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머리 의재 미술관
나는 세상을 누르지 않는 건축물을 사랑한다.
같은 장소라도 계절의 변화에 따라 공간은 다양하게 모습을 달리하며,
우리의 삶 또한 시간과 목적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지만
인간과 자연이 균등하게 그 유동성을 채워가는
나지막한 속삭임이야 말로
건축가가 견지해야할 마음의 자세가 아닐까.
의제 미술관을 바람의 속도로 스쳐 지나가다
아쉬움에 얼른 한장 담아본다.
무등산 만큼이나 편안한 외관이다.
나이브한 콘크리트 외벽, 외벽을 대신한 시원한 유리창,
특히 대나무로 만든 벽 상층부의 은근한 조화가 묘하게 마음을 끈다.
당산 나무
나무
겨울 나목
삶의 마티에르
박수근
당산 나무 지나가며 떠 올린 이름이다.
말을 걸고 싶은 담담한 겨울 풍경이 회색 하늘을 배경으로 문득 서 있다.
불의 전차처럼 나를 내몰던 시간도 잠시 멈춰
빈 가지에 깊은 숨 한조각 걸어두기를 겨우 허락한다.
굵은 기품을 지닌 당산나무.
나무는 그 자체로 민초의 역사이다.
멀리 뻗은 가지에서 그 힘을 느낀다.
여기는 광주 땅이다.
서인봉 ?
서인봉이라 여기며 길을 지난다.
지난주에 올랐던 함백산이야 만항재 1300m고지에서 오르는 산이었지만
무등산은 거의 평지에서 오르는 산인데도
그리 힘든 경사길이 없어서인지
속보로 오르는 산행임에도 불구하고
별 부담이 되지 않는다.
심장을 대신해 두껍게 겹쳐입은 등산복 때문인지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몰골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다
일행에게 절대 내 모습을 찍지말라고 당부하고
모자는 주머니에 쑤셔넣은 채 산에 오른다.
이것만으로도 좀 살것 같다.
중머리 재에서
산행에는 누구나 다 한가지씩 목적이 있겠으나
정치적 산행이라 이름붙이고 나니
왠지 산행이 지니는 최소한의 신성마져 무시 당하는 기분이다.
중머리재는 이곳 저곳에서 온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숨 한번 돌릴 겨를도없이 장불재로 직행한다.
카메라의 좋은 점 하나는 풍경을 당겨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아이맥스 영화를 보듯 풍경을 코 앞에 당겨서 감상하는 재미랄까.
풍경과 그림.
어느것을 더 우위에 두느냐는 우문에 가까운 질문이지만
우리는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이란 말은 별 저항없이 사용하고 있다.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
겨울산 하나를 두고 왠 호들갑이냐 싶겠지만
내가 겨울 설산을 사랑하는 분명한 이유 중에 하나에는
이렇게 먹빛으로 강한 테두리를 하고 있는 한국의 산하를 감상하는 재미도 포함되어있다.
얼마나 강렬한 선인가!
산을 바라보는 시선이 입체를 너머
유영국의 풍경화처럼 하나의 면과 색깔로 점차 단순해 지다
눈과 나무가 이루는 거친 질감을
마침내 루오나 이중섭풍의 강하고 두터운 외연이 감쌀 때
나는 한국에서 건너가 일본의 보물이 된
막사발을 두손으로 감싸 안는 기분이 된다.
참으로 건강하고 겸손한 질박함이다.
이 땅의 아름다움의 근간이다.
나는 이 다음에 만약 산을 그리게 되면
반드시 붓에 물감을 가득 묻혀
이처럼 강하고 묘한 테두리를 가진 산을 그리리라.
그 날이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오윤의 목판화처럼
이 땅을 쩌렁 쩌렁 호령하는 그 기상, 그 기백을
무등산 오르며 담아 간다.
장불재 가는 숲길
장불재 오르는 길에서 마침내 온전한 눈의 세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온통 백설로 뒤 덮힌 세계.
서로가 서로를 모른다고하는
이 순백의 속삭임.
겨우 비껴 선 나무들 사이로
사람들이 언어처럼 흐르는 눈의 터널.
나는 마치 빵부스러기 쪼아먹는 새처럼
아름다운 나무 숲을 하나 하나 조심스레 밟아가며
산을 오릅니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정결한 산행입니다.
두개의 색이 선을 이루며 만드는 풍경
아주 오래된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다.
야나첵의 "잡초가 우거진 오솔길에서" 그 곡이 있었다면 좋겠다.
시간은 잠시 벗어 두었다.
이런 길은 늦게 걸을수록 제 맛이지 않은가.
무언가를 하나 둘 떨구면서 걷는길.
생각해보니 떨어지는건 내 진한 땀방울 뿐이다.
새로울 것도 아쉬울것도 없는 길이지만
그래도 오늘만은 이 길이 긴 길었으면 좋겠다.
몸과 마음이 한결 가볍다.
중봉과 입석대 가는 갈림길
입석대 배경으로
장불재 900m
입석대가 마침내 눈 앞에 다가왔다.
산정 가까이 토르(Tor)야 금정산 고당봉이나 비슬산 대견사지 근처에서도 자주 보아온 터이지만
주상절리가 왕관을 둘러쓴듯 위용을 부리는 산은 처음이다.
상고대 사이로 솟아있는 각진 바위의 위용이 범상치 않다.
저 갈색의 참나무 이파리 몇장 없었으면 영락없이 흑백 사진이 될뻔했다.
순백의 상고대 위로 검은색의 현무암이 마치 일으켜 세워놓은 선돌처럼 종교적이다.
스톤헨지나 고대 로마의 유적지를 보는것 같다
돌의 웅장함이 만개한 눈꽃을 압도한다.
산정을 누르는 침묵의 무게가 느껴진다.
입석대 1017m
자연현상의 경이로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이 하나의 현상으로 설명어질 때는 맥이 빠진다.
그냥 신비한 채,전설로 포장된채 남아 있을 수는 없을까.
주상절리란 지질학적 용어보다
옛날 오십원짜리 지폐에 그려져 있었던 해금강 총석정이 머리에 먼저 떠오른다.
무등산 산정이 가까와 질수록 풍경에 경이를 더한다.
비록 평소보다 속보로 오르기는 했지만 풍경에 취한 나머지
풍경을 설명할 어휘가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어휘란 다만 한가지 상황만을 설명할 따름으로
산과 나의 관계에 바탕을 둔 마음의 일부분을 옅보게하는 수단일뿐
산을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들여 산에 오르는지를 어떻게 스스로 설명한단 말인가.
한 사람이 산에 오르는 이유는 그리 쉽게 설명 될수 없다라는게
산을 오르며 터득한 결론이다.
빛이 일곱가지의 스팩트럼으로 이루어지듯
많은 경험들이 엮어져 산에대한 감각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여기에 명상이 담길 때 비로소 산에 대한 아름다움도 완성되는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나의 언어로 표현된 산과 나의 문답이
타인에게 온전히 다 전달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가능을 넘어선 강요이다.
다만 어느 한 부분이 낡은 창고에 스며든 빛처럼
공감을 자아내고 내면에 잠재된 그 무엇인가를
끌어내는 작은 수단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나에게는 산은 그런것이다.
내면으로 스며드는 빛.
서석대가 보인다.
산정이 가까와 졌으나 희안하게도 오늘은 바람 한점 없는 날씨다.
비록 바람이 불지 않아도 탁 트인 조망이라도 있으면 마음이 시원할터인데
하늘은 싸구려 벽지같은 단조로운 얼굴이다.
주춤거림없이 사람들이 나아간다.
산정으로 산의 기운이 모아지듯 사람들의 기운또한 넘쳐난다.
윤동기처럼 힘차다.
눈아래 아득한 장불재
무등산 정상은 접근 금지(1187m)
통제구역
이 땅에 오를수 없는 정상이 하루 빨리 없어지기를....
나아가고 또 나아간다.
나아갈수록 내 모습들이 마치 요술을하듯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집요한 욕망
골똘할 필요도 없는 염두
애욕
나는 눈에서 벗어나듯
이런 해묵은 잡념들을 하나씩 떨구어낸다.
이즈음에는
한 줄기 보사노바풍의 바람이라도 나를 해석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한겨울 산 꼭대기에서 바람을 다 기다릴줄이야...
아무리 봐도 석빙고 아이스케키 같은데...
명산은 숨이 차다.
무등산 최고봉은 구름에 가려보이지 않고
견줄바 없는 산 위를
사람들은 탑돌이 하듯 빙빙 돌고 있다.
산정에 오르면 대게 산을 넘어 가던 길을 가는것이 일반적인데
서석대에 오른 사람들은 마치 산꼭대기를 끼고 돌고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無等等한 大圓鏡智야 어짜피 도달할수 없는 피안이라 하더라도
시무상주(是無上呪) 시무등등주(是無等等呪)
반야심경 일구쯤이야 읊으며 지나간다.
달밤에 홀로 서서 루빈스타인의 멜로디나
쇼팽의 녹턴을 듣고 있는듯한 느낌.
어디서나 쉽게 느낄 수 있는 기분은 아닐터인데
분위기가 너무도 음악적이다.
산을 내려선다는것은 언제나 아쉽다.
언제 다시 눈덮인 무등산을 다시 찾게 될까.
팔짱을 낀채 볼 수 있는한 제일 먼 곳을 바라본다.
보이지 않는 곳에 대한 그리움일까.
아니면 이미 스쳐지나간 풍경마저 이미 그리움이 되어버린탓일까
모슬린보다 가벼운 상념이 음악처럼 밀려 온다.
온 산이 차라리 印象적이다.
배낭에 카메라를 집어넣고 더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자던 박원장님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풍경에 미련을 못버렸던 내가
기어이 한 풍경을 담아낸다.
이우환의 모노하를 연상시키는 작은 풍경이다.
나무와 눈과 풀과 바위
세상은 어떻게 관계를 이루며 어울려야하는가를 보여 주는듯하다
내가 찍은 사진을 내가 설명한다는게 민망하지만
마치 원산부두에서 피난민을 싣는 마음으로
담아 본 사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혹은 관계
아무 멋대가리가 없는 산불감시 초소이지만
말라버린 풀과 흰눈 사이에서
이 순간만은 당당해 보인다.
- 후 기-
후기에 아무리 솔직한 마음을 담아 본다하여도,
또 아무리 적확한 어휘를 골라 산을 묘사 한다하여도
후기란 현재 남아 있는 기억을 재구성한 허구이다.
그래서 후기에 나타난 글은 산의 산이 아니라
나의 산이 되는것이다.
산길을 포행하며
흡족하면 웃고 힘들면 찡그리는것이 나의 면모이다.
산행을 마친 후
아난존자의 如是我聞(나는 이렇게 들었다)처럼
나도 그저 如是我見(나는 이렇게 보았다)에 족할 날이 언제일까.
Melody in F, O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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