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문
깨어 있다는것 만으로도 준비는 충분하다
내 마음은 언제나 산을 향해 열려있으니.
산을 향한 열정에 조금이라도 귀 기울인다면
그 다음 발걸음을 내딛기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난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행운을 의심없이 의심없이 받아들였다.
사대문 종주는 처음부터 행운인 셈이다.
상계봉
나는 즐거워.
산을 사랑하고 벗과 함께 걷기를 또 사랑해.
육체의 한계를 조금씩 뛰어넘는다는것이
때로는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이지만
나는 산에 드리운 이 한계를 넘어서는 희열이 좋아.
두려움은 잠깐 스쳐지나가는 바람같은것일거야
다시 곧 돌아오곤 하지
그리고 다시 가버려.
이 윤회의 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의 방정식에
내가 놓여있다는것이 자랑스러워.
나는 즐거워.
망 루
나는 걷는다.
문이 아닌 그 안에 존재하는 빈 공간을 위해.
가장 소중하고 의미있는것을
더 가까이 눈여겨 보기위해
깨닫기 위해.
내 마음속 회당으로 부터 영원한 바깥 세상을 향해.
해방을 위해.
지도자 동무
김해 벌판
사랑이 늘 선인것 같아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사랑은 그냥 움직임일 뿐이다.
길들여 지지 않은 힘,통제되지않는 힘이다.
우리가 사랑을 가두려 들 때 마침내 사랑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사랑을 향해 이해의 손짓을 보낼 수록
사랑은 우리를 방황과 혼돈 속에 놓이게 한다.
혼돈이 걷힌 말간 낯빛으로 김해 벌이 펼쳐진다.
어디에도 놓이지 않은 사랑을 느낀다.
고난을 당할 때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인식은 얼마나 소중한가.
같이 기뻐하고 같이고통을 나눌수 있는 동지가 곁에 있다는것은
우리가 자연을 향해 더 멋지게 역경과 맞설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받아들여야할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이는것,
이것이 산행의 가장 소중한 이상이다.
우리가 왜 불행한가 라는 질문은
행복을 만드는것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같다.
그런데 그 과정이 지금의 현실과 판이하게 다른것이라면
우리는 행복을 위해 단호히 변하는 수 밖에 없다.
그대로 주저앉아 더 큰 불행을 맞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산행은 고통을 맞설수 밖에 없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피할 수 없으니,굳이 피할 생각도 없으니
스스로 즐길 수 밖에.
상계 공룡
파리봉 인증샷
알아야 할것은 언제나 눈 앞에 있다.
산이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가려는지,
다음 순간 내가 어느 발을 내디뎌야할 지를
경건한 마음으로 주위를 기울여 주변을 살펴보는것만으로 충분하다.
산행은 매 순간 이런 경건한 선택이 뒤 따른다.
나는 산행이 주는 이 신비로운 경험에 경의를 표한다.
산에 대한 나의 모든 열정은 이런 진정한 사명감에서 나오는것 같다.
끝까지 나아가야한다는 사명감.
완주를 향한 진정한 욕망.
파리봉 암릉구간
서 문
서문과 동문을 비교하는 이가 많다.
동문은 스승이 서문은 제자가 지었다고 하는데
청출어람이라고 제자가 지은 서문의 아름다움이 더 빼어나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동문과 서문을 두루 살펴보고 느낀 점은
솔직히 두 성문의 아름다움 위에 빼어날 秀 자를 견줄만큼
두 건물로부터 눈에 띄는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두 성문 다 성문이 지니는 지극히 평이하고 일반적인 구조를 하고 있을 뿐
흥인지문이나 숭례문과 같이 건축으로서 타 건물과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보여주지 못한다.
굳이 비교하자면 동문은 성곽이 위치한 지리적인 이유로 인해 보다 남성적인 기분이 든다.
동문은 성 바깥 쪽에서 접근했을 때 성곽이 주는 전체적 조망은 서문 보다는 더 유니크하고 건강해 보인다.
그리고 적어도 대문으로서의 기능만은 아직도 온전히 보전하고 있다.
그러나 서문은 동문에 비해 고립된 위치에 있을 뿐 아니라
성곽과 단절된 구조로 남아 있음으로해서 다소 고졸하고 여성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건물이란 사람과 같이 호흡하고 소통될 때 비로소 건물로서의 위상이 높아지는데
서문은 동문에 비해 사람의 왕래가 더물 뿐 아니라 문으로서의 사명이 거세된것처럼 보인다.
마치 폐사지에 새로 세워진 건물처럼
대문이 지니는 위용보다는 자연에 파묻혀 쇄락을 거듭하는
불운한 역사를 보는것 같아 서글프다.
이런 슬프고 비장한 맛이 제대로 네레이션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답답한 슬픔.
이것이 서문이 나에게 던진 감성이다.
건강한 긴장감.
동문을 보고 느낀 내 감정이다.
미륵암
고단봉
생각하면 할수록 힘이 빠지는것은 사실이나
나는 나 자신에 점차 가까이 다가감을 느낀다.
나는 모든 에너지를 내가 나아갈 방향을 향해 집중시켰다.
고단봉으로 부터 한시 바삐 멀어지고 싶었다.
사력을 다해 북문으로 뛰었다.
산이 멀어지기만을 간절히 소원하며
뒤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산이 멀어지기를 이토록 바랐던적은 내가 산을 탄 이래 처음이다.
가야할 길
나는 달려 나갔다.
달리다 지치면 쉬었다.
소리님이 뒤에서 걱정스런 충고를 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정신없이 걸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삶처럼.
나는 왜 이런 계획을 세웠는지 반문할 틈도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이 길을 걸었던 수많은 추억들이
어느 순간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이 되어
내 등 뒤에 찰싹 달라붙어있는것 같았다.
어떤것이 꿈이고 어떤것이 꿈을 위해 잊어야할 추억인지 도 몰랐다.
풋사과 처럼 걸린 가을이 발갛게 상기된 얼굴에 와 닿았다.
마침내 의상봉을 넘고 있었다.
의상봉
가을 망루
가을 속에 망루 하나가 외로이 서 있다.
가을을 재촉하는 상징처럼.
나는 마치 내 마음의 이정표처럼 망루의 가을을 찍고 또 찍는다.
그러나 사진이 썩 마음에 차지 않는다.
그것은 아직 가을이 무르익지 않은 까닭이요
내 마음에 열정이 채 식지 않은 까닭이리라.
타다만 촛불처럼 망루가 마음에 걸린다.
가을 길
누구나 사랑을 할 수는 있지만 사랑을 소유 할수는 없다.
소유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구속이니까.
누구나 산을 사랑하지만 산을 다 가질 수는 없다.
산은 사랑과도 같다.
산을 가질 수는 없지만 속할 수는 있는
이 무한한 자유.
무소유의 소유.
다시 동문
기회란 늘 오는것은 아니다.
은총을 쓰지 않고 보관해 두었다는 말도 듣지 못했다.
행운이란 지금 당장 쓰지 못하면
영영 잃어버릴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은총과 기회를
전력을 다해 소중히 사용하였다.
과연 달콤한 과일처럼 향기로운 것이었다.
-금정산 환종주-
2010. 09. 23.
18Km,7시간
1. Adagio cantabile(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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