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제183차 주흘산-부봉 산행 후기

poll™ 2012. 12. 3. 11:40

 

 

 

無明이 다하는 곳에

산이 있고 하늘이 있었다.

 

하늘과 산은 본래의 것.

無明만으로 세상을 說明할 수는 없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물에 젖지 않는 물소리처럼

있는것.

존재 하지만 보이지 않는것.

明의 세계에 서자 비로소 無明이 보인다.

 

 

 

 

 

照 見

 

비추어 마침내 보아라

世上의 空함을

 

 

 

無의 존재,

없음의 존재를 자각하는 순간.

 

생멸도 없고

증감도 없는

 무구청정의 세계.

 

그런 세계가 문득  마음으로 들어왔다.

비바람에 씻긴 맑은 마음이었다.

 

 

 

 

 

어제는 아예 할시온 한알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면의 성가심이 사라지고

나는 깊은 잠에 들었다.

 

꿈도 없는 밋밋한 잠이었다.

새벽 4시에 놀란 토끼처럼 깨어 후다닥 미리 준비해둔 배낭을 메고

일행이 기다리는 서면으로 갔다.

 

모든것이 순조로왔다.

차안에서라도 잠깐 졸았으면 좋으련만 고속의 공포는

쪽잠조차 허락하려 들지 않았다.

차를 타고가는 내내 근거없는 불안이 나를 괴롭혔다.

내 불안을 눈치 채지 못하게 끝없이 수다를 떨었지만

숙련된 솜씨로 차를 모는 옆사람에게 은근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약한 일이다.

세월이 사고의 악몽을 희석시키기는 커녕

고통을 후벼파는 고문 기술자처럼

마음의 상처를 더 깊이 곪게했다.

 

고속도로 위에서는 나는 늘 초죽음이다.

 

 

 

 

조령 제1관문

 

아침 일찍 도착한 문경 새재길은 인적이 뜸한 가운데

정갈한 산중의 고요함만이 부유하는 새벽 안개처럼

길 위에 하릴없이 떠다녔다.

 

가지런한 나무들 사이로 이 길을 지나간 무수한 선인들의 역사가 느껴졌다.

빠르게 돌아가는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기쁨과 슬픔의 장면들이 황급히 지나갔다.

 

그 지나간 흔적 뒤로 오래된 사람의 향기가 일었다.

희석되지 않는 무스크한 향이었다.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여궁 폭포 

 

산을 오르고 한 반시간여 만에

여자의 아랫것을 연상시키는 여궁 폭포에 도착하였다.

 

초겨울의 폭포 답게 얼씨년스러운 풍경이었다.

세상은 녹슬어 시간에 갇힌듯 한데

졸졸거리며 여자의 오줌누는 소리처럼

물소리가  데워지지않는 아침 공기를 뚫고 새어나왔다.

 

 

 

 

 

 

낙엽을 다 떨구고도 세상은 여전히 녹슨 그대로다.

이 녹빛을 떼어내고서야 비로소 온전한 겨울이 온다.

 

하늘은 막을 내리는 무대의 커턴처럼 무겁고 칙칙한데

인적없는 숲길을 걷는 우리의 마음은 오히려 거침없이 자유롭다.

 

무엇을 찾아가는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엇을 찾아가는 산행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목적지가 없는것도 아니다.

다만 왜 그기로 가야만 하는지가 없을 뿐이다.

 

세상은 은자처럼 늘 가리워져 있고

우리는 희미한 북극성을 찾아간다.

 

갈길이 멀다.

영원히 먼 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멈추어 설 수 없는 길이기에

나의 길은 늘 他者의 길이다.

 

 

 

 

 

 

 

 

 

 

 

 

 

 

눈이 내린다.

첫눈이다.

 

그런데 이 첫눈의 첫자야 말로 완전한 관념의 소산이다.

왜 첫 눈인가.

올겨울 처음 내리는 눈이라서.

우리는 일년에 두번의 겨울을 맞는다.

1월과 12월

그러므로 당연히 일월에 내리는 첫눈이 첫눈이 되어야한다.

구정을 새해의 기준으로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사월에 내리는 눈도 맞아봤다.

봄에 내리는 첫눈.

 

좌우지간 눈이 내린다.

관념이 사라진 눈이다.

하얗고 보드라운 눈은 케이크를 장식하듯

세상을 부드럽게 장식한다.

 

세상의 얼룩을 지운다.

세상이 하얗게 정돈된다.

 

걸음이 바로크 음악처럼 단아하다.

급할것도 없는 길이 풀어진 연타래처럼 술술 풀렸다.

 

다행인것은 되감기가 없다는 거였다.

길은 헛걸음이 필요없는 완만한 외길이었고

마음은 만선의 고깃배처럼 여유로왔다.

 

 

 

 

혜국사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파천하였다는 혜국사.

 

둔덕에 가려 비록 지붕만 드러난 모습이지만

속이 빈 조가비처럼 엎어진 채 그대로 눈을 맞고 있는 풍경이

고즈넉하기 짝이없다.

 

 윤동주의 시에 나오는 이름만 남은 이국의 소녀처럼

그래도 소멸을 거부한 채 용케 세월을 지켜 온 셈이다.

 

세월의 무게에 눌려

매미의 허물처럼 바스락거리며 사라져갈 내가 보인다.

 

세월이 나를 부순다.

철거 중인 낡은 집채처럼 내가 깔깔거리며 부수어진다.

나를 알아 줄리없는 세상을 나또한 모른 채

나는 삶으로 부터 퇴장한다.

 

눈을 맞으며 퇴장을 상상하는 가운데

세기말의 바람이 때를 기다렸다는듯

눈발이 사나와졌다.

 

삶이 죽음을 통해 극명히 드러나듯

살아있음을 느끼기에 좋은 날이었다.

 

 

 

 

 

달콤함에 취해 끝없이 꿀을 탐닉하는 벌처럼

흰 눈가루가 곱게 뿌려진 서설을 밟고 길을 걷는다.

 

날은 이미 밝았으나

일꾼이 떠난 염전처럼 길은 여전히 서리가 앉은듯 비어있다.

 

때묻지 않은 고요가 찾아왔다.

말을 걸지 않아도 말을 나누는듯했고

멀리 떨어져 걸어도 함께 걷는듯했다.

무의미한 풍경들 위에 소금처럼 시간이 녹아들어 추억을 만들었다.

 

 

 

 

 

 

 

 

 

 

 

 

 

 

 

 

 

 

 

 

 

세상은 우연이 만들어낸 함정이다.

나는 성령을 믿지않듯

緣起를 믿지 않는다.

그 진부한 속임수들은 나를 구하지 못했으니까.

 

마치 아가미를 뻐껌거리며 죽어가는 물고기처럼

제가 쳐 놓은 그물에 제가 걸린듯 신음 하는 나무들을 보았다.

 

세상을 복잡하게 만들기는 쉬워도

단순화 하기는 어려운 법.

 

칡덩걸을 풀어낼 묘수를 생각하며

가던 길을 잠깐 멈추어 선다.

 

 

 

 

 

 

 

 

 

 

 

 

 

 

 

 

 

 

 

 

 

 

 

 

 

 

 

울고 싶어 찾아간 풍경처럼

주흘산 오르는 길은 허무하기 그지없다.

 

마치 눈을 옆으로 가리고 뛰는 경주마처럼

우리는 오로지 길 위만 바라 본 셈이다.

 

두 다리의 기계적 움직임이 우리를 이미 산정으로 끌어 올려버렸다.

 

그기가 그기인 산

후회가 밀려왔다.

 

시험을 잘못봐 재시험을 걱정하는 아이처럼

산을 다시 찾을 명분을 떠올리기에 바빴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긴 계단을 지나자 소복하게 눈을 맞은 정삭석 하나가

달랑 놓여져 있다.

툭 던져진 불성실한 밥상처럼 그것이 전부였다.

 

남은 여정을 기대하며

머리로 지도를 떠올린다.

 

남은 길을 가늠하였다.

시장이 밀려왔다.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의 거웃처럼

부끄럽게 자라오르는 상고대.

 

 

 

 

 

 

 

 

 

 

 

 

 

 

 

 

 

 

 

 

 

 

 

소 묘

 

아무것도 아닌것에 인간들의 무수한 삶의 목적이 놓여있듯

마침내 목적만이 목적이 되어버린듯 세상은 하얗게 질려갔다.

 

목적을 이미 알았더라면 진작 포기했을지모를 목적의 모호함이

나를 늘 괴롭혔다.

 

상상하라.

상상이야말로 유일한 삶의 위안이다.

그렇지 못한다면  결국 자신에 숨어있는 허무와 싸워야한다.

 

우주가 소멸해 세상이 견고한 절망으로 변해버릴것같은 허무의 상징들로

세상은 가득했다.

 

쓰디쓴 절망에 터무니 없이 매달려

파토스를 남발하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다.

 

해골처럼 뒹구는 허무를 힘차게 발로 차버린다.

나에게는 가야할  길이 있으므로.

 

 

 

 

 

 

 

 

"잘못했어요"

 

 

 

 

 

 

 

강남스타일

 

나는 내 스타일에 자신이 없다.

스타일이라는것이 늘 우격다짐이다.

그래서 우스꽝스럽다.

 

저 터무니 없는 시선

허술한 목표의 作爲

어울리지않은 빨간 수건과 권위를 과장하는 버버리 머플러.

 

그러나 오늘은 관객없이 하는 리허설처럼

부담없이 나 자신을 내려놓는다.

 

광대를 확인하기 위해.

 

 

 

 

 

 

설국으로

 

 

 

 

 

온통 얼어버릴것 같은 냉혹함이 얼음골 사과 속처럼 곳곳에 박혀있는

혹독한 길이었다.

 

거짓말을 해서는 안될터인데도 미끄러운 길 위를

남자의 용맹으로 애써 위장해가며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것처럼 허세를 부리며 나는 걸었다.

 

공허한 속도로 눈은  내렸고

촘촘한 밀도로 눈은 또 내렸다.

 

눈의 세상이 현실로 다가옴에 따라

눈의 무게만큼 마음도 깊게 가라앉았다.

 

세상은 온통 잿빛인지라

세상의 안과 밖을 구분할순 없었지만

 마치 거대한 콘크리트의 벙커와 같은 두터운 세상에 갇혀

신이 계획한 미로를 교묘히 빠져 나가는

학습된 마우스처럼

 나의 걸음은 그렇게 냉랭하고 소심한 것이었다.

 

 

 

 

 

 

 

 

 

겨우살이가 있는 참나무 숲

 

 

 

 

 

 

 

 

 

온통 눈이었던 북사면을 지나자

눈은 세상을 가리기에 역부족인듯

맥없이 바위 몇개에 흰색을 칠해 놓고는 그치고 있었다.

 

페인터 칠만으로 세상을 바꾼줄 착각하고있는

문화촌처럼 세상은 볼품없이 흐트러져있었다.

그 가운데 오로지

 남국의 진주처럼 바위가 빛났다.

차갑고 매끄러운 젊은 여자의 다리가 따라왔다

 

꿈과 현실이 난장의 물건들처럼 오고갔다.

속이 비어있는 조개껍데기처럼 무표정한

 현실의 혼령이 힘을 잃은듯 춤추고 있었다.

 

 

 

인민의 발

 

 

 

 

 

 

 

 

 

 

 

 

 

 

 

 

 

 

 

 

 

 

 

 

하나의 세상에서 또 다른 차원의 세상에 들어선것처럼

세상은 일변하였다.

 

과거를 숨기고 사는 사람처럼 숲은 눈부스러기를 함부로 뒤발한 채

노인의 백태 앉은 혀처럼 풍경이 까끌거렸다.

 

그 풍경위로 몰약처럼 낮은 안개 구름이 불현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람없이도 구름은 흘러갔고

기도 없이도 하늘이 열렸다.

 

부봉으로 가는 긴 계단에 서서 세상의 미세한 떨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듯

저 너머의 세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영문모를 긴장감이 손으로부터 느껴졌다.

기분좋은 긴장감이었다.

 

 

 

 

 

 

 

 

 

 

뜻밖으로 맑은 세상이 드러났다.

초경을 시작한 처녀 아이의 순수함 위에

말할수 없는 벅찬 감동이 스팩타클한 영화의 대미처럼 펼쳐졌다.

 

돌아서면 다시는 볼 수 없을것 같은 아쉬움이 발목을 잡았다.

그을린 소나무에서 나는 스모키한 향이 구름을 따라 흘러왔다.

향과 구름과 바람이 어울려

아주 작은소리 하나까지 구분할것 같은  기분이 일었다.

 

환청인지 사람의 소리인지 알수 없는 소리들이 분주히 쏘다녔다.

주변 어디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으나

구름이 지나며 만들어내는 움직임 하나 하나가 허깨비처럼

공포를 만들었다.

 

숲 언저리 어디선가 종종걸음으로 누군가 다가옴을 직감했다.

 

 

 

 

 

부봉을 오르며

 

 

 

 

북쪽 사면은 여전히 눈을 뒤발하고 있다.

 

 

 

 

 

 

본격적인 로프 구간이 나타난다.

 

죽은 자를 향한 짧은 추념의 시간을 보내고

곧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것처럼 아직도 남은 길이 멀기에

우리는 곧 길을 나섰다.

 

녹지 않은 눈이 교묘히 위험을 감추고 있었다.

밤의 밑바닥처럼 길은 하얗다.

 

눈 덮힌 바위를 순례자처럼 걸어가며 나는 비로소 바위의 존재를 실감했다.

검은 공포가 또아리를 틀고 앉은 뱀처럼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곳이 어디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나는 나아갔고

그곳에 가야만 얻을 수 있는 확신들로 가슴이 벅찼다.

 

이제 막 그 확신을 확인할 순간이다.

세상이 개벽을 한듯 문을 열었다.

 

 

 

 

 

숭고하고 장엄한 빛내림으로부터 축복이 시작되었다.

 

오랜 투병 끝에 제2의 삶을 얻은것처럼

벅찬 감회로 가슴이 절절 끓었다.

 

더디어 해냈다.

 

조령산의 영봉들은 아침 햇살을 머금은듯 빛났고

대지는 조화를 이루듯 금새 제자리를 잡아갔다.

 

비올의 선율에 음을 조율하듯 세상이 우아하고 겸손한 빛으로 조율되었다.

울고 싶은 심정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것이다.

 

벅찬 감동이 슬픔과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채

가슴속에서 뒤범벅이 되었다.

 

 

 

 

 

 

 

 

월항삼봉 너머로 포암산(우)과 월악산의 푸른 자태가 드러나는 순간

 

 

 

 

 

손에 잡힐듯한 월악산

 

월악 준령(좌)과 만수봉(중앙),포암산(우)

 

 

 

 

 

 

 

 

 

 

 

속속 동료들이 도착하고

 

 

 

 

 

설거지를 막 끝낸 개운함과 힘든 일을 마무리한듯한 성취감이 밀려들었다.

일행을 조우한 나는 아이처럼 기분이 좋아 깔갈거리며 다과를 나누었다.

 

능히 짐작했지만 이렇게 빠른 속도로 그들이 따라 붙을줄은 몰랐다.

마치 전 속력으로 달려온듯한 느낌이었다.

 

 산 전체를 전세 낸듯 우리 일행 외에 산에는 사람 그림자 하나 없었다.

마음껏 소리치고 떠들었다.

 

큰 소리들은 앞 봉우리에 닿아 금방 메아리를 만들었다.

꽃소식이 북진하며 봄을 몰아가듯

남풍이 구름을 빠른 속도로 몰아냈다.

 

접경의 터널을 빠져 나온듯

세상은 일변했다.

 

 

 

구름을 벗어난 풍경

 

눈발 속에서 우리가 지나온 봉우리들이다

 

 

 

 

 

 

 

 

앞:월항삼봉

뒤좌:만수봉 뒤우:포암산

 

 

 

 

 

 

 

 

 

 

 

 

 

 

 

 

 

3.4.5봉

 

부봉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부봉에 오르고서야 알았다.

눈앞에는  다섯개의 봉우리가 엄격한 자세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올망 졸망한 봉우리들을 넘었지만

넘었다는 사실조차 잊게하는 경쾌한 발걸음이었다.

 

 

 

 

 

 

 

 

 

 

 

 

 

 

 

 

 

 

 

 

 

 

 

 

 

 

 

 

 

 

 

 

 

 

 

 

 

 

 

조령산 풍경

 

 

 

 

 

 

 

 

 

 

조령산에서 바라 본 주흘산의 풍경

 

좌 삼분의 일 지점에 놓인 세개의 봉우리가 주흘산 부봉군이다.

좌측이 6봉,그 다음이 5,4,3봉 그 다음이 1,2봉.

우측 끝이 영봉이다.

부봉 뒤로 포함산과 문수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우측 세개로 보이는 봉우리가 釜峰群이다.

 

 

 

 

 

 

 

 

 

 

 

 

 

 

 

 

 

 

 

5봉에서 바라 본 6봉

 

 

 

 

5봉에서 바라 본 주흘산 주능선

 

중앙에 조그맣게 튀어 오른 봉우리가 주흘산 주봉이다.

바위 뒷편에 보이는 봉우리가 영봉,

주봉에서 우측이 고깔봉이다.

 

 

비로소 우리가 걸어 온  능선길이 훤히 드러났다.

어디 한 곳 눈발이 날린 흔적조차 없어 보였다.

그 미미한 변화가 이처럼 황홀한 설레임을 만들어 낸것일까.

 

눈이야말로 신이 내린 가장 완벽한 미쟝센이다.

눈은 마음을 채색하는 붓이요 물감이다.

눈을 만나면 그것에 붙박혀 살고싶고

그것에 속박된 작은것이 되고 싶고

마침내 삶 속에 눈의 무게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그런 눈길을 헤쳐나왔다.

하지만 지금 나는 볼수 없다.

시간이 지나가듯 눈의 풍경들이 불현듯 휘발해 버린것이다.

 

지나온 시간들이 신기루처럼 몽롱해졌다.

우리가 저 산을 정말 넘어 온것일까.

우리가 넘어 온 산이 정말 저 산일까.

반신반의의 풍경이 확신의 벽을 넘지 못한 채 마음에 슬며시 기대어 왔다.

 

 

 

 

 

5봉의 모습

 

 6봉을 올라갔다 내려와 여기서 다시 우측 길로 하산한다.

 

 

 

 

 

 

시간이여 나를 붙들지 마라

부디 붙들지 마라.

바람처럼 그냥 지나가라.

 

"모든것은 스쳐지나간다.그누구도 그걸 붙잡을 수는 없다.우리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나오는 귀절이다.

 

붙잡을 수도 붙들리고 싶지 않는 마음이 생겨났다.

그렇게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왔다.

 

형체없는 바람이 그물코를 빠져 나오듯  내 주위를 맴돌다 흔듯 사라진다

상실과 허무가 뒤섞인 바람이었다.

바람은 마치 헐렁한 속옷을 저항없이 파고 들듯

내 온몸을 통해 찬 기운을 전해주었다.

 

따뜻한 물한잔이 그리웠다.

호쾌하고

달콤쌉싸롬한

초콜렛과 같은 부드러움이 섬세하게 전해졌다.

바람의 읊조림이었다.

 

허밍으로 바람을 노래한다.

파가니니의 감미롭고 노련한 선율에 기타가 통통 튀며  자맥질 하듯 끼어들었다.

 

움직이는것과 정지된것,

역동적인것과 정적인것이 설명의 여지없이 조화를 이루어

일찌기 느낀 바없는 크다란 열락으로 다가왔다.

 

 

 

 

 

좌:박쥐봉(앞) 월악영봉(뒤)

 

 

 

 

 

만수봉(뒤)과 포암산(앞)

 

 

 

 

 

 

5봉 뒤로 펼쳐진 주흘산 주능선

 

 

 

 

 

 

마침내 6봉에 다달았다.

땅끝 너머로 한없이 바다가 펼쳐지듯

여섯개의 현란한 봉우리를 넘어오자

산들의 파도가 황홀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만조의 바다처럼 산들은 일렁거렸고 푸른 물길이 바다의 깊이를 짐작케하듯

험산 준령의 면모를 유감없이 자랑했다.

 

오랜 시간 길을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모든 길의 표현은 同語반복이다.

걷고 또 걸어

나는 비로고 새로운 산 하나를 소유한다.

 

산을 가지기 위한 무한 반복의 걸음.

이 걸음의 의미가 폐기된 후의 나는 무엇일까.

 

내게 무엇이 남는걸까.

남아있는것 만이 유일한 有일까?

 

삶이란 허무의 바다를 떠다니는 모험의 이야기다.

구태여 말하자면 사람들은 이 무의미해보이는 반복적 모험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자한다.

모험이 있는 반복은 덜 지루해 보인다.

 

작은것이라도 상관없다.

삶을 이어주는 문은 어짜피 좁은문이다.

걷고 또 걸어보자.

 

 

 

 

 

 

 

 

 

 

 

 

 

 

깃대봉(?) 과 마패봉(우)

 

 

 

 

 

 

 

 

 

 

 

 

 

 

하산길에 뒤돌아 본 3.4.5봉

 

 

 

 

 

하산길에 올려다 본 6봉

 

 

 

 

 

 

햇살처럼 촘촘한 낙엽송 길

 

 

 

 

 

 

 

 

 

 

조령 제2관문

 

 

 

 

 

산불됴심

 

 

 

 

평화로운 자작 나무 숲

 

 

 

 

 

 

아무 말 없이 찾아와

끝까지 긴 임종을 지켜주는 벗처럼

적의 없는 얼굴로 저녁이 찾아왔다.

 

시간은 쫒겨난 강아지처럼 마음 밖에서 맴돌았다.

어둠의 거을음이 점점 진하게 나를 감싸는 동안에도

영혼의 새는 둥지로 날아가지 않았다.

나는 걷고 있고

종종 걸음으로 오늘을 완성해 나갔다.

 

어제와 오늘이 얇은 유리처럼 가까운데

나는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가운데 변했고

변함의 보이지 않는 가치가

빛처럼 빠른 속도로 피속을 타고 흘렀다.

 

 

 

 

 

"지 못할 길은 없다.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 후 기-

 

 

주흘산 험한 산길을 걸으며

나는 무거워져가는 내 육체와  한편으로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내 마음을 보았다.

새벽 호수를 나르는 두마리의 물새를.

 

산을 내려오자

고통이 사라진듯 심신이 곧 고요해졌다.

무거움도 가벼움도 없었다.

그것은 

 단지 한 그릇의 소박한 평화였다.

 

흰개미에게 갉아먹힌 충만감이

허무의 세계 한편으로 무너져 내렸다.

 

존재와 상실이

  빈 그룻 속에서 경계없이 공존했다.

 

 

 

 

 

 

 

 

 

파가니니 /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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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ata Per Novene" No 1 in A major (04:27)
(1.Minuetto,Adagio - 2.Polenese, Quasi Alleg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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