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봉을 바라보며
수리봉을 향해 가파르게 산을 오르다
전망 좋은 바위에 앉아 몸을 식히는 동안
곁바람이 살짝 불었다.
그 바람이 너무 고요해
세상은 순간 적멸했고
말과 생각은 끊어졌다
면벽을 하고 아무리 생각을 지우려해도
도무지 도달할 수 없었던 그 삼매의 경지가
몰록 떠오르는 아침해처럼 마음을 넓게 지배했다
노르마의 아리아 casta diva를 듣는 기분이었다
바람에는 뜻이 없다
바람이 몰고 간 가을도 묘지가 되어버릴 겨울에도
속이 보이는 투명한 물고기 처럼
바람은 그냥 바람이다
잎새를 훑어가던 불손한 의도도
마른 잎을 흔들던 자비의 몸짓도
다 바람의 마음은 아니다
바람은 스스로 空寂하다.
세상을 더럽힌 발자국 혹은 그 짓이겨진 상처 위로
맑은 이슬처럼 바람 한조각이 머물다 떠나갔다
바위는 선한 모습 그대로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멀리 보이는 대간길은
선예한 한줄기 획을 남기고 멀어졌다
악몽과 같았던 내 지루한 고통의 나날.
오늘은 내 불온한 과거를 쳐부수는 혁명의 첫 시작일이었다
願我早登圓寂山
원아조등원적산
나는 어서 빨리 원적산에 오르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내가 오를 산이 어떤 산이 될지는 모르지만
내가 오르는 모든 궁극의 산은 원적.
죽음과 맞닿은
고요의 산입니다.
생사, 선악, 미추, 대소, 淨汚의 분별이 없는
오로지 청정하고 자유로운 자리,
모나지 않는 절대 자리.
설명이 필요없는 無爲의 자리.
그곳에 오르기를 소원합니다.
무실무허의 미풍이 신묘한 각성을 가져다 주는 그 자리에 오르기를 기원합니다
우주
우주라고는 하지만 참 막연한 부피가 아닌가!
하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자리조차 우주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우리는 늘 허공중의 외로운 존재다
그렇다고 우주가 주는 그 막연한 공허를 느끼기 위해 우주를 표류할 수는 없는 법.
높은 산에 올라
작아져만 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점점 졸아드는 삶의 나날들을 연민하게되는것은
우리가 어쩌면 심우주를 표류하는 공동 운명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슬픔은 이처럼 근원적인 면이 있다.
우리의 운명이 죽음이란 엄중한 상황에 꽉 물려있고
어떠한 예외적 방편이 허락되지 아니하는 한
우리는 너무나 무기력한 존재가 된다.
우주의 표류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간의 삶이 죽음에 종속되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죽음이 인간의 궁극적 종착지이기는 해도
우리는 죽음을 목표로 살아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현재의 삶으로 부터 죽음의 그늘을 온전히 다 지워낼 수도 없는것이다
죽음은 대장 끝에 달린 충수돌기처럼
언제나 우리를 위협한다.
죽음 끝에서 도롱이집처럼 달랑거리는 그런 삶조차 즐기려는 우리
그러기에 이렇게 위험을 감수하며 저 칼날 같은 능선위에 서 있는것이 아닐까
저 희망찬 산하를 바라보면
나는 아직 늙는다는것을 자랑할 수 는 없지만
늙어간다는것이 그다지 두려운 대상은 아닐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곳이 자라나는 저 푸른 소나무처럼
혹은 저 겸손한 바위들의 미소처럼
아직 한번도 받아 본적 없는 저 따사로운 햇살 이고 산다면
늙는다는것이 무엇이고
죽는다는것은 또 무슨 소용일까?
산이 제 무게로 빠져들며 또 되솟아 오르기를 반복하는 동안
문득 의문진 시 한수가 떠오른다
화두와 같은 시다
아직도 답하지 못한
아니 영원히 응답불능의 싯구가 되겠지만
시 자체로 이미 답이 되어버린
내 삶이 제법 얼큰했던 시절 읽었던 그 시.
늦가을의 질문/정연복
휙
한줄기 바람에
분분히 날리는 낙엽들
어느새 가을이 성큼 깊다.
내 가슴
얼마나 깊은가
내 사랑
얼마나 깊은가
나의 생은
얼마나 깊은가
이 산길을 디자인한 최초의 사람은
왜 굳이 오늘날의 우리를 저 험난한 절벽을 넘지 않을 수 없도록 길을 만들었을까
산봉우리는 푸른 철갑을 두른듯 말없는데
절벽을 오르며 악을 서는 사람들의 불안한 외침들이 계곡을 메운다.
나를 믿지 말고 줄을 믿으세요!
대체 어떤 상황에서 나온 외침인지가 자못 궁금했다.
산양처럼 바위에 매달려 열심으로 봉우리를 넘는 저 극악한 근성
오늘의 우리를 지탱한 힘이었을테지만
나는 이제 산양의 튼실한 다리보다
산양의 온순함을 더 닮고 싶다
싸락눈처럼 피곤이 몰려온다
아픔을 잊고 길을 걷는것은 오로지
幻이다.
나는 걸으며 나를 망각한다
나는 지금의 내가 온전한 내가 아니기를 희망하며
세상을 딛고 있는 내 두다리가
진정한 내 두다리가 아니기를 한상한다.
먼 시간을 거슬러 온 총총한 순간들,
이제 철지난 옷처럼 어울리지 않고
이제 나아갈 것인가 멈출것인가를 고뇌해야할 시간
한때 청춘이라 믿었던 시간들이
멀리 幻처럼 떠나간다
절벽에 매달려
문득 그 사라지는 시간들을 보았다
꿈의 이름을 빌어
幻의 방정식을 풀어 보았다
'조급히 생각하지 마세요
너무 조급히 생각하지 마세요"
조급히 생각하지 말라는 당신의 당부가
이제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말라는 판결문처럼
서운하게 들렸다
한 때 일상이었던 일들이
금칙이 되어버리는 순간
내 희망의 파랑새는 날아갔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불구자가 되어
시든 시간의 꽃다발을 들고있다
절망을 권유하는 차분한 표현,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한 때의 희망이
절망으로 천이되어버린
오늘의 산행
대답을 구해야할 청산은 말이 없고
생사가 넘나드는 圓覺의 대지는
제목을 붙이지 못한 시처럼
말문을 닫는다.
세월로 맺어 온 육신의 의리가 마침내 긴 침묵으로 정리되었다
달이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대표하듯
나의 행동은 지금의 나를 대표할 뿐이다.
하지만 그조차 진정 내것은 아니다
眞心의 그림자일 뿐이다
세상에 대한 절망을
다 복수로 대신할 수 없다.
세상은 복수를 용인하지 않는다.
복수라 이름할 뿐이다
죄에 自性이 없듯
세상을 향한 내 절망에도 자성이 없다.
내가 절망을 토해 낼 때
절망은 입 밖에서 卽非의 나비로 날아간다
절망은 오로지 내 마음의 병통일 뿐
心이 멸하면 절망도 사라진다
원통암 약수터에서
인간의 행동이 과거라는 뿌리에 영향을 받아 행동되어지는것 같아도
다 현재의 각자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산을 오른것도,
또 다음 산행을 기약하는것도
다 현재 내 머리 속을 꽉 채우고 있는 모종의 목적에 의해서입니다
내 불행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다 내가 어떤 목적을 향해 움직이다 얻은 결과라 볼 수 있습니다
지신이 원하는 누군가처럼 되기 위해 지금의 자신을
버려버린 결과입니다.
원통암
원통보전과 부처님 손바닥을 닮은 칠성암
원통전이라함은 관세음 보살을 주불로 모신 당우를 뜻한다
관음보살이 周圓融通(주원융통)하게 중생의 근심을 덜어 준다고 하여 원통전이라 부른다.
그래서 원통전의 주련 또한 관세음 보살과 관계가 있다
눈에 익고 귀에 익은, 수십번을 읽고 읽어 외다시피한 이 게송은
보문품의 일구이다
具足神通力(구족신통력)
묘한 신통력을 두루 갖추시고
廣修智方便(광수지방편)
넓게 지혜와 방편을 펼쳐
十方諸國土(십방제국토
) 온 세상 모든 國土(국토)에
無刹不現身(무찰불현신)
잠시라도 그 몸 나타나지 않는 곳이 없도다
보문품은 법화경의 일품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무진의보살에게 관세음보살의 신통력을 설하신 내용이
담겨있다.
워낙 관음신앙이 투철한 우리나라 사람들인지라
사찰 관음전이나 원통전에 가면
관세음보살 보문품이라하여 이 부분만을 따로 떼어 경을 만들어 비치하고 있다
普門
관세음 보살
관자재보살
천수보살
군다리보살
정취보살
제대보살
수월보살
만월보살
대세지보살
십일면보살
여의륜보살
대륜보살
관세음보살의 다른 이름들이다
관세음보살의 넓게 열린 普門의 마음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의 마음이 무한하기를!
- 후 기-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안달하기 보다는
지금의 자신을 가감없이 받아들일것.
자신의 부름에 솔직해질것.
조급함을 버리고
희망을 지워나갈것.
아름답게 늙어갈것.
긴 산길을 내려오며 나는 과연
보다 솔직해진 나를 대면했다고 볼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모두는
내 슬픔의 전주.
나는 더 은밀히 아파할 뿐이다.
산은 上帝의 정원다왔으나
풍경의 한켠은 이미 내 마음 만큼 조락했다.
Like A Dream - Gio 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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