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바람의 언덕 선자령 후기

poll™ 2010. 12. 27. 19:25
 
 
 
 
 늙은  목련나무 삭정이에
해동되지않은 칼바람이 한바탕 불 모양이었다.
 
다섯 시간을 달려 겨우  당도한 대관령 초입엔
세상을 다 덮을 줄 알았던 폭설은 눈을 닦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고
 
전쟁 통에 소개간  빈 동네처럼 대관령 고개는 인적이 없는 가운데
바싹 말라버린 풍경을 뒤로하고
하얀 풍차만 하염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산길은 그리움의  다른 언어다.
고독하지 않는 산길은 없다.
 
그 길 가운데
나는 특히 대관령에서 매봉에 이르는
이 고독한 능선길을 사랑한다.
 
급할것도 힘들것도 없는 길.
소박한 그리움의 길.
다만 모진 바람이 불어
고독마저 식어버리는 정화의 뒤란.
 
이 고독과 그리움의 중심에
마른 산금위에 기도처럼 놓인
하얀 풍력 발전기가 있다.
 
강원도 높은 산 어디에서나 아련히 보이는 이 풍차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겨울 설산에
깊은 고독의 원경을 선사한다. 
 
 
 
 
 
푸른 하늘과
빛나는 태양
투명한 대기를 마시며
낙옆송 마른 가지에 걸린
동짓달의 마지막 바람을 맞는다.
 
행복이 가지 끝에 달려있다는것이 신기하다.
얼마나 많이 헛된 꿈을 좇았던가.
 
나무 가지마다
편안한 안식이 쉬고 있다.
세상은 숨고르기를 하듯 잠잠하다.
 
고요한 세상이 꿈결 같다.
그런 길을 오르고 있다.
 
 
 
 
 
 
 
 
 
 
 
사설풀듯
바람은 불어 오는데
내 반생은 산을 오르내리다 말련가.
 
지리산 자락 운봉에는
닭울음도 다 소리라는데
선자령 바람소리는
그대로 다 노래이다.
 
 
노래는 노래인데
그 노래의 깊은 뜻은
웃자란 질경이 나물보다 질기고
씀바귀 보다 쓰디 쓴
한바탕
한탄이요 탄식이다. 
 
 
 
 
 
 
 
희망이 없다면 길도 없다.
 
흰 광목 띠처럼 풀려 나온 첫 겨울의 길을
한줌 바람 소리에도
모여드는 고독을 뒤따라 걷는다.
 
푸른 빛은 하늘뿐만 아니라
바람이며,
바람을 찾아 산을 오르는 마음조차
푸르게 물들인다.
 
아니  푸르다 못해
마른 하늘에 고드름이 꽁꽁 달릴것처럼
시리디 시리다.
 
 희망조차 다 얼어버릴것 같다.
저 퉁명스런 바람에....
 
 
 
 
 
 운다.
세상의 지우게와 같은
선자령 바람길을 따라 걸으며
바람이 운다.
 
세찬 바람에 눈물은 이미 말라
마음의 앞도,뒤도
다 막혀 그저 막막하기만 한데
 
지난 오십년이 다 캄캄해
산이 울고
바람이 울고
내가 운다.
 
 
 
 
 
 
 
 
 
 
 
 
 
 
 
 
 
바람의 언덕에 서자
몸을 주체할수 없는 바람이 불었다.
 
모진 바람은 생각마저 빼앗아 갔다.
생각이 혼미해 지자
가슴 한 귀퉁이에서
오기에 찬 일성이 불현듯 솟아나왔다.
 
"삶은 이래서 좋은거야"
 
모든것을 빼앗긴 후에도 무언가 쓸만한 것이 남아있듯
마침내 남아 있는 그 무엇이란것은 과연 어떤것일까...
 
캐시을 보내고 난 히드클리프식의 사랑일까?
광기와 열정과 고독이 뒤범벅인 채
웅웅거리는 그 바람의 거센 가시를
가슴 깊이 뼈저리게 간직하며
사랑마저 떠나보낸 그의 광기일까.
 
 
 
 
 
 
 
 
바람의 언덕을 넘으려하네.
 
아무래도
사랑을 이길 그리움 한조각은 필요할것 같네.
 
그 그리움 움켜쥐고
한걸음 한걸음 기어이 나아갈려하네.
 
나를 살릴 바람
너를 살릴 바람
이바람 저바람 다 온 몸으로 맞으려하네
 
바람의 정령이 되려하네.
지울것 다 지워버린 뒤엔.
 
 
 
 
 
 
 
 
 
wuthering heights에서
 
그리움 앞에
짧은 소멸이 있었던것처럼
모진 바람앞에
세상이 잠시 비껴선듯
언덕은 뜻밖에 텅 비어있었다.
 
그 빈 언덕위에 검은 무채의 그림자는 유난히 길었다
세상의 모든 먼것들은
제 스스로 그리움을 잉태하는지
그림자 위로 쉬임없이 웅웅거리며 쓸쓸한 바람이 불었다.
 
걷는것도 삶인지라 용케 걸어 여기까지 왔건만
나를 맞는것은 광기에 가까운 바람이다.
 
광풍이 저만치 밀어 낸 길,
아득히 멀어져 가는 그길을 멀겋게 촛점잃은 눈으로
바라본다.
아니 눈이 시려 눈을 제대로 뜰수 조차 없다.
 
붙잡을 수 있는 길,
갈 수 있는 길을 두고
돌아가야한다는것은 얼마나 큰 괴로움인가.
 
 아득함이 그리움처럼  펼쳐진다.
멀기에 길은 더 눈부시다.
 
떠나가는 길을 두고
wuthering이 가슴에 공명되어
몸이 울림판처럼 펑펑 따라 울었다.
 
 
 
모든것을 놓아버린 울음 뒤에
 주체못할 바람처럼 감동이 또 밀려왔다.
 
애써 생각하려 한것은 아니지만
 히드클리프의 언덕을 외면하지는 못했다.
언덕은 온전한 문학이었던 셈이다.
 
 
 
 
 
 
 
 
 
 
 
 
 바람 불고
바람 맞으니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어디 슬픔이 아닌것이 없네.
 
비록 눈물로 씻어 낼 슬픔은 아니어도
내 삶은 오늘도
슬픈 바람 소리를 들어야 한다.
 
사위어 가는 모닥불에 언 몸을 녹이듯
바람에 내 마지막 몸이 녹아 소멸될 날
그날이 언제 인지 모르지만
넋인지  시인지도 알수  없는 이 모진 바람
한 줌 만이라도 가슴에 묻어야 겠다.
열정을 살려낼 바람이었으면 한다.
 
 
 
 
 
어린시절 바위에 누워 구봉산 너머로 흘러가는 구름을 보았다.
그리고 그 구름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늘 상상했다.
 
나는 그 구름 중 하나를 따라 선자령에 오르리라고는 도무지 생각해 보지를 못했다.
산 너머 머나먼 곳에 행복이 있었다 .
그 행복을 좇아 산을 넘어가
마침내 눈물어린 마음으로 돌아왔다.
 
푸른 하늘에 걸린 그 구름은 행복이요 동시에 허무였다.
 
 
 
 
 
모든 그리움은 왜 도무지 멀기만 한건지.
다가가면
왜 무심한 마음으로 멀어지는것인지.
 
사랑이 언제나 절실하듯
나의 그리움은 왜 늘 산너머에 있는것인지....
 
 
 
내 살들을 조각 조각 벗겨낼 작정으로 바람은 불었다.
그런 한편으로
거센 바람이 오히려 체념도 몰고왔다.
 
바람의 언덕에 서자
모든 것을 씻어낸것처럼
마음은 오히려 담백했다.
 
나는 그런 단순함으로
뒤집힌 배처럼 흘러가거나
혹은
이른 봄 부전나비처럼 바람을 타고 마냥 흘러갔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나 스스로가 타인의 그리움이 되고 싶었다.
 
타인의 그리움인 나.
 
마음은 레테의 강을 건넜다.
이런 생각을 기어히 하게 만드는 바람이었다. 
 
 
 
 
 
 
 
 
 
 
 
 
 
 
그동안 내가 걸었던 대부분의 길은
정말 길같았다.
 
쉬운 산길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선자령을 거쳐 멀어지는 길은 달랐다.
이 길이야 말로 극적인 길이었다.
 
모든 길의 시작이요
끝처럼 느껴졌다. 
 
내가 온것 같기도 하고
떠날것 같기도 한 그런 길이었다.
 
언젠가 길을 잃은 도쿄 중앙역 같았다.
 
 
 
 
 
 
 
- 후 기-
 
 
좋은 하늘은 좋은 바람을 알아보는 법이다.
 
선자령 세찬 바람 속을 힘들게 나아가며
푸른 코발트빛 바람이
무게로 느껴질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좋은 바람처럼 걸음에 담긴
고통의 메타포를 사랑한다.
 
세찬 바람이 모자속을 뚫고 들어와
깊고 알싸한 고통을 선물했다.
 
고개를 떨군 채
마치 포탄속을 안간힘을 달아나는 군인처럼
나는 사력을 다해 바람의 언덕을 헤쳐나갔다.
 
생각이 오롯했다.
그렇다고 과거가 회유해 오는것은 아니었다.
되돌아 보아야 할 삶이란 도대체 어떤 삶인가.
 지금만으로도 고통은 벅차다.
 
그 벅찬 고통 속에서
나는 산을 내려 온 것인지
바람을 따라 언덕을 떠나 보낸것인지 조차 분간이 되지않았다.
 
몸을 데워 줄 독한 술 생각이 났다.
폭풍의 언덕에서
광기를 보내고
사랑을 찾은 그런 기분이었다.
 
 
 
 
 
12. Blue Waters / Ernesto Cortaz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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