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머리 우암 저수지
초록의 은근한 농담(濃淡)이 비로소 봄을 느끼게 합니다.
온 몸으로 봄이 다가올 때 봄은 비로소 봄인것입니다.
맑고 청명한 날
호수에는 물빛이 가득하고
바람에 스며드는 연분홍 산벚나무의 속삭임처럼
봄은 낯 익은 곳에서 발견되는 새로움입니다.
희망입니다.
작성산(까치성산 848m)은 금수산 북단에 위치하며
충북 제천시 성내리와 포전리에 걸쳐 위치하며
인접한 동산과 어울려 아름다운 산세를 자랑한다.
SBS세트장
이런 소품들은 산길을 걷는 이들에게 작은 재미를 제공해 줄지 모르나
지금 전국에서 자행 되는 이런류의 건축을 나는 반대한다.
대중을 위한 방송의 이름으로라도
자연 훼손을 용인해서는 안된다.
무암 계곡
상수리 나무의 연한 새잎 우덤지에 어울려
신생의 산벚나무 연분홍 꽃빛이 아름답기 그지 없다.
껍질을 찢고 푸르게 돋아나는
저 자연의 용기.
죽음의 빛깔들을 생명의 빛으로 바꾸는 저 외침.
세상을 갈아엎을 그 어마어마한 힘이
발 아래에 나지막이 흐른다.
멀리 배바위가 보인다.
무암이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무암은 날씨가 좋은 날보다 운무가 낀 날 더 또렷이 보인다하여 무암이라 하였다한다.
이 배바위야 말로 한국의 대표적인 산악인 허영호를 산의 세상으로 이끈 바위다.
어떤 스님은 저 바위를 보고 지계의 덧없음을 깨닫았으며
어떤이는 저 바위를 통해 더욱 또렷이 다가온 산의 모습을 보았다.
허영호가 무암을 바라보며
어쩌면 저럴수가하는 탄식을 내려놓는 순간
그는 이미 산쟁이의 운면 속에 가두어져버렸다.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고
산길을 걷는것은 산에 놓여진것,산을 구성하는것들과
말을 건다는것이다.
바쁜 일상에 쫒겨 소원했던
천지 만물과의 소통을 비로소 시작하는것이다.
물론 말이 오고가는것은 아니다.
자연과 소통하는 대화는
말 이전의 언어이다.
물빛 이전의 물빛이요
사랑 저 너머의 사랑이다.
不立文字요
直旨人心이다.
말과 언어의 세계가 아니다.
사리탑과 소부도
의상대사가 무암사를 창건할 때 주인없는 소가 일손을 도왔다는데
나중에 소가 죽어 화장을 해 주었더니 사리가 나와 사리탑을 세웠다
이것이 바로 그 소부도이다.
소뿔바위
배바위
산행 코스
성내리-무암사-작성산 표지판-까치성산 표지판-새목재
-동산-다시 새목재-중봉-성봉-남근석-무암사-성내리
작성산 산행은 된 비알 만큼이나 단조롭다.
동산쪽을 조망하는 재미마저 없다면 마냥 단순한 산이다,
산정에 올라도
뱃속 묵은 탄성을 뽑아 올릴 만한 조망처 하나 없다.
-증명 사진 전부 생략-
중봉 케룬
동산-새목재를 지나 단숨에 중봉에 오른다.
한가한 이들이 몇몇 모여 여유를 즐긴다.
금수산이 가까이 보인다.
오렌지 몇조각 먹고
갈 길을 서둘리 간다.
고행의 극점에 오른 뒤에야
그 덧없음을 깨닫는것처럼
사력을 다해 오른 동산 꼭대기는
허허롭기 짝이없다.
세상이 원래부터 비어있었다는 듯이.
그 빈 마음을 채워주기라도 하려는듯
성봉 지나
남근석 내려가는 길은 오히려
멋진 조망으로 가득하다.
동산 산행의 백미가 이 짧은 코스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멀리 버선바위와 장군바위 (사진 중앙)
청풍호 너머 보여야할 월악산은 개스층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봄산에 화색이 돌면
건넌 산은 몸을 숨긴다.
위험한 길을 마음 졸이며
나는 애써 산줄금을 타고 넘는다.
희망이 과장되지도 않았지만
절망으로 움추려 들지도 않았다.
나는 다만 봄빛 속에 서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날의 빛은 예사 빛과는 달리
긴 겨울을 묵묵히 견디어 온
말할 수 없는 차분함이 스며있었다.
마치 나도 꼭 그렇게 살아야 할것만같은
묵언의 아포리즘이.
멀리 무암사가 보이고
로프를 거듭 타며
극심한 비탈길을 내려간다.
기운 잃은 개똥지빠귀를 둥지로 데려다 줄수 있다면
인생을 결코 헛되이 산것이 아니라는
에밀리 디킨슨의 말처럼
나는 지금 기운 잃은 나의 몸을
어딘가에 있을 둥지 위로 옮겨 놓고 있다.
한 인생을 달래 줄만한
위로의 말 한마디도
내 가슴의 상처를 치유할 그 어떤 답도 가지지 못한다.
나는 다만 숨을 쉬고 있을 뿐이다.
그 숨조차 거칠다.
거친 숨을 이겨 내고있다는것이
유일한 위로다.
남근석을 멀리 조망하며
여자의 아랫것을 닮은 바위 위에 올라 서 본다.
시원한 암벽을 자랑하는 작성산의 조망
고깔 바위
가도 가도 암릉 구간이다.
그 암릉 구간의 대미에 남근석이 자리하고 있다.
누군가 산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언젠가 브람스의 3번 교향곡을 듣고 있을 때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사강의 소설을 떠올린 적이 있다.
좋아하고 사랑한다는것이 무얼까.
산을 좋아한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대답이
마치 마치 산을 별 좋아하지도 않고
브람스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건성으로 던지는 말처럼
알차지 않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것은
뭐랄까
고기를 삶아 수육을 만들어 내듯
그 속에서 푹 고아진 느낌이 아닐까.
그러므로 이렇게 고와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답은
아무른 의미가 없다.
브람스에 젖어보지 않은 사람이
브람스의 호불호를 논할 자격이 없는것처럼
산에 푹 젖어보지 않고서야
산에 대해 무슨 답을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산에대해
무어라 할만한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
그래서 아직도
산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글쎄"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글쎄"라는 짦은 답 속에
산을 사랑하는
자유를 사랑하는
초보로써의 무한한 자부심이 담겨져있다.
멀리 바라보이는 남근석
상당히 실물에 근접해있다.
우리 나라에서 자지를 가장 빼어 닮은 바위라한다.
과연 그렇다.
실물과의 유사성을 넘어 해학적인 즐거움마저 준다.
남녀노소가 저 자지 바위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니까.
무암사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천년 고찰.
사찰 입구 바위 동굴에서 방울 방울 떨어지는
석간수의 물맛이 일품이다.
그 물을 얻어 마실려면
바위속을 기어들어가야 한다.
오후의 달마시안
불현듯 조주선사의 無字 화두가 떠오른다.
"개에게도 佛性이 있습니까?"
"없다"
사실 조주스님은 없다라고 답한것이 아니라
"無" 라고 답하였다.
"없다"라는 언어와 "無"라는 대답 사이에는
大海만큼이나 엄청난 차이가 있다.
여기에서의 "無"는
有無를 초월한 "無"이다.
없다는 뜻이 아니라
있고 없음의 분별심을 버리라는 뜻일 것이다.
저 잠자는 견공의 불성을
나와 비견할 아무런 종교적 증진도 나는 한 바 없다.
아직 봄이 끝난것은 아니지만
여기 까지 온 사월은 어찌 그리 처절했을까.
새로와진다는것이
절망의 밑바닥에 놓인 희망의 동아줄을 잡는것이라면
앞으로 남겨진 봄날을 위해
세상은 또 얼마나 아파해야하는 걸까.
죽고싶지 않으면 태어나지 말라는
어느 시인의 절망에 찬 싯귀가 떠오른다.
오후의 우암 저수지
조팝나무 흐드러진 호숫가를 천천히걸어간다.
눈부신 저녁 햇살이 호수면에 넘친다.
빛이 펄펄 살아 움직인다.
봄볓에 상기된 얼굴이 뜨겁다.
발은 한없이 무거워도 마음은 한결 가볍다.
산행에서의 비움은 자동사이다.
마음이 어느결에 비워지게 되는것이니까.
금월봉
바라만 보아도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신령스런 바위라는데
아쉽게도 빌고 싶은 소원이 없다.
원래는 시멘트 제조용 점토 채석장이었다고 한다.
분명히 이색적이기는 하나
마치 발라먹고 남은 뼈다귀같다는 생각이 들자
바윗빛 하나에도 왠지 애착이 가지 않는다.
어린 시절 뛰어 놀던 뒷산 배바위가 문득 생각난다.
-후 기-
꿈을 위한 걸음은
늘 눈부시고 강력하다.
양귀비 꽃과 같다.
지나 온 길도
산 너머의 꿈도 필요없다.
나는 매 한걸음에 취할 뿐이다.
당당한 찰라!
생동하는 현재!!
脚下에 나부끼는
오늘의 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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