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노그램의 티끌도 없는 허공 중에서
문득 깨닫았다.
나 스스로가 티끌임을.
계관봉(1251m)과 천왕봉(1228m)
괘관산은 대봉산으로 개명되었다.
큰 봉황의 산이니 큰 인물이 난다는 뜻이리라.
일제 시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선비가 갓을 걸어 두었다는 뜻으로 괘관산이라 불리었는데
선비가 갓을 걸어둔다는것은 벼슬을 포기하는 의미라고 하여
산이름을 바꾸기로했다.
계관봉은 산 정상부가 암릉으로 이루어져
멀리서 보면 닭벼슬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잔설이 흰 카펫처럼 깔린 산길을 걸으며
응달에는 제법 깊은 눈이 쌓여있다.
능선길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발걸을을 재촉한다.
등에 땀이 고인다.
힘들기는 하지만 푸념을 늘어놓을 정도의 고통은 아니다.
맑은 하늘 아래
거리낌 없이 마음을 드러내고
심신을 정화한다.
잡념이 사라진다.
선두가 러셀한 길을 걷는다.
앞서간 이들을 따라가는 일은 참 편하다.
세상일이 다 그렇다.
나는 선두에 서서 남을 지휘하거나 재촉하는 일따위에는 별 관심없다.
기껏해야 남을 따라하는 안전 제일주의.
이런 안일함이 생의 굴곡을 무디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든 남이 닦아 놓은 길을
부지런히 걸어온것 만은 사실이다.
나의 장점은 日新이 아니라 끈질김이니까.
비록 눈길을 걷고있지만
기온은 봄처럼 따뜻하고 수관을 따라 물을 듬뿍 빨아들인 나무에는
봄기운이 완연히 돈다.
벌써 남녘에는 고로쇠 수액을 뽑는 일로 분주해졌다.
어느듯 수피에 봄기운이 들고
우듬지 마다에 황금빛 햇살이 머물면
이미 산너머에 봄이 온것이다.
바야흐로 생물이 대법받는 시기가 도래하였다.
잔설이 능선을 따라 이어지며
멀리서 보면 마치 눈길이 끝없이 펼쳐진 만리 장성처럼 보인다.
능선과 능선사이에 이어지는
이 으늑하고 우련한 선을 보면
대상이 없는 막연한 그리움이 우러난다.
이 그리움에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이름들을 붙여 떠올린다.
추억이 마치 비누방울처럼
가볍게 하늘로 오른다.
잊지 말아달라거나
기억해 달라는 억지 따위도 없다.
그냥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처럼
그리움이 자연스럽다.
마음을 느낀다.
장수쪽 준령
장안산 군립 공원 지역으로
장안산-영취산-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명산이 많다
언젠가 저쪽 방면으로 산행한적이 있지만
도무지 지리학적 관계가 유추되지 않는다.
계관봉 암릉부가 수줍은듯 도드라져 보인다.
대봉산은 근본적으로 육산이다.
계관봉 남동으로 빈약한 암릉부가 노출되어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능선길이 마치 백두대간길처럼
으늑하고 우련하다.
안부에 올라 설때마다 마음이 서늘하게 열린다.
열릴것도 없는 마음이
스스로 개폐된다는것이
참 신비로운 현상이다.
이 신비로운 마음 작용을
나는 표현 할 방도를 알지 못한다.
이 방도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내 능력의 한계인지는 알 수없으되
분명 있지만
보이지 않는
신비한 체험이다.
마침내 지리산 주능선을 마주한다.
두세번의 파고를 넘으면 선뜻 다가설듯 지리산이 가까이 느껴진다.
반야봉의 수줍은 모습도 보인다.
과연 산들의 고장이다.
백운산을 필두로 황석산 거망산 금원산 기백산이 가로마고
그 너머로 덕유산의 전체 능선이 펼쳐진다.
그리고 서북으로 마침내 지리산 주 능선이...
백운산의 위용
빼빼재를 사이에두고 대봉산과 마주하는 백운산
마침내 계관봉
괘관산에서 계관봉으로 직위가 낮아지며
정상석의 지위도 함께 낮아졌다.
지금 위치에서 바위벽을 조금 더 올라야 계관봉 정상이다.
계관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천왕봉에 이르는 능선은 유려하면서도 부침이 있어
점심식사 후 찾아오는 노곤함을 잊게해주었다.
계관봉에서의 조망은 과연
카타르시스를 일으킬만한 悲情을 일으켰다.
극단적인 아름다움이란 정녕 슬픈것인지
아니면 슬픔의 이웃에 있어
악어가 먹이를 먹을 때 흘리는 눈물처럼
그렇게 속절없이 悲情을 건드리는것인지
슬픔인지 혹은 그 너머의 것인지도 분간 못한 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내는 짐승의 하울링을 모방하여
연신 장탄식을 쏟아내었다.
탄식의 벽처럼
큰 산들이 가로막고있다.
지리산 천황봉과 중봉
지리산은 천황봉이요
대봉산은 천왕봉이다.
하늘아래 皇이 둘이없음이다.
멀리서 배알하듯
지리산 주봉을 바라본다.
지리산 그 많은 봉우리들이
천황봉의 품안에서 이채롭다.
백운산
덕유산
향적봉-중봉-무룡산-서봉-남덕유에 이르는 마르금이 선명하다.
빼제에서 육십령에 이르는 종주길을 걸었을 때의 고행이
주마등처럼 되살아난다.
육십령 마지막 한발을 디딜 때의 감동.
천경만론이 다 바람소리처럼 들릴 때의 행복감.
그 날의 감동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맑은 풍경을 맞는다.
덕유산이 팔만 대장경처럼 장엄하다.
선묘의 描法
비스듬히 누워 몸을 비트는 능선
捨筏登岸
得魚忘筌
언덕을 오르려면 뗏목을 버리고
고기를 얻었거던 통발을 버려라.
산정에 올라 내가 버려야할것을 생각합니다.
우선 말을 버리고 싶습니다.
언어에 집착하다보면 본질을 잊어버리는 수가 많습니다.
등산의 본질은 걸음입니다.
그 걸음 끝에 풍경이놓여있습니다.
풍경은 때로는 난해한 화두처럼
말문을 걸어 잠그게 하거나
풍경이 비치는 마음의 본성을 또 바라보게 합니다.
이제 말을 버리고
자연 앞에 순수해 지고 싶습니다.
한치의 이지러짐이 없는 투명함으로
지리산 저 먼 발치에 이르고 싶습니다.
photo by 하늘빛
photo by andy
photo by andy
보호수
1000년 묵은 철쭉나무
천년묵은 철쭉에 꽃이 피면
그 꽃빛 또한 천년의 빛이리라.
작년의 꽃빛이 남아
재작년의 꽃빛과 어울어 지고
그 어울어짐이 또 어울려
올해의 꽃빛으로 피어나리라.
그 천년이 녹녹히 녹아스린
아름다운 빛으로
이 계곡을 물들이고
이 산하를 빛내리라.
아! 그 사월이 그립니다.
다시 돌아보는 계관봉의 위용
다시보는 덕유산의 파노라마
천왕봉 정상부의 돌탑
천옹봉 정상에서 이런 거침 없는 풍경을 마주할 줄 알았으면
감탄을 아껴둘걸 그랬다.
감탄을 소진한 후라 감동의 간살스러움이야 덜해졌지만
역시 탄성을 자아낼만한 트임임에는 틀림없다.
천왕봉을 먼저 올랐다면
감동의 역치를 아마 이곳에서 느꼈을것이다.
짧은 시간차로 이런 안구를 정화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는것도
날씨가 가져다 준 일종의 행운이다.
樂! 樂! 樂!
하늘이 탁 트진 산정에서
석류알처럼 꽉찬 道樂을 느낀다.
도락으로 인간을 구제할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
등 뒤로 아득히 멀어지는 한국 제일 산하의 스케일
여기서 보니 지리산이 비로소 어머니 같다.
잔잔하면서도 어늑한
생명을 이어 살린 태고적 부터의 평화가 느껴진다.
설명할 수 없는 평화의 방점이
가슴 앞에 커다란 마음의 빈 공간을 이루었다.
무엇이라도 품을 수 있는
모태의 생명.
얼마나 너그러운 풍경인가.
용서와 안식과
세상의 모든 산들을 감싸 안고도 남을
포용이 ,
한계를 넘은 느리디 느린 접근이
오랜 고난으로 거칠어진 손을 잡는다.
모성이다.
억세고 슬기로운 겨레의 기상이다.
오직 어엿한 이 터에서
이겨레 민족의 생명의 바리때다.
마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마지막 하산길을 남기고.
아쉬움을 보상하는듯 수줍은 능선하나가
순백의 고운 등살을 내밀고 있다.
돌고래떼 처럼 능선이 제 갈길로 갈라지며
산의 끝을 알린다.
한구비 능선을 더 넘을 수도 있겠지만
선두는 예정된 코스로 길을 접어들 모양이다.
오늘따라 길이 몹시 아쉽다.
봄인듯 청량했던 햇살이
한소끔 끓어넘은 맑은 국처럼 조도를 떨어뜨리며
산중에 막 세수한 민낯같은 그림자를 만든다.
그 풍경이 잘 해감된 조개국처럼 시원해
걱정없이 물을 마시듯 벌컥 한모금 들이킨다.
맑은 길을 정성을 다해 걸어 온 기분이다.
한발 한발 나아가는 길이
세상을 건성으로 살아가는 일이 없도록 하는
일종의 아포리즘같다.
빛을 거두고 수묵으로
한발 더 어머니에게로
지리산을 다가가는것이 아니라
그기에 안기는 기분이 든다.
지리산 아래에서라면
늘 부처와도 같은 불성으로 살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처의 불성이 모성과 무엇이 다르랴.
부처가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미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무엇이 다르랴.
삼거리에서 우측 계곡을 따라 급경사를 내려간다.
길은 급한 편이지만
눈은 이미 녹아 봄날을 실감한다.
긴 낙엽송길이 발 아래를 편하게 했다.
산을 내려 올수록 봄기운은 더욱 완연하다.
키 큰 나무들 사이로 아직 어린 새싹처럼
뽀얀 하오의 햇살이 스며든다.
마침내 갈증이 일고 엉뚱한 시장기마져 느껴졌다.
무엇인가 완결된듯한 평화였다.
등산의 말미에 이처럼 커다란 평화가 놓여있어 좋다
봄을 기다리는 나무들
우수 절기에 딱 맞는 날씨다.
개울물이 녹아 재잘거리며 흘러간다.
입춘과 경칩사이에
눈이 변하여 비가되고
얼음이 녹아 물이된다는 우수.
오늘이 그 우수다.
우수에 맞는 봄은 단아하다.
겨울을 벗겨낸 강한 자아의 용트림으로
봄을 준비하자.
- 후 기-
산행 뒤끝이 개운치 않다.
산이 싫은것이 아니라 사람이 싫다.
사람이 곧 근심이다.
언제쯤 이런 인위적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울수 있을까.
산에 나를 두고 올 수는 있어도
타인을 버리고 올 수는 없다.
세상은
늘 1 나노그램의 고민을 담고있다.
오늘은 이런 겨자씨와도같은 번민이
찐빵처럼 부풀어 나를 괴롭힌다.
뒤끝이 개운치 않다.
삶의 극단에서 마음이 혼미하다.
성급한 서쪽의 개밥바라기처럼
산행 후 되살아 난 1 나노그램의 존재가
참을 수없는 모욕으로 나를 괴롭힌
뜻밖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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