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530m 제수리제를 출발하여
산을 오른다.
멍석 위의 박오가리처럼
꾸덕 꾸덕 잘 마른 바람이다.
공기 또한 맑고 투명하다.
꼬불꼬불 산줄기의 꼬랑지에 붙어
막장봉이라 불린다는데
오늘은 그 이름마저 정겨운
막장봉을 오른다.
이빨 바위
개 이빨을 닮았다.
이 지역의 산들은 사랑을 감추는 수줍은 처녀처럼
멋진 암릉 하나쯤 다 품고 있다.
그래서인지
산들이 어느것 하나없이 다 수려하다.
수려할 뿐 아니라
산악인에게는
바위를 타고 내리는 재미도 아울러 안겨준다.
사랑을 주고 받는 유기체처럼
정말 사랑스런 산들이다.
이 산들 사이로
백두대간의 도도한 혈이 흐르고
그 왕성하고도
강건한 기상이
이 땅 백성의 혼이 되어 깃든다.
제법 용을 쓰야 오를수 있는 바위들
이런 바위들이 많아
마치 유격 훈련을 받는 기분이든다.
대야산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속리산 주능선
경상북도 문경시와 충청북도 괴산군이
소싸움을 하듯 머리를 맞댄 곳이 이곳이다.
황소의 성난 뿔처럼 산들이 씩씩대며 솟구쳐 오른다.
저 산금들이 다 이 나라 대간이요 등줄기이다
도도한 청옥빛 산그림자에 눌려
한참 산구경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꼬불 꼬불 암릉을 오르고 또 오른다.
오늘따라 하늘이 맑아 조망이 싱그럽기 그지없다.
시월의 노래처럼
마음이 가볍다.
이런 날씨에
산의 품에 들어
가벼운 응석으로
달디단 노동을 즐긴다는것은
얼마나 큰 행복이냐.
산에 몰입 할수록
그 행복이 커져감을 느낀다.
일종의 중독이다.
바위 틈에 곱게 내려 앉은 가을.
가을의 초입은 이렇게 극적인 요소가 없다.
언제나 은근하고 고요하다.
지나가다 어찌할수 없어 주저 앉은
그 피할수 없는 질긴 숙명을 이고 사는듯
초가을의 풍경에서는 늘 체념이 느껴진다.
이 체념이
불처럼 달아오른 심장을 진정시킨다.
바람이 없어도
억새는 서편으로 몸을 누인다.
이런게 산행이다
신을 벗고 복장을 해제한 후
삶을 한켠에 제켜 둘수 있는 여유.
속도를 경계하고
영혼을 추스릴 수 있는
깊은 마당처럼 넉넉한 마음이야 말로
산행의 진면목이다.
오로지 빨리 산을 넘으려는
내 모습이 오늘따라 안스럽다.
칠보산과 그 뒤 보배산의 위용
고인돌을 닮은 바위
산속을 헤맨다는것은 이런 재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산 길에 놓여 난 우리는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며
산행의 재미를 만끽한다.
이고비 저고비를 넘는 모습이 슈퍼 마리오처럼 정겹다.
바위 틈을 겨우 비집고 오르기도 하고
로프에 매달려 간신히 슬랩을 내려오기도 한다.
고개를 들면 앞서가던 사람은 이미 길을 떠나고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홀가분하다.
그 무거운 사진기도 두고 왔다.
그렇다고 풍경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
뷰파인더로 세상을 노려보는 재미는 없지만
무게에서 해방되어
물을 만난 고기처럼
산길을 날아다니는 재미만은
누구와도 나누기 싫다.
한 고비를 넘으면 또 넘어야할 산들이 숨을 턱 틀어막고 서 있다.
마치 미로를 찾아 헤메듯
산 길을 헤치고 나간다.
산부추꽃,왕고들빼기,구절초 쑥부쟁이,며느리 밥풀,층층이꽃
꽃들이 숨을 죽이고
일행을 맞이 한다
다정한 산길이다.
일찍 누려 보지 못했던 여유를 즐기며
샤워처럼 쏟아지는 초가을 햇살 속에 몸을 태운다.
천지 바위
저 자리에 앉으면 그대로 미륵반가사유상이 되어버릴것 같은 멋진 石座다.
비가 와서 물이 담기면 천지처럼 보인다하여
천지바위라 이름지어진것 같다.
대야산의 뒤로 충북 알프스의 파노라마.
아슬 아슬한 이 암능을 지나면
곧 막장봉이다.
산 그림자에서
그리움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겠는가.
사라지는것
희미한 기억처럼사라지는것.
사라지되 다 사라지지 않고
은근한 흔적인체 남는것
하늘에 걸린
저 건너의
옅은 코발트빛 그리움
코기리 바위를 지나며
마침내 막장봉
대야산에서 장성봉,막장봉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백두대간 길이다.
이길은 북쪽을 따라 악휘봉으로 이어지다 급히 동으로 꺽여 희양산으로 이른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길이 대간길 구간인 셈이다
희양산 백운대
백두대간의 단전에 해당하는 998m의 산
누군가 말하기를
조폭 승려가 몽둥이를 들고 지킨다는 절.
다 모르고 하는 소리다.
봉암사를 품고 있는 희양산
한국 불교의 성역이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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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사에 근대 선원이 다시금 부흥된 것은 1947년이다. ..해방직후 사회적 혼란이 극심한 상황에서 봉암사는 한국불교의 현대사에서 새로운 흐름을 창출한 결사도량으로 거듭난다. 이름하여 '봉암사 결사' 가 그것이다. 봉암사 결사는 1947년 성철스님을 필두로 청담. 자운. 우봉스님등 4인이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임시적인 이익 관계를 떠나서 오직 부처님 법대로 한번 살아보자.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은 고치고 해서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는 원을 세우고 결사도량을 찾으니 그 곳이 봉암사였다 ..그 후 청담. 행곡. 월산. 종수. 보경. 법전. 성수. 혜암.도우등 20인이 결사에 참여하였다. 당시 결사대중은 공주 규약을 제정하여 추상같은 법도를 세워 오늘날 수행의 근간을 세웠던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결사정진도 1950년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단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하게된다. 그후 1970년 초부터 다시 수좌들이 봉암사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불교신문 기록으로 보건대 봉암사 희양선원은 1972년 향곡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15명의 납자가 정진했다. 이후 1974년에 서옹스님이 조실을 맡은 것을 제외하고는 78년까지 향곡스님이 줄곧 조실역활을 하면서 납자를 제접했다.1980년경 서암스님이 정식으로 태고선원 조실로 모셔지면서 선원은 청룡의 승천과 봉황의 날개짓처럼 웅대한 자태를 희양산 자락에 펼치게 되었다. ..1982년 6월 종단은 봉암사를 조계종 특별 수도원으로 지정하여 성역화 의지를 표명하였다. 1982년 7월 문경군에서는 사찰 경내지를 확정 고시하였다 그래서 희양산 봉암사 지역은 특별 수도원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막아 동방제일 수행 도량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던 것이다. 이어 1984년 6월 제 13차 비상종단 상임위원회에서는 선풍 진작과 종단 발전을 위해 봉암사를 종립선원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1994년 범룡스님이 조실로 추대되어 2년여간 납자를 제접하여오다, 2000년 하안거 해제에 진제스님을 조실로 모셨으며 그후 2001년 하안거 결제에 서암스님을 다시 조실로추대하여 대중 스님들을 지도 하시다가 2003년 3월 29일 날 열반에 드셨습니다. |
애기 암봉에 이르는 능선
초가을 햇살에 문득 잠을 깬 아기처럼
건강하고 해맑은 모습이다.
건너편 희양산과 어울려 멋진 풍경을 선사한다.
저 애기봉 끝에 도달한다하여도
완장리까지 또 긴 길이 우리를 기다린다.
들에는 이미 제법 가을이 들어
또 저물어 가는 시간을 알린다.
담배 연기처럼,
매일 이별하는 하루처럼,
김광석의 노래를 떠올리는
멀기만한 풍경이다.
희양산 백운대의 흰 화강암이 가을 햇살에 취해 노곤한 몸을 누인다.
희양산 뒤로는 시루봉,조령산등 문경 새재,이화령을 둘러싼 멋진 산들이 자리 잡고 있을것이나
산행 초보인 나는 도저히 어느 산이 어느 산인지를 통 가늠할 수 없다.
좌측 끄트머리에 붙은 산은 모양이 월악산을 닮았다.
무슨 산이면 어떠랴.
산들이 속이 꽉찬 배추처럼
단단한 힘으로 조여온다.
산들이 장미 꽃잎처럼 빙글 빙글 흩날린다.
도시를 떠나
높은 산에 올라 세상을 보는 즐거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백운대의 위용
문경 사과처럼 가을의 밀도는 높아가고
내 생각은 야윈다.
어디다 정신을 두고 왔는지
머리 속 기억들이 가뭇하다.
멀어져가는 이름들이
바닷가 바위에 붙어 자라는 해초처럼
위태하다.
얼마나 많은 이름들을 잊어버렸을까
그 잊어버린 기억 속을
나는 또 무엇으로 채울까
맑은 얼굴의 구절초
말없는 무심의 구름.
차마 잊고 싶지 않은 이름들.
애기 암봉의 초라한 정상석
오늘 산행의 끝머리
세상은 왜 쉴새없이 변하는걸까
無常의 삶 속에서 한장의 사진을 잡아두고
나는 묻는다.
세상 만물은 왜 변하는것인지.
나는 대답 대신 구름을 바라 본다.
삶은 구름처럼 잠깐이며
세월은
골짜기를 흐르는 물과 같이 빠르다.
코끼리의 발자국처럼,
죽음을 향한 명상처럼
분명한것은
"덧없음"
이 덧없음으로 인해 오늘따라 마음이 홀가분하다.
두 다리에 또 믿기지 않은 통증이 돌아왔다.
실상도 없는 고통이다.
한알의 알약을 먹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산을 황급히 내려갔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갑지기 멈추어서
뒤미쳐 좇아오는 영혼을 기다리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작은 옻나무골을 내려 오며
나는 저산 어딘가 벗어두고 온 내 영혼을 기다렸다.
카메라를 고정시켜 피사체를 담는다.
언제 나타났는지 영혼이 내 뒤에
우두커니 서 있다.
나는 생각한다.
사고야말로 영적이요,철학적 활동이다.
사물에 내 그리움을 입히고
내 철학의 구도를 입히는
사물과 내 영혼과의 collaboration이다.
뒷골목을 돌아다니는 고양이의 눈빛처럼
무심히 버려진 풍경에 마음이 간다.
세상 만물을 향해 던진 내 시선의 깊이에 의해
생명이 마침내 어질게 살아난 기분이다.
가을 길섶
길
작은 옻나무골
수수
감
- 후기 -
세상을 돌고 돌아 제자리에 돌아온 기분이다.
모든것이 다 제대로이다.
평화를 얻은 마음 위로
죽음,
덧없음...
이런 주인도 없는 말들이 떠다닌다.
퍼즐처럼 맞추어진 세상 속을
나 혼자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인 탓일까.
오늘 산행은 왠지
그냥 아무렇게나 걸어도 찾아올 길을
공연히 헤매다 돌아 온 그런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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