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오대산

poll™ 2014. 2. 25. 09:15

 

 

 

 

 

 

문수도량 오대산

 

 

중국의 문수성지인 산서성 오대산처럼 넓은 구릉지는 아니지만

 강원도 오대산 자락도 한없이 부드럽기는 마찬가지다.

산의 극단은 다만 바라보는 재미일 뿐

나는 극단을 탐닉하지 않는다.

대간을 향한 열정의 과정에 극단이 없었다면

나는 대간 종주를 완성할 수 있었을까

극단은 그 스스로 극단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임을

나는 긴 길을 통해 깨닫았다.

 

 

 

 

 

 

 

 

 

 

상원사 초입의 선재 옛길

화엄도량의 명성 답게 선재라는 이름이 길을 밝힌다.

화엄경 입법계품에 선재동자가 길을 떠나 53 선지식을 통해

깨닫음을 얻어가듯

이 길을 따라 걸으면 깨닫음 한조각 얻어갈 수 있을까?

깨닫음이 하얀 눈 속의 미소같다.

 

 

 

 

 

 

 

상원사를 찾아야할 이우를

큰 바위에 새겨놓았다

 

 

적멸보궁

문수성지

 

 

 

 

 상원사는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로 불리는 경허스님을

비롯하여 수월,운봉,동산 등 역대 선지식들이 주석하여

수행하였던 유서 깊은 곳이다.

이들 선지식 중에서도 27년간 오대산문을 나서지 않은 채

오대산 도인으로 통했던 한암(1876~1951)스님은 상원사와

관련해 배놓을 수 없는 선승이라 생각된다

 

 

금강산에 유람을 갔다가 발심해 장안사 행름 노사를 은사로

출가한 한암 스님이 상원사에 든 것은 50

때인 1925년이었다고 하니

이르을 훌쩍 넘긴 노스님이 전란으로부터 상원사를 구한 셈이된다.

 

 

 

 

 

 

 

12:30

 

 

관대걸이는 세조가 오대산에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왔다가

자신의 어의를 벗어 걸어 놓았던 것으로

갓거리 라고도 하며 상원사 입구에 있다.

관대걸이의 위치를 볼 때 계곡으로부터 꽤 거리가 멀어 보인다.

상식적으로는 목욕하는 바로 옆에 옷을 벗는 법인데 말이다.

여기서 옷을 벗고 계곡을 향해 걸어갔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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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이라는 산의 이름은 처음으로 산문을 연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이

머물고 있다는 중국의 오대산에서 꿈 속 게송을 받고 돌아와서

절을 창건한 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자장율사는 중국 오대산에서 한 노스님으로부터 당신의 나라 동북방 명주 땅에

일만의 문수보살이 늘 거주하고 있으니 가서 뵙도록 하라 '는 말과 함께

가사와 발우 한 벌과 부처님 정골사리를 받고 신라 선덕여왕 12(643)

귀국하여 오대산 월정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상원사는 한참 후인 성덕왕 4(705)에 두 왕자인 보천, 효명에

의해 오대산 중대에 진여원이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는데

오대산이란 이름은 다섯 성인이 머무는곳이라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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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 신라 신문왕의 아들 보천태자는 아우 효명과 오대산으로

들어가 수도를 하던 중 오만 보살을 친견한 뒤로 아침마다 차를

달여 일만의 문수보살에게 공양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신하들이 오대산에 찾아와 보천태자에게 신문왕의 후계를

권하였지만 보천태자가 한사코 거부하여 결국 효명태자가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성덕왕이다.

 

왕위에 오른 효명태자가 오대산에서 수도 중 여러 모습의 문수보살을

친견한 뒤에 세운 것이 진여원이라고 하는 지금의 상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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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와 문수보살 이야기

 

 

상원사는 세조와 문수동자의 인연으로 유명한 곳이다.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어느 날 밤 악몽을 꾸었다.

꿈에 현덕왕후(단종의 모친, 세조의 형수)의 혼백이 나타나

자신의 몸에 침을 뱉는 것이 아닌가.

 

문제는 다음 날, 꿈에 현덕왕후가 뱉은 침자리마다 종기가 돋았다.

곧 온몸으로 퍼지고 고름이 나오며 병이 악화되었다.

 

명의와 신약 모두 효험이 없자,

마지막으로 부처님에게 기도를 올리기로 하고 찾아 간곳이 오대산 상원사이다.

 

월정사에 참배를 마치고 상원사로 가던 중,

장엄한 산세와 맑은계곡 물 등 절경에 취한 세조는 목욕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추한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늘 어의를 풀지 않았던 세조는 그날도

주위를 물린 채 혼자 계곡 물에 몸을 담그고 목욕을 하였다.

 

그때 숲 속에서 놀고 있는 조그마한 동자승이 눈에 띄어

등을 밀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동자승이 등을 다 밀고나자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단단히 부탁의 말도 전하였다.

 

 꼬마야, 어디 가서든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면 안된다 

 그러자 동자승도 대꾸를 하였다

 

 대왕도 어디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였다고 말하지 마시요 

 동자는 문수보살의 화현이었던것이다.

 

왕은 곧 몸의 종기가 씻은듯이 나은 것을 알게 되었다.

 

문수보살의 도움으로 병을 치료한 세조는

환궁하자마자 화공을 불러 자신이 본 문수동자를 그리게 하였다.

 

그러자 동자의 모습을 제대로 그리는 화공이없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누더기를 걸친 노스님이 그려온 동자의 모습이

너무나도 똑같아 세조는 놀라 스님이 오신 곳을 묻자,

 

노스님은 영산회상에서 왔다고 하고는

곧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버렸다고 한다.

 

세조는 동자와 노스님으로 화현하여 나타난 문수보살을

두 번이나 친견한 것이었다.

 

이후 '의숙공주'와 효령대군의 발원으로 세조의 수복을 빌기 위하여

문수동자상이 조성되어 1466년 상원사에 봉안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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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석상에 담겨져 있는 세조와 고양이 이야기

 

 

조선 7대왕 세조는 고양이와 인연이 깊은 임금이었다.

 

온몸에 생긴 종기로 고생하던 세조가 상원사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몸을 치료하고 이듬해 다시 상원사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세조가 법당으로 들어서서 예불을 올리려는 순간

어디선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世祖의 곤룡포 자락을 물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세조는

즉시 군사를 풀어 법당 안을 뒤지게 하였고,

 

그 결과 불상을 모신 탁자 밑에 숨어 있던 자객 세 명을 발견하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자객의 칼에 세조의 목숨이 위태로었음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세조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고양이를 찾았지만

고양이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세조는 그 고양이에게 직접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차선책으로

 

5백섬지기를 절에 내리면서 해마다 고양이를 위하여

제사를 지내도록 명하였다.

 

이로 인해 이때부터 절에는 묘전(고양이 땅) 묘답이라는

명칭이 생겼으며

 

절에 바치는 쌀을 고양이를 위한 쌀 이라는 의미에서

고양미로 불렀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그 후 고양미공양미로 발음이 변하였고

문수동자상이 봉안된 상원사 청량선원 입구

계단 좌우에 있는 고양이 석상은 그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조각이다.

 

세조는 궁궐로 돌아와서 서울 근교 사찰에 같은 지시를 내렸고

왕명으로 고양이를 죽이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 이후로 고양이를 죽이는 일은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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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동종은 국보 제3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높이 167cm, 입지름 91cm,

어떤 목적으로 주조되어 어느 절에 보관되어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안동의 영가지에 의하면 안동루문에 걸려 있던 것을 1469년에 국명에

 의하여 현재의 상원사로 옮겨 보관해 오고 있다고 한다.

 

 

 

세조는 상원사를 임금의 원당사찰로 만들면서 전국에서 가장 소리가

좋은 종을 찾아 안치할 것으로 명령하였는데 전국을 수소문하던 중

당대 최고의 동종을 안동도호부 남문루에서 발견한 종으로

 

이 동종은 성덕대왕 신종보다 100여 년 앞서 주조된 것이라 하며

,,,주석을 녹여 만든 종으로 종소리는 은은하고 끊어질 듯

하면서도 100리까지 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상원사 동종 옆의 비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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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문수전에는 국보로 지정된 문수동자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문수동자상은 1466년 세조의 딸인 의숙공주가 봉안한

것으로 수준 높은 목조보살상 입니다

 

문수동자상은 오대산이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성지임을

상징하는 하나의 표상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국보 제22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예배의 대상으로서

조성된 우리나라 유일의 동자상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매우 큰 문화재라고 합니다

 

이 불상은 세조가 왕위에 오른 직후 몸에 난 종기를 불력으로 고치고자 상원사로

가던 길에 동자처럼 생긴 문수보살을 만나 씻은 듯이 나았으므로 그때의

영험을 기리기 위하여 조성하였다는 이야기로 유명합니다

   

국보 제22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크기는 98cm이고 최근 이 동자상

안에서 발견된 복장유물(보물 제793)에 의하면

 

 

세조의 둘째 딸인 의숙공주 부부가 1466년 이 문수동자상을

문수사에 봉안한다고 기록되어 있어 왕실 발원의

동자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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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인 1951년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흥남 철수가 있기 직전 국군이 전선에서

밀리게 되자 오대산 지역을 장악하고 있던 국군은 후퇴하면서 사찰에 있는

스님들도 떠나게 하고 모든 사찰을 불태우게 하였다고 합니다

 

적에게 사찰이 보급기지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작전계획에 따른 것이었다고

하는데 이때 월정사는 불타게 되었지만 상원사는 온전하였다고 합니다

 

상원사에서 27년 동안 수행하고 있던 방한암스님이 국군의

명령에 굴하지 않고 절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시 국군이 법당에 불을 지르려 하자 한암스님이 법당에 앉아

법당을 지키는 것은 불제자의 도리이니 나도 같이 불사르라며

맞섰고 군인들이 상관의 명령을 이행해야 한다고 하자

 

 

스님은 군인들에게 문짝을 떼어 태우면 너의 상관은 상원사가

소각된 줄 알 터이니 너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요 부처님도

보존되는 것이다 라고 일러 주었다고 합니다

 

국군은 하는 수 없이 법당 문짝만 뜯어 연기를 냄으로써 불타고

있는 것처럼 속여 상원사 법당과 동종이 온존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중대사자암 가는 길에 눈을 소복히 얹고 서 있는 석등

 

 

 

 

 

 

 

 

 

중대사자암

 

 

오단의 건물이 하나의 건물처럼 이루어진

독특한 양식의 절집이다.

 

적멸보궁의 수호도량으로

맨 윗층부는 비로전이다.

태종 11년 1400년에 중창되었고

2006년 대대적인 건축불사가 이루어져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

 

 

 

 

 

오대산 오만보살

 

 

오대산은

중대 : 지공대 사자암 에는 1만의 문수보살님이

동대 : 만월대 관음암에는 1만의 관세음보살님이

서대 : 장령대 염불암에는 1만의 대세지보살님이

남대 : 기린대 지장암에는 1만의 지장보살님이

북대 : 상삼대 미륵암에는 1만의 아라한이 상주하여 설법 한다는 불교의 성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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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곳은 적멸보궁에 딸린 향각으로 향불을 관리하는 분수승(焚修僧)의 거처이다.

지금은 암자라기 보다 웬만한 사찰규모이다.

조선 태종 때 중건했고,

사자암의 사자는 문수동자가 타는 짐승으로 중대에 문수보살이 상주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규모는 작지만 왕가의 사람들과 상궁들이 자주 찾아와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비로전에서의 조망

 

 

 

비로의 세계는 사찰 안에 있는것이 아니라

사찰 바깥에 존재한다.

 

 

 

 

중대 사자암의 법당인 비로전은 화엄경의 주불이신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시고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이 좌우 협시보살로 조성되어 있으며

 비로전 내 벽체 사방 8면에 각각 다섯 사자좌의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상계上界에 500문수보살상과 하계下界에 500문수동자상 세계가 펼쳐져 있다.

세계최초로 조성된 양각으로 새긴 극락보수 삼존불상 후불탱화의 장엄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외경심을 느끼게 한다.

 

 

 

 

 

 

 

 

 

 

 

 

 

 

 

길가 석등으로부터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하며

석가모니불을 연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석가모니불을 따라 연호했다.

그러고 나자 오르는 길이 훨신 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적멸보궁을 다녀오는 많은 신도들이 보였다.

상원사에서 적멸보궁 오르는 자체가 기도요 신앙인듯 싶었다

 

 

 

 

 

 

 

 

 

 

 

 

 

 

 

 

 

 

 

 

 

곤줄박이

 

 

 

곤줄박이는 사람과 매우 친숙한 새여서

산사 근처에서 자주 만나는 새다.

 

눈위를 총총 뛰어 다니는 새를 보며

명색이 직립보행을 하는 현생 인류라는 존재들이

아기새만큼도 땅을 밟지 않는 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오죽하면 나처럼 시간을 따로내어서라도

걷고 싶어하는 이가 다 있겠는가.

 

사람들이 잃어버리는것이 어디 걸음 뿐이랴.

걸음을 통해 얻는 사고와

느림이 주는 시간의 인자함 마저 이미 잃어버린지 오래다.

 

 

 

 

 

 

 

적멸보궁

 

 

 

적멸보궁이란 모든 바깥경계에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

번뇌가 없는 보배스런 궁전이란 뜻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곳이니 당연히 부처가 모셔져 있지않다.

우리나라에는

양산 통도사, 설악산의 봉정암,태백의 정암사,영월 사자산 법흥사에

부처님의 진신 사리가 모셔져있다.

 

 

 

 

 

 

 

 

寂滅無性不可取...

 

 

만물의 법성은 적요한 까닭에

취할 바가 없다.

그런 고요가 정오의 햇살을 견디며

默重하게 자리잡고 있다.

 

절로 경건함이 느껴졌다.

비석인지 탑인지 분간이 가지않는 소담스런 탑 하나가

부처의 경계를 알린다.

경계가 없는 세상의 경계

그런 세상이었다.

 

 

 

 

 

 

 

적멸보궁에서 내려와 다시 비로봉으로

 

 

 

 

 

 

 

사랑을 허락해!

 

 

 

 

 

오대산 문수보살을 다 만나지 못했다고

한탄할 필요는 없다.

나는 문수보살을 만나 27년을 살고있다.

 

아내는 문수보살이 현화한 모습이다.

그렇게 여기고 살면 그만이다.

 

보살은 기적이 아니라 현실이다.

허구의 세상에서 허구를 찾는것은 판타지에 지나지 않는다

심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네 눈 앞의 문수를 친견하라.

 

 

 

 

 

 

 

 

 

 

 

 

 

 

 

꽤나 힘이 드는 모양이다

나는 이소를 준비하는 어미새처럼

딱 두어발 정도 앞서 걷는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야말로

진실된 삶이다.

걸음이라는것이 특히 그렇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기에.

 

 

 

 

 

 

 

 

 

 

 

 

 

 

 

 

 

사랑하는 이여

나를 원망할 때

저 나무에 빗대어

나를 원망해 다오.

죽어 천년 그대를 기다리며

영원한 흔적이 되어 남고 싶다. 

 

 

 

 

 

 

 

 

 

 

산을 오르되

숫총각이 과부에게 정을 선심하듯 올라라.

과부는 천국으로 갈것이요

너는 보리를 얻을것이다.

 

돼지던

전갈이던

창부이던

세상의 가장 더러운 곳에

보살행이 있는 법.

 

보살은 고통이며

슬픔이며

상실이다.

 

 

 

 

 

 

 

 

 

 

 

 

 

 

 

 

 

 

 

 

 

 

 

 

 

문수보살의 은혜

 

 

 

 

 

 

 

 

 

 

 

 

 

 

 

 

이제 다 왔습니다

산사람들은 아직 길이 남았는데도

다왔다고 말합니다

그말은 거짓이지만

위로와 격려의 다름아닙니다

거짓말을 합시다.

거짓과 진실은 둘이 아닙니다.

 

 

 

 

 

 

 

 

 

 

비로봉 정상

 

 

 

 

 

 

 

 

황병산 너머 삼양 대관령 목장이 보인다.

아쉽게도 사진으로는 안 잡힌다.

 

상원사에서부터 계속 경사길을 올라 온 아내의 상태가 예사롭지 않다

아내는 작은 소리로 허리가 좀 아프다고 한다

이미 고질병이 된 저 허리통증

일부러 작은 가방 하나 울러매게했는데도

두어시간 된비알을 오르니 여러모로 힘에 부치나보다.

사진을 찍으며 일부러 쉬어가기를 반복하지만

깨알같은 쌀뜰함이 없는것이 내 천성이 아닌가.

무엇이던 내 기분대로

그 극성스런 기분 맞추며 군말없이 사는 아내의

지극함이 산길에 여실하다.

 

 

 

 

 

 

비로봉

1563m

 

 

 

아내와 나는 비로봉에 올랐다.

비로자나의 봉우리

법신의 꼭대기

우리는 부처 위의 부처다

위 아래가 없는

세상 위의 세상이다.

 

 

 

 

 

 

 

 

 

동대산 좌측으로 노인봉이 희미하게 보이고

그 뒤로 보여야할 소황병산은 운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노인봉과 동대산 쪽 풍경은 금방 구름에 가려버렸다.

 

 

계속 흰눈밭을 걸었더니

이상하게 노랑은 더 노랗게

빨강은 더 빨갛게 보인다.

설맹이 올리는 없겠지만 황반에 문제가 생기는것일까

사진을 찍으려 선글라스를 벗기 귀찮아

자꾸 맨눈으로 세상을 본 결과이다.

그렇지않아도 나쁜 시력

걱정이다.

 

 

 

 

 

 

 

 

 

나도 한번쯤 이런 삶을 살고 싶었다.

세상이 교육시킨 나에 反하여.

 

눈에 어깨를 걸고 누운 자세가 아무래도 어색하지만

실상은 더 뜨거웠다.

 

늙는다는것이 죄는 아닐것이지만

얄미운 참견처럼 느껴진다.

 

삶은 왜 우리를 청춘으로 내버려두지 못했을까.

삶의 외피를 벗고

영원한 청춘으로서의 인생.

 

너무 철없어 보이면 어쩌지...

 

 

 

 

 

 

흰붕대를 감아놓은듯한 사스레나무

 

 

겨울 고산을 이루는 풍경 가운데

나는 사스레 나무가 있는 풍경을 좋아한다.

사스레의 흰 목피는 마치 삶의 상처처럼 보인다.

참나무류의 수목들과는 달리

고독을 간직한듯한 유난한 외피.

그래서 사스레 숲을 지나는것은

내 과거 중 가장 슬펐던 한 때를 지나는 기분이요

고정된 슬픔의 수채를 건드리는 기분이다.

그래서 사스레 숲은 슬픔처럼 맑다.

맑은 우물에 소리없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고요하다.

 

 

 

 

 

 

 

 

 

 

 

 

 

 

 

상왕봉 지나 멀리 두로봉이 보인다

우측 능선이 동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다.

 

막 깍은 스님의 머리처럼 산이 파르라니 보인다.

연한 옥빛의 오대산

마치 일본 영화를 보는 기분이랄까

피상적이며 관념적인,

관조적 여성성..

묘한 중성적 이미지가 산록을 타고 흐른다.

 

 

 

 

 

 

 

 

 

노인봉쪽 풍경은 아직 오리무중

 

 

 

 

남덕유의 겨울 풍경과는 달리 오대산의 산세는

그다지 남성적이지 않다.

산이 보여주는 선묘가 대단히 부드럽다

산은 비록 높다해도 육산이라는 증거다.

소백산,태백산,함백산 대관령지나 구룡령에 이르기까지

다 그만 그만한 육산의 연속이다.

산이 비로소 악산으로서의 골격을 갖추는것은

점봉산을 너머 설악에 도달할 무렵이다.

그래서 대간길에서 만나는 강원도 산이 다 험한것은 아니고

정말 험한 구간은  설악산 권역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동대산에서 두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보인다.

백두대간 길이다.

산너머 진고개에서 구룡령에 이르는 구간이다.

지난 오월에 걸었던 길인데 그날은 운무에 갖혀 오대산 쪽 풍경을

하나도 보지 못하고 하루 종일 관목 숲을 헤매다

산길에 피어있는 야생화를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던지...

함께 가던 일행들이 내 비명 소리에 놀라 달려왔던

그 청노리귀가 살고 있는 저 산..

그 오월이 다시 오면 나는 또 다시

저 구간 산행에 나서게 될까.

최고의 즐거움은 두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 법..

 

 

 

 

 

 

 

 

 

 

 

 

 

 

 

 

 

 

 

 

 

 

 

 

 

 

 

 

 

 

 

멋진 주목을 만나고

 

 

 

 

 

 

 

 

 

 

 

 

 

 

 

 

 

 

 

 

 

 

 

 

 

 

 

 

 

 

 

 

 

 

 

 

 

 

 

 

 

 

 

 

 

 

 

 

 

 

 

 

 

 

 

 

 

 

 

 

 

 

 

 

 

 

 

 

 

 

 

 

 

 

 

 

 

 

 

 

 

 

 

 

 

 

 

 

 

 

상왕봉

 

 

 

 

 

 

 

 

 

 

 

 

 

 

 

 

 

 

 

 

 

 

백두대간 구룡령 쪽 풍경

 

 

사람의 마음처럼 산 또한 쌍방에서 관찰되어져야한다.

산을 오를 때는 그 산이 지니는 지리학적 규모나 위치를

잘 알 수가 없다.

반대측에서라야 비로소 그 산이제대로 보인다.

진고개에서 구룡령으로 이어지는 대간 구간은

잡목과 두터운 개스층에 가려 오대산의 진면목을 볼 수 없었지만

산 깊숙이에서 외롭게 피었다지는

봄꽃들을 지천으로 만났던 구간이었다.

그 아름다운 꽃길을 황망히 지나가는 대간꾼들을 보고

얼마나 속으로 비웃었던지...

지금 바라보니 그 거친 대간길도

불과 한조각의 추억이 되어 남았다.

마치 삶이 그런것이라는것을 시사하듯.

 

 

 

 

 

 

 

 

 

 

 

 

 

 

 

 

 

 

 

 

상왕봉에 다다른 아내는 녹초가 되어있었다.

그래도 장하다.

체육관이 문을 닫는 바람에 벌써 몇달 째 운동을 쉬어버린 아내는

산길이 몹시 힘에 부친다.

그래도 싫다는 내색은 않는다.

오늘도 적멸보궁까지 가기로 한것이 이곳 상왕봉까지 오게되었다.

아직 불교에 대한 신심이 없는 아내로서는

 불교 성지의 순례라는 알량한 동기도

별 감흥이 없었겠지만

주말이면 남편을 빼앗아간

바로 그 원수같은 백두대간을 두눈으로 확인하는 기회 만으로

오늘의 산행은 의의가 있을것 같다.

 

 

 

 

 

 

 

 

 

 

 

 

 

임도로 하산

 

 

 

임도를 걷다보니 임도를 가로지르는 사잇길이 보였다

하지만 통제된 길이었다.

혼자였으면 과감히 시도해 볼만 했지만

아내랑 함께 국공파에게 단속당하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4.5km의 지리한 눈길을 아내와 걷기 시작했다

눈길 속에 아내는 한없이 작아보였다.

아니 떠다니는 작은 점처럼 보였다.

 

 

 

 

 

 

 

 

 

머지 않은 거리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버들강아지.

 

 

 

 

봄이 온다는 사실이 이다지 놀라운 일인가?

하지만 이처럼 봄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은 필경 놀랄 일이다.

 

아! 버들강아지.

아직 겨울이 깊이로 발목을 사로잡는데

당신은 잘 계셨나요?

 

경쾌한 하산길처럼

가까이 다가 온 봄이 상쾌하기 그지없다.

 

 

 

 

 

 

 

- 후 기-

 

 

 

즐풍목우의 산길을

몇날밤을 지나왔을까

 

까만 어둠의 지층을

까치발로 견디며

말간 선혈같은

아침을 맞던 날을.

 

지난날은 바람이 되어 지나가버리고

나는

어느 하늘 아래 떠돌다

영문을 알지 못할 사연 하나 주웠으면

 

아! 서러움도 희망인

눈바람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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