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종지봉-성주봉-운달산

poll™ 2010. 6. 21. 12:39

 

 

 당포리 마을에서 본 종지봉

 

 

 

 

 그랜드 슬랩 구간을 오르는 산님들

 

무모한 열정과 무기력한 체력의 하루.

 

다리가 마음을 움직이는 산행이 아니라

마음에 의해 다리가 끌려가는 산행이다.

 

고민스럽다.

그러나 일단 산행에 들어선 이상 

 산행이 생각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것은 안다.

 

자신의 바다에 부표를 띄우고

그 부표를 향해 나아가는 배처럼

나는 오로지 걷는다.

 

 

 

 

나의 보편적인 심리 상태를 두고 볼 때

스스로에게 주는 고통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산다는것,

그것은 깨어있는것이다

나는 고통을 통해 깨어난다.

 

나를 향한 끝없는 해석과 선택,

매일 골라 입는 옷처럼 그 선택에 의해 하루의 기분이 바뀌듯

나는 강철처럼 견고한 고통 중에서

깨어난다.

 

선택의 자유

이미 실존의 에딕션이다.

 

 

 

종지봉에서 내려다 본 당포리 

 

 

 

 

 

 힘들게 올라봐야 겨우 종지봉이라는듯

초라한 정상석이 나를 비웃는다.

마주보는 서로의 처지가 엇비슷하다.

하산하고 싶은 마음만 간절하다.

 

 

 

 다시 20m 절벽을 내려가기

 

 

 

 

 

 

계곡 저쪽이 손에 닿을듯하다 

 

절벽을 내려가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산님들 

 

 

 

 더운 여름 산행길을 멀이 돌아와서는

 

 

 

 

 

 

생각의 밧줄을 달아매어 놓은 심정으로

산봉우리를 오르내린다.

 

밧줄 끝 절벽 위에

하늘과 별과 바람이

꽃과 나무가 피고 지리라.

 

그리하여 봉우리에 마침내 오르면

나 또한 하늘과 바람과 꽃이 되리니

하늘에 글을 쓰고 바람에 노래를 띄우리.

 

그런 마음으로 또 하나의 나를 씻어내려

그 아련한 순수를 찾으러

나는 또 그곳으로 간다. 

 

 

 

 

 

 성주봉에서 바라 본 지나온 길

 

깊이를 알수 없는 그리움이

산 능선을 따라 다가온다.

애증의 다리를 따라 흐르는 골바람.

 

사그락거리며

신열을 앓아대는 청춘처럼

되돌아 본 세월들이 다 아프다.

 

아! 내가 이 길을 택하지만 않았다면

나는 어떤 생을 살게됐을까.

 

한 때의 꿈조차 지금은 부질없다.

새 꿈을 꾸기에도 이미 늦은 나이일까

멀어져 가는 산줄기에

구름처럼 그리움 한무더기 걸려있다. 

 

 

 

 

 

 성주봉

 

갈길은 아마득한데 벌써 지친다

 

 

 

 

운달산 가는길에

 

 

 

 

 

 

 

 

 오르기도 지겨운 절벽 중앙에 동굴이 하나 있다.

 

 

 

 

 

멋대가리 없는 운달산 정상 

 

 

 

 

 

 운달 계곡의 시원한 계곡물

 

 

 

 

 

 김령사 가는 길

 

더 늦기전에 나는 숲을 빠져나와야했다.

시간은 이미 다섯시를 넘기고 있었다.

근심의 구름이 숲을 뒤덮고

숨기고 참아왔던 아픔이 발 아래에서 밀려왔다.

모든것이 이 오솔길 위에서 덧없이 지워져 버렸다.

 

숲을 벗어나면서

나는 영혼의 혼불마져 잊었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된다는것이,

일상으로 돌아간다는것이 이렇게 아파할 일이냐고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열정의 고귀함이,

그 순수함이 나를 지켜주기를

다만 일주일 만이라도 지켜주기를 기원한다.

다시 산을 찾아올 그 날까지.

 

 

 

 

 김령사 해우소

 

 

 

 

 

 

푸다란  우리말 중 유일한 우변화를 하는 단어로 물이나 분뇨등을 퍼 낸다는 뜻이다.

반면 여기서의 푸는의 뜻은 풀다 즉 감정따위를 누그러지게하거나 가라앉게 한다란 뜻일게다.

 

남자의 근심을 푸는곳

사실 해우소란 인간의 근심을 해결하는곳인 동시에

상념을 푸 올리는곳이기도 하다.

 

푸는곳이란 말의 뜻이 이럴 땐 참 절묘하게 쓰인다.

 

 

 

 

 

 김령사 전경

 

조용하고 정갈한 절이다

절마당에 티끌하나 보이지 않는다

졸졸 흘러나오는 샘물소리만 절간에 가득하다.

고요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절 마당을 다 채우고도 남는다.

그 고요의 빈틈을 흘러다니며 절 구경에 여념이 없다.

 

 

 

 

 

 

 대웅전 뒤 소나무가 일품이다.

 포란 중인 어미새 품처럼

포근하게 절을 안고 솔숲이 펼쳐져 있다.

그 숲에 어울려 절에 안정감이 더해진다.

 

절에가면 어김없이 만나는 저 기도법회의 플래카드와

기와불사의 접수처.

어쩐지 쇠돈에서 묻어나오는 쇠비린내처럼 비릿하다.

 

그냥 살고

없는듯 살고

그저 물처럼 바람처럼 살아가기가 

 부처의 나라에서 조차 이리 힘든 모양이다.

 

 

 

 

 

 

 

 

 

 

자연목 그대로를 기둥으로 받친 오래된 목조건물 

 

 

 

 

 

 그 기둥 아래 벌들이 세들어 살고

 

 

 

 

 

 

 벌구멍을 찍는데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벌들이 모여들어

주변을 에워싼다.

겁이 낫지만 나도 죄없는 중생이니

목숨걸고 쏘기야 하겠나싶어

천연덕스럽게 카메라를 대고 앉아있어 본다.

잉잉거리는 벌소리가

아무래도 불안하다.

 

  

 

 지킬것이 없는 방

 

지킬것이 없는 방도

한 때는 무언가를 지키는 방이었으리.

 

가둘것이 없는 이 마음도

한 때는 무언가로 가득했으니.

 

방이 열쇠를  풀듯

마음의 빗장을 열고

아무 일 없다듯 살아가는 그 배포를,

그 자유의 용기를 슬그므니 줏어 들고 간다.

 

 

 

 

 

 

 문 아닌 문

 

닫힌 문이 아니라

다만 닫아둔 문.

 

안과 겉이 같아 숨길것이 없는 문.

이 공간과 저 공간을 다만 구별하기 위한 문.

궁금하시다면 언제나 열어보라는듯 자신 만만한 문.

열어봐도 뒷일은 책임지지 못하겠다는 배짱좋은 문.

이것이 문이다.

문 아닌 문. 

 

 

 

-후 기-

 

 애써 걸어 온 산행의 뒤안길이 평화롭기만 해 보인다.

삶이란 이런 것일까.

 

저 길 뒤에 오늘 하루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고통의 기억이 봄날 얼음장처럼 녹아 없어진다.

현재는 이렇게 달콤하다.

길을 걸어 올 때의 그 꿈들이 나비처럼 날아다닌다.

 

최선을 다해 나는 길을 걸었다.

나는 매 시각 시각에 충실한 셈이다.

길을 걸을 때만큼 스스로에게 정직한 순간이 있는가.

 최선이란 이렇게 몸을 던져 전력을 다했을 때나 쓸수 있는 말이다.

 

나는 길 위에서 꿈을 꾸었다.

아주 달콤해 깨트려 먹기 아까운 사탕처럼

인생은 이렇게 달콤한것이다.

 

 

 

 


Promenade Dans Les Bois(숲속의 오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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