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청수 우골-영취산-신불재-청수 우골(수정)

poll™ 2010. 9. 6. 13:34

 

 

 

 청수 우골 전경

 

잦은 비로 수량이 풍부하다.

여름에 물이 넉넉한 계곡을 만나면

마치 갈증을 안은 채 물가를 지나가는것 같다.

행복을 가까이 두고 애써 돌아가는 기분이다.

 

 

 

 여름 숲의 정경

 

햇살이 버터처럼 녹아 부드럽게 숲에 스며든다.

때를 잊게하는 달콤하고 고소한 햇살이다.

 

부드러운 빛이 초록을 더 푸르게해

지루한 돌길을 오르는 몸과 마음이 다 더워진다.

 

단색의 무료함이

 공포처럼 발걸음을 당긴다.

 

 더운 날숨을 기어이 이기며 타인들처럼 산에 오르고 싶다.

산을 견뎌내고 싶다.

 

 

 

 

숱한 고비를 넘기며 능선에 올라섰다.

세상이 발아래  보이지만 산은 여전히 멀기만 하다.

 

나는 이 길에  뼈아픈 추억이 있다.

그 고통과 공포가 나를 쉽사리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길은 갚아야할 빚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저 멀리 오룡산

 

나는 저 오룡산 끝까지 죽을 힘으로 걸어가  산꼭대기에서

마침내 쓰러졌다.

 

그러나 희안하게도 쓰러진 다음 순간 나는 힘을 얻었다.

마치 마라토너들이 느끼는 runner's high처럼 나는 신들린듯 다시 걸었다.

 

그후 나는 내 몸의 고통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내 고통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내 몸을 끔찍히 괴롭히는 결과를 초래하였는가.

 

감내해야할 고통과 이겨내야할 극복의 경계를 정말 모르겠다.

 

 

 

 

 

 

 

 

 

 

 

 

 

 

 

 영축산 정상에 마침내 이르는 길이 큰 파도처럼 밀려온다.

어마어마한 파도

저 산의 파도를 다 넘어야만한다.

 

동해 바다에서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나는

그 공포를 무럽쓰기 위해 수영을 배웠다.

 

나는 산행을 통해

아득함의 의미를 스스로 체득하였다.

시간과 거리가 만드는 터무니 없는 부조화에대해서도 나는 배웠다.

 

그래서 길은 늘 희망인 동시에 공포이다.

나는 공포의 밧줄을 잡고 두려움의 물살을 이기며 걷는다.

그러나 오늘은

좀처럼 두려움을 이길만한 단호한 의지가 생겨나지 않는다.

걸음에 이미 리듬이 없다.

 

 

 

 

 

 

 

 

 죽바우등

 

 

 

 

 철옹성처럼 우리를 가로막는 방패들

 

 동쪽을 향한 길의 어려움을 서쪽을 돌아보고서야 압니다.

방금 지나온 길이 이미 아득히 먼 과거가 되어 멀어져 보입니다.

 

걸어나갈 길 또한 그러하겠기에

마침내 도달하리라는것을 잘 압니다.

 

희망의 빛은 원래  희미한 법.

지금은 결코 다다를 수 없을만큼 멀리 보이는 긴 노정일 망정

반드시 도달해 보일것입니다.

 

 

 

낯 익음에의 조우

 

낯 익은 길을 만난다.

기억은 늘 기억하고싶은 것만 기억하는지

낯 익은 길에 이르자 비로소 마움이 한결 가벼워진다.

 

산은 여전히 행열의 끝에서 아득하다.

그러나 희망의 빛은 서서히 밝아온다.

 

묵묵부답의 한켠이 마침내 무너지며 나에게 길을 내어준다.

비로소 산길이 편안하다.

 

 

 

 

 

 

 

 

 

 

 

 

담담함이란 어떤것일까?

 

길은 마침내 나를 목적지로 인도하겠지만

세상을 거슬러 나아가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도달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일까.

 

나는 솔직히 이런 편안하고 차분한 루틴한 삶을 원한다.

내가 지닌 재주란 그것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겨우 견디는 일이다.

 

 이런 작은 견딤과 질긴 기다림이야말로

담담함이 아닐까.

 

 

 

 청보리 패듯 억새가 피어난다.

황금빛 관모가 일렁이기 시작한다.

 

아직 푸른빛이 게으런 논의 피처럼 가득하지만

머지 않아 세상은 온통 황금빛으로 빛나게 되리라.

 

노랑과 초록이 어울린 능선 위에

봄빛처럼 어린 연두가 춤춘다.

 

 

 

 

 

 

 

 

 

 

 

 

 

 

 

 

 

 

 

모든것을 다 이루었다는 마음으로 길을 걷습니다.

산행에 있어서 언제나 현재는 고통이요

미래는 희망입니다.

 

고통이 사라질수록 미래는 희망으로 빛납니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홀가분함이 가을 바람처럼 가볍습니다.

 

눈에 익은 평화가 초원 가득 넘칩니다.

천상의 나라에 천상의 음악이 울려퍼지는듯 합니다.

 

 

 

 

 

 

 

 

 

 

 

 

 

 

영축산은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파한 곳이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창건할 때

분명 이점을 감안해 산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과연 더없이 넓은 초원을 바라보면

영축산이란 이름이 영락없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신불능선 가득히 가을이 다가왔다.

고고한 억새의 손짓에

처녀아이의 살결처럼 풋내가 가득하다.

 

入秋

 

가을에 이르는 문은 이토록 아름답고 우아했던것인가.

군더더기 없는 명징한 이 아름다움 위로

프리드리히 굴다의 투명하기 짝이 없는 피아니즘이 넘친다.

 

거칠기만 했던 숨자락을 턱하니 내려놓는다.

세상은 온통 위로와 안도의 빛이다.

정녕 해방의 빛이다.

 

나는 한가로이 날고있는 나비처럼

가을빛 고운 초원을 날고있다.

 

베토벤을 듣는다.

 

 

 

 

 

 

 

 

 

 

 

 

 

 

 

 

 

 

 

 

 

 

 

 

 

 

 

 

 

 

 

 

 

 

 

 

 

 

 

 

 

 

비움을 보아라!

空을 觀하라!!

현세의 이 황당한 주문도 신불 평원에 서니 그 의미를 알것 같다.

 

과연 비움이 보인다.

비움은 佛家의 일체종지

즉 뿌리가 되는 지혜이다.

 

공이요,바라밀이다.

나는 그 空을 알지 못하지만,

알 수도 없겠지만

다만 어렴풋이 다가오는 그 무엇인가를 느낀다.

마치 공의 세계에 든듯 설명할 수 없는 이 벅찬 직관이야말로

진정 비움이 아닐까.

 

 

 

 

 

 

 

 

 

 

 

 

 

 

 

 

 

 

 

빈곳으로 나아간다

그곳은 영원한 세계.

 

공의 세계로 나아가는 산님들이 다 구도자이다.

바람소리가 다 법화경이다.

 

 

 

 

 

안정감이 느껴지는 발자국.

그 발소리를  따라 갑니다.

 

내삶은 처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만 누구를 좇아가는 삶일 따름이었습니다.

 

이제 뒤를 돌아다보니

좇아가는 느린 걸음의 삶이

나를 나답게 한 유일한 특징이었습니다.

 

 

 

 

 

 

 

 

 

흔하디 흔한

발에 치는것이 억새풀이건만

그래도 가을의 전령으로써

그 모습만으로도 마음이 벌써 설렙니다.

 

마음이 설렌다는것은 내 마음에 아직 여린 햇것이 자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풋풋함이 용하게 어울려

잘 조성된 화성처럼 마음에 넘칩니다.

 

 고통을 통해 겪어보지 않고는 알수 없는 묘한 행복입니다.

 

 

 

 

 

 

 

 

 

 

 

 

 

 

 

 

 

 

 

 

 

그리고 길

 

누구와 함께 갈 수 없는 길

마침내 혼자만의 길

무소의 뿔과 같은 절대 고독의 길

 

그 길이 펼쳐져있다.

가야할 길은 아직 남아있지만

여기까지가 오늘 내 마지막 행로이다.

 

나는 여기까지 기어이 왔고 여기서 마침내 끝을 맺는다

세상살이 어디에나 덤은있기 마련이다.

나머지 길은 그냥 오늘 고생의 덤으로 생각할련다.

 

 

 

 

청수 좌골

 

 

 

- 후 기 -

 

하루가 고통으로 얼룩져 있는데

어찌 좋은 하루라 말할 수 있겠나.

 

그러나 따져보면 그렇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고통이 없었다면

산행의 의미를 어디서 찾을 수 있었겠나. 

삶이란 영원히 도전이요 응전이다.

 

나는 오늘 내 몫의 삶에 충실한 것이다.

 

범속한 일상이

새로이 심화된다.

 


 


Cavatina in D major, Op.85 No.3


'마음으로 오르는 산 >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정산 사대문 환종주  (0) 2010.09.24
금정산-벙개  (0) 2010.09.20
한산도 망산  (0) 2010.08.23
영광 백운산  (0) 2010.08.16
북알프스  (0) 2010.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