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문복산 -계살피 계곡

poll™ 2011. 9. 5. 12:50

 

 

 

 

 

사하산사랑 200차 산행.

 

일기 예보에도 없는

비가 온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생각해보니

세상사의 절반은 다 이처럼 뻔한 일이다.

예상 밖의 일들은 다 지적 게으름이나 오만에서 연유한다.

 

나의 완소 오두막.

가슴에 품고 산에 올라야 할 모양이다.

 

 

 

 

위압적인 비구름이 문복산을 짖누르고 있다.

무대가 끝난 후의 커턴처럼 세상을 가두었다.

산을 향한 말문을 거둔다

 

비다.

고요한 비다.

내가 산에 오면 비가 온단다.

그 말은 자기가 산에와도 비가 온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사람다운 생각의 면모다.

 

넘어지면 돌부리를 원망하고

지각하면 엄마나 시계를 원망하고

홍수가 나면 하늘을 원망한다.

 

세상을 원망하는것이 오래된 인간의 습성이기는하지만

이렇게 세상사 모든 잘못을 이해하기 위해

 꼭 상대방을 향한 원망이 필요한것일까.

 

세상사 다 그러려니 하고 살기, 참 힘든 모양이다.

 

 

 

 

일행을 다 보내고 나는 또 텅 빈 길 위를 걷게된다.

주위를 둘러 보면 비어있는것이

비단 길만이 아닌데도

길 위에 "남겨져있다"는 느낌이 참 새삼스럽다.

은연 중에 길이 내 의식을 길 위에 가둔것일까?

 

세상에 원망없이 놓여져 있다는 인식은

사유의 기회가 마침내 찾아왔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유의 기회가 찾아왔다고하여

실제로  줄곧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걷는다는 것은 아니다.

 

생각에 나를 맡긴다는 뜻이다.

생각에 나를 맡겨

생각이 물흐르듯 자연스레

머리에서 명멸할 기회를 주는것이다.

 

그래야 뜻밖의 생각이 잘  떠오른다.

이처럼 기상천외한 뜻밖인 생각이야말로

생각의 보석이다.

 

 

 

 

생각의 길이 처음부터 있었던것은 아니다

수많은 사유의 행보를 통해

생각의 길은 다져진다.

일상 경험처럼 사유의 경험이 생각의 길을 단단하게 만든다

 

생각에  몸을 맡겨 걸을수 있는것은

그만큼 생각의 골이 깊어졌음을 의미한다.

 

그 골 깊은 곳으로 나를 또 밀어넣는다.

무념 무상의 포행이

우중에 갇혀 뜻밖으로 편안하다.

 

 

 

참취꽃

 

쑥부쟁이 구절초를 겨우 구별하였더니

이제 취꽃이 나를 괴롭힌다.

 

노란꽃은 바위취

곰취

곰취를 닮은 털머위꽃

가을 꽃들은 왜 이다지도 서로 닮았을까.

 

요놈은 흰색꽃

참취꽃이다.

구절초보다 더 가을을 닮은 ..

참취꽃.

 

너가 있음으로 비로소 들길이다.

비로소 가을 길이다.

 

 

 

 

 

 

 

 

물기를 덤뿍 머금은 들머리 외항마을.

산으로 둘러쌓인 분지다.

 

텅 비어있는 우사가 마음을 아프게한다.

출입을 금지시킨 줄들이 얼씨년스럽게 한데 엉겨

고단한 풍경을 만든다.

 

구제역에 돈좌한 낙농의 꿈.

희미한 소들의 울부짖음이 들린다.

 

 

 

낙동정맥 길

 

운문령 고개와 연결되는 삼거리.

이 길 따라가면

김고문님 잠드신곳 있을것이다.

 

주적 주적 빗길을 걸어가며

나지막한 그 분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964고지

 

학대산이란 정상석이 서 있다.

 

우리나라 산, 무수한 봉우리마다 각자 제 이름이 있다면.

철수봉 ,영희봉이라 부를 수 있는 정다운 이름들이 있다면..

 

꽃을 꽃이라 불러

꽃이되듯

이름없는 산봉우리

다 저 마다의 당당한 생명을 얻을터인데.

 

 

 

 

드러누운 산림청

 

전후 세대의 일원으로

그동안 우리나라가 시행한 정책 중에

산림정책의 결과야 말로 누가 뭐래도 제일 눈부시다.

산을 오르지 않는 자들은 그 가치를 모른다.

 

숲이 있는 산

산이 비로소 모성이 되는

위대한 이 나라의 삼림.

 

 

 

 

 

더디어 문복산에 올랐다

 

영남 알프스 1000m이상 되는 산 중에 아직 못오른 산은

이제 고헌산(1033m) 하나 뿐이다.

 

고헌산과 문복산은

실제로 영남 알프스 제산들로부터 약간

벗어나 있으므로

영남 알프스 산군에 포함시키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비내리는 중에 오른 문복산.

그러고 보니 영남 알프스의 산들을 등정한 날은

참 비가 많이 온것 같다.

 

 

 

 

홍싸리 버슷이라는데...

 

 

 

 

더디어 계살피 계곡

 

등로와 계곡간의 거리가 멀어

나는 그냥 안전한 등로를 택해 산행하기로 했다.

 

좌측 귀에만 물소리가 들린다.

마치 고장난 헤드폰을 끼고 걷는 느낌이다.

 

바위가 미끄러워

오늘은 평소보다 더 산길이 조심스럽다.

상운산 등반 때

비오는 계곡길을 걷다 넘어진 기억 때문이리라.

 

도발적으로 우는 매미 소리와

끊임없이 알파파를 만들어내는 물소리가 어울려

프로코피에프의 마지막교향곡인 7번 교향곡을 듣는 기분이다.

 

간결하고 아름다운,

청춘의 감성과도 같은 로맨티시즘

혼자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길이 아닌가.

 

부드럽게 나아간다.

정말 따뜻한 길이다.

 

 

 

 

 

 

 

 

 

 

프로코피에프의 7번 교향곡을

느끼게한 길

 

삼국시대 가슬갑사가 있었다는 곳이다.

 

 

 

 

 

 

 

 

 

바위를 오르는 돌 달팽이

 

 

 

인적 없는 산길

 

홀로 산길을 걸으며

물었다.

가슴 높이로 다가오는 저 초록의 너울은 무엇이냐고.

 

 그것은 푸른천으로짜여진

내 천성의 깃발이라고.

 

고독의 선물이며

깊은 사유의 증거.

사색과 더불어 머물다가는 내 생애의 기념비라고.

 

 

 

 

계살피의 어원

 

삼국시대 이곳에 있었다는 가슬갑사.

그 절 옆에 있는 계곡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한다.

가슬의 경상도식 발음이 계살이 된모양이다.

는 계곡의 이름끝에 붙는 어미일까?

 

 

 

 

 

 

 

 

 

천천히 산길을 걷다보니

산길의 아름다움이 모처럼 더 눈에 띈다.

 

완만한 길

 길에 어울리는 나무.

 

물흐르는 소리.

나뭇잎에 걸린 비거스렁이.

애기 바람에도

우슬우슬 떨어지는 물방울.

 

세상은 이롷게 조화롭다.

 

 

 

 

 

 

무대 위에 비치는 하일라이트처럼

모처럼 비가 그친 사이로 한줄기 빛이 쏙 고개를 내민다.

 

눈 앞에 비록 탄복할 만한 순간이 포착되었다쳐도

사진으로 담아 낼 재주가 없으니

참 암담하다.

 

빛을 담아내는 일이

빛을 알아내는 일처럼 어렵다.

 

 

 

 

마침내 물에 풍덩 더운 몸을 담근다

차지도 미적지근하지도 않는 적당한 수온이다.

하계 등반의 별미다.

 

땀을 씻어내고

더러워진 옷가지를 정리한다.

 

탁족한 채 세상을 바라보니

궁창의 조화가 다 신묘하다.

 

 

 

 

 

 

 

 

폐가.

 

폐가는 어떤 방식을 통해 존재감을 회복하게 되는걸까.

 

세월이 가면 상처에 새살이 돋듯

연륜의 무게로 폐가의 존재감이 살아나는걸까.

 

존재감이라

폐가의 생명력은 집을 둘러싸는 공간의 묘한 역학이다.

 

비워져 있으면서

그 연륜을 채워주는 적당한 오브제와 어울릴 때

건축은 건축을 뛰어넘어 하나의 작품이된다.

어느것 하나 건드릴 수 없는 장치이다.

 

연륜이

스스로의 존재감을 빛내주는

그 높지도 낮지도 않은 경지로부터

나는 이미 너무 벗어나 있지는 않은지.

 

 

 

 

 

 

- 후 기 -

 

 

한적한 길에 나를 맡기고

천천히 산길을 걷는다.

 

마치 나의 이런 산행 방식이

타인들은 잘 모르는 나만의 잔재미인듯

홀로 느림을 만끽한다.

 

어쿠스틱 카페의 감미롭고 부드러운 현이 발걸음을 따라다녔다.

걸음이 공기를 가른다.

가을로 저무는

초록빛 너울이 녹빛을 감추며 부드럽게 다가온다.

 

초록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산길을 또 노래해야지.

그리고 또

사람들을 사랑해야지.

 

그들과 나

공통의 원자를 가진 異人이니까.

 

 

어쿠스틱 카페/Last Carn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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