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아내와 함께 오른 분홍빛 천관산

poll™ 2011. 4. 11. 15:26

 

 

 

 

 

 

 

 

하나의 산을 두고 두개의 각기 다른 글을 쓸 재주가 나에게는 없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지난 겨울의 산행기에

봄의 빛깔들이 더해졌을 뿐.

 

나는 이 무채의 세월 위에

덧칠을 하듯

진달래 꽃물을 들이고 싶다.

 

사랑을 벗어난 떠거운 불륜의 사랑보다 더 떠겁게

내 사랑을 물들이고 싶다.

 

 

 

- 동백나무 숲을 지나며 -

 

 

아내와 함께 산을 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어넷 베닝과 워렌 비티의 "러브 어페어"가 자꾸 떠올랐다.

 

스무네살의 여자와 스무 아홉의 남자의 이야기.

 love도 affair도 없는 미싯가루와 같이 두루뭉술한 우리의 사랑 이야기.

 

그 무채빛 사랑 위에

한 줄 봄바람이 불어와

분홍빛 그늘을 만들며 아른거린다.

 

온통 空인 우주에서 무수한 별들이 만들어지듯

어디선가 꽃잎처럼 사랑이 말려왔다.

 

이것이 봄산행의 묘미다.

그 알싸한 아련함을 가슴에두고

봄길을 걸어 본다.

 

 

 

 

늘 앞서가는 사람의 뒷모습만 사진에 담던 나는

언제 부터인가

지나가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의  쓸쓸함에 눈을 떠게 되었다.

 

그 쓸쓸함이란 뜻밖에도

사람들이 지나가고 난 뒤에도 변함이 없는

세상의 무관심이 주는 쓸쓸함이었다.

 

법정 스님 身後

송광사 뒤란에 피어나던 극성스런 명자나무 붉은 꽃빛의 쓸쓸함과도 같았다.

 

느린 궤적과도 같은 어두움이었고

깊은 가을날의 시냇물과 같은 긴 그림자 였다.

 

 

 

 

 

 

 

 

 

 

 

히어리

 

산수유와 생강나무가 내어준 노란색 꽃빛을

꿀벌과도 같은 황금빛 히어리가 대신하고 있다.

 

봄바람에 황금빛 종소리를 울려낼것과도 같은 히어리.

하늘에 수많은 동그라미를 만들며

주변의 진달래 분홍빛과도 어울려

묘한 아름다움을 준다

 

 

 

 

 

 

산에 오르며 봄을 맞은지도 삼년이 되었으니

진달래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있을법 하련만

경주 남산 삼릉 계곡을 오르며

붉은 솔밭 사이에 외로이 피어있던  진달래 정도가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아직 진달래가 철쭉처럼 극성스레 피어있는 광경을 보지 못했다.

내 기억 속의 진달래는

그저 더문 더문 바위와 나무에 어울려 외롭게 피어있는것 뿐이다.

 

물론 이것 또한 나의 일천한 산행 이력에 기인한것이겠지만

오늘 하루 진달래를 집요하게 좇아가다보니

진달래는 역시 무리지어 피어나는것보다는

함초롬이 외진 세상을 배경삼아 한 두송이 피어있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영변의 약산 진달래를 떠 올리다가도

나무가 없는 북한의 산하는

지금쯤 얼마나 삭막할까하는 쓸쓸한 생각이 떠오른다.

중국에서 보던 이북의 민둥산들...

 

꽃을 뒤로 무심히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남기고 간

저 말없는 슬픔의 뒤안을 조심스레 담아 본다.

 

 

 

 

 

 

 

 

금강굴

 

 

 

진달래 꽃잎 하나가 눈섶 위로 떨어진다.

작은 분홍빛 꽃비가 눈을 타고 흐른다.

 

봄날의 허무를,

그 열락의 짧은 순간을 알기에

나는 봄날을 축복하지 않는다.

 

내 눈섶 위의 봄이여

눈물에 갇힌 내 젊은 날의 초상이여

나는 봄 속에서

 길을 잃은 반달처럼 싸늘히 걸려있다.

 

작은 분홍빛 꽃비가 눈을 타고 또 흐른다.

 

 

 

천관산 종봉

 

 

 

 

종봉에서 바라 본 장흥 앞바다.

 

새 다리가 놓여진 소록도는 운무에 잠겨 있고

막걸리를 마신뒤의 텁텁한 욕지기와도 같은 봄바람이

울컥 산을 넘는다.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던

그 청량제와도 같은 바람은 이미 그리움이 되었다.

문학이 죽고 시가 말라버린 산 위에서

소갈 난 봄 바다를 묵묵히 바라 본다.

 

 

 

 

 

아내의 사랑은 봄날처럼 고요하다.

푸른 고양이의 털과같이 부드럽다.

그 부드러움과 온화함 위로

분홍빛의 고요한 사랑이 떠다닌다.

세상을 움직이는 떨림이다.

 

 

 

 

 

 

 

 

 

지천으로 핀 얼레지 중에

 

지천으로 핀 꽃 중에 오직 너이듯이

지천의 사랑 중에 오직 나 하나를 위한 사랑

그 희유한 사랑을 안는다.

오늘은.

 

 

 

 

 

 

 

 

 

 

 

 

 

 

 

 

 

 

 

 

 

 

 

꽃을 정물을 담아내듯 소중히 담아 낸다

내 아내의 손에 쥐어 줄 부케와도 같이 화려한 그 꽃을..

 

세상을 벽삼아 피었다가 쉬 사라진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일이냐.

나는 슬픔 위에 사랑을 놓아두기가 은근히 주저되었다.

오! 바니타스여...

슬픈 봄빛이여!

 

 

 

 

새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는 50gm의 힘이 필요하다.

세상을 봄빛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힘이 필요했을까.

 

껍질로 덮힌 세상에서 바깥을 지향하는

위대한 힘이 있었기에 오늘이 가능했으리라.

 

하지만 나는

세상이 온통 변화인 봄의 산능에서

오직 우무질인 내 가슴 속을 되돌아 보고있다.

조용히 굳어가는 마음,

또 육신에

봄바람을 훈증한다.

 

 

 

눈 위에 남겨진 새 발자국은 애써 지우지 않더라도

눈과 함께 사라진다.

봄 날이 잠시이듯 내 삶 또한 잠시리라.

내가 남긴 발자국 위에

채 봄바람의 기운이 가시기도 전에

나는 사라져버린것들을 그리워 하리라.

무상의 힘과 슬픔...

 

 

당번봉

 

無常의 세월 앞에 또 다시 돌아 온 春來의 기쁨을 나는 믿지 않는다.

아주 잠시의 환상 일뿐.

 

하지만 내년에 돌아 올 봄은 어떤 봄인가.

한층 더 늙어버린 마음 속의 봄이 아닌가.

봄을 바라보는 나 자신이 이미 늙어버리기 때문이다.

지금 이순간의 봄이야말로

남아있는 내 감성의 가장 순수한 봄이 될수도 있다.

그러나 봄산에 올랐어도

봄에대한 좀처럼의 소회도 없어진걸 보니

내 마음 속 봄은 이미 얼어버린 빙하기의 봄인지도 모르겠다.

 

 

 

 

원경처럼 아련하기만한 내 청춘의 봄에

弔辭를 쓴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이미 탈색된 과거가 되어버렸다

낮은 채도로 사위어 가는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래도 변하지 않은것은 오직 산속 길이기에

길을 따라 흘러가는 나도

나의 마음도 그대로였으면 한다.

 

 

 

천추봉

 

 

 

 

 

 

 

 

 

 

당번봉

 

이렇게 좋은 봄날 청승으로 산을 弔想한다는것은 옳지 못하다.

산은 여전히 침묵 중이다.

 

나는 늘 저 변함없는 默의 세상을 동경하였다.

그러나 천관산의 바위들은 默을 연상하기에는 너무도 화려하다.

 

바위에 얼굴을 데고 기댄다.

냉기가 가신 기분좋은 차가움이 느껴진다.

근원으로 다가가는 기분.

내 정신의 원형.

 

 

 

 

 

 

 

 

 

 

 

 

 

 

 

천추봉

 

산이 조금씩 제 살을 깍아 만든 천관산

저 흙 아래에는 또 어떤 비경이 숨죽이고 있을까.

깍이고 또 깍여

마침내 드러난 우주의 死骸인 바위.

삶과 죽음의 나레이션.

 

 

 

 

멀리 연대봉

 

능선 위로 장흥 앞바다에서 올라온 봄 기운이 밀려 온다

오직 관목과 억새가 주인이었던 능선위로

노랗게 음력 삼월의 봄 그림자가 정겹게 드리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

해일처럼 밀려드는 봄이 무척 이채롭다.

 

 

 

 

 

 

 

 

 

 

 

 

진죽봉

 

 

 

 

 

 

 

 

 

 

 

 

 

 

 

 

이육탑

 

 

 

구룡봉에서

 

 

 

 

 

 

 

 

 

구룡봉 위에는 여러개의 돌구멍이 있고

그기에는 빗물이 고여있는데

그중 큰 구멍 속에는 초록과 붉은색의

보기에도 섬뜩한 무당 개구리가 살고 있었다.

 

마치 구룡봉을 지키는 아홉마리 용의 현신인듯

따듯한 봄날을 맞아 짝짓기에 여념없었다.

 

 

 

구룡봉 정상의

왕중의 왕이 앉았을법한 큰 돌의자.

 

 

 

 

 

우측 끝에 우리가 가야할 천관산 연대봉이 보인다.

 

 

 

 

 

 

가을은 늘 가을이다.

 

가을의 옷으로 또 다시 가을을 맞이할 것이다

그래서 천관산 하면 늘 가을을 연상하게되고

그 이미지를 재생산 하는것이 천관산 억새이다.

 

 

 

여자의 아랫부위를 연상케하는

환희대의 바위

 

 

 

우리나라 산중에 산정의 넓디 넓은 억새밭은

생각하기도 싫지만 다 수탈의 역사와 관계있다.

멀리는 여몽항쟁과 임진 왜란 때부터

가까이는 일본의 수탈에 이르기 까지

천관산의 나무는 베어지고 불탔다.

 

지금은 너른 벌이 되어 어미의 가슴처럼 넉넉해 보이지만,

그래서 어머니의 산이라 불리는 진산이지만

그 모질디 모진 수탈의 역사를 다 이기고

오늘에 이르렀기에

그 모성적 값어치가 더 빛나는 것이다.

 

 

 

 

 

 

 

 

 

 

 

 

 

  

 

양근 바위

 

 

 

 

 

 

 

 

 

 

 

 

 

- 후 기 -

 

산을 내려 오자

마음을 물들이던 진달래 꽃물들은 어느새 바래고

스무 여섯해를 함께 있어 준 접시꽃 하나가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 오랜 세월을 꽃으로 산다는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이미 청춘을 떠나 세월의 바다 속을 떠다니는 섬이듯

그녀도 섬이 된지 오래일것이다.

 

다만 우리는 마주보는 섬이되어

서로가 서로의 사랑으로 아꼈으면 한다.

 

진달래는 곧 질것이다.

봄 햇살에도 마르지 않을

진달래 꽃빛만을 고이 남기고.

 

 

 

 

 

Ennio Morricone,
Love Affair O S T "Piano S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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