 기분으로
모처럼 동심에 젖습니다.
웅산에서 T자형으로 이어져 나온 능선이 덕주봉과 장복산쪽으로 길게 뻗어 나오고 있다.
멀리 보이는 웅산 쪽의 능선은 좌측으로 불모산과 우측으로 천자봉 쪽으로 뻗어나가
진해만으로 흘러든다.
천자봉에서 서서히 낮아진 능선은 마치 물수제비를 뜨듯 진해만을 향해 나아간다.
저 소꿉을 엎어놓은 듯한 작은 섬들은 거제도로 이어 질것이다.
아! 저 섬에 가고싶다.
모싯대
둥근 이질풀
며느리 밑씨게
산박하
기름나물
만개한 쑥부쟁이.
가을꽃들이 마치 별처럼 빛을 발한다.
별을 닮은 수많은 꽃들이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가을들을 수놓고 있다.
색깔을 확 죽여보았다.
서리맞은 꽃같이 청초한 맛이 난다.
위태한 바위군.
바위들이 마른 짐승들의 뼈처럼 물기가 없다.
세월이 무진장 지나고간 태고의 흔적같다고나 할까.
만나고 가는 바람처럼 가을은 서글픈 것이다.
이 가을이 가면 나는 또 한 해를 늙게된다.
그러나 그 바람은 희망과 열정의 바람은 아닐지라도
어짜피 겪어야할 인생의 순환같은 바람이다.
그 바람 속에 꽃들이 아름답게 자리한다는 것은 얼마나 진한 생동감을 주는가.
헤네시를 가득 넣은 짙은 향의 커피를 마신다.
천지 사물의 그림자가 길어지며 자꾸 생각의 끝을 잡는다.
사랑하는 한 여인이 저 남해 바다 섬 어디엔가에 묻혀있고
그 여인을 못잊어 따라 섬으로 들어갔다는 詩.
이성복의 남해 금산이 생각난다.
그 날 그녀가 돌아갔던 날은 해와 달이 그녀를 이끌어 주었건만
오늘은 내 마음 하나 데려다 줄 햇살 한뙤기도 보이지 않는다.
내 마음은 바다로 가다 해풍에 설핏 마음을 다쳐
맥없이 돌아온다.
다도해 바닷가에 나는 다시 혼자가 된다.
싱아
가을 들판.
꽃들의 향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그기 있었을까"와 함께 박완서의 젊은 시절 일대기를
그린 연작소설의 제목이다.
어린 시절 행복한 기억을 상징했던 그 싱아를 장복산 가는 길에서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사실 순하디 순한 가을 산 길을 유유자적 걸어가며
가을의 향취에 푹 빠진다는것은 심신이 지친 도시인에게는
크다란 행복이다.
칼로 베어 논듯한 신기한 모습의 바위.
덕주봉에 이르는 암릉구간.
이번 산행은 시야가 좌우로 트인 시원한 조망도 일품이려니와
아기자기한 산행 코스가 산행의 묘미를 더해 주었다.
덕주봉의 연봉들이 마치 꿈틀거리는 용처럼 이어져있다.
저 봉들을 오르락 내리락 즐기면서 장복산 방향으로 진행하였다.
꿈에 잠긴듯한 진해만.
산에는 꽃들의 향연,
바다에는 섬들의 잔치가 한창이다.
멀리 거가 대교의 공사도 한창인 모양이다.
쓴풀
누가 이 자그맣고 예쁜 꽃에게 '쓴풀'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을까?
아기꽃들이 작은 별처럼 초롱초롱 빛나는듯 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산세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아내기란
지금의 내 실력으론 역부족인 모양이다.
사진에 자신의 느낌을 제대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마치 수련을 하듯 내공을 쌓아야 하나보다.
자책감과 함께 더욱 사진에 맹진하리라는 용기를 가져본다.
가을은 억새의 손끝에서 왔다가 억새의 손끝에서 눈부시게 이별한다.
억새를 제대로 담아 내는 일이야 말로 가을을 제대로 담아 내는 일이다.
온 산에 지천인 억새들 중에서 어떤 장면을 잡아내면
가을 을 더 가을 답게 표현 할 수 있을까?
억새를 카메라 앞에 둔 내 마음이 벌써 들뜬다.
층층꽃
이고들빼기
멀리 마창대교가 보인다.
새로 낸 다리의 조형미가 언뜻보아도 광안 대교보다는 나아 보인다.
장복산에 태극기를 꽂은 자의 애국심이 빛나보인다.
사람들이란 밥먹고 늘 엉뚱한 일을 구상하는 습성이 있나보다.
세월 이길 장사는 없나보다.
나도 형님도 이제 늙어 보인다.
그래도 인생은 지금부터 잔재미를 느낄 수 있는 나이라고 자위한다.
산에 오르고 부터 부쩍 이런 생각을 하게된다.
불가사이한 바위
무너지지 않은게 참 신기하다.
구름에 희미해진 원경들을 애써 카메라로 당겨본다.
부드러운 산세가 마치 파도처럼 완만히 밀려 온다.
저 산들의 그림자에서 가을빛이 비늘처럼 벗겨져 나온다.
빛에서 떨어져 나온 바람은 물기 없이 서늘하다.
문득 빌라 로보스의 '브라질풍의 바흐'에 나오는 아리아가 떠오른다.
차이코프스키의 6번 교향곡 '비창' 도 떠오른다.
아다지오 라멘토소.
눈물이 쏙 베어 나올만큼 애잔한 곡.
나는 가을 꽃처럼 허물어진다. 땀에 젖은 몸이 차다.
內海는 호수처럼 고요하다. 조용히 돌아가는 음반처럼 무겁다.
나는 운보 김기창 화백의 靜聽을 또 떠올린다.
점심을 마친 오후가 가을 바람처럼 넉넉하다.
불우한 한 예술가의 생애가 불현듯 스쳐 지나간다.
인생이 고달픈 만큼 예술가의 생애는 더 빛나는 것일까?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이 맑아진다.
가슴 깊은 곳에서 서늘한 브람스의 현악음들이 공명해 온다.
이래서 가을이 기다려지나 보다.
패랭이
가을을 빗대선 풍경들은 깊고 그윽한 면이 있다.
나는 내 마음이 만드는 풍경들을 사진기에 담으려 애쓰본다.
풍경과 사물이 물에 뜬 기름처럼 어울리지 못한 채 서먹하다.
내 마음의 압박이 내 손을 밀어내지 못한 탓일까.
카메라는 내 손이 지시한 바를 충실히 따를 터이지만
나의 원망은 언제나 카메라에 가있다.
고들빼기
해꽃이 설핏한 산길에 길잡이 바람만 부산하다.
싸리비로 쓴듯 하늘 한구석이 뚫어지고 억새의 관모에는 햇살이 잘게 부숴진다.
서풍의 끝은 언제나 뒤숭숭하다.
형님과 해동갑을 하며 걸어 온 시간이 벌써 4시가 다 되어 간다.
집에 두고 온 가족들이 마음 한끝탱이를 끌어 당긴다.
돌아 가는 발길이 바빠진다.
형님, 산에 오면 '세상이 다 부처' 라는 불가의 가르침이 이런것이구나 하는 막연한 느낌이 옵니다.
원망도 없고,그렇다고 기쁨만 아주 있는것도 아니고
슬픔도 없고, 슬픔이 아예 하나도 없는 것도 아니고
이런 중성적 기분들이 가슴에 꽉차는듯 해요.
산이 부처님 품속같다고나 할까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그런 어중간한 기분과는 달라요.
좌우간 나는 산에서 느끼는 이런 중도적 직감이 너무 좋아요.
이 말을 들어시던 生佛께서는 예의 그 미소로 방실 방실 웃으셨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 때 생불께서 내 말에 첨언을 하셨는지 아니하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나 혼자만의 자문 자답이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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