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덕유산에서의 하루

poll™ 2010. 5. 10. 20:33

 

 

 

 

 

 편리해진 세상이 산꾼들에게 꼭 반가운 일은 아닐지라도

부담없이 누구나 산에 오를 수 있다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볼 때

반드시 비난 받아야 할 일은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고 지리산 천왕봉에 케이블카가 오르는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지만

겨울 눈놀음 파장한 설천봉을

마치 열린 상처를  들여다 보는 심정으로 오른다.

 

 

 

 

조그만 로프 웨이에 아내와 함께 몸을 싣고

산을 날아 오른다.

 

1600m고지를 눈 감짝할 사이에 오르는 경쾌한 속도감을 온 몸으로 느끼며

지난해 겨울

이 곳으로 오던 도중에 당한 교통 사고를 떠올린다.

 

지금은 웃으면서 되뇌일 수 있는 추억의 순간이

그 때는 생사의 갈림길이었다.

 

그래 내게 허용된 삶만이라도 충실히 살리라.

삶이란 결국 자신에게로 귀환하는 이기적인 길이니까.

 

 

 

 

 

 

 

 

 

 

 유난히 긴 겨울에 맥못추던 봄.

때늦은 봄햇살에 상수리 나무 우덤지가 눈부시게 빛난다.

모든 생명빛이 다 황홀하다.

황홀한 빛이 바람처럼 스치어가는

기분좋은 산비탈에

연분홍 진달래빛이 덤으로 좋다.

 

  

 

 상제루

 

이 중국풍의 화장기 없는 건축물이 왜 여기에 있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되

의외로 산세에 어울리는 소담한 모습이다.

 

내실이야 뻔할것 같은 생각에 겉모습만 보고 지나칠 생각이었으나

하도 시간이 남아

안을 슬쩍 기웃거려 본다.

 

안은 기웃거릴 필요도 없는것처럼

 텅 비어있다.

 

텅 빔 

 

비어있다고는 하지만

  오히려 공간 가득 숙성된 술과 같은 달콤한 빛이

검고 푸른 실루엣을 만들며 꽉 차있다는 느낌을 우선 받는다.

 

 

 

 

 

 

죽어 천년 살아 천년 주목이

덕유산 상징물처럼 서 있다. 

 

1600m가 넘는 고산이란 사실을 이런 고사목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가늠할 수 없다.

이런 산 위에도

평범한 사람의 범상한 발걸음이 분분하다.

세상이 참 좋아졌다.

웃는다.

 

우윳빛처럼 뽀얀 세상 위에서

오늘 하루 나의 범상한 일과를 그려본다.

할 필요도 없는 맹숭한 상상이다.

향적봉으로 간다. 

 

 

 

 

 

 

 

 

 

 

 

 

 

 

 

 현호색

 

 

 

 

 

 꿩의 바람꽃

 

 

 

 

 

 호랑 버들

 

 

 

 

 

 

 

 

 

 

 

 

 

 

 

 

 

 

 

 

 

 

 

 

 

 

 

 

 향적봉

 

대중화가 곧 민주화인지

민주화의 끝은 언제나 善인지

세상을 감춘다는것이 궁극적으로 친 자연적인지

개발은 필연적 파괴를 가져오는 것인지

 

그 해답을 듣고 싶다면

향적봉 위에서는 제발 입 좀 다물어라.

입을 다물고 세상의 소리, 우주의 소리를 들어라.

고요의 소리

靜聽에 귀 기울여라.

 

 

 

 

 

 

 처녀치마

 

 

 

 

 

 

 

 

 

 

 

처녀치마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사는 동안  죽음을 만들어 가는 주목.

그 기다리는 삶도 꽤 곤고한 모양이다.

 

살을 끊고

뼈를 휘어 만든 삶의 대작 앞에

겨우 오십년에 꼬부라진 나 자신을 대비해 본다.

 

시간의 길이만 다른 얼추 비슷한 삶이 아닐까.

신기하다고 해서 다 아름다운것이 아니듯

신기함 이전에 인고의 생애가 먼저 떠오른다.

 

 

 

 색을 지우고

하늘과 나무가 만드는 엄격한 실루엣 앞에서

입을 다물고 끈질기게 나무를 바라 본다.

산을 넘어 온 바람 끝이

온통 기도 소리다.

가지마다 울부짖는 기도소리다.

 

 

 

 

 

 

 

 

 

 

 

 

 

 

 

 

중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송계 삼거리에서 빼재에서 출발한 백두 대간 길과 이어진다.

삼각형의 무룡산 너머 삿갓봉, 남덕유산, 장수 덕유산이 한눈에 들어 온다.

지난 종주의 추억이  가슴 뭉클하게 겹쳐진다.

 

 

 

 

 

 

마음이 몸을 떠나

쉬폰처럼 바람에 날린다.

 

저 희미한 마루금 너머로

자꾸 자꾸 떠나가는 나를 느낀다.

 

그리움이 바람처럼 엷어진다.

아스라하다.

 

 

 

 

 

 

 

 

 

 

 

 

 

 

 

 

 

산이 길을 잃는 법은 없다.

길은 길을 잃지 않으려는 인간들에게나 필요하다.

 

홀연히 중봉에 앉아

사람의 길을 애써 지워버리고

나는 바람의 길을 택한다.

 

사람의 길이 아닌

바람의 길 

무한 自由路. 

 

 

 

 

 

 

 

 

 

 호랑버들

 

누에고치처럼 가지마다 호랑 버들의 여린 꽃들이 가득하다.

따사로운 봄 햇살을 흔들어

산을 온통 눈부시게한다.

만개한 생명들이 한없이 사랑스럽다.

 

 

 

 

 

 

 

 

 

 

 

귀봉에서 백암봉 송계삼거리로 이어지는

육감적인 능선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렇게 아름다운 능선길을 아내와 함께 바라본다는 자체만으로

마음이 다 뿌듯하다. 

 

 그날 고행의 추억이 아지랑이처럼 능선 위를 뽀얗게 물들이고

나는 구름 위를 걷듯 추억 위를 걷고 또 걷는다.

육십령 너머로 무한히

더 무한히.

 

 

 

 

 

 

 

 

 

 

 

호랑버들이 분을 입힌 화사한 산록에

봄을 준비하는 건강한 가지들이 빼곡하다.

추위를 견디고 자라나는 관목의 우덤지가 유달리 건강해 보인다.

 

어떤 시련이라도 견디어 이기는 힘

이 건강한 자생의 힘이야말로

우주의 힘이다.

 

이 우주류의 힘에 편승해

出塵(출진)을 다짐한다.

 

욕망의 티끌로 부터 벗어나야한다.

관습과 타성으로부터 자유로와져야 한다.

 

새로움의 면모를 갖추어야 한다.

 

 

 

 

 

 

 

 

 

 

 겨울의 남덕유는 살한점 붙지 않은 남자의 뼈대처럼 단단했다.

그러나 봄을 맞는 북덕유의 산세는 한없이 너그럽다.

 

봄바람처럼 일렁이는 부드러운 능선,

그런가 하면  양팔로 감싸안는

따듯한 어미의 품도 있다.

 

지리산의 반야봉과 천왕봉이 그러하듯

덕유산 또한 묘한 이중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품고 있다.

 

 

 

 

 

 

 

 

 

 

 

 

 

 

 

 

 

 

 

 

 

 

 

 

 

 

 

 

함부로 쏜 하살처럼 곳곳에 박혀

서로의 마음 그늘 빌려 사는 나무들.

 

바람도 세월도

가버린듯 늘 함께 있는것이거늘

 

알고 있기라도 한듯

이리  만나고 저리 어우러져

맑게 풍경을 쓰다듬는다. 

 

 

 

 

 

 

 

 

 

내가 선한 눈으로 산을 바라 보았다하여

산이 다 선해 질리 없건만

나를 맞는 산의 눈금이 오늘따라 선해 보인다

 

늘 흔들리며 걷는 길

 

나 지금 비로소

마음 한조각 누일 자유의 시간 속에 들었다.

 

이 자유 한조각 누릴 여유조차 없다면

나는 내일 무슨 수로 또 나를 내몰아

 세상을 걷게하겠나. 

 

 

 

 

또 처녀치마 

 

 

길가에 쪼구려 앉아 처녀치마를 찍느라 정신이 없는 나에게

지나가던 사람들이 말을 건넨다.

 

무슨 꽃이요?

 

처녀 치맙니다.

 

할마이 치마가 아이고 처이치마라

그런데 처이 치마를 왜 위에서 찍고 있소?

.

.

.

 

 

밑에서 찍어야제 

 

 

 

 

 

 

 

 

 

 

 

 

 

 

 

 

 

 나는 나대로, 내 방식대로 살고 싶어 산에 오른다.

산을 걷는 것조차 내 방식이다.

 

강요가 아니라 선택이다.

철저한 내 방식이다.

 

산에서라면

누구에게도 간섭받고 싶지 않다.

산 위에서 나는 비로소 실존적이다.

산에서 나를 몰아세우는 그 누구라도 나의 적이다.

 

산 아래라면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잠깐 나를 기다려 달라

싫어도 돌아간다.

어쩔 수 없다.

 

 

 

 

 

 

 

 

 

 

 

 

 

 

 

 

 

 

 

 

 

 

 

내 등 뒤에도

가슴 앞에도

세상은 늘 딱딱한 빵이다.

 

나는 샌드위치처럼

그것을 삶이라 여기며 견뎌 내고 있다.

 

내 가슴을 녹이고 데우는

딱 하루의 자유마저 없다면 

내 삶의 의미도 더 이상 없다.

 

나머지는 네가 다 가져가라.

 

 

 

 

 겨우살이

 

 

 

 

 

 

 

 

 

 

 

 

 산벚나무

 

 

 

 

 

벌깨덩굴

 

 

 

 

 

 

 긴병꽃풀

 

 

 

 

 

 조팝나무

 

 

 

 

 하늘 매발톱

 

 

 

 

 

 금낭화

 

 

 

 

 - 후 기-

 

말하지 말것

오늘 하루

마음으로라도 말하지 말것

 

덕유산 중봉에 오르면

바람의 웅변을 들을것

 

다만 들을것

말하지 말것

 

 행방불명의 나를 찾을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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