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내장산 산행 후기

poll™ 2010. 11. 9. 09:56

 

 

 

 

 

태초의 색은 붉은 색이었다.

피가 붉음을 상징하듯

인류에게 RED는 열정이자 실존이었다.

 

독일에서는 이성을 잃은 사람을 "빨강만 본다"라고 한다.

투우장의 소처럼 맹목적이란 뜻이리라.

 

단풍을 좇아 전국을 돌아다닌 나를

맹목적인 투우장의 소에 비유한들 딱히 할 말이 없다.

 

 

 

서래봉 

 

돌이켜보면 지난 가을 내내 단풍구경을 위해

질주한 기분이 든다.

가야산에서부터 가평 운학산,오대산,설악산을 거쳐

마침내 내장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단풍의 일번지 내장산.

늘 혼자가는 단풍구경이 미안해 이번에는 모처럼 아내와 함께 산을 오른다.

 

 

 

 

 

 유군치

 

 임진왜란 때 적병을 유인하여 큳게 무찌른 곳이라는데

사람 몇이 들어 서니 벌써 빽빽하다.

 

 

 장군봉에서

 

장군봉까지 가는 길은 상당한 비탈길이다.

그러나 오늘은 길이 정체되어서인지 별 힘든줄도 모르고 오른다.

자꾸 뒤쳐지는 아내에게 눈이 간다.

 

발가락이 아프다고 한다.

애처로와 배낭을 받아 맨다.

 

그래도 힘들어 보이기는 여전하다.

공연히 힘든 길로 몰고나와 미안스럽다. 

 

 

 

 

 

 

 

 

 

연자봉을 향해

 

 

 

 

 

 

산너머 순한 짐승이 누워있는것처럼 능선이 부드럽다.

가을을 꾹꾹 누르는듯한 바람이 불어왔다.

 

세상이 압화가 된듯 오갈진 잎들이 우슬우슬 떨어진다.

우슬거리며 떨어지는 낙엽으로 인해

장식없는 숲이 삭막하기 그지없다.

 

물 속에 사는 신비한 물고기가 비늘을 잠시 드러내듯

산 아래의 단풍은 오색 비늘처럼 눈부시다. 

 

 

 

 

 

 

 

 

 

 

 

 

 

 

 

 

 

 

막상 숲에 들어서자 숲은 때 늦은 감자밭처럼

물기가 없다.

마른 날씨 탓인지 매운 먼지가 발 아래에서 푹푹인다.

 

먼저 먼지를 만든 사람의 꽁무니를 따라 사람들이 쪼르르 내려간다.

숲이 광대패가 지나간듯 왁자하다.

그러나 숲은 치유의 능력도 동시에 가졌는지

이내 다시 적요를 되찾는다.

가을이 가져다주는 묘한 자정력이다.

 

 

 

 

 

 

 

 

 

 

겨울바람에 날아다니는 거리의 비닐조각처럼

회색빛 돌들이 건천을 가득메우고 있다.

 

우아하고 격조있는 오방색의 숲을 기대했던 나는

큰 낭패를 본듯 실망에 빠졌다.

 

인정머리라고는 조금도 없는

단문의 글을 읽듯 계곡이 무미 건조하다.

 

잊혀져야할 속절없는 기억들이

냉동건조된 식품처럼 기분 나쁜 선도를 유지하며

머리 속을 복잡하게 맴돈다

 

 

 

 

 

 

 

 

 

 

 

 

 

까치봉 하산 합류 지점

 

 

 

 

 

 

 

 

 

 

 

 

 

 

 

 

 

 

생채기에 살이 돋아나듯

가을이 살아난다.

 

숲의 세계는 누가 함부로 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그들의 생성이 우주의 생성과 마찬가지이듯

그들의 소멸 또한 우주의 소멸과 마찬가지이다

 

한 세계의 소멸을 향해 달려가는 가을 숲을 앞에두고

마치 가을이 되살아나는듯한 착각을 하는것은

이번 가을 계곡을 타고 내려오며 한결같이 체험한 느낌이다.

생멸이 시간과 불가해하게 뒤섞이며

신비함을 만들어낸다.

 

 

 

 

 

 

 

 

 

 

 

 

 

내장사 

 

 

 

 내장사 경내에 들어서자 마자

극악스런 단풍의 위세와 넘치는 인파에 아예 질려버렸다.

 

붉은 가을 위로 시원하게 펼쳐진 서래봉을 담으려는 욕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한시 바삐 경내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마치 할수 없이 빌려봐야하는 경치처럼

그래도 애써 여기까지 온 노력과 시간이 아까와 쭈뼛거리며

서성이다 그냥 절을 빠져 나왔다.

 

 

 

 

 

 

 

 

 

 

서래봉의 위용을 확인 하기는했으나

하루 종일 따라다니는 서해안 온기에의한 박무의 영향으로

조망을 카메라에 담기는 쉽지 않았다.

 

한번 만난것으로 끝인것은 이산 가족의 심정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장산에 두고 가는 제일 아쉬운 풍경이다.

다음번 산행 때는 서래봉을 둘러 오고픈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단풍의 사태에 빠져버리자

정작 아쉬운 것은 단풍이 아니라 단풍에 물던 고귀한 풍경이었다.

 

 

 

 

내장사 경내에서 

 어떤 이는 아예 팔을 벌려 가을을 맞이한다.

 

팔을 벌린다는것은 세상에 가을이 차고 넘쳐

도저히 마음만 으로는 가을을 담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뜻일게다

 

인간들은 남녀노소를 가릴것 없이 빨강색을 사실 좋아한다.

그러나 실상 빨강을 좋아하는 부류는  세상에 중국사람과 어린아이 외에는 그리 많지는 않다.

 

이런 모순은 비발디의 사계를 누구나 좋아하면서도

제일 지겨워 하는 곡으로 비발디의 사계를 동시에 꼽는 현상과 유사하다.

 

빨강은 명도와 채도에 따라

그 고상함이 극명하게 달라진다.

아주 세련된 빨강이 있는가 하면

천해보이는 빨강도 있다.

그래서 그만큼 호불호가 다양하다.

 

빨강이라면 알레르기 수준이었던 과거가 우리에게는 있다.

지금은 그 극악스런 이념은 많이 쇠퇴되었지만

아주 없어진것이 아니라

어중간하게 반반이 뒤섞이며 소리가 더 요란해졌을 뿐이다.

 

내장사 붉은 단풍빛에 물들어서인지 바쁜 중에도 이런 저런 상념이 불같이 인다.

 

 

 

 붉음은 사랑이요 열정이다.

 

 

 

 

세상이 아무리 시껄벅적해도

석자 멀리 추녀 끝에는 고요한 가을빛이

저녁을 맞아 적요를 조신하게 밀어내고 있었다.

 

어둠 뒤에 몸을 숨긴채 심문을 하는 사람처럼

가을이 붉음뒤에

죽음의 시간을 감추고 있다.

 

 

 

 

 

 

 

 

 

 

 

 

 

 

 

 

팝콘 기계에서 고소한 옥수수가 끊임없이 넘쳐 나오듯

사방에 가을이 차고 넘친다.

 

무엇이던 차고넘치는것은 마음에 풍요함을 가져다 주는모양이다.

 

만권의 책속에

세상의 온갖 진리와 미려한 문장이 담겨있듯

 

사태난 단풍잎 하나 하나에 지나간 시간의 작은 단위들이

깃들어 있는것 같다.

 

가을이 넘쳐나는 아름다운 담이다.

 

 

 

 

 

 

거꾸로 보는 가을은 어떨까? 

 

가을을 물구나무 서듯 거꾸로 훔쳐본다.

 

 

 

 

 

 

 

 

 

 

 

 

 

 

 

 

 

 

 

 

 

 

 

우화정 

 

 

 

 

 

 

 초라하지도 유난하지도 않는 가을을 담고 싶다는 소망은 애초 잘못된것이지만

동구 밖을 향해 유유히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 또한 그들 중의 하나라는 생각에

미쳐 준비하지 못한 음산한 고독이 밀려왔다.

 

세상을 현란하게 드러내던 광채가 사라지며

모처럼 따뜻한것이  생각나

새삼 아내의 손을 잡고 해저무는 단풍길을 걸었다.

 

이즈음에

나도 내 인생의 허무와 다소곳이 화해하고 싶다.

허무란 젊은이의 겉치레였는지 이제는 고독도 화해도 왠지 어색하다.

 

思秋期의 시간 한켠을 막 지나친다.

일몰의 햇살을 몸 전체로 맞으며 아내와 함께 걷는다는것은

얼마나 귀한 추억인가.

 

깨끗하게 늙어가는 아내의 젊은 시절 모습을 떠 올리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RED에 동화되어 열정을 향해 힘차게 회유하는 나를 느낀다.

 

 

 

 

 

 

 

 

 

 

 

- 후 기-

 

 

나는 지금껏 그침없이 내 인생을 살아왔지만

어찌 생각하면

타인의 인생을 스쳐왔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스쳐온 서로의 인생을

하나 하나 착실히 맞추어 가며

세상을 살아간다.

 

오늘 참 긴 길을 걸었다.

 

미지근하고 형편없는 길이었나하면

열정에 빛나는 길이기도 했다.

 

길을 지나오며 내게 남겨진 흔적이나

사람들을 스쳐 지나며 남겨 준 흔적들이

벌써 추억이 되어 시간 속 등불처럼 반짝인다.

 

잊고 싶은 추억일수록 신선한 법이다.

오늘만은 그 추억들이 다 붉은 색이다.

 

 

 

 

 

 


O wie wogt es sich schön auf der Fluth - Arleen Auger

 


'마음으로 오르는 산 >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운산-가지산  (0) 2010.11.22
백암산 산행 후기  (0) 2010.11.15
내장산 단풍놀이  (0) 2010.11.08
雪岳歎 : 오색-대청봉-희운각-천불동-비선대-설악동  (0) 2010.11.02
雪岳歎-천불동  (0) 2010.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