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조계산 - 아타카를 위한 라르고

poll™ 2010. 4. 13. 14:25

 

 

 

 

 

지금은 물처럼 흘러간 지난 세월 이야기지만

2007년은 나에게 지독한 한해였다.

 

느닷없이 찾아 온 말초신경염이 내 두다리를 괴롭혔다.

 

직업 특성상 하루 종일 앉아있어야 하는 나는

설명하기 힘든 두 다리의 통증과

그 통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복용해야하는

고용량 뉴론틴으로 인해

깊은 우울증에 빠진 환자처럼 하루 하루를 보내야했다. 

 

 

 

 

2007년 11월 12일

 

이 날은 내가 속해 있는 산악회에서 조계산 산행을 한 날이다.

물론 그때 형편으로는 산악회에 가입할 처지는 아니었고

지인을 따라 편안마음으로 산악회에 얹혀간것이다.

 

다리가 아파 걸을 수 없었던 나는

절 구경이나할 목적으로 이들을 따라 나섰다.

 

가을이 무르익은 고찰

그 스산함이 뼈속 깊이 사무치게 파고들며 만들어낸 차분함은

내가 그 때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놀라운 평정심을 가지게했다.

 

마음이 가을빛처럼 맑아졌다.

세상에 기대었던 염치없는 위로도 더 이상 필요할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잃어버렸던 내 자신을 다시 찾았다는것이다.

 

나는 세상을 향해 나아갈 마음을 먹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희망이 곧 길이었던 셈이다.

 

 

 

 

 

승선교

 

선암사 승선교는 보물제 200호로 지정될만큼 빼어난 예술미를 자랑한다.

숙종 38년에  호암대사가 무려 6년에 걸쳐 완성한 다리라는데

광안대교 공사기간이 8년 8개월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당시로서는 대단한 역사였던 모양이다. 

 

홍교 아래 배꼽처럼 튀어 나온 용머리를

공하 또는 범공이라하는데

계곡물을 따라 들어오는 사악한 기운을 용을 통해 물리치는 의미가 담겨있다.

 

홍예 너머로 강선루가 보인다.

강선루에 내려온 신선이 승선교에서 신선이 되어 올랐다는 전설의 선암사.

신선들이 가고 없는 절에 사람들이 신선 놀음을 한다.

 

 

 

 

삼인당(三印塘)

 

긴 타원의 연못 안에 섬이 하나 떠있는 양식이다.

삼인이란 불가에서 무상 무아 고를 총칭하는것으로

불교의 중심사상이다.

 

삼인당의

 흐르는 물처럼 세상은 변하는것이리라.

 

변화하는 모든것은 또한 괴로운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變滅하는것.

그속에 영원한 자아는 없다.

 

 마음을 누르는 거대한 인장처럼

그렇게 섬 하나 떠 있다.

 

 

 

 

 

 

 편액이 걸린것으로 봐서는 일주문인듯 싶다.

 1824년 순조 24년에 비로소 조계산 선암사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일주문 뒷편에는 무언가 아쉬워서인지 옛이름인

고천량산 해천사 라는 편액이 남아있다.

 

火魔에 끊임없이 시달린 선암사는

1761년 영조 무렵에는 천량산 해천사라 불리웠던 모양이다.

 

선암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백제 성왕 7년 아도화상이 창건하여 청량산 해천사라 하였다는 설과

신라 헌강왕 때 아도 하상이 창건하여 선암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후 여러차례 화난을 당하여 화재를 예방하는 의미로 순조 19년인 1819년 청량산 해천사라 고쳐 불렀다가

순조 23년 다시 화재로 전각이 소실되니

6차 중창 불사를 하며 조계산 선암사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사찰구조인 자 구조이다.

좌우로 선방과 요사가 위치하고

전면에 강원인 만세루가 위치한다.

 

대웅전 앞 쌍탑은

삼층탑으로 전형적인 신라 중기 이후의 전통 양식을 잘 유지하고 있다.

 

모양이 호방하고 안정적이다.

통일신라 후기에 볼 수 있는 장식성이나 캘빈클라인을 연상케하는 중성적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절집 뒤란에서 소리없이 지는 꽃잎을 좋아한다.

선운사 동백꽃이 그렇고 선암사 뒤란의 선암매가 그렇다.

 

꽃은 떨어지며 비로소 動的인 존재가 된다.

동백꽃은 동백꽃인 채

매화는 매화인 채

그 꽃잎의 작은 그늘에

그들의 향기를 담아낸다.

 

거룩한 죽음이다.

거룩하지 않는 꽃들의 죽음은 없다.

 

정물의 허무를 몸소 깨트리고

마침내 몸으로 우는....

이 거룩한 각성.

 

  

 

 

선암사의 절집과 담이 주는 오묘한 공간해석은

비단 사람과 자연을 이어주는 스님들의 거처 이상의 것이다.

 

하나의 세상과 세상을 구획한 담은 각각의 세계를 구체화한 블록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구획된 벽들은 세계를 격리하는 담이 아니라

때로는 뚫리고 때로는 막혀

길을 통해 마을이 이어지듯

다이나믹하게 전개되는

일종의 리듬같은 느낌을 준다.

 

 

 

 

 

 선암사는 1970년 창종된 태고종의 본산임에도 사찰의 재산은 조계종것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이승만 대통령시절 사찰정화유시로 시발된 대처승과 비구승의 반목으로 유발된것인데

아직까지 재산 분규의 결말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리 사찰의 재정이 넉넉해도 함부로 건축물을 건드릴 수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복잡함이

 오늘날 선암사를 고졸한 산사의 멋을 잘 유지하도록 해준 바탕이 된것이다.

 

 

 

 

 

 

 

 선암사 경내에서 느끼는 또 하나의 놀라움은

작은 전각 하나 하나가  독립된 공간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마치 하나의 마을에 여러 가구들이 옹기종기 모인것처럼

개개의 전각이 유니크한 공간으로서의 독립성을 충실히 구현해 낸다는것이다.

 

이 공간과 공간을 이어 주는 길 또한 예사롭지가 않다.

어느 한구석 인간적인 배려나 여유가 미치지 아니한 공간이 없다는것은

마당에  배치된 나무들의 수종을 보더라도 능히 짐작 할수 있다.

 

 

 

 

 

 

올해 봄은 느리게 흘러 좋다.

아쉬운듯 선암매는 노목에 향기를 걸어놓고,

 

천수경을 읊는듯한 노란 산수유 위로

비로소 벚나무의 살색꽃들이 우뚝하다.

 

나는 이리 고운 꽃나무들의 조화로움 아래에서

마치 세월에 기대어 선듯 한동안 발길을 떼어놓지 못한다.

 

아내와 함께 온것은 잘한 일이다.

아니 누구라도 같이 있는것조차 즐거운 일이다.

 

이 고요한 화합의 아름다움.

천지의  은혜로움이 내 머리 위에서 분명히 내리고 있다.

 

 

 

 

 

 

 

 

 

 

처진 올벚나무

능수 벚나무

처진개벚

수양벚꽃

 

처진 올벚나무가 정식 이름이란다.

 

 

 

 

 

 

 

 

 

 

처진 올벚나무 아래 작은 연못을 만들 줄 안

조상들의 혜안에 머리를 조아리지 않을 수 없다.

 

벚나무 아래 연못에는 차라리 눈물이 고인듯하다.

수양 버들이 봄날의 수심을 적시듯

하늘거리며 꽃잎을 눈물처럼 떨구는

오! 이 화사한 슬픔의 봄이여!

세월의 무상함이여!!

 

 

 

 

 선암사 뒷간이야 광고에도 나올 정도로 워낙 유명해

설명이 필요없지만

근엄하고도 부드러운 사자상의 풍판만은

차라리 해학적이라 할만큼

인간적 배려가 충실하다.

 

 

 

 

 

 

 

 

 

좋은 벗을 찾아 마음의 가시덤불을 베어버리란

자경문의 말씀처럼

장해가 없는 길을 벗들과 걷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의 길이 할짝 트이면

이런 길을 뚫린 문이라 일컫는 모양입니다.

 

길을 걷되

문을 들어서는 기분.

이것이 조계산 초입에 드는 느낌입니다.

 

 

 

 

 

 

 

 

 

 

 

 

 

 

 

 

 

산자고 

 

 

 

 

 

 

문원장님이 몇번이고 가르쳐 준 산자고의 이름이 하도 생각나지않아

더 이상 물어보기도 창피스러울 지경이 되었다.

노래방에서 가사를 보지 않으면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것처럼

나는 이미 컴퓨터에 너무 내 기억을 의존하나보다.

 

이 요사스런 건망증이 해결된것은 그날 저녘

외삼촌이 치매가 온것같다는 근심이 가득한 전화를 받고 있을 무렵이었다.

통화 중 기억의 한편에서 산자고가 피어나듯

꽃이름이 슬며시 다시 생각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터이지만

기억이 되살아난 시점이 어째 그렇다.

 

 

 

 

 

 

 

 

 

 

 

 

 

 

 

 

 

이런 따사로운 풍경 속에 놓이면

누구던 종교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구원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종교란 성인의 가르침을 통해

삶을 개선해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박하고도 아름다운 공간에 들면

 종교적 구원이 다 무슨 소용일까.

 

고향이 느껴진다.

내가 다신교적 신앙관을 가지것은 아니지만

세상이 다 종교요 구원같다.

세상을 통해 구원받을 만한 곳은 역시

고향만 한곳이 없다.

 

 

 

 

 

 

 

 

 

 

 

 

 

 

 

 

 

 

 

 

 

봄꽃 길을 걷는다.

그림자를 쓸듯

쓸어도 쓸어도 지침없는 꽃길이다.

 

저마다 한껏 고운 자태를 자랑하며

발걸음을 잡는다.

 

우주의 맥박처럼

꽃을 담는 내 심장이 뛴다.

길게 한숨을 쉰다.

 

 

 

 

 

 

 

 

 

 

 

 

 

 

 

 

 

 

 

 

 

 

 

 길이 곧 바라밀이다.

모순과 갈등으로 뒤얽힌 일상에서 벗어나

고뇌가 없는 세상에 도달하는것.

到彼岸

經도 버리고 論도 버리고

 오직 빈 마음이 되는 일.

그렇게 걷고 싶다.

 

 

 

 

 

 

 

 

 

 

 

 

 

 

 

 

 

 

 

 

 

 

 

 

 

 

 

 

 

 

보리밥집이 산행의 정점에 놓이는 일은 더물다.

한눈에 봐도 먹음직스럽기는 하다.

이런 밥상을 받으며 쉰다는것이야 말로

산행 중의 호사가 아닐까.

 

 

 

 

 

 

 

 

 

 

 

 

 

 

 

 

 

 

 

 

 

 

 

 

 

 

 

 

 큰괭이눈

 

 

 

 

 

꿩의 바람꽃 

 

 

 

 

 

 

 

 

 

 

 

 

 현호색

 

 

 

 

 

 개별꽃

 

 

 

 

 

 

 

 

 

 

 

 

그 가을날 나는 여기에 서서 조계산을 내려 오는 일행을

목빠지게 기다렸다.

 

마치 변할 수 없는 운명처럼 되어버린 풍경 앞에 또 카메라를 가져간다.

 

아직 온전치 않은 다리지만

그동안 나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병마를 딛고 일어선 내 두다리에

자부심을 느낀다.

 

고통은 단지 고통이다.

모든것은 지나간다.

 

 

 

 

 아껴 마시는 커피처럼 가을을 한모금 마신다.

산은 단풍의 사태로

가을이 흘러 넘치는듯 한데

나는 조바심에 두손을 모은다.

 

한 무더기의 잎이 진다. 

잎들은 떨어 지면서도

흔들린다.

흔들리지않고 떨어지는 잎은 없다.

세상사가 다 자연을 닮나보다.

가을이 떠나가야 할 시간을 재촉한다.

 

 

 

 

송광사의 들녘은 아무래도 가을이 제격인가 싶다.

선암사의 봄이 선암사를 살려내듯

송광사 뒤란은 가을에야 더 깊고 아름답다.

저녁이 가까와진  봄의 들이 옛모습을 잃고 투박하며 건강해 보인다.

 

 

 

 

 

 

 

 

 

 

가슴을 파고 드는 실존의 바람은 여전하다.

이미 지난 날의 슬픔은 없다.

길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그날의 긴 오후의 행적들이

청죽의 그늘에 남아

마음의 고요를 잠시 흔들어 놓을 따름이다.

 

 

 

 

 

 

 

 

 

 

 

 

 

 

 

송광사는 평지 사찰로 멀리서 보면 한송이 꽃과 같이

소담스럽다.

 

그 꽃을 연꽃이라 부르면 연꽃이요

모란이라 부르면 모란일터이다.

 

이 한송이 꽃과 같은 사역을 신평천이 부드럽게 감싼다.

송광사 일주문에서 절에 이르는 길은 당항스러울 만치 짧지만

침계루와 능허교 우화각에 이르는

아름다움을 접하다보면

이미 절을 다 돌아본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송광사의 전각이나 요사채에 마음이 별 가지 않는다.

그러나 비록

선암사와 달리 전각이 이루는 개별적 독립성은 두드러지지 않으나

절 전체가 이루는 조화는

마치 겹꽃이 주는 아름다움처럼 알차다.

 

 

 

 

 

 

 

 

 

 

 

 

 

 

 

 

능허교 위에 문루를 얹어 만든 우화각은 송광사 건축의 백미다.

소동파의 적벽가에 나오는 羽化而登仙에서 딴 이름으로

몸을 가볍게하여 불국에 이르라는 의미일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은근한 계곡물에 비치는 다리와 고목의 풍광에 젖다보면

불국이 따로 있는것이 아니라

내 발 아래,내 마음이 곧 불국임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신평천을 따라 길게 배치된 침계루

 

수평과 수직,확연히 대비되는 적과 청의 아름다움이

길게 흐르는 개천과 어울려

직선적 세련미를 만들어 낸다.

 

건축이란 자고로 이런것이다라는 전범을 보여준다.

이런것이 어울림이다.

 

넘치거나 위압적이지 않는 조화.

하산 첫머리에서 만나는 걸작이다.

 

 

 

 

 

 능허교

 

능허교 다리 아래에는 엽전 세닢이 달려 있다는데 나는 보지 못했다.

 

 욕심의 존재는

능허교

다리 아래 흐르는 물처럼

중단없는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다리 아래에는 욕심에 찬 내 모습은 비춰지지 않았다.

 

돈오가 점수의 편이다.

 

 

 

 

 

송광사의 전각들을 아직 사진에 담고 싶진 않다.

세월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담장과 담장을 넘어 넉넉하게 솟아오른 고목들을 보며

 나무들의 연륜에 의해  절집의 역사성이 좀 더 살아난 느낌을 받게된다.

 

오래된 정원들은 그 자체로도 빛나지만

그 어울림을 돋보이게하는 나무와 같은 정물이 존재해야

아름다움이 더 배가된다.

 

 

 

 

 

 

담장이 봄빛으로 둘러싸였다.

담이 정물로서의 역할보다는 오히려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느껴진다.

건축에 체온이 있다는 말은 이런 느낌일까

그대로 봄인 것이다.

살아 있는듯 끊임없이 생멸을 거듭하는 건축.

한국 건축의 아름다움이자 자랑이다.

 

 

 

 고요히 물을 담는 물확

 

 

 

 

 

 

명자나무,삼지 닥나무로 멋지게 장식된 담장 

 

 

 

 

 

 

 

 

 

 

 

 

 

 

 

 

나무를 곁에둔 건축물을 두고

나는 정물과 풍경 차이를 고민하게된다.

 

나는 풍경을 시각에 잡힌 모든 정물들의 총화라 어쭙잖게 생각하고 있다.

정물의 소재를 의미하는 바니타스는

vanity즉 인생의 무상함이나 허무에서 나온 말이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담장과

꽃잎이 피고 지는 산수유 나무.

죽음의 불가피성이나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기에 충분하다.

다시말해 정물로서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정지된 모든것은  다 허무하다.

 

바람이 불자 마침표를 찍듯

꽃잎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송광사에서 무상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

꽃잎처럼 흔들리는 나를

다만 붙들고 싶을 뿐..

 

 

 

 

 

 

 송광사 해우소

 

 

 

 

 

 

 

 

 

 

 

 

 

 

 

 

 

 

 

 

 

 

 

 

 

 

 산행을 다녀 온 후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무수히 하게된다.

 

한번의 산행이 마치 한권의 자기 계발서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정작 나는 변했는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한방울의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나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없이 되풀이 하는 이 심리적 옹알이를

언제쯤 그치게 될까.

 

내가 나이기때문에 꼭 나다와야한다는

이 바보 같은 명제를

나는 송광사 절마당 어딘가에 버리고 왔다.

 

 

 

 

 

 

 

 

 

 

 

 

 

 

 

 

 

주암호 

 

 

 

- 후 기 -

 

아타카란 음악 용어가 있다.

속도를 변화시키거나 하나의 악장 끝에 다음 악장이 계속될 때 

극히 짧은 쉼표만 허용 할 뿐

쉬임없이 연주하라는 뜻이다.

 

선암사에서 송광사에 이르는 낮은 산을 고요히 넘어오며

나는 Attacca를 떠올린다.

 

시간의 흐름이 기사본말체의 역사서처럼

사건과 사건 사이를 이어주듯

나는 견고한 두개의 대립 사이를 쉬임없이 지나 온 것이다.

 

만산을 물들인 진달래의 흐드러짐은 보지를 못했으나

온 몸이 꼭두서니에 담긴것처럼

붉디 붉다.

 

아름답다는것은 이렇게 물든 기분을 말하나 보다.

더 이상 대립은 의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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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Lar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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