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매화산 남산제1봉

poll™ 2009. 5. 12. 11:22

 

 

 

내 나이 열 아홉은

술로 처음 얼굴을 물들였을 때.

 

첫 여자를 만났을 때.

 

그 황혼같은 붉은 물에

나를 적셨을 때.

 

그 붉은 홍조 옅어져

옅어져

멀어지는 봄꽃을 좇아가다

 

얼룩진 유리알 하나를 숨긴다.

봄날은 간다.

 

 

 

 

매 발톱 

 

술이 술잔을 떠나가듯

내 청춘도 내 손아귀를

힘없이 빠져나간다.

 

세상은 넓은 초록의 보자기를 펴

떨어지는 꽃들을 주어 담는다.

아! 그것들이 다 청춘이다

 

흘러간 청춘을 꿈이라 여기며 살아 온

내 가슴 언저리가

알싸해 온다.

 

 

 

 

꿈은 늘 위태로왔다.

위태로왔기에 꿈이라 여겼다.

 

꿈과 현실이

키메라와 같이 뒤섞여

위태로와 진 나이

 

청춘을 녹인 잉크로

문신을 새기듯

이겨온 삶

 

그 삶에

비로소 

내가 진다.

 

 

  

 

 

멀리 가야산 바라 보며

산행도 산책도 아닌 기분으로

산을 오른다. 

 

내 인생이란게 늘 이렇게 어줍잖다.

나는 결국 이런 어중간한 인생을 살다 말것같다.

 

춥지도 덥지도 않는 삶

배부르지도 허기지지도 않는 삶

간절하지도 애탈것도 없는 삶

재미는 없어도 나쁠것도 없는 삶.

 

 

 

 

 봄날은 간다.

 

뜬금없이 왠 봄 타령인지.

가사도 제대로 모른는 이 백설희의 노래가

오늘따라 입에 붙어

떨어질 줄을 모른다.

 

가사를 아무리 음미해도

성황당, 청노새 ,옷고름, 역마차...

도무지 마음에 와 닿지도 않는 고어가 된 단어 투성인데

도대체 이 노래의 매력은 어디에서 솟아나는걸까.

 

 

 

 

 남산 제일봉의 토르군

 

알뜰한 맹세에도 봄은 가고 말것이며

실없는 기약에도 봄은 기어코 가는것이다.

청춘이 없는 개인사가 어디있겠는가.

이 지나간 청춘의 허무함이

가슴 깊이 자고 있던 그리움을 자극하여

아련한 슬픔을 우려내는것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영원한 중년의 황혼가이다.

 

치열했던 삶의 고백서요

고해성사이다.

 

 

 

 

 

 우측에 우뚝 솟은 산이 가야산이다.

가야산 주능선에 두리봉이 보이고 좌측높은 봉이 깃대봉.

맨 앞쪽이 오봉산이고 그 뒤가 비봉산이다.

 

 

 

 

 

봄날을 이렇게 다 보내고서야

봄날이 가는 줄을 알았다.

 

감정의 사치일까

막장에 서 보지 않고서야

어찌 허무의 깊이를 알겠는가

 

그런데 말이다

나이 쉰을 넘겨보니

어짜피 인생이란것이 그리움이다.

 

체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고

봄날은 이렇게 담담한데

도대체 너무 담담한데

 

오늘은

그리움이란 말조차

천리 밖 물길처럼

 아련하다.

 

 

 

 

 

 봄날에 열광하지 마라

흘러가는 청춘을 탄식하지 마라

 

삶의 열정을,

삶의 정원을 가꾸어라.

인간을 에워싼

원숙한 사계의 정원을.

 

 

 

 

봄날 소묘

 

그 봄날에 

 진양군 지수면 승내리 웃마을에

구씨 성을 가진 영감이

붉은색 츄리닝 차림으로 논둑에 쭈구려 앉아 있었다.

 

청원리 필골에서 넘어 온

왠 미친 여자 하나가

금빛 보리밭을 지나 이쪽으로 느리게 건너 왔다.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그녀를 노려 보는 영감의 눈은

어쩐지 장산곶 매처럼 날카로와 보이기도 하고

독오른 까치 살모사의 눈처럼 사나와 보이기도 한데

 

지금에야 생각해보니

미친 여자의 헝크러진 머리 위로 부는 바람이나

구씨 노인 초가 낀 결막염을 앓은 눈알이나

할일없이 흘려 보낸 그 시절 내 청춘이나

 

다 같은 한 때였단 말이지.

춘정이 뚝뚝 떨어지는

오입질이 급한

봄날 한 때 였단 말이지.

 

 

 

 

 

 더 높이 올라 산들의 마루금을 좇아가보면

덕유산 향적봉과 육십령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보인다

 

 

 

바위 뒤로 비계산-마장재-우두산(의상봉) 

 

 

 

 

 

 

 

 

앵초

 

 

 

 

 

 

 

 

 

 

 사랑도  一物이거늘 어찌 무상하지 않을 수 있으랴

 

"사랑도 변하는거니"

그래 봄날처럼 헤어지는거다.

그래야 봄인거야.

 

꽃도 질리나 봅니다.

저만치 가는 봄이 허무한걸 보니

쓸모도없이 고뇌의 골만 깊었습니다.

 

시간은 내 인생만큼 더디게 흘러

아!

이제 통증이 된 나이 앞으로

봄 실은 배를

저만치 띄어 보냅니다.

 

배가 지나간 봄의 뒤안으로

 손바닥 가득 세월이 내려않고

봄은 결국

가라지 않아도

갑니다.

 

 

 

 

 

 

 푸른 매화산을 뒤로

비계산-두무산-오도산

오도산과 비계산 사이로 희미한 지리산 천왕봉

유달리 산 마루금이 명료한 봄날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나는 이 노래가 주는 회상형의 종결어미들을 좋아한다.

 

memory

 

딱히 회상할 시간도 사건도 인물도 없는

시대의 사막같은 내 머리 속을

조용히 흔들어 깨우는 나지막한 읊조림 

 

누구의 인생인들 꽃같은 시절 없겠는가

꽃피는 시절의 이야기를

인생의 꽃이 지는 시기에

지는 꽃을 메타포로

노래 부를 때

 이 아련함은 하나의 그리움 혹은 서글픔으로

비로소 내것이 된다.

 

 

 

 

애기 똥풀

 

줄기를 자르면 노란 애기똥과 같은 진액이 나온다.

 

- 후 기 -

 

 꽃이 필 때 몸살을 앓듯

꽃이 질 때도 몸이 다 아프다.

 

떨림이 없다면 그게 어디 꽃이랴

한 시절 뜨겁게

바라 보았던 꽃

그 봄날에 열광할 필요는 없다.

 

흘러 나가는 세월

흘러 나가는 청춘

 

공평한 것이기에

더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