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초록마을 펜션
형님이 얼마전 부터 지인의 초대를 받았다고 청도 초록마을 펜션에 한번 놀러가자고 했다.
마침 가는 곳이 억산 아래라 등반을 겸해
앤디,오택일,버들이,그의 여친과 함께 시간을 같이하기로 했다.
억산이 바라보이는 박곡지
청도는 풍요로운 땅일 뿐만 아니라
곳곳에 문화 유적이 산재해 있다는 사실을 이번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침부터 부슬 부슬 가을비가 마치 봄비와도 같이 부드럽게 내린다.
가벼운 산행을 예상하고 나는 배낭도 없이
생수병 하나 달랑 들고 산으로 출발했다.
대비사 입구까지는 초록마을 사장님이 손수 데려다 주셨다.
아침에 비오는 산사를 찾는다는것은
참으로 차분한 기분을 가져다 준다.
대비사는 규모가 작은 절이다.
억산 아래 있어도 없어도 좋을듯이 자리잡았지만
없었다면 한없이 허전했을 절집,
무심코
눈물 왈칵 쏟아내기 좋을만한
떠나간 애인처럼 쓸쓸한
그런 고저녁한 절간이었다.
억산이 보이는 대비사 계곡
억산 깨진 바위가 보인다.
사물을 다른 한쪽에서 바라보면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지극히 기본적인 지혜를
깨진 바위 바라보면서 얻는다.
존재의 새로움.
사람의 정이란 것도 이런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다면
늘 새로운것이 되지 않을까.
오로지 한모습만 바라보며 질주하는 사랑이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것인지
억산 깨진 바위가 넌저시 알려주는듯하다.
대비사 대웅전
고적하다는것은 가벼운 빗줄기를 여유있게 맞으며 즐기는 맛.
즐거움 이상의 느낌이다.
몇차례 우중 산행을 경험했지만
오늘의 산행은 정말 색다르다.
차분히 가라앉는 기분
무엇엔가에 딱 끼워맞춰 진듯한 편안함.
근본주의로 회귀한듯한듯한 야릇한 소멸성
이런 기분들을 안고 산에 오른다.
대비사 산수유
피눈물같은 산수유 열매에
빗방울이 조롱조롱 맺혀있다.
더 영글은듯한 느낌
더 농익은듯한 느낌.
그리하여 정념이 뚝뚝 떨어지는듯한 초절정.
이 진한 농밀함이 왠지 마음에 든다.
짙은 커피향이 묻어난다.
낮은 돌길을 오른다.
배낭을 매고 오르는 이는 분명 무언가 필요에 의해
배낭을 매고 오를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를 따라 오르는 이들은 죄 배낭을 벗고
가벼이 오른다.
빗속 등반길에는 배낭은 미끌어졌을 때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그리 알고 있다.
우리가 모르는것은 오늘 산행이 어디까지 진행하느냐이다.
그것은 산대장만 알고 있다.
우리는 오봉리를 모른다.
오봉리로 내려가는 산행길은 오늘 차안에서 정해진 것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억산이지만
앤디의 목적지는 오봉리인 셈이다.
모든게 빗길 위에서 틀어져있다.
비오는 억산 대비사 계곡
칡등걸이 어지러럽다.
길이 점차 가팔라 온다.
목이 마르고 숨이차다
다리가, 무릎이 아프다.
파스텔 톤의 숲이 신비러운 연보랏빛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언뜻 언뜻 속내를 드러내는 사람의 마음을 닮아서인지
문득 드러나는 풍경들이 경이롭다.
솔직히 나는 이 사진이 무척 마음에 든다.
무채색에
빛의 명암에 의해 오로지 표현되는 세계.
본질에 더 가깝고
심지어 본질처럼 느껴지는 단순함.
그 단순함이 주는 순수.
그리고 신들린듯한 가지의 모습 뒤로 비치는 묘한 고독감.
물결치는 신비로움.
나는 나도 이해할수 없는 심오한 단어들을
마치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를 듣는 기분으로 하나 하나 떠올린다.
비에 젖어 초롬한 세상의 빛이
악성의 말년을 연상시킨다.
억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깨진 바위.
나무들이 비탈에 위태로이 서 있다.
비탈에 서있는 것이 비단 나무 뿐이랴
나는 나의 비탈을 오른다.
온전하지 못한 다리 땅에 끌며
고통을 오기있게 이겨낸다.
나를 포함해
누구라도 내 고통 앞에 징징거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의 고통이 타인의 입에서 칭송될리도 만무하다.
고통은 지독히도 개인적인것인지라
나는 고통 위에 서서
세상을 조롱한다.
마주보이는 운문산
나는 운문산을 사랑하거니와
이름에 걸맞게 구름에 잠긴 운문산은 더욱 사랑한다.
포연처럼 쓸쓸한 가을비 내려앉는 운문산.
산은 청년의 짧은 머리를 하고 있다.
잎을 벗은 나뭇가지가 도드라져 보인다.
그 명징한 잔 가지들로 이루어진 선이 고양이 털처럼 부드럽게 보인다.
군에 입대하는 청년의 모습처럼 건강하다.
이것이 겨울산을 바라보는 묘미이다.
겨울산은 근육이 아름다운 젊은이다.
억산 북능 암릉구간
검정빛의 세계로 듭니다.
오직 땀과 입김이 지배하는 진실의 길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그렇게 느낍니다.
그러나 이상합니다.
길은 끝이 없고 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산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렇게 완전히 산길에 무지해 보기는
청도 남산 이후에 처음입니다.
그날도 이렇게 비가 내렸지요.
끝없이 이어지는 빗길.
발걸음을 멈출 때마다 묘한 사늘함이 몸으로 파고듭니다.
정신이 들게하는 한기입니다.
다행히 몸에비해 세상은 포근합니다.
이 비에 찬 바람까지 불었다면
조난을 당했을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생각을 다 해 봅니다.
알수 없는 욕심이 나를 자꾸 나아가게하고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은 자꾸 나를 귀찮게 따라 다닙니다.
서쪽 대비사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버들이와 그 여친의 행방을 알수 없어 다시 오던 길을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어림짐작으로 오봉리 하산길이 불과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아쉬움은 컸지만
산행이란것이 목표가 중요한것은 아닙니다.
산행의 가치는 산꼭대기에 있는것이 아니라
산행과정에서 보고 느끼고 사색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산에 올라 산길을 걸었으면 그만입니다.
친근한 벗을 만나듯 산을 만났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저 멀리 산을 내려가는 일행이 보입니다.
다행입니다.
대비사
종일 비를 맞아서인지 따뜻한것이 그립다.
대비사 스님들도 그런가 보다.
아! 뜨거운.
뜨거운 그 무엇이라도 내 목구멍을 데울 수 있다면
내 몸마져도 따뜻이 데워지련만.
떨고 있는 내 모습이 불쌍해 보였던지
보살 한 분이 따뜻한 커피 한잔을 건낸다.
해골 썩은 물!
나는 두손으로 찻잔을 모아쥐고
원효 스님이 남기고 간 물을 마셨다.
비 내리는 대비사 공양간에서
나는 작은 도를 깨우쳤다.
할!!!
묵언의 세계에
빗소리만 고요하다.
침묵의 소리.
나는 몸으로 소리를 느낀다.
오감이 나팔꽃처럼 벌어진다.
몸에 작은 소름이 인다.
친근한 영령들이 가까이 있음이다.
대비사 삽살개
-후 기-
대비사 삽살개는 부처님이다.
불성이야 있던 말던.
쇼팽 - 빗방울 전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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