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노루귀
꽃은 시간의 상처다
고통이 없는 아픔이요,
시련이 없는 그리움이다.
오지않고도 오는것이요,
가지않고도 가는것이다.
수령 삼백년의 당산나무
봉황산 들머리에서 느티나무를 바라 본다
나이를 먹는다는것은 세상에 어울린다는 뜻일까?
봄을 향한 늠름한 나무의 우듬지에는
은은한 아리오소가 걸려있다.
세상에 도무지 어울릴것 같지가 않은
한 떼의 젊은이들이
나무를 안고 사진을 찍는다.
풍경을 차지한 채 깔깔거리는
모습이 참 밉상스럽다.
나무는 나무로 자라 세상에 어울리고
사람은 사람으로 세상을 장엄해야한다.
나는 세상에 얼마나 어울리는 짓을 하고 있을까
우련한 세월 너머를 바라보듯
한동안 나무,아니 나무에 깃든 세월을 바라보며
봄을 향한 발길을 떼어낼 줄을 몰랐다.
10:59
봉황산
멀리 봉황산이 보이고
봄은 봄으로 분주하다.
뿌연 대기가
산행 시작서부터 권태감을 불러일으킨다.
힘차게 피어나는 들꽃을 바라보며
생기를 부풀린다.
봄이 볼로냐 파스타에 뿌린
파슬리 가루처럼 싱그럽다.
두룹나물을 넣고 만든 레조또를 먹는 기분이다.
냉이꽃과 개불알꽃
냉이꽃
민들레와 광대나물
진달래
소월 이전에도 진달래요
소월 이후에도 진달래다
그만큼 진달래는 떠나가는 이의 뒷배경에 잘 어울린다.
아련한 그리움으로 둥둥 떠있는 연분홍의 포에지.
개나리나 벚꽃처럼 극성스럽지도 않고
매화처럼 홀로 고고하지도 않다.
그냥 걸어가는 발걸음 곁에 더문 더문 피어
봄날의 나레이션을 들려준다.
나는 분홍을 좋아하지 않지만
분홍색 진달래만은 예외다.
진달래의 분홍은 이른 봄의 마른 숲에 잘 어울린다.
보송 보송 피어오른 모습이 목화솜을 떠올릴 만큼 부드럽다.
톡톡 터지는 팝콘같고
무르익은 사랑같기도하다.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봄을 듣는 기분이고
하이든의 현악사중주 종달새를 듣는 기분이다.
이런 기분이 고조되면
비발디의 홍방울새가 느닷없이 날아들기도 한다.
쉰이 넘어서야 노루귀가 눈에 띄었다는것은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세상을 관찰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세상을 관찰한다는것은
세상이 주는 무정설번에 관심을 가진다는 뜻이요
의식주로 제한된 내 관심사가 비로소
삶의 문제로 확장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노루귀를 사진에 담는것이 아니라
노루귀가 들려주는 봄의 언어를 해득하는것이다.
울림이 있는 간결한 언어를.
봄날 풋기운이 감돈다
운명같은것은 어디에도 없다.
세상은 보이는 그대로 진솔하다.
세상만사가 시계바늘에 맞추어 벌어진다하여도
봄기운 만큼은 운명에 맞겨져서는 안된다.
충동적이고
도발적이며
새롭고 신선하여
도무지 얽메임이 없어야 봄이다.
그래야 봄 답다.
분홍 노루귀
생강나무
산자고
세상을 단순하게 산다는것은
딱딱하게 굳어진 감성을 회복시키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단순한 식단에 만족하고
단순함으로부터 얻은 자유를 만끽하며
덜 얽메이고
더 희망적인 삶.
이런 인상을
봄 야생화의 고요한 모습에서 찾을 수있다.
단순하기에 아름다운 꽃,
야생화가 주는 매력이요 그들만의 언어가 아닐까.
star flower
흔들 바위
흔들바위에서 바라 본 밤섬
율리치 까지 내려갈 일을 생각하니 벌써 무릎걱정이 앞선다.
정말 당분간 산행을 중지하고 아픈 다리를 재활해야겠다.
네 스스로 제어할수 없다면 다 중독이 아닌가?
산행의 어떤 매력에 이끌려 이토록 중독증에 빠져버렸는지
나는 아직 그 이유를 모른다.
산행이 아무리 심신에 좋은것이라해도
나는 이미 넘어야할 선을 넘어버렸다.
무언가를 위해 가장 소중한것을 포기헤야할 때의
서러움이 갑자기 치밀어 올랐다.
봄탓인가
나는 정말 산을 포기할 수 있을까?
흔들바위 전망대에서
춘란
바위 틈에서 그 많은 나그네의 눈 다 피하고
용케 숨어있었다.
마른풀 헤쳐가며 겨우 담아본다.
모습을 드러내기 부끄러운지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 자태가 너무나 아름답다.
산복숭아꽃
현호색
만리성 유적
돌무지나 다름없는 이 허술한 성벽으로 무엇을 지켰을까.
우리나라 산천에 부지기로 흩어져있는 성벽.
이처럼 볼 품없이
낮은 성벽도 백성의 낙천적인 성품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도해
네루다의 시처럼
봄이 찾아왔다.
언어도 아닌
소리도 아닌
속삭임도 아닌
그 무엇으로.
바람에 해캄하던 사랑도
말간 물빛의 한낮도.
봄바다에 쪽빛 물이들었다.
사랑이 시작되었다.
마음으로 할 수있는 모든것이 사라졌다.
"너는 누구냐?'
너닷없이 뛰어던 이웃집 닭처럼,
연락없이 찾아 온 친구처럼
불쑥 봄속에 뛰어던
초대하지 않는 개구리
단순하다는것은 일종의 용기다.
욕망이라는 인간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당당히 세계의 외연에 저항하는
무저항 투쟁이다.
다순하다는것은
조화로운 느긋함이며
정결한 마음의 표시이다.
존재의 방식은 단순할수록 졿은것이다.
나는 그 무엇엔가 얽메이는것을 싫어하는것처럼
누군가에게 얽히기도 싫어한다.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지듯
그냥 순리대로 살고싶을 뿐이다.
필요한것 이상의 것을 차지하려 애쓰고
좋고 나쁨을 이분화하며
내것이 아닌것에 압도되어
이성을 소비해야할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봄을 마주하는 마음은
가벼운 배낭 하나 걸머지고 여행을 떠나듯
가볍고 신명난것이어야한다.
가지면 가진대로 무겁고
없으면 없는대로 무거운 삶
이 모든것들을 무겁게 떠안아야할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단순함을 회복시키는 일이야말로
딱딱하게 굳어가는
감성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나직히 밀려드는 봄기운을 맞으며
한적하게 걷고있는 이 발걸음.
나는 오늘 덜 얽메이고 덜 무거운 길을 걸었다.
여수 바다를 보며
전화를 건다.
파란 봄바다를 향해
분홍빛 사연을 띄운다.
사랑은 속삭일수록 감미로운것
이 하잘것 없는 일상조차
사랑으로 증폭되는 신비를 보렴.
뭐하니?
밥은 먹었니?
들려줄것도 없는 말을 들려주고
들을것도 없는 말들을 들어주고
여수 봄바다
여수 봄바다
내가 빠져버린 여수 봄바다.
거북 머리
금오산
물결흔
금오봉
사랑은 저문 바다와 같은것
물과 같은것
산을 넘어와 온 몸에 안기는
바람과 같은것
하지만 사랑은 선택을 싫어하지.
사랑은 사랑 그대로일 뿐
빅뱅 이후로 무한 팽창하는 우주처럼...
사랑이 선택되어지는것이라면
사랑에 논리가 있어야할것이지만
사랑에는 논리가 없어.
비논리적이므로
재미있고
놀랍고
뜨거운것이 사랑이지.
향일암 관음전 가는 길
동전거북
관음전 가는 바위 미로
자연을 그대로 활용한 절의 배치가
일품이다.
미로와 같은 바위벽을 요리 저리 꿰뚫고
마침내 관음전에 이른다.
관음전 앞으로는 또다시 망앙대해
막히고 펼쳐짐이
비원을 옮겨 둔것처럼 이채롭다.
한가지 실망스러운것은
봄나물을 뜯듯 돈을 뜯는
절의 행태다.
얼마나 가지면 저들은 만족할까
꿈을 팔고 사는 상행위다.
동백꽃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고
그 상처로부터 자유로와지기를 원한다.
그리고 또 누군가에 혹은 그 무엇인가로부터
위로받기를 원하지만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하지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흐가 말했듯
"정확한 박자에 맞춰 음을 꾹꾹 눌러주는것"으로 충분하다.
상처에 한발 다가가
상처의 그늘과 바람을 보듬으면 그만.
향일암 바위틈에 용케 자란 동백나무에는
그 용서 받은 붉은 상처가 지천이다.
해수관음
부처니 보살이니 하는것도 결국은 낚시밥이나 마찬가지야
세상이 幻과 같고
보살이 꿈과 같음을 알지못하면...
이것을 깨닫아야 부처인게지
원효스님 좌선대
향일암은 서기 644년 (선덕여왕 13년)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어 원통암으로 불리다가
그후 윤필대사에 의해 금오암으로 불리다가
숙종 41년 (1715년)에 인묵대사에 의해 向日庵으로 불리게 되었다.
사람을 찾습니다
미로와 같은 향일암을 이리저리 돌다
아내를 잃어버렸다.
그런데 나중에 사진을 올리면서 보니
내 사진 속에 아내가 버젓이 들어와 있었다.
서로를 보지못하고 찾아다닌 잠간 동안의 시간
우리는 그 시간동안
무엇이 되어 헤매었을까?
- 후 기-
섬진강 재첩국처럼
뽀얀 하루.
글은 눈에서 멀어지고
마음은 미모사처럼 문을 닫아걸었다.
폰탈에도 듣지 않는
두통이 뒷골을 괴롭힌다.
봄을 봄으로 놀았을 뿐
내가 지은 죄는 없다.
기도없이 돌아본 바닷가
절집에는
뜻밖에 동백이 농염하고
산초를 넣어 만든 갓김치로도
내 입맛은 돌아올 줄 몰랐다.
Mischa Maisky / Cello
* Arioso
'마음으로 오르는 산 >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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