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가는 겨울 속의 소백산.

poll™ 2009. 2. 9. 19:54

 

 

 

 

또 나무를 만날 모양이다.

 바람을 만나야 하는데

날은 따듯하고

세상은 물기로 가득하다.

 

 

 

 

 

 

 

 

 

 

 

 

 

 

 

 

 

 산을 오르기 전날에는

잠자기 전에 내일 가져 가야할 것을

미리 꼼꼼이 챙겨둔다.

 벌써 습관이 되었다.

 

그러다 하루는 문득 무언가 하나

빠트리고 산에 갈 수는 없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삶 속에서 무언가를 하나쯤 들어내는 일.

그리고 그 느선해진 공간 속에서

내가 조금 더 자유로와지는 일.

이런 들어내기 연습이야말로

나이를 먹으며 준비해야할 '준비물'이 아닐까...

 

 

 

 

 

 

 

 

일전에 밥을 굶고 산에 간 적이있다.

그 때 허기를 만나 혼이 난 기억은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산행을 하기 전날 부터 나는 잘 챙겨 먹는다.

아침도 든든하게 먹어둔다.

 

그런데 산행을 하면서 시간에 쫓기다보니

느긋하게 밥먹을 겨를이 없어졌고

물에 말아 고들빼기 김치 하나 걸쳐먹어도

그게 꿀맛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후부터는 밥을 물에 말아 번개같이 먹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그러나 요즘은 그나마 귀찮아

밥 대신 햄버거 하나 달랑 사들고 가

커피랑 먹는 것으로 점심을 바꾸었다.

꽤 괜찮은 발상이었다.

 

 

 

 

 

 배낭에서 먹거리를 비워놓으니

짐이 한결 가벼워지고

시간은 더 넉넉해졌다.

왜 진작 이 생각을 못했는지...

 

이제 산에가면 또 무엇을 하나 비우고 갈까.

생각만으로도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 든다.

 

 

 

 

 

 

세상에는 무엇 하나 없으면 죽을것같다가도

막상 살다보면 '없다는것" 그것 별거 아니다.

그것이 없어도 되는 생활에 곧 쉽게 적응하게된다.

 

오늘 내 삶에서 들어내어도 좋은

군더더기 하나쯤 없는 생일까마는

후 불면 이는 먼지에 빛조차 싫어진다.

 

 

 

 

 

세상의 저편을 본다는것은 마음에 군더더기 하나를 더하는 일이다. 

이쪽은 이미 내가 가진것이요

저쪽은 그러하지 못한것이니

내가 지닌 이쪽은 언제나 허기지고 성에 차지 않건만

나에게 없는 저쪽은 왜 늘 흠모와 갈망의 대상이 되는걸까.

 

 

 

 

 

 

산행은 내가 없는것,

가지지 못한것에 대해 언제나 위로를 준다. 

 

산에 오르면

언제나 저쪽은 이쪽으로 다가와

내 등 뒤로 사라진다.

가질것도 줘 버릴것도 없는 세상.

 

이쪽을 통해 저쪽을 저울질하는것이 아니라

저쪽을 통해 이쪽이 위로 받는 세상.

이것이 산행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지.

 

세상의 본질에 대한 욕망을

나는 걸어가며

비판없이 비판한다.

 

본질을 안다는것.

이라 언어의 벽이 너무 높다.

 

본질은 앎으로서 다가가는 대상은 아닌 모양이다.

'내가 나를 모른다'는 명제는

'나는 나를 알 수 없다'라는 명제 만큼 참이다. 

 

 

 

 

 

 

멀리 뿌연 박무에 가려

소백산 천문대로 이어지는 연화봉의 여러 봉우리들이 희미하다.

 

천동리,희방사, 죽령쪽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서로 만나

갑자기 인산 인해를 이룬다.

불경기로 등산 인구가 다 준다고 하던데

이름있는 산들은 예외인듯 싶다.

산꼭대기가 저자거리 같다.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비로사 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만나 계곡을 이룬다.

엷게 쌓인 눈이 녹으며 그 물기가 증발해 계곡은 온통 박무로 가득하다. 

등산하기는 좋은 날씨이나 조망의 재미는 없다.

빛들이 또 귀찮아 졌다.

 

 

 

 

 

낯선이가 인사없이 찾아와도

산은 물리치는 법이 없다.

 

암탁이 병아리를 거두듯 거리낌이 없는것이다.

이 거리낌이 없는 자신감과 안정감.

이것이 내가 지향하는 산행의 목표인지 모르지만

문제는 이렇게 받아든 안정감을 유지시킬

마음의 근기가 도무지 모자란다는 것이다. 

 

 

 

 

 

 

 

정상을 돌아 하산하는 이들의 모습.

산이 많은 나라의 복받은 백성들이다. 

복을 복인줄 모른다면

어리석은 백성.

 

 

 

 

 

 

마음이 거친자는 좋은 도구가 있어도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산에 아무리 올라도

산의 그림자조차 밟아보지 못한것이나 진배없다. 

 

버릴수록

넓어지는것, 가벼워지는것

산행을 통해 얻는 이런 경량감은

더운 목욕 후 땀을 충분히 흘린 기분과 정말 흡사하다.

 

 

 

 

 

 

만가지 생각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산을 넘고 있다.

생각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냥 떠밀리듯 걸어가는것이다.

이런 얼굴들을 담고있는 내 생각이 다 궁금하다.

 

 

  

 

 

 

 

 비로봉 1439.5m 고지를 향하여!!!

 

 

 

 

 

 

 

 

 

 

소백산을 오르면

문득 첫사랑을 만난 기분이 듭니다.

첫사랑이랄께 없으니

그 얼굴이 떠오를 리 만무하지만

뭔가 겸연쩍고

지척에 그녀를 두고 세상을 빙빙 돌아온 느낌

잘 모르지만 이런게 첫사랑을 다시 만난 기분이 아닐까요.

 

 

 

 

 

 

 

 

 

 

 낯설지 않은 육산의 품에 안겨

긴 인생의 궤적을 되돌아 봅니다.

 

세상을 닫고

도롱이처럼 갑옷에 갖혀 산

나만의 asylum.

 

 문을 열고 만난 세상은 다 열린 세상인줄 알았습니다.

산 꼭대기 위에서

바다가에서

사람이 붐비는 거리에서

이 곳이 다 문 밖의 세상인 줄 알았습니다.

 

 

 

 

 마음의 문을 아무리 열고 나간들

나는 여전히 고립되어 있습니다.

나는 열수록 견고해지는

나의 다락방 속에서

오늘 비로소 삐죽 고개를 드러내어

숨 쉴 용기를 얻습니다.

다시는 갇히지 않을 자신을 가져 봅니다.

 

 

 

 

 

 

 폐장을 열고 깊은 숨을 쉽니다.

바삐 걷던 걸음을 멈춰

마음의 파도를 잠재웁니다.

세상이여,

오! 세상이여

부디 내 마음 밖에서

10분만 날 기다려 다오!

 

 

 어의곡으로 내려가는 하산 길.

 

 

 

 

 

 

 

 

 

 고요한 하산길

 

 

 

 

 

 

 산이 기운다.

 내려가라한다.

버릴것 다 버리고

날릴것 다 날리고

처음처럼 빈손으로 내려가라 한다.

소백산 꼭대기에서는

마음에 담아가는것도 금지다.

 

 

멀리 국망봉이 보인다.

 

 

 

 

 

 

 소백산 비로봉에 샛바람을 맞으러 갔다가

오는 봄에 샛바람은 동해 멀리 돌아가고

 

마파람 한줄기 삐죽 삐죽 노닐다가

꽃마음만 흔들고 저만치 달아났네.

 

좇아가 잡힐량이면

좇아가 보련만

국망봉 그림자 잊어라 하네.

 

 

 

 

 

 

 

 

 흑 또는 백

혹은

흑과 백

 

 

 

 

 

 

흰 종이 위에 검은 먹글씨를 쓰듯

내용이 바뀌면 그릇 또한 바뀌어야 한다.

색이 사라진 흑백의 세계에서는

흑과 백은 대립이 아니라 조화이다.

 

 

 

 

 

 

 

 

 

 

 

 

 

 

 흑백 사진 속에서는

삶과 죽음이 마주 서 있는둣한 기분을 느낍니다.

마치 죽음을 망각하면

삶마저 잃어버릴것처럼

그 들은  나란히 화합한듯 합니다.

 

 

 

 

 

 

 

 

 

 

 

 

 

 

 

 죽음, 삶의 맨 마지막 순간

그들이 고립되어버린다면

죽음이 죽음 답지 않고

삶이 사막처럼 고독할것입니다.

 

 

 

 

 

 

 

현대 문명은 죽음을 숨깁니다.

죽음을 숨김으로써

쳇바퀴와 같은 삶이 무한히 반복되리라는 착각을 심어 주게 됩니다.

 

그리고

죽음과 죽음을 환기시키는 일조차 터부시합니다.

그래서 죽어가는 자는 더 고독한지 모릅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내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장시키지는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인간다운 자연사.

이것이 내가 바라는 삶의 형태입니다.

 

산이 깍여 흙이되고 돌이 되듯

나는 세월에 연마된 내 영혼과 육체를

그 모습그 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나는 내가 나이기를,

영원히 나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배낭에서 밥통하나 들어내는 일이

산에 올라가 마음 하나 비워내는 일 보다는 쉽다.

 

마음 하나 비워낸다는 것이

시선 하나  돌리는 일에 불과하거늘

나의 저쪽은 왜 저리 눈부신가.

 

하루 종일 산을 헤매고 돌아오는 날에도

여전히 저녁 햇살은 투명하고

나는 헛도는 타이어 처럼

땅 위를 헛 돌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이든다.

 

 

문을 열고 나선 길이 또 벽이다.

 

 

 

 

 

 

 

- 후 기 - 

 

행복한 삶이란 어떤것일까.

'행복'이란 말을 하며

꿀꺽 침을 삼킨다.

 

이 지독한 삶의 사막을 벗어나

격리의 고독과 맞짱 뜰

뇌리를 파고 드는 칼바람은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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