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은 늘 보챕니다.
선반 위의 꿀처럼.
숲이 그대를 품어
오늘에야 부화해 꽃을 보여주듯
그 무료했던 기다림의 시간들이
딱 이 일순을 위한
응축된 약속이었다니
나의 사랑이란게 이렇게 다 어리석습니다.
해방의 뿌리
남산에 가면
소나무 뿌리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남산의 뿌리나 나무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다 역사요
이 민족의 운명입니다.
건장한 청년의 혈맥처럼
힘이요 자랑입니다.
건강한 숲
요 며칠의 비로 나무에 곱게 수태가 앉았습니다.
생명에 생명이 기생해
그 생명에 생기를 더하는 일.
붉은 벨벳 위로 힘차게 뻗은 소나무 줄기 위에
봄을 알리는 초록빛의 음영이
숲을 더 싱싱하게 만듭니다.
살아 움직이는 율동처럼
숲이 경쾌합니다.
망 산
망산은 여신의 산입니다.
망산 뒤로 펼쳐진 크레센도의 산그리메는
포르테시모를 이루며 단석산 능선으로 이어집니다.
신라 공예품이 가지는 여성적 정교함과
신라의 탑들이 보여주는 남성적 아름다움이
마치 이 산세에 함축된듯 느껴집니다.
어미 닭이 병아리를 품듯
망산의 품 아래의 들은
차분히 봄 맞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진달래 꽃 그늘의 숲
나는 살며시 숨은 아름다움과
은근한 아내의 읊조림이 좋다.
천천히 다가오는 여유와
은은한 속삭임이
그 간지러운 애태움이.
잘린 목과 붙어 있는 목
목이 잘린 불상의 가사 매무시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세상은 보이는것만으로 이루어진것이 아닙니다.
상상의 세계
색계를 뛰어 넘은 상상의 여백이 있기에
세상은 더 풍성한 것입니다.
서라벌 흐린날
귓전에 스치는것은 들녘을 지나는 바람결 뿐이다.
잔뜩 내려앉은 북쪽 구름에 눌려
몸의 온기가 바깥의 냉기를 마다하고 있었다.
싹이 올라 두툼해진 논밭에는
연신 봄이 묵은 풀을 밀어내고
그 바람에 얼이빠진 이른 더위가
시간에 쫒기는 신세처럼
3월에도 몇번을 소리없이 왔다갔다.
그 덕에 공연히 가슴에는 헛바람이 숭숭일고
그 헛바람에 밀려 나는 산길을 돌아다닌다.
다 봄탓이다.
부처님의 고운 손바닥
벗을 만큼 벗어라.
벗는게 지성이면...
가사 한 벌로 천년을 지켜낸 부처님이다.
다만 고마울 따름
상사암
깊숙히 잠가둔 상사를 내가 먼저 나서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싱겁고 허전한 맛이 날것입니다.
그 싱겁고 허전한 맛도 사랑이라면 사랑일 터이지요.
뜸을 오래 들이면 밥이 질어지듯
사랑도 육자배기처럼 턱 터져나와 버리는 편이 더 낫나 봅니다.
망산을 바라보며
목이 쉰 육자배기가
문득 바위틈을 새어 나오는듯합니다.
서라벌
세월이라는거 한번가면 그만인것 같지만
그거 좋았던 시절의 이야기이고
아팠던 과거는 지독하게 미련진 것이어서
두고 두고 사람을 괴롭히는 법.
저 평화의 벌에 무슨 일이 있었겠나 싶다가도
짧은 인생사나 긴 역사나
아픔을 삭여내기는 도진 개진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사람이 있으니 역사가 있는것이다.
오늘은 그 역사 조차도 평온해 보인다.
끝간데 없는 평화.
평화를 얻으려거던
말을 만들지 마라.
말을 만들지 않으려거던
한발 멀찍이 떨어져 있어 볼 일이다.
멀리서 보는 세상은 얼마나 명료한가.
나는 그 명료함을 얻으러 더 먼 산을 오른다.
아득함은 평화의 심리적 표현이다.
나는 평화를 원한다.
딱 저만치 떨어져 바라 볼 수 있는 평화.
서로가 서로이기를 바라지 않는 평화.
오늘 따라 바라본다는 말이 다 사랑스럽다.
묘한 형상
숨을 쉰다는 것이 생명의 활력을 마시는것 같지만
한편으론 죽음의 일부를 함께 마시는 것이다.
빛을 지우는것은 죽음의 분위기를 익히는
일종의 drill이다.
초목의 변모를 보며 어찌 인간사를 되새겨 보지 않겠냐마는
남산에 오면
이렇게 깍이고 남은 흔적에서 조차도
충분히 인생사를 암시하는
묘한 느낌을 얻는다.
글씨체가 유네스코 문하유산에 걸맞게
멋스럽다.
남산의 동쪽
상스러운 땅이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짓궂은 찬 바람이 물기를 머금고 넘나든다.
더워졌던 몸이 금방 식었다.
산 아래 어디서 새소리 비쫑 들리다 사라지고
봄을 실은 강물이 귓가로 흐르는듯한데
이제야 겨우 강물에 미역감고 나온듯한 햇살이
서너뙤기 땅을 흘비추고는 이내 사라졌다.
강 건너 이미 변해 버린땅.
경치는 쓸쓸해도
노년에 위안삼아 그 땅에 등 붙이고 살고 싶다.
어색한 니힐리즘
눈 앞에 보이는것만이 다 현실이라 믿고 싶은 사람.
글의 세계, 말의 세계에 빠져버린 사람.
다 그렇게 믿고 살아라.
세상의 운명은 그들 위에 있다.
작은 입으로 설명되는 세계가 아니다.
그러기에 설명을 요하지도 말라.
어짜피 말이 다 말이 아니니.
맑은 남산
남산의 골격은 장대하다.
금강역사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늘 남산을 기도 도량이요
민족 신앙의 성지로 여기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이 숲에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많은 석물들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
돌 하나 바위 하나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오리 나무
오리나무의 연두색 자태가 너무 곱다.
그 곱디 고운 연두를 지워내고 나니
생명의 경외로움이 새삼 돋보이는것 같다.
봄이 흘러내리는 기분.
그 여린 보드라움이 여린 순에서
뚝뚝 떨어진다.
제대로 핀 진달래
진달래 눈부신 꽃색을 진달래 빛으로 표현하고 싶어
진달래를 향해 셀 수 없이 많은 셔터를 눌러본다.
가슴으로 맺은 약속을
치마로 풀어버린
그 앞뒤 없는 사랑이 다 용서된다.
바위와 소나무
풋새벽에 선잠이 찾아오듯
오래된 바위 위에 소나무 몇그루 걸려
문득 시야에 멎는다.
오래되고 오래된것이니 좋은것이다.
두 오랜것이 어울려
오래됨의 존귀한 가치를 역설하는듯하다.
나이 오십은 오래된 축에 드는것일까?
망산 너머 무딘 봉우리들이
두어 부리만 빼고 이윽고 구름에 벗어나고 있었다.
언제 다시 이 봄을 볼까.
언제 다시 이 봄을 볼까
두고가는 봄이 아쉬워 나는 다시 돌아왔다.
아쉬운것이 어디 춘심이랴
세상의 모든 떠나간것들이 다 그립다.
그립디 그리워
보고 또 다시 본다.
언제 다시 이 봄을 보게 될까!!!
내가 처음 스며든 봄 숲
숲 속으로 스며듭니다.
봄비가 대지에 스미듯
내 몸 스스로 봄빛 속에 스며듭니다.
무심한 봄
산 기슭에 걸어두고
봄을 추원하며 봄 속에 듭니다.
봄 속에 듭니다.
그대로 잦아들어 하나의 돌멩이, 한그루의 잡목이 되어졌으면 하는
기분으로 숲에 듭니다.
기분이라해도 좋고,충동이라해도 좋고
쓰잘머리 없는 감상이라하여도 좋습니다.
둥 지
가 재
험한 하산 길
낮은 구름에서부터 거친 길.미끄러운 돌부리까지
숲을 가득 채운 그 어느것일지라도
내 호흡을 시원하게
내 피를 신명나게
내 시선을 초롱하게 만듭니다.
귀는 모처럼 만난 고저녁함에
꾸밈없고 신비한 소리들에 어울려
내가 멍한 바보라 하여도 좋았습니다.
오리 나무
고섶의 싱싱한 오리나무 순
진액이 끈끈이 묻어나올것 같은
살찐 순을 바라보다
나는 힘없고 성긴 내 머리를 다 만져 봅니다.
늙는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는 것입니다.
스스로 모자람을 찾아내는것입니다.
봄을 맞이하기는 참 쉽다.
산으로 가 볼 일이다.
봄을 보내기도 참 쉽다.
산으로 가 볼 일이다.
봄이 되기는 참 쉽다.
봄 숲을 헤멜 일이다.
생강 나무 만발한 숲 아래로
나의 벗 하나가 힘없이 지난다.
사랑하는 벗이여
오! 오랜 벗이여
부디 봄처럼 다시 일어나라.
오! 나의 벗이여,,
생강 나무
가지를 짓이겨 냄새를 맡으면
엷은 생강 냄새가 난다.
산수유꽃과 유사해 구별을 요한다.
아주 오래된 불
나는 너무 오래 말했거나 혹은 짖고있었던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언어 마져도 잊어가거나
혹은 벌써 잊어버렸는지 모른다.
내 마음의 꺼진 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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