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함백산 너머 가는 길

poll™ 2010. 1. 4. 19:47

 

 

 

 

1330m 만항재

 

 

만항재에 내리는 순간 흰눈에 덮힌 낙엽송 숲에 그만 정신을 빼앗겨 버렸다.

하루키의 소설처럼 젊은 날의 감미롭고 황홀하면서도, 애절한 슬픔이 담긴 이야기가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저 숲 어디엔가 숨어있을것같은

그런 환상이 일었다.

상실과 재생의 상처받지 않은 햇살이

숲 전체에 넘실거렸다.

흰 눈위에 태양이 가득했다.

 

 

 

 

 

역광에 흰눈을 뒤덮어 쓴  숲이 신부의 면사포처럼 눈부시다.

누구에게나 눈부신 추억 하나쯤은 있을것이다.

지금 눈 앞에는 순백의 아름다운 숲이 더할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지만

40년전 내 어머니가 이 정선땅을 처음 방문했을 때는

산더미같은 석탄들이 가득찬 온통 검댕이 투성이의 광산촌이었다.

 

 어머니는 그 때 무슨 까닭으로 이 먼 정선 땅까지 오시게 되셨을까?

 

어머니의 먼 기억 속에는

정암사 적멸보궁 뒤의 수마노탑과

한가롭게 어머니의 고모님과 기찻길을 걸어가다

갑자기 나타난 기차에 혼비백산하여

철길 아래로 재빨리 몸을 날렸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남아있다.

참 옛날 이야기다.

 

 지금은 돈이나 과외의 힘으로 자식의 미래를 채우려 드는 세상이지만

그때는 절에가서 올리는 극진한 기도로

부처님 전에 자식의 장래를 위탁하던 시대였다.

아날로그도 디지탈도 아닌

오로지 정신과 사랑으로 아이들을 보살피던 시대

그 시절의 이야기가 만항재 지나가며 새록 새록 떠오를 줄이야 ...

 

 

 

 

만항재는 우리나라 제일 높은곳에 위치한 재이다.

둘째로 높은 재는 다름아닌 오늘 등반의 날머리격인

싸리재 혹은 두문동재(1268m)이다.

세번째가 지리산 정령치(1172m)인데

제일 높을거라 생각했던 지리산 성삼재는 네번째에도 못낀다.

네번째 높은 고개는 계방산 운두령(1089m)이다.

 

 

 

 

 

 

 

 

헬기장에서 바라 본 함백산 정상은

소박하다못해 허탈하다는 느낌을 받게되지만

그것은 출발지가 이미 1300m라는 사실을 망각한 착시현상이다.

 

어디서 산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감상도 당연히 다르겠지만

소백산이 푸근한 어미의 가슴을 연상시키는데 비해

오늘 내가 오르는 함백산은 누이의 등처럼 따뜻함을 느끼게했다. 

위험을 경계할 필요가 없는 편안함.

그곳이 함백산이다.

 

  

 

 

왜 이런 표정인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겠다.

좋으신 분일 테니까. 

 

 

 

 

 

 

 

 

 

 

 

 

 

 

파란 하늘 아래 사스레 나무의 은빛 수피가 눈부시다.

나는 겨울산의 신갈나무와 사스레나무, 자작나무를 좋아한다.

차가운 겨울날씨에 잘 어울리는 수피이다.

눈부신 고독감.

여행자들의 반려.

짙은 노스텔지아가 녹아있다.

 

 

 

 

 

 

 

 

 

 

 

 

 

 

 

 

 

 

 

 

 

만항재 뒤로 솟은 산이 백운산인지는 잘 몰라도

서북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범상치 않다.

첩첩 산중

산이 산을 넘으며 이어지는 마루금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번뇌 망상처럼 여겨진다.

번뇌를 피해 산을 오르건만

알고자하는 열망은 거칠것 없이 솟아나니

나는  묵묵부답의 산들을 바라보며

날 어쩌랴는듯 서있다.

함백산 서쪽,저 먼 끝에 걸린 산은 또 무슨 산이란 말인가.

 

 

 

 

 

 

 

 

 

 

 

 

 

 

 

 

 

 

 

 태백을 마주보고 서서 태백산을 찾다

아,저산이려니 하고 감탄한 채 스스로로 태백산이라 단정해 버린다.

 

골골이 흰눈을 함초롬이담고 앉아

명산의 근골을 마음껏 자랑한다.

 

만항재에서 수리봉 지나 화방재 태백산 장군봉 부소봉 구룡산 도리개재에 이르는 구간이

백두대간 15구간이라고한다.

 

지금 눈 앞의 제일 높은 봉이 과연 태백산일까

장군봉 태백산 부소봉 문수봉이 죄 1500m급 산인데

어디가 어딘지

바람부는 산위에서 누굴잡아 물어볼 수도 없고

혼자 걷는 산행은 이래서 골아프다.

 

 

 

 

 

산에 오르면 세상이 온통 숙제가 된다. 

그냥 편안히 왔다가면 될일을

산에대한 애착이 남다른 모양이다.

 

찍고,쓰고,찾고,즐기고

산에대한 욕심이라기보다 앎에 대한 집착이 아닐까.

그 미련에 넌저시  다시 한번 태백을 바라본다.

 

유달리 오르고 싶은 산이있다.

그 산이 태백산이다.

가면 틀림없이 알고 오리라.

이산 저산을.

여자를 품은바  없는 숫총각의 호기심으로.

 

 

 

 

 

 

 

 

 

 모르는것을 뒤로한 채 산을 오르는 마음

별 편하지않다.

 

산들은 내 등 뒤에 저렇게 멀겋게  살아있는데

나는 모른다고 하고 만다.

 

이렇게 좋은 조망 아래

이것 저것 다 모른채 산을 오른다는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답답한거야

불확실한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련만

識이 위험하긴해도

不識의 답답함만 못하지않나 싶다.

"이 뭣고."

산을 향한 화두이다.

 

 

 

 

 

 

 

 

 

함백산 꼭대기에서

 왜 이런 자세가 필요한건지

당사자는 알고 있을까.

 

소백산의 정기를 집요하게 흡인하는 그 연유를.

그 앙정맞은 빨대를.

 

 

 

 

바위 끝에 악착같이 바람을 이기며 눈 비늘이 앉았다.

나무에도 눈이 얼어붙어 상고대를 이루었다.

산을 얼어붙게 만든 바람이 내 두귀를, 두뺨을 매섭게 때린다.

여기가 함백산이다.

산을 오르는 이

누가 바람을 두려워하랴!!

찬기운이 등줄을 타고 올라 신명나게 머리위를 돈다.

 바람타는 새 한마리 보이지 않는다.

 

 

 

 

 

 

 

 

중함백 은대봉 금대봉 이어지는 능선이

누님의 등처럼 포근합니다.

 

내 기억 속에는 어머니의 등보다

장독대에서 누이의 등 뒤에 업혀있던 오래된 사진이 먼저 뜨오릅니다.

 

나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사랑은 세상을 긍정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나를 산위에 오르게 한 힘도

이런 사랑에 바탕을 둔 용기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따라 산이 유달리 따뜻합니다.

 

 

 

 

산정에 올라 정상석을 안고 사진 한장 찍어야만 산행이 완성되는 걸까.

언제적 부터 시작된 전통인지 몰라도

너나 할것없이 정상석을 차지하기 위한 자리다툼이 꽤 심각해 보인다.

사진을 찍어

뭘 어쩌겠다는 의미도 없으리라.

 

에베레스트에 우뚝 선것도 아니고 백두산 천지에 태극기를 꽂은것도 아닌데

구태여 정상석에 서서 썩은 미소나 남길 필요가 있을까

참 한가한 발상이다.

 

저 바위 돌이 없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상을 확인하기 위해 산곡대기를 헤맬까.

 

 높은 산꼭대기마다 저 무거운 돌을 올려놓은 이들의 갸륵한 생각과

그 돌을 애인처럼 좋아하며 사진에 담고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산이 사람을 이길수는 없는가 하는 씁쓸한 생각을 해 본다.

 

 

 

 

 

 정상을 빗겨나 태백산을 찾다가

눈앞의 태백산은 놓치고 쓸데도 없는 쇠말뚝만 찍어 간다.

아! 찬찬히 둘러보고 싶었건만

그 용맹한 마루금을.

 

 

 

우측 비단봉 지나 풍력 발전기가 서있는 매봉산 천이봉 너머로 백두대간 16구간 도착지인 피재가 있겠고

더넓은 고랭지 채소밭을 생각하다

동해쪽 푸른 수평선을 바라보니

진한땀 흘려가며 고개를 넘고 능선을 달리는 백두대간 타신분들이 다 부럽다.

나는 병든 내 두다리를 어루만지며

더 나아가야할지 머물러야할지를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비로소 산과 인간 사이에 힘이,용기가  함수로 자리잡은 기분이다.

"천히 오른 산이 좋은 산이다."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로이다.

 

 

 

 

 

 

 

 

바람에 내 몸을 가리고

혹은

숨기고...

 

함백산이 아무리 따뜻한 존재라 하더라도,

산정의 바람을 하잘것 없이 무시한다하더라도

사정없이 콧구멍을 파고드는 칼바람 앞에서는 속수무책.

우선 이 주체할 수 없는 콧물부터 막아야 겠다.

 

 

 

 

 

 

 

중함백 너머 은대봉,금대봉이 보인다.

더문 더문 박힌 주목나무군이 찬바람 맞으며 용케도 잘 살고 있다.

 

어느 봉우리 할것 없이 흙은 돌부리의 상처를 감추고

마치 용서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곱게 덮고 있다.

 

치유의 산이자 용서의 길이다.

마음이 다 너그러워 진다.

산행이 모처럼 편안하다.

 

 

 

 

 산에 대한 불필요한 기대로

산을 제대로 읽거나 보지 못한다는것은 일종의 불행이다.

산은 그냥 산일 뿐이다.

 

이것이 산에대한 나의 가장 담백한 결론이다.

산이란 외자의 단어에는 실로 그만한 힘이있다.

 

본질을 넘어설 수 없는 단호한 힘.

하늘과 땅이 분명한 원색으로 대결할 때

그 의미가 더 명징하다.

 

 

 

 

 

 

고글을 벗자

세상에서 여지껏 보지 못한 강렬한 하늘빛이

흰 나무를 배경으로 걸려있었다.

나는 새로산 크레용으로 푸른 도화지위에 그림을 그리듯

나무를 카메라에 담았다.

크레용이 스민 자국처럼 선들이 살아있다.

마음이 아주 작은 가지 끝에서 조차 빛난다.

 

 

 

 

 산은 따로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다.

 산은 정복이 아니라

자신을 실현하는 그 자체이며 세상을 헤쳐가는 방편이다.

靈의 계단을 오르는 장엄함이며 아름다움이요

삶의 턱을 넘어서게 하는 미소이다.

미소가 아름다운 산님.

 

 

 

 

 

 

 

 

 

 

매봉산 천의봉 능선 위에

바람을 맞으며 하얀 발전기가 서 있다.

가보지 않아도 바람의 언덕일성 싶다.

바람이 끊이지 않는곳.

 

바람에 정령의 이미지를 심어 준 이는 누구일까

매운 바람을 이기며 걷는 동안

나는 그 정령들의 속삭임 만으로도 머리속이 맑아진 기분이다.

 

푸른 하늘빛 옷소매 사이로

바람이 들어 온다.

 바람은 천지를 움직이는 기운이다.

문득 그 기운이 커다란 그리움으로 자리잡아

나의 가장 근적인것

내가 나서 돌아가는 그 근본의 존재를 자각하게한다.

 

발 아래 밟히는 눈이,

흙이 다 내몸이요 피다.

나의 근본이다.

 

 

 

 

 저 시야 끝에 두터운 개스층을 뚫고 솟아오른 산봉우리에 유달리 마음이 간다.

무슨 산일까?

익명의 섬처럼 붓끝에서 뚝떨어진 먹물같은 경건함이 느껴진다.

두타산과 청옥산

내가 아는 함백 이북의 몇 안되는 강원도 산들을 떠올린다.

 

눈아래 설화들이 월광에 젖은 배꽃처럼 눈부시다.

얼마나 평화로운 풍경인가.

거친 숨 죽여가며 모처럼 평정심을 가져본다.

세상 그 누군들 스스로를 아름답게 할 권리쯤은 있는 법이니까.

 

 

 

 

 

몸과 마음의 평안을 얻는 일은

부처님의 法印說  속에 다 씌여있다하지만

나는 몸을 죽여가며 평안을 얻고자한다.

 

몸을 괴롭히며 세상을 주유하는 동안

내 마음은 배처럼 가볍고

바람처럼 자유롭다.

그러기에 삶이 꼭 평안과 풍요만을 위한것이라 할수도 없을것 같다.

세상 먼지를 떨구어내고

가장 나다워 지는 길이 오로지 내 평정심을 닦는 길이다.

산을 걷는 그 길이다.

 

 

 

 

흰 눈밭에 두문동재 남은 거리를 알리는 표지판이

촛불처럼 명료하다.

 

어디 깨어 있지 않는 촛불이 있겠는가.

세상은 이렇게 분명한 법이거늘

마음이 행위를 짓고 인연을 만들어 과보를 만들어내니

삶은 늘 고단하고 힘들 수 밖에.

 

이 길을 지나가는자.

모쪼록 생각의 껍질 하나쯤

버리고 갈지어다.

 

 

 

 

은대봉 표지석이 무거워 대리석 받침대로 받치고

그 받침대 마저 할일없는 저녁그림자가 받치고 있다.

대간의 무게인가 보다.

 

 

 

 

 마침내 싸리재 너머 우뚝 솟은 금대봉이 한눈에 들어 왔다.

아니 우뚝 솟았다는 표현은 좀 지나치다.

오히려 헨리무어의 조각처럼 모난데 없이 평화롭다.

 

거대한 인내와 깊이를 알수 없는 완고한 역사성이 얼비친다.

이것이야말로  이 땅의이요 대지의 이다.

 

금대봉지나 쭉 이어지는 길이 대간길이다.

그 너머로 한강물이 발원하는 검룡소가 있을것이고

동해의 매서운 바닷바람에 비늘을 고추새운 용처럼

태백의 준령들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대간 타시는 분들은 산맥이란 단어에 몹시 거부감을 가지신다)

 

머리속에 용기와 희망,

그리고 그것이 뒤섞인 묘한 갈망이 목마르게 솟아난다.

나아가고 싶다.

더 멀리 나아가 더 새로운 나를 만나고 싶다.

 

산들이 우우 소리를 지르며 일어난다.

고양된 내가 어디론가 시원스레 날아간다.

 

 

 

 

- 후 기-

 

진실에 목말라하던 80년대.

성공에 매달렸던 90년대.

그리고 비로소 내 삶에 물음을 던졌던 대망의 2000년대.

 

바야흐로 새로운 한 시대가 시작되었다.

나는 무슨 아젠다를 들고 또 한 시대와 씨름하게 될까.

산은 나에게 많은 물음을 주었지만

답을 주지는 않았다.

답이 없는 세상.

그 깊은 寂滅.

산은 결국 내 영원한 화두인 셈이다.

 

 

 



English Chamber Orchestra

Conducted by Jeffrey Tate

Barbara Hendri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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