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참 시시하다.
겨울과 봄 사이를 끌어당기던
그 팽팽한 표면 장력이 느슨해지고
그 느슨해진 틈 사이로
나른함이 스며든다.
혓바닥을 내밀어
목련이 하늘의 맛을 본다.
황사가 걷힌 하늘이 여전히 막걸리처럼 컬컬하다.
봄이 또 심심하다.
세상에서 문득 홀로 떨어져 나온듯
외롭고 재미없다.
고독
......
고독은 견딜수 없이 힘든 현실이 아닌
뒤틀린 현실로 떠날 수 있는 일종의 연결 고리이다.
서로의 관계로 묶여지지않는
너무도 개인적인 일탈.
그 고독조차
심심하다.
고성 공룡 발자국 화석
한무더기의 사람들이 지나간다.
그것은 까마귀 떼이다.
쇼 윈도를 바라보듯 세상을 스쳐 지나가는 동안
수억년 전의 발자국들은 여전히 느린 걸음으로 행진해 나가고 있다.
수많은 이미지와 이미지가
내 눈속에서, 머리 속에서
환승역의 개찰구를 빠져 나가듯 재빠르게
사라진다.
마음이 얇디 얇아져
평면 TV처럼 납작하다.
세상이 다 얇아진다.
화석으로 남은
공룡 발자국 같다.
산행은 머리 속에 잠재되어있는 많은 생각들을
끄집어 내는 일종의 도구이다.
스쳐지나가는 한 장의 단면 속에서도 영감을 얻을 때가 많다.
가장 흥미로운것은
산행을 통해 무언가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간다는것이다.
즉 존재를 실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산행기는 사진이 가지는 기록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창작물이다.
갈참나무와 단풍나무 사이로
자귀 나무, 박달나무의 작고 단단한 가지들이
봄볕에 눈부시다.
화장을 하다 들킨 여인의 얼굴처럼
맑고 부끄럽다.
저 밝고 화사함이,
들뜨지 않는 아름다움이
봄을 그려내는 밑 그림인것이다.
들어보자.
빛들의 소리를 듣고 싶다.
그 빛들의 반란으로 나는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그것들로 나는 나를 채워간다.
그래서 빛을 통해 기억을 채워 준 모든 피사체들은
나의 일기이자 나레이터이다.
한떼의 사람들이 몰려 지나가고 나자
숲은 다시 고요해졌다.
色의 세계가 空의 세계로 변한것이다.
空이란 원래 부터 있었던것이니
변한것이라 할 수는 없지만
色이 빠져 나가 空으로 남은 세계가,
色의 空이
내 마음 속 여전한 色을 몰아낸다.
空이란 어떤 느낌이며 기분일까.
말로 다할수 없는 깨닫음의 경지이니 글로서는 어짜피 표현 못할 경지.
일요일 오후 목욕을 한 뒤의 나른함.
사랑이 끝난 후의 담배 한 모금.
마라톤을 완주하고 기진하여 땅바닥에 쓰러져 버린 순간.
그 순간의 푸른 하늘. 혹은 빠른 숨결.
다리에 쥐가나도록 수영장을 뺑뺑이 돌고 난 뒤의 현기증.
더 비울래야 비울것이 없는
그래서 아예 늘분드러져버린 상태.
어이없는 오해?
참 고약하다.
이 空의 경지란 것이.
이에 비해 虛는 참 쉽다.
두말할것도 없이 虛란 집착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공허란 집착과 집착을 떼어버릴려는 경지가
모순되게 만난 단어이다.
그러므로 空과 虛가 동시에 공존하는 세계란 없다.
모순이다.
空이 虛로 전환된다거나
虛가 空으로 전환되는
시계의 무브먼트와 같은 동적인 세계.
그러므로 공허의 세계는 無常의 세계이고
무상의 세계를 바라보는 마음이니 공허할 수 밖에 없다.
허무는 무엇인가.
집착이 없는 상태로 마음이 움직이는것을 말한다.
허무를 깨닫아야
無常을 깨닫을것이니
허무야 말로 마음의 그릇을 비우는 단초가 된다.
허무를 깨닫는일은 마음의 절벽을 모래처럼 만드는 일이다.
스스로 힘없이 무너져내려
마음에 빛을 넣는 일이다.
마음의 숨통을 틔우는 일이다.
허무하라!
죽도록 허무하라!!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질 만큼 큰 허무를 몸소 느껴라!!!
그 허무로 마음을 씻어 낼 일이다.
마음을 비워 낼 일이다.
절벽에 떨어짐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봄이 다 시시하다.
오라하지 않아도 오는 봄이니 시시하다.
봄이 허무하다.
가라하지 않아도 갈 봄이니 더 허무하다.
봄볕에 앉아 숨을 쉰다.
허무를 마시고
허무를 뱉는다.
봄볕에 앉아 숨을 쉰다.
허무를 마시고
허무를 뱉는다.
나의 입김이,내 폐부의 마지막 호기가 다 빠져나갈 때까지
내가 느낄 수 있는 내 폐부의 마지막 쓸쓸함 조차 걷어내고 나면
나는 문득 사랑을 느낍니다.
사랑이라.
사실 나는 사랑을 모릅니다.
사랑의 실체도 사랑의 기술도 도무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사랑 중에 아무런 대상이 없는 절대 사랑이 있다면
아마 내가 생각하는 그런 사랑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런 사랑이 없다면
이것을 사랑이라 표현조차 할 수 없을 터이지만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원초적 애정을
사랑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사랑을 사랑이라 이름한다면
그것은 이미 늘 회자되는 사랑이 아닐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지극히 주관적이며 개인적인것이라서
이것을 객관적이며 사회적인 언어로 표현한다는것은 불가능합니다
나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세상에 대한 나의 사랑은 사랑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아니 사랑이라표현 할 수 없는 사랑이기를 바랍니다.
삼월이 다 시시합니다.
봄의 들판은 세상의 모든 사랑과
사랑에 대한 꿈들을 감내하고도 남을 만큼 텅 비어있습니다
비어져 있는것은 단지 봄이라는 시간의 공간만이 아니라
산이며,들이며,나무며 하늘이
다 하나같이 비워져 있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우주의 그림자일 뿐
우주는 우주인대로
강물은 강물인대로 속절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의 해결할 수 없는 허무와
허무를 담은 세상과
그 세상을 무너뜨린 사랑과
그 사랑을 녹여내는 봄 하늘
이렇게 하늘처럼 빈 허무의 봄하늘이
나를 찾아 오고 만것입니다.
오늘은 커피 한잔이 생각납니다.
노랑 바탕에 화려한 장미 문양의 찻잔을 찾아 한잔 가득 커피를 마십니다.
내 코 끝과 눈과 이마 언저리를 오롯이 타고 오르며
차분하리만큼 개인적이며 쓸쓸함이 베어있는 향기가 피어오릅니다.
나는 이 작고 쓸쓸한 커피향을 음미하며 마치 최면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어쩜 내가 처한 지금의 상황이 이 현세의 지루함조차 표현 할 수 없는 꽉 막힘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후 기-
내 글 속의 허무는 色일까, 空일까
색도 공도 아니면 따분한 봄 날에 불과한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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