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비내리는 봄날의 가덕도 151번째

poll™ 2012. 3. 5. 12:27

 

 

 

 

 

 

지심도에 동백을 보러 간 날

하늘은 잔뜩 물기를 머금은 채 무거웠고

별것같지도 않은 풍랑에 배가 묶여

하는수없이 섬을 되돌아 나왔다.

 

모처럼 나선 걸음이 아까워 가덕도 둘레길이라도

훠이 훠이 돌아볼 목적으로

주적거리는 비를 뒤로

가덕도로 향한다.

 

 

 

 

 

 

 

희미한 바다 너머의 세계

저 피안의 세상이 내 현실의 세계이다.

몰운대 희미한 그림자가 가물거리며 멀어지는 고래처럼

아득하다.

 

고래는 꿈일까?

고래를 꿈꾼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 고래였을 때가 있었다.

욕망은 늘 삶이었고 꿈이었다.

 

한때의 영광이었던 고래의 꿈이

지금은 가라앉고 있다.

가라앉는다는것은 고요한것이다.

 

피아니시모의 침잠.

남길것과

버려야할것의 선명한 경계,

바다 끝에 비로소 그 경계의 금이 그어진다.

 

 

 

 

 

 

 

 

압화가 되어버린 추억이

기억의 변연을 흐리게하며

바람에 흔들거렸다.

 

온갖 오래된것들로 채워진 옥상처럼

낡은 기억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요양원 창가에 앉아

세월을 지워가는

버려진 노인을 생각했다.

 

불편한 모습으로 낡아가는

늙은 내가 보였다.

 

 

 

 

 

 

 

 

 

 

 

 

 

여자라 부를만한 유일한 여자

  

 

 

 

 

자유!

 

자유란

세상에 관심을 버린것이 아니라

마음이 향하지 않는 세상을 버리는것이다.

 

몽드리앙의 화면처럼  마음을 구획하자

묵은 마음 한켠이 쏴-하고 속절없이 벗겨져나갔다.

 

세상을 덜 간섭하고

덜 간섭 받을것.

 

말을 믿지 말고

언어를 두려워할것.

 

이우환의 一點처럼

삶을 간결하고

담백하게 유지할것.

 

 

 

 

 

 

 

 마음의 반은 늘 위태하다.

 

높은 산을 아무리 넘고

길을 아무리 멀리 걸어도

내 마음의 반은 늘 반달의 그림자처럼

어둡다.

 

마음을 닦으려는 노력이 간절해질수록

마음은 비웃듯이

마음을 또 갉아먹는다.

 

마음을 가리는 미망도

그 미망을 벗어나려는 몸부림도

다 미망이다.

 

상처도,

용서조차도

다 미망이다.

 

 

 

 

 

 

 

 

 

 

 

 

 

 

 

 

 

 

 

 

 

 

 

 

 

 

물때를 만난 파도가

뒤돌아서는 소리가 들린다.

만난적 없는듯 등돌리는.

 

 

삶의 편력이 무기력하다.

 

 

하지만 삶이란

이력서의 행간처럼 비워져있는것이 아니다.

 

삶은 바다요

파도이며

시린 손이며

뜨거운것이 닿은 입술이다.

자각이 있는 매 순간이야말로

삶의 이력이다. 

 

 

바다를 향해

내 삶의 궤적이 바코드를 만들며 길게 이어졌다.

 

 

만 갈래의 주름이었다.

주름이 많은 삶일수록 더 풍성한것일까.

 

 

봄바람이 늙은 이의 손을 쓰다듬듯

바다를  위로하며 불었다.

 

내 거칠어진 두손을 내려다 본다.

 

 

 

 

 

 

 

 

 

 

 

 

 

 

 

 

 

나는 이 바다를 좋아한다.

내가 이 바다를 사랑하는 이유는

솔직함이다.

 

세상에 마음을 솔직히 드러내는것처럼

이 바다는 진솔하다

숨김이 없다.

 

이순신이 이 바다로 나가지 못한 이유도

배를 숨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숨김없는 바다 앞에서

나는 벌거벗은 마음이 되어

나 스스로를 돌아보기 좋았다.

 

 

맑은 마음 위에 스스럼없이 떠다니는 바람같은 자유가 좋았다.

 

바다 저 너머에 팽개쳐두고 온

현실이,

그 현실과의 아득히 먼 거리감이 좋았다.

 

 

 

 

 

 

 

 

 

 

 

 

 

 

 

 

 

 

 

 

 

 

 

 

 

샛바람이란 이름의 새바지에서

늙은 가수의 마지막 노래처럼

바다 소리를 들었다.

 

한때 빈무대를 바라보며 오랜 시간을 기다렸던 그 노래처럼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그 긴 겨울 동안에도

바다는 누군가의 기다림으로 울었을것이다.

 

 

동백꽃이 핀다.

오랜 기다림 뒤의 꽃은

그렇게 다 붉은 색이다.

 

 

그래서

바닷가에 피어있는

핏빛 선연한 동백이야 말로

피어날때도,질 때도

꽃 그대로 노래이다.

 

 

.

 

 

 

 

동선 새바지 방조제

 

 

 

 

 

 

비는 내리고 봄은 오고있다.

비를 맞고 봄을 맞듯

마음은 자유로운것이어야한다.

피하는것이야 말로 미망의 시작이다.

 

회피도

회피의 이유도

다 작위적이다.

 

거친 굴껍질 너머로

작은 섬을 품은 호수와도 같은 풍경이

그림자처럼 고요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미로와 같은 눌차 마을을 돌며

나는 엄나무 가지와도 같이 성긴

삶을 본다.

 

세상은 그 거칠고 척박한 삶의 역사 위로

또 다시 적요를 얹어

풍경을 위로한다.

 

 

말할 수 없는 차분함이었다.

 

 

 

 

 

 

 

강금봉-매봉-연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눌차 마을에서

 

세상의 모든 순환에는

단절의 순간이란 없다.

 

봄은 기다림의 끝에서 오는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중에 이미 있는것이다.

 

하늘을 향해 넓어져가는 가지마다에

생명을 꽉 채운 봄의 의미들이 가득하다.

 

 

 

 

 

 

 

 

세상 만물이 지워지는 저물녘에

봄비에 서러워져

바다는 몸을 떨었다.

 

슬픔을 예감한 파도는

이미 멀리 몸을 비켜섰다.

사람의 길도 함께 저물었다.

 

비바람이

오랜 시간 앓으며 터득한 습관처럼

내 가장 오래된 기억으로 부터

끊겨진 추억 하나를 되살렸다.

 

 죽은자들의 발라드였다.

死者들이 저만치 비를 비켜 걸어갔다.

그들이 이제와서 위무가 되지는 않았으나

겨울비를 이길만큼 따뜻한 존재로 느껴졌다.

 

 

머리 위로  연신 기억을 몰아다니는 굵은 비가  떨어졌다.

뷰 파인더 너머로

고요한 풍경 하나가 더할수 없는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우산은 팽개쳐진 채

거리 위에 휘청거렸다.

 

아내가 우산을 집어

젖은 몰골의 나를 가려주었다.

 

젖은 나비의 날개처럼

아내의 짙은 속눈섶이

비속에서 불안한듯 파닥거렸다.

 

 

프랑스 영화에서처럼

그녀를 안고싶었다.

 

 

 

 

  

 

 

 

 

 

 

 

 

 

 

 

 

 

 

 

 

 

- 후 기-

 

 

겹눈을 가지고도

세상을 온전히 보지 못하는

난독증의 나비처럼

나는 세상을 읽지 못한다.

 

 

한톨의 花粉을 흉중에 품었다하여

꽃을 다 가졌다할 수 있을까?

 

 

 

내가 보면서도 읽어내지 못한 세상을 향해

내가 취해야할 몸부림이란 어떤것인가?

 

 

난독의 나비여,

세상은 너만을 위한 꽃밭이 아니다.

 

 

너의 움직임으로

꽃은  시든다.

 

 

 

 

 

 

 

 

 

 


Nocturne No.1 in E flat minor, Op.33-1
Jean-Phillippe Collard,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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