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을 데리고 산행을 한다면
어떤 산이 좋을까?
천성산 화엄벌.
인근 산 중에서 초심자에게 오르기 쉽고
일찌기 보지못한 멋진 풍경을 제공하는 곳으로
이만한 산이 또 있을까.
실제 내가 그랬고
그만큼 화엄벌은 초보인 나에게
놀라운 세계였다.
천성산은 이미 몇번을 오른 바 있지만
가을의 천성산은 좋긴 좋으나 등산객들로 너무 붐비고,
겨울이나 봄의 천성산은
계곡의 물이 너무 말라버려
비교적 수량이 풍부한 지금이
홍룡사 코스를 제대로 즐기는 적기라 생각된다.
나는 이미 홍룡폭포를 낀 암자의 배치를
자연과 건축이 하나된 예로 극찬한 바 있거니와
오늘 좌불 쪽에서 조망한 폭포와 암자의 전체적 조화도
정말 빼어나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였다.
근자에 살을 많이 뺀 아이는
토끼처럼 재빠르게
산을 오르고
감기 기운이 있는 아내와 나,손위 처남 이렇게
셋이서 느린 걸음으로 멀찌감치 뒤쳐져 산을 오른다.
배낭에 잔뜩 군것질거리를 사왔건만
아침을 먹은지 얼마 되지않아서인지
시장기가 도무지 생기지 않는다.
화엄벌은 언제나 좋지만
오늘처럼 인적이 더문 날은 더욱 좋다.
산정에서 부는 선선한 바람,
비록 햇살을 가릴 곳은 없지만
구태여 가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한가히 아무데고 기대어
하늘과 구름과 저 부드러운 능선을 바라보며
일찌기 느껴 본바 없는 자연과의 깊은 연대감을
느껴보고 싶다.
내가 느끼는 이 신묘한 화엄의 기분을
아내와 아이도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 표현할 길 없는 해방감.
그들도 해방을 꿈꿀까?
해방은 막혀버린 세상으로부터 놓여진 자들의 것일까?
나는 스스로를 가두고고
또한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그러나 여기 화엄벌에서는
이 해방이 사역을 통해서가 아닌
자연 현상으로서의 해방을 맛본다.
어떻튼 나는 화엄벌 위에서 스스로 헤어난다.
물에 퍼지는 잉크처럼.
그들만의 해방.
인식하지는 못하겠지만
이들에게도 분명 무언가로부터의 해방이 찾아 온것만은 자명하다.
자유는 즐거움이다.
편안함이다.
나아가 행복이다.
비탈 위에 선 나무.
나는 늘 이 나무 앞에 시선이 머물게 된다.
위기의 자아를 반영한 풍경이랄까.
아니면 그것을 이겨낸 그 무엇인가가 풍경 속에 숨어있기 때문 일까.
산행 중에
풍경 속에서 문득 이렇게 나를 만나기도 한다.
풀밭 위에서의 식사를 마친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식당이 아닌가.
구름이 나직이 손 닿을듯 가까이 있고
개방된 세상에서 만나는 여유.
오! 멋진 오찬이다.
시선을 따라 가다보면
어김없이 하늘을 만나고
그리고 마음에 남은 한 줄 금마져 넘고 나면
나는 비로소 완연한 자유인이다.
나를 붙잡는건 오로지 느리게 흐르는 시간 뿐
나는 시간의 끝을 잡고 쉬 나아가기를 거부한다.
무작정 여기에 머물고 싶어서.
젊은이에게 허락되지 않은 자유
내지는 경지.
그들의 쾌락은 여전히 말초적이다.
그렇다하여도 그들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의 성장에도 세월의 유연성이란게 필요할 터이니.
언제고 피상적 쾌락을 넘어선 세상이
엄연이 존재한다는걸
그것도 바로 눈 앞에 있었다는것을
알게 될 때가 기어이 오리라.
선과 면의 만남,
면과 면이 만들어 내는 미학이 절묘하다.
천상산 화엄벌의 길은
삶이다.
삶의 여로.
길이 있음으로
자연에 얽힌 무한한 인간의 스토리가 만들어지는것이다.
자연의 바탕 위에 인간의 그림이 그려지는것이다.
그래서 이 넓고 고독한 평원 위의 길은 훨신 더 감상적이다.
인간의 역사가 오롯이 숨쉬는
내래이션이다.
문득 한 스님의 삶 위를 느리게 기어가는 도롱뇽이 뜨오른다.
그녀의 에코로지는 끝난것일까.
긴 그리움
길의 길이 만큼 긴 그리움.
길 끝을
톡톡 두드리면
또 길어지는
온 길 만큼의 긴 그리움.
슬며시 가슴을 파고드는 쓸쓸한 촉수.
천성산 하엄벌을 사진으로 옮겨 담으며
세상의 '모든 만물은 변화 속에 머문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경구를 떠올립니다.
사람이 사물을 구성하듯
풍경 위를 흐르는 단절과 흐름도 또한 사람의 몫일 거라는
지극히 철학적 출발점에서
산야를 바라 봅니다.
화엄벌에서 느끼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지듯한 이 느낌.
변화와 정지의 묘한 메타포.
이런 곳이야 말로
거의 모든 분야가 권태로 채워진
현재의 내 일상을 다독이며 되돌아보게하고
또 앞으로의 날들에 눈뜨게하는
내 마음의 얼마 남지 않은 의지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길,하늘,산
흥미로울것도 없고
찾거나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발견해 낼수조차 없는 풍경 속에서
어떤 색다른 의미를 찾으려 애쓰기보다는
풍경 그 자체에 집중하고
그 풍경 속에 관찰자로서의 나를
일치시키는 작업을 통해
내 지친 삶의 모습이 평범하게 기록되어지기를 희망합니다.
산과 하늘은 산을 오르는 이에게 이미 일상이 된것이지만
사진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너무도 일상적이어서 규정을 할수 조차 없었던
온갖 개념들이
수수께끼처럼 해결 될때
자연은 비로소 은폐적인 그 낯섬을 벗고
내 마음으로 종교적 친숙함으로 다가옵니다.
세상이 다 법당같습니다.
타래난.
-후 기-
원칙적으로 등산가 수 만큼 등산의 동기가 있으며 그 체험도 저 마다 다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대부분의 등산가가 틀에박힌 등산 활동을 하기 때문에 그렇지가 못하다.
이런 경우
본질적 역할을 하는것은
산의 높이가 아니며 루터의 난이도는 더욱 아니다.
우리에게 끝내 남는것은 마음 속의 고산과 거벽이며
문명을 벗어난 대자연이다.
그러나 그것은 등산가의 감수성이나 능력에서 오는
자기 인식의 소산이다.
-메너스의 '죽음의 지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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