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오르는 산/산행

2016.12.04 거창 월여산

poll™ 2016. 12. 4. 21:26




거창 월여산 산행



2016.12.04


거리: 8km


산행시간: 3시간 30분



산사랑 산악회


  



 









신기마을 산행기점



아주 오래된 정자나무가 눈에들어온다

눈에 들어온다는것은 일종의 정감,

목우즐풍하며 신산고초 다 이겨낸 筋信骨强한 모습이다.

겨레의 모습이다









칠형제 바위



가파른 비알길을 계속 올라 마침내 칠형제 바위에 다다른다

사진을 빌미삼아 숨 한번 쉰다.

거연한 한량처럼 누워 능청을 뜨는 산하의 몸을 더듬어며 구애의 하루를 보내는 것은

산에대한 내 사랑의 표현 방식이다.


내가 산을 사랑하는 만큼 산도 나를 사랑할것인가?

세상 만물에 人性을 부여하여 의인화하는 재주가 많은 인간이지만

그래도 내가 이 고초를 이겨가며 산에대한 사랑을 증명해내는 만큼

산도 나를 따사로이 맞아 주기를 희망해본다.






 


감악산 풍력발전기


감악산의 풍력 발전기가 아기들의 고사리손처럼 앙정맞게 보인다

선자령풍력기의 고독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정상부의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밋밋한 모양새다









오도산(가운데) 좌로 미녀봉



정상부의 탑이 아니었다면 오도산인지의 분간도 잘 하지 못하였을터이지만

저산은 분명 오도산이다

오도산 좌측으로 미녀봉의 올망졸망한 모습들도 잇달아 들어온다








산행은 산과 동시에 산행을 함께하는 동료의 마음을 얻는것이다

마음이 필요없다면 그냥 담담하게 홀로 걸어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도반으로써 산길을 늘 함께 걷는다면 더할나위 없이 즐거운 산행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점에서 내곁을  항상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는 나는

 펠릭스 멘델스존만큼 행운아다.


내가 좋아하는 대상이 날 좋아해주는것은 일종의 기적이라는 글이

생떽쥐베리는 어린왕자에 쓰여있었던것 같지만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나

산의 관심을 얻는일은 결국 나 자신이 먼저 따뜻한 관심과 다정한 마음을 쏟는 일일 것이다









산으로 가는 날은 그날 하루 전부터  설레인다

나는 내가 먹을 밥보다

동료가 좋아하는 빵을 먼저 챙긴다.


일기를 알아보고 입고 갈 옷을 준비하며

어떤 산을 오르게 될지를 검색한다.

그래서 산을 찾아가는 길은

내게 아주 익숙한 길 요컨데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길처럼  푸근함을 느끼게된다.


내가 붙잡은 나무가지

내가 발을 딛고 나아가는 오솔길의 질감

숲에서 뿜어나오는 그 신묘한 향기들이

마치 모태의 요람처럼 편안하다










오도산 미녀봉 비계산의 멋진 조망











나무가 새를 보내듯

혹은 보듬듯

그렇게 살아야한다


먼산들이 스스로 그러하듯

그렇게 따라야한다

따질일이 아니다.


알려고 들어서도 안된다

산에 들어 선자는

莫存智解

알음알이를 낼 일이 아니다.

그냥 그런것이다

道란 단지 회자정리요

진리란 밥먹고 똥싸는 일로 여길일이다


그러니 산에 오면 그저 바라보라

어짜피 국자는 국맛을 모른다.








동서 사방으로 경치의 흥에 취해

마치 술독에 빠진 주정뱅이처럼 풍경에서 헤어 날 수가 없다.


이미 멀어진 동료들의 빈 자리만이 나를 겨우 움직이게했다

산정에 가까와 질수록 날씨는 얼씨년쓰러워져

금방이라도 비를 몰고올것 같은 기세인데

산흥에겨운 나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흥분이 묘한 에너지가 되기는 근자에 처음이다.









바람이 차지고 빗방울이 들 기세를 하자

함께가던 동료들이 비설겆이를 하듯 점심을 먹고 가자고 한다.


바람이 들지 않는 후미진 나무 밑을 찾아 불을 피우고 라면을 삶는다.

우리는 가져간 누룽지로 우선 차가운 몸을 데웠다.

뜨거운 라면 국물이 들어가자 몸이 한층 따뜻해진다.


산행을 하다 라면을 끓여먹기로는  대간길 이화령 가는 길에서

기적소리님과 맛있게 먹었던 기억 이후로는 처음이다.


아니 빼재에서 삼봉산 너머 가던 길에도 기적소리님이랑 라면을 끓여먹었다.

그러고 보니 내 기억속의 라면은 거의 기적소리님의 추억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 라면은 가덕도 종주를 하며 바닷가에서 끓여먹었던 잡탕 라면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산사랑 산악회를 따라 장안산 산행을 하고 난 뒤

뒷풀이로 끓여먹었던 그 이상한 라면맛도 참 잊을 수 없다.

그것 역시 기적소리님이 끓여 주셨던 라면이다!









흔들 바위






월여산 정상




월여산 정상비 비문은 누가 썼을까

 질박하기 그지 없는 필체가 아닌가

내가 쓴다해도 이 보다는 잘 쓰겠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하기에 더 정감이 간다.

 다정스럽다

비로소 이웃같다.












월여산 2봉



뒤로 합천호가 보인다










합천호와 악견산















월여산 만물상














원평마을 전경









합천호에 걸린 악견산과 금성산





















악견산 금성산 허굴산의 나란한 모습









미녀봉에서 금성산에 이르는 대 파노라마






비계산(좌)에서 허굴산(우)에 이르는 대파노라마














































만물상과 감악산 정상부















































자작나무 숲과 황매산의 멋진 위용








합천호와 황매산을 한아름에 품은 전경



황매산 삼봉이 뚜렷하다

합천호 푸른물에 황매 삼봉이 잠기면

물속에 매화꽃이 피었다하여 수중매라 일컷는다하는데

합천호곁에 솟은 겨울의 황매산은 처염상정의 연꽃처럼 아름다왔다.


세상이 그대로 불국토다.

지극으로 안정된 대기,

맑지도 흐리지도 않는 차분한 시계,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 중도의 기운이

 화엄장구의 세계,

어쩌면 눈 앞의 바로 이 세계야말로

 비로자나불의 법신일지 모른다는 큰 환희심을 불러 일깨웠다






오늘의 베스트 샷


자연에 고스란히 함몰된 어진 인간의 전형을 담아낸것같은 자긍심이 이는 사진이다.

좋은 카메라로 좋은 풍경을 풍부히 담아내는것도 소중한 일이지만

자신도 감지하지 못하는 대지의 입김 혹은 크다란 영감이

대우주처럼 항상 주위에 현존함을 일깨워 주는 이 한컷이야말로

찰라를 뛰어넘어 생애를 건 포착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자작나무 숲에

은빛 햇살이 더 눈부셨다면

그리하여

처녀의 숲이 험결없이 적나라했다면

나는 아마 주저 앉은 채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해뜨는 아침이면 날아드는

맑은 눈의 오목눈이처럼

숲에 눈을 맏긴 채

그대로 하나의 그리움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신비로움을 넘어 성스럽게 느껴지던 그 빛의 따사로움은

마치 방금 빨아낸 빨래같았고

처음 덮어 보는 이불과도 같았다


세상을 사랑하는 만큼

빛이 밝아졌고

가까이 가는 만큼 세상은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저 멀리 황매산에서 철 이르게 피어난 매화꽃이 흐느지게 떨어져 내리는것 같았다.







푸른 들판에 뛰어노는 양떼처럼,

갈퀴를 세우고 달려나가는 백마처럼,

희고 큰 가슴을 지닌 어진 애인처럼








월여산 삼봉에서 내려오는 길에

황금빛 카펫을 깐듯한 노란 억새의 물결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를 술에 취해 남도 민요를 흥얼거리듯 일행들이 흥겹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을 돌연 정지 시켜버린듯한 고요가 찾아왔습니다.

농밀한 질료의 평화가 가슴벅차게 밀려옵니다.


죽는다는거 일생을 쓰먹은 낡은 몸 하나 벗어 버리는거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그 몸 벗기 전에 이런 일기일회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운인가요!


들이는 수고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커피처럼

산도 벗도 내 지극한 정성에 보답할터.

 조바심 내어 걸어갈 필요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등에 맨 배낭처럼 현연했다.









산을 내려오며

산행은 다행히도 지고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는 데 위안을 얻었다.

늦은 걸음에도 마음이  흡족했다.

산행에서 유일한 승리가 있다면

행복의 끈을 놓치지 않는 용기일 것이다.


산행을 지속 가능하게하는 여러 동기들이 있겠지만

가장 큰 요소는 자연이 주는 감동을 온전히 가슴에 담아오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산행은 무척이나 완성된 산행이라 볼 수 있다.


지리재로 내려가는 하산길은 평이했으나

흥분을 다독이기에 더없이 차분했다

지나 온 풍경의 기억이 고사리 순처럼 돋아난다.


일쇄동방 결도량

이쇄남방 청안량

삼쇄서방 정안토

사쇄북방 영안강


천수경의 일구 처럼

천지사방 어디 한곳 흠결없는 풍경이었다.

도량청정무하예(道場淸淨無瑕穢)

맑고 깨끗한 세상을 만나니

마음의 도량에도 티끌이 없다


세상이 다 법도량이었다









산을 내려오며

나는 비로소 여행을 떠나며 불단속을 하는것처럼

 한 둘 풍경으로부터 색을 지워 나갔다.


흑백의 렌즈로 보는 세상은 훨씬 겨울 다왔다

문득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가 말을 걸어 온다.

겨울여행이란 원제목보다 겨울 나그네라는 우리식 표현이

더 정감있고 운치있는 가곡집이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일방적인 상처를 받은 나그네

길목의  겨울 나무가 젊은 예술가의 고독을 쓰다듬는다


타인의,

다른,

이방의,

낯선,

외부의,

고독한 빛깔의 언어들이 눈부시게 방황한다

나는 나그네일까, 나무일까?



게르하르트 휘셔의 흑백사진과도 같은 바리톤

아무런 장식도 없이 흐르는 담담한 담채의 네레이션.

울라프 베어의 청아한 자기 독백과도 같은 흐느낌도 흐른다

노래의 끝이 파격처럼 휘날린다.



회청빛이 감도는 하늘은 젊은 예술가를 추모하기 좋았고

나목이 빚어낸 황량함은 수묵처럼 담백했다.


길은 혼자 너울처럼 느린 부침을 계속했다.

나는 아무도 있을 리 없는 뒤안을 몇번이나 되돌아보며

고향을 등지고 길을 떠나는 나그네의 심경을 헤아려 보았다












사랑에 빠져 심장을 잃었다는 표현대신

월여산 어느 기슭 위에 마음을 두고 온 나는

안경을 잃어버렸다고 말하고 싶다


젊은 시인의 여린 가슴이여 오늘은

늙어가는 내 두 눈을 위로해 다오


황매산 바라보며

스스로 상처를 키워가는 자작나무처럼

내 두 눈으로 보고 쓴

이 빛바랜  여행서를 앞으로도 계속

채워갈 수 있게 해 다오.


 








누구에게도 아무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호밀밭의 파수군-







집으로 가고 싶어졌다

그것도 가능하면 빨리....

술에 취해 허느적거리는

저 미련한 엉덩이들을 걷어 차고서라도....












- 후 기-



반백이 되어가는 머리 위에

세월이 흥건하다.


이제 근심이 되어버린 세월,

세월의 저항을 느낀다는건

내 삶을 증명할 힘이 이제  두 다리의 힘 밖에 없어졌음을 의미한다.


한걸음을 옮길 때마다 비틀거리는 내 다리

나는 이 불운한 도구에 의지하여 악착같이 세월을 버티어 볼 생각이다.


나 스스로 물러나는 일은 없을 거라는

내 생의 마지막 호기이다.




- 完 -





 

 

Erstarrung(Numbness)-동결